이 영화의 광고 문구를 봤을 때 전 의아했습니다. ‘감성 느와르’라는 하이브리드 장르의 작명이 그다지 자연스러워보이지 않았거든요. 원래 느와르는 감성적인 장르 아닙니까. 다만 건드리는 감성의 영역이 다를 뿐이죠. 그럼에도 새삼스레 ‘감성’이라는 단어를 우겨넣어서 강조를 하려는 거 보니 강렬한 감정을 대놓고 자극하려는 듯 해서 좀 불안했습니다. 안 그래도 뻔하디 뻔한 경찰과 조폭의 이야기에 멜로를 끼얹은 부류의 한국 영화는 사실 거의 성공한 게 없을 뿐더러 몇 안되는 성공한 작품들도 대부분 90년대 이야기라는 말이죠. 거기다 불안해지는 요소는 하나 더 있습니다. 장진 감독이 평단의 호평도, 흥행 성과도 내본지 오래됐다는 거죠.
이 영화의 제목이 하이힐인 이유, 그리고 내 안의 여자가 죽었다는 문구에 아리송함을 느낀 사람들이 많았을 겁니다. 느와르를 표방하는 작품이 여성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상당히 이율배반적인 이야기죠. 그러나 이는 영화의 핵심 주제이자, 이 영화를 다른 영화와 차별화하는 결정적인 지점이기도 합니다. 영화의 주인공 지욱은 외향적으로 완벽한 남성성을 갖췄음에도, 성적 정체성은 여자인 인물이기 때문이죠. 그는 트랜스젠더입니다. 그리고 장진 감독은 이 부분에서 이 영화를 흔해빠진 한국식 느와르물의 전형에서 탈피시키려 애쓰고 있습니다. 광고랑 다르게, 이 영화는 느와르보다는 퀴어 영화에 그 본질이 가깝기도 하구요.
사실 장진 감독에게 정통 느와르를 기대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화의 캐스팅과 간단한 시놉시스만 살펴봐도 하이힐이란 영화는 대단한 모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련된 마초 캐릭터의 화신 같은 배우 차승원을 데리고, 여성성을 고뇌하는 남성의 이야기를, 느와르라는 장르의 토대에서, 재기발랄한 장진 감독이 해야 합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겠죠. 그러나 배우의 이미지와 연기, 감독의 장기와 미학을 고려해봤을 때 이 이질적인 재료들이 하나의 작품으로 합쳐질 수 있느냐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애초에 이 영화는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개가 아니었던 거죠.
이 영화는 장진 감독의 영화답게, 어딘가 소년스러움이 묻어있습니다. 미성숙하고 불완전한 인물들이 무언가를 갈구하고, 순수함과 비겁함 사이에서 갈등하는 패턴의 이야기가 어김없이 나옵니다. 지욱은 여성이 되고 싶어 하며 그런 그의 동경은 트랜스젠더 바의 아름다운 여성 도도(이엘)를 향해 있습니다. 동시에 진욱은 동경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그의 후배 형사 진우, 적대관계에 있는 허불, 허곤 형제는 그를 남자 중의 남자로 인정하고, 흠모합니다. 장미와 진욱은 과거의 상실과 현재의 열망을 서로에게 투영합니다. 모든 인물이 진욱을 중심으로 원하고 원망하는 관계에 있죠. 문제는, 이 애달픈 감정을 강조하느라 정작 무정한 느와르 세계를 그리는 데는 소홀했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서로에 대한 애증으로 얽혀있느라 장진 감독의 느와르는 오히려 다른 작품보다도 감정이 충만해보입니다. 감정 대신 욕망이 앞서고, 그 때문에 차갑고 비정한 공간이 느와르의 본질임에도 말이죠.
주인공인 강력계 형사 지욱의 전설 같은 무용담을 회고하며 영화는 시작합니다. 이 장면에서 펼쳐지는 액션씬은 굉장히 격렬하면서 빠른 호흡을 자랑합니다. 또한 매트릭스의 스미스 요원을 방불케 할 만큼 과장된 구타 장면은 장진 감독 특유의 장난기가 여전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기도 하구요. 그러나 이후 나오는 이 영화의 주된 액션 시퀀스들은 허용 정도를 벗어나는 과잉의 연속입니다. 비장미나 신파가 항상 넘쳐서, 액션 자체에 몰입하기가 힘들어요. (검사가 조폭이랑 주먹질 하는 게 가당키나 합니까!!) 캐릭터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소도구 정도로 다뤄질 뿐, 치고 박는 씬들은 액션 본연의 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습니다. 열심히 싸웁니다만, 등장인물들이 폼을 잡는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들 뿐이죠. 이런 부분에서, 장진 감독이 느와르를 그냥 똥폼 잡는 장르라고 오해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가기도 합니다.
비단 액션 뿐만이 아닙니다. 전체적으로 이 영화는 모든 것이 과잉의 연속입니다. 감독의 의도 하에 무언가가 일부러 과도하게 표현된 작품들이 더러 있지만, 이 영화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냥 수위 조절을 잘 못했을 뿐이에요. 인물의 감정과 영화의 분위기가 너무나 노골적으로 관객의 감정을 보채고 있습니다. 툭 하면 슬로우 모션과 클로즈업 그리고 여봐란듯이 깔리는 구슬픈 음악에서 보는 사람은 영화 속에 녹아들어갈 기회를 오히려 잃어버립니다. 관객이 조금씩 슬픔에 젖을 시간을 주지를 않아요. 내러티브로 감정을 유도하는 대신 이 영화는 시종일관 최고점을 달리는 장면을 별안간 보여주는 형식을 고수합니다. 적시는 대신, 슬픔을 끼얹는다고 할까요.
이는 서로 상충되는 재료들을 하나로 섞으려 하다 보니 그 과정에서 생긴 실패입니다. 느와르라는 토대 위에서 퀴어 드라마를 찍어야 하는데, 거기에는 사춘기 멜로까지 끼어있으니 다양한 감정과 분위기를 통일된 흐름에서 조절하는 데 실패한 기색이 역력합니다. 어떤 때는 반짝반짝 했다가 어떤 때는 한 없이 어두운가 하면 어떤 때는 블랙 코메디를 표방하니 영화 자체에서 갈팡질팡 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얼기설기 감정의 파편들을 엮어놓은 인상이 강해요. 어쩔때는 오분짜리 뮤직비디오를 20개 엮어놓은 기분마저 듭니다.
이 영화가 퀴어 영화로서 진지하지 못한 것 또한 문제입니다. 초반 교회에서 눈물을 흘리는 지욱의 고해성사는 연극체 대사가 거슬리긴 하지만 퀴어 영화로서 어필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이후 성정체성의 불일치를 코메디의 소재로 써먹는데 그치고 맙니다. 지욱이 트랜스젠더 바에서 겪는 해프닝이나 그가 여자의 옷을 입고 여성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부분은 모두 경박한 웃음기가 들어가있습니다. 영화 안에서 이 성정체성의 문제는 지욱에게 지극히 심각한 일 아닌가요? 그걸 다 같이 웃고 즐기는 장면으로 때우는 균형감각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영화가 제시하는 중심 인물의 고통과 그걸 풀어나가는 방식이 전혀 맞지 않아요. 자신이 처음으로 동성애자임을 깨닫고 풋풋한 사랑을 하던 청소년기의 회상 또한 얄팍하기 그지 없습니다. 아도니스의 외형이 아니면 동성애를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미화된 이성애자의 판타지를 보는 느낌밖에 들지 않아요. 영화는 아역들이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씬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담아 포장질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전혀 미형이 아닌 울그락불그락한 어린 시절의 지욱이 등장해 비참한 첫사랑을 겪는 게 훨씬 순리에 맞죠.
사실 지욱이라는 인물 자체도 트렌스젠더라는 성 정체성을 온전히 묘사해놓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자신의 여성성을 죽이기 위해서 남성성을 역으로 키웠다고는 하지만, 그런 인물이 정말 저런 식의 활극은 벌일 거라는 상상은 하기가 힘듭니다. 여성성을 간직한 남성이, 자신의 성 정체성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방식으로, 저렇게 현란하게 일대 다수로 사람들을 때려눕히고 폼을 잡을려고 들까요? 지욱의 여성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스킨십에 좀 민감하게 군다던가 새끼 손가락을 들어올리는 등의 강조는 하지만, 이 인물은 여전히 있을 법한 사람처럼 안보입니다. 오히려 얄팍한 변명거리의 디테일로 전체적 묘사를 퉁치려는 느낌이에요. 캐릭터로서 양감은 살아있지만 그 안은 텅텅 비어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영화가 끝날 때까지 지욱은 여자 흉내 내기 좋아하는 남자 같습니다.
느와르로서의 기승전결도 많이 헐겁습니다. 일단 지욱의 안타고니스트로 나온 허곤은 그 비중이 너무 낮습니다. 인물 자체와 행동에서 불안한 전조나 위험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요. 거기다가 둘의 갈등도 인과관계가 허술한 편입니다. 지욱이 위험에 처하는 상황은 그저 허곤의 변덕 비슷한 생트집에 근거하고 있는데, 인질극을 펼치고 지욱을 유인하는 허곤의 선택은 갑작스러울 뿐입니다. 동경하던 상대에 대한 실망감이 느와르 장르의 인과관계를 설득하기에는 너무 장진스러워요. 그리고는 정작 아무 일도 못한채 혼자서 짜증만 내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결말 또한 아무런 카타르시스도 전해주지 못합니다. 이 부분에서 황당한 것은 허곤이 이 느와르의 주인공인마냥 조직에서 버림받은 인물로 그려진다는 겁니다. 글쎄요, 이미 죽은 마당에 조직이 등을 돌리건 말건 알게 뭔가요? 허곤을 향해서 감정이입을 유도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지나치게 90년대 느낌입니다. 담고 있는 감수성이나 분위기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영화의 연출이 20년 정도 뒤쳐져있다는 말이죠. 차승원씨가 정말 고군분투하며 오락가락하는 영화 속에서도 중심을 잡으려 하지만, 이런 시나리오를 가지고 깊이를 담아내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모든 것이 촌스럽게만 느껴지는 이 영화에서, 장진 감독의 유머에라도 기대어 러닝타임을 견뎌보려고 했지만 그마저도 먹히지 않는 이 영화는 그저 민망하거나 실소말고는 다른 반응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런 식으로 향수를 자극받고 싶진 않아요. 더 안타까운 것은, 이 영화가 충분히 장진스럽다는 것입니다. 자기 색깔을 고집하는데도 이런 결과가 나왔다면, 장진 감독은 자신의 미학이 더 잘먹힐 수 있는 특정 이야기를 찾아야 할 겁니다.
@ 나이트 클럽에서의 첫 액션씬은 달콤한 인생과 올드보이의 오마쥬로 보이네요. 허곤 허불 형제는 아저씨에서 빌려온 설정일까요?
@ 이솜씨 이쁘네요.
@ 차승원씨 액션 연기 되게 잘 하네요. 키 때문에 스턴트맨을 쓰고 싶어도 못쓴다고 하던데. 영화의 완성도와 별개로, 차승원씨가 배우로서 내뿜는 존재감은 대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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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거룩한계보 다시 봤는데...
영화감독으로서의 재기발랄함은 킬러들의수다 -> 아는여자에서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듯 합니다.
장진 감독의 영화니깐 그냥그냥 볼만은 한데 이게 완성도가 영 아니에요
개연성 없는 설정으로 웃음을 만들어내는 장진감독의 무기가 영화의 완성도가 구리면 '저게 뭐야?' 라는 반응밖엔 이끌어내질 못한다고 보거든요
분명히 아직도 제작자나 각본가로는 충분히 먹힐만하다고 보는데
아들 -> 굿모닝 프레지던트 -> 로맨틱헤븐에 이어 이번 하이힐까지 망이면 감독으로써 차기작은 당분간 보기 힘들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