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6월 7일 토요일) 서울 신촌에서 열렸던
[제15회 퀴어문화축제]에 다녀왔습니다. 일전에 PGR 자유게시판에
'서대문구청이 퀴어문화축제 승인을 일방적으로 취소했다'라는 요지의 글이 올라온 바 있지요. 그걸 읽고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허나 저는 이성애자인데다 서울의
퀴어문화축제에 가본 적이 없어서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하나도 몰랐는데, 다행히 아주 친한 친구(레즈비언입니다)가 이래저래 안내를 해준 덕에 재밌게 즐길 수 있었습니다.
이하는 주관적 기록입니다.
1. 퍼레이드 전 분위기
저는 17시 무렵 신촌에 도착했습니다. 현대백화점과 홍익문고 사이로 이어진 길로 가보니, 가장 먼저 보인 건 기독교적 가치관(이라 당사자들이 주장하는 내용)이 담긴 피켓을 든 몇몇 분들의 반대시위였습니다. 허나 그 너머에는
퀴어 문화 축제의 여러 부스가 활기차게 운영되고 있었고, 그 뜨거운 열기는 겨우 몇 명의 시위로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예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축제를 즐기고 있더군요. 레즈비언으로 추측되는 젊은 여성과 게이로 추측되는 젊은 남성이 가장 많았지만, 중장년층도 심심찮게 보였고, 서구인이나 일본인, 중국인, 동남아인들도 보였습니다. 남녀 커플도 상당히 많았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들 각자의 성적지향성은 겉보기로 쉽게 구분되지 않았습니다. 아마 저 또한 게이로 본 사람이 많았을 것입니다. 현장에는 여러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는데, 그 중에는 노동당과 정의당의 깃발도 보였습니다.
현대 유플렉스 앞 사거리에 설치된 무대 부근에서 친구 일행과 합류했습니다. 잠시 후 무대에서는 여성적인 복장의 세 남성이 '바나나 캬라멜'이라는 팀명으로 댄스공연을 하더군요. 아마 제가 가기 전부터 공연이 계속 진행중이었던 모양입니다. 호응하는 사람이 많아서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특히 모자 쓴 분은 정말 춤을 요염하게 잘 추시더군요.)
이어진 '교회 다니는 여자들'이라는 그룹의 무대에서 상당히 놀라운 모습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퀴어를 혐오하는 것은 하나님의 참뜻이 아닙니다.'라는 요지의 스피치였죠. 중간중간에 '아멘'이라며 호응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화면에는 발언을 수화로 옮기는 분의 모습이 클로즈업되어 비쳤습니다. '저들이 어떤 도발을 해도 응하지 말고 다만 평화적으로 행진하자'라는 다짐이 이어졌습니다. 발언자의 유도에 맞춰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라는 구호를 다같이 몇 번 외쳤고, 이어서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비롯한 몇 곡의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저와 친구들은 좋은 응수라며 웃었습니다.
2. 퍼레이드 출발
한 서구인의 '가시면류관 그 분' 코스프레가 인상적입니다.
덧붙여 사진 왼쪽의, 빨간 손수건을 목에 착용하신 분은 퍼레이드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계속, 계속 즐겁게 웃고 계셨습니다.
정말 기뻐보이더군요.
17시 25분 경, 무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퍼레이드의 선두가 위치했습니다. 역시 놀랍게도 퍼레이드 출발을 선언하는 분들은 종교인들인 듯 보였습니다. 정확한 발언내용까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먼저 사진 속에서 마이크를 잡고 계신 여성 분이 준비한 선언문을 낭독했습니다. 그 분이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라고 말씀하실 때, 주변의 사람들은 다함께 미리 배포받은 장미꽃잎을 하늘로 날려올렸습니다. 저도 외야수가 송구하듯 힘껏 던졌습니다. 흩날리는 장미꽃으로 가득한 하늘이 꽤 멋있었는데, 장미 더 얻어서 마구 뿌리느라 사진은 못 찍었습니다.
이어 사진 좌측의 두 신부님이 별개의 선언문을 합동으로 낭독했습니다. 중간중간 청중과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이 천주교의 미사 방식과 유사해보였습니다.
주변의 음식점이나 카페 등에서는 식사를 하다말고 창을 내다보는 사람이 가득했고, 각 건물의 옥상까지 인파가 늘어섰습니다. 까딱 잘못하면 떨어질 것 같은 자세로 잘도 올라가 있더군요. 우연이었는지 모르겠으나, 옥상에 올라간 사람들 중 다수는 서구인으로 보였습니다.
3. 반발과 대치
퍼레이드가 시작되었습니다. 행렬은 천천히 명물길을 따라 동북쪽, 그러니까 경의선 신촌역 방면을 향했습니다. 피켓을 든 소수의 기독교인이 바로 길을 막아섰지만, 약간의 실갱이를 거쳐 길이 확보되었습니다. (사실 원래 예정되었던 루트는 연세대 정문에서 우회전하는 것이었는데, 아마 기독교인 집회를 강행돌파하지 않기 위해 명물길로 돌아선 듯 싶습니다.) 사명감에 눈이 빛나던 그분들이 다시 길을 막아서려 하시기에, 저를 포함한 몇 명이 몸으로 방벽을 쌓았습니다. 행렬이 반쯤 지나가자 더 밀치지 않으시기에 저도 다시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좇아가보니 행렬의 선두는 멈춰 있었습니다. 어버이 연합…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연배로 보이는 남성 노인분들과 기독교인들이 길을 막아선 것입니다.
노인들은 과격하게 주먹과 지팡이를 휘둘렀습니다. 피켓에는
-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 Believe in Jesus
- 세월호 벌써 잊었나 축제가 웬말이냐
- 동성애는 유전이 아닙니다. 치료될 수 있습니다.
- Homosexuality is sin. You can be healed.
- 동성애자도 하나님 앞에 회개하면 천국간다
- 청소년들이 동성연애 때문에 에이즈 환자가 되어가고 있다.
- 건전한 가정을 파괴하는 동성연애에 반대한다
등의 문구가 보였습니다. 이에 맞대응하는
- LGBT 우리가 이곳에 있다
- JESUS LOVES EVERYONE EVEN HOMOPHOBES
- 주여! 저 호모포비아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이 자신의 죄를 알지 못합니다.
등의 문구도 보였습니다. 뭐 애당초 퍼레이드 참가자들은 다들 깃발이나 캠페인 종이를 들고 있었지만요.
서둘러 경찰이 개입했습니다. 경찰은 어느 한 쪽의 편을 들지 않고 스크럼을 짜서 두 집단 사이의 유격공간을 만들었습니다. 고성이 오갔습니다.
정체가 계속되자 행렬 측에서는 욕지기나 공격적인 손짓 등을 지양하고 가능한 아우성과 야유로만 응수하려는 분위기로 옮겨갔습니다.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라는 구호를 반복해서 외치거나 퍼레이드 스피커에서 울려퍼지는 노래를 함께 부르거나 했습니다. 인원수로 따지면 행렬 측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덩치 좋은 남성도 충분히 많았기 때문에 강행돌파는 얼마든지 가능했지만 그러지 않더군요.
얼마 후, 기독교인 측은 경찰의 제지로 조금 물러섰으나, 노인 한 분(이하 노인A라 하겠습니다)이 아예 길에 드러누워서 개복 권유…즉 배째라를 시전하셨습니다. 딱 밟히기 좋은 아주 위험한 위치였지만, 적어도 제 위치에서는 노인A에게 물리력을 가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라는 구호에 이어 "할아버지 사랑해요"라는 구호도 폭소 속에서 연호되었습니다.
친구들이 담배 피우러 골목으로 빠지길래 잠깐 따라가보았습니다. 보라색 피케 셔츠를 입은 아저씨께서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우리를 쳐다보다가 친구가 담배에 불을 붙이자 "담배꽁초는 여기 버리면 안됩니다."라고 하시더군요. 식당 주인인 듯했습니다. 퍼레이든지 뭔지 어서 하고 가주면 좋겠다고, 그나마 손님 있는 토요일에 길을 이렇게 막고만 있으니 죽을 맛이라고 하시기에, 당시의 대치 상황을 간단히 설명드렸습니다. 그게 복선이 될 줄은 당시에는 몰랐지요.
제가 지켜보기엔 노인A께서 누워있는 동안 몇 명의 백인이 그를 열심히 설득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말도 안 통했을 그들이 대체 무슨 이야기를 했을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친구에게 "길바닥에 누운 사람을 합법적, 비폭력적으로 일으키려면 119 부르는 게 최고 아냐?"라고 농담을 했는데, 약 4, 50분 정도의 대치 끝에 정말 119 구조대가 등장했습니다. 그제야 노인A는 바닥에서 일어났습니다. "이놈들! 이 죽일 놈의 XX들! 이게 다 나라 망하게 하는 짓거리여!" 그는 일어나서도 지팡이를 휘두르며 휘청거렸고, 그 지팡이를 주변의 몇 명인가가 붙들고 '이러시면 안된다'며 말렸습니다. (사진에서 노인A가 든 오른손은 분명한 위협이었습니다. 저에게도 몇 번 휘둘렀습니다. 별로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좌측에 회색 모자를 쓴 장년 남성은 퍼레이드 참가자셨습니다. 50대는 되시겠더군요.)
그런 노인A에게 항의하는 다른 노인분(위 사진에는 보이지 않습니다)이 있었습니다. 서로 악을 쓰며 대치를 했는데, 잠시 후 그를 말리며 데려간 것은 다른 남성 노인이었습니다.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도 노인 게이커플일지도 모르겠다 싶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아까부터 서로 팔짱을 낀 4, 50대의 여성분들도 보이더군요. 그들이 대체 어떤 삶을 살아왔을지를 상상해보려 했으나, 불가했습니다. 60, 70, 80년대의 한국에서 동성애자들이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에 대해 저는 알지 못하니까요.
자꾸 다시 길 한가운데로 돌아가려는 노인A를 아예 붙들어서 길 밖으로 끌고 나간 인물은… 아까의 식당 주인 아저씨셨습니다. 밥 시간은 다가오고 행렬은 여전히 길을 막고 있고, 했던 게 초조하셨던 모양입니다. 서둘러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습니다만 인파에 가려 제대로 나오지 않았더군요.
드디어 다시 전진한다고 모두가 기뻐했던 것도 잠시, 행렬의 앞길은 또 막혔습니다. 아까의 노인A께서 길을 점령하는 동안 앞쪽에서 아예 기독교인들이 터를 잡고 반대시위를 시작한 것이죠. 경찰이 다시 개입하여 행렬의 앞쪽과 반대시위 주변을 에워쌌습니다. 대치는 길어졌고, 아예 각 퍼레이트 차량에서는 이동을 멈춘 상태에서 음악과 춤이 울려퍼졌습니다. 몇 사람인가가 목소리를 높여 경찰에게 따졌습니다. 우리의 평화적이고 정당한 시위를 억압하려는 저들에게 적극 개입하여 우리를 보호해달라,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허나 제가 보기에 행정상으로는 양쪽 모두 허가받지 않은 불법 집회였기에, 어느 쪽이 정당한가는 그저 가치판단에 달린 문제였고, 따라서 양쪽 모두를 보호하려고 했던 경찰의 대응은 적절해보였습니다. 행렬 사이에서도 금방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고(제 주변에서는 "아저씨, 경찰한테 그러시면 안돼요, 우리한테 오히려 안 좋아요"라는 외침이 들렸습니다), 경찰을 비난하는 목소리는 곧 가라앉았습니다.
(추가) 위 문단에는 잘못된 내용이 있습니다. 상세한 설명은 글곰 님께서
댓글(새 창 링크)로 알려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진 우하단에 찍힌 두 여성의 경우, 보시다시피 피켓을 통해 분명한 반대의 의사를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반대자들이 앞쪽의 시위장소로 이동했음에도 두 사람만은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며 몇 시간이고 피켓을 들고 있더군요. 손가락질을 하거나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거나 눈에 띄게 비웃는 사람도 많았고, 언론사 카메라가 그 모습을 담아가기도 했지만 그들은 의연했습니다.
[그들의 의견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었지만] 그 강단만은 대단해 보이더군요. 제가 지켜보는 수 시간 동안 두 명의 퍼레이드 참여자가 피켓을 뺏거나 하며 그들의 반대의사 표현을 막으려했지만, 경찰이 제지했습니다. 경찰의 조치가 제 눈에는 바람직해보였습니다. 다른 의견이든 틀린 의견이든 원천묵살은 바람직하지 않죠. 그래가지고는 될 포용도 안될 거다 싶었습니다. 물론 핍박과 억압으로 인해 고생스럽게 살아온 성적소수자들에게는 그 반대의견 자체가 지독한 트라우마일 수 있기에, 감정적인 행동 또한 이해가 되기도 했습니다.
약 30분 후에는 반대의사의 피켓을 든 이들과 입씨름을 하는 사람들도 나타났습니다. (수정) 파란색 테두리 속 두 분이 꿋꿋히 반대의사를 표현했던 이들이고, 녹색 테두리 속 세 분이 그들에게 대화를 시도한 이들입니다. 제가 약간 떨어져 있었다고는 해도 큰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고, 경찰 또한 제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비교적 평온한 설전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네들은 거의 10분간 이어진 대화 후 눈에 띄는 다툼없이 헤어지더군요. 분명 감정을 건드리는 견해차를 실감했을텐데도 끝내 대화를 대화로 끝내는 그들의 모습이 바람직해보였습니다.
더 이상의 전진은 어렵다고 판단했는지, 각 차량에서는 아예 본격적으로 풍악을 울렸습니다. 여러 곡이 이어져 나왔는데 기억나는 건 '붉은 노을(빅뱅)'과 'Right now(싸이)', 'Party Rock Anthem(LMFAO)' 정도네요. 가끔 참가자들이 트럭 무대에 올라서 춤솜씨를 뽐내기도 했습니다. 특히 꽤 우람한 몸집의 백인 중년 여성이 한 분 올라가셨는데, 춤을 엄청 잘 춰서 놀랐습니다. 흥이 고조되더군요. 역시 자발적인 축제가 아니면 이런 흥겨움은 나오지 않는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앞면에는 '차별에 맞서서 행동하자', 뒷면에는'결혼의 권리를 모두에게'라고 인쇄된 캠페인 종이를 치켜들고 박자에 맞춰 흔들었습니다. 그 순간의 제 의견은 '지금 이 퍼레이드를 즐기는 게 가장 강력한 웅변이다'였기 때문입니다.
잠시 앞쪽으로 걸어나와 반대측 시위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쪽은 저쪽에 비하면 비교적 조용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더군요. 찬송가와 애국가가 불려졌고, 또한 2002 월드컵 당시의 '대~한민국'도 종종 외쳐졌습니다. 종종 "애국가를 그런 의미로 부르지 마!"라는 외침도 들리더군요.
그들은 꿋꿋했지만 큰 활기는 없어보였습니다. 어쩌면 예상을 훨씬 웃도는 인파에 눌린 것일지도 모르고, 또 어쩌면 자신들의 반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놀고 있는 퍼레이드 참가자들에게 질린 것일지도 모릅니다. 퍼레이드를 반대하는, 혹은 그 반대를 반대하는 견해를 악 써가며 피력하는 이들이 간헐천처럼 솟았다 꺼졌지만, 어떻게 봐도 대화하려는 의지가 있는 거 같진 않았습니다. 어차피 서로를 말이 통하지 않는 집단으로 여기고 있을테니 당연한 일일 겁니다.
재밌게도, 한국어로 된 말에는 종종 반박이 들려왔지만 서구인들이 외국어로 외칠 때는 다들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뭐 저도 영어 외에는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으니, 단순히 언어적인 문제가 가장 컸겠지요. 허나 그 모습을 보며 저는, 단순히 글로벌 스탠다드적인 압박감을 제공한 것만으로도 외국인들의 퍼레이드 참가는 유의미한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말하자면 '우리나라의 몇몇 철없는 애들이 유별나게 & 이상하게 군다' 정도의 스케일로만 인식하던 일부 반대론자들에게 더 큰 규모의 인식을 비폭력적으로 종용한 셈이죠.
덧붙여 사진 중앙부 좌측에 있는 피켓(?)에는 '로마서 1:28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라 되어 있습니다.
4. 잠깐의 소강
걸음을 멈춘 퍼레이드, 그 대치는 20시가 넘어서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조금씩 풍악도 흥도 소강에 접어들자 저와 친구들은 후속 퍼레이드 카를 둘러보고 다녔습니다. 게이 커뮤니티가 중심이 된 차(여럿이 헐벗은 것이 그야말로 남탕이었습니다! 맨살을 거의 가리지 않는 가죽 밴디지 차림의 남성도 있었습니다. 뭐 얼핏 듣기로 홍콩에서 초청받아 오신 분이라고 하더군요.)도 있었고, 레즈비언 커뮤니티가 중심이 된 차도 있었습니다. 코르셋 + 가터벨트 + 스타킹 차림으로 춤을 추던 여성분이 무척 섹시하더군요. 뭐, 아마 저 같은 남자에게는 관심도 없으시겠지만, 그렇다고 그게 그 여성분의 성적 매력에 영향을 끼치는 건 아니지요. 레즈비언이든 트랜스젠더든 제 관점에서는 그냥 수많은 여성 중 한 명입니다.
모 여성 커뮤니티에서 퍼레이드카로 동원한 검은색 포드 머스탱 오픈카에서는 한복차림의 여성들이 지나가는 이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어주고 있었습니다. 가만보니 이성애자 커플들이 기념사진을 꽤 많이 찍더군요. 서구인들도 그렇고 한국인들도 그랬습니다. 제 친구가 보기 좋다고 그러더라구요.
그 앞에는 휠체어에 탄 여성분들도 모여 계셨습니다. 이곳에서도 참가자들은 음악에 맞춰 춤을 추거나 했지요. 당연히 장애인 중에도 성적소수자는 있을테고, 또 성적소수자 중에서 장애인이 되신 분들도 있을텐데 그 당연한 걸 여태 생각하지 못했구나, 싶어서 속이 뜨끔했습니다.
앞쪽의 차량에서 잠시 쉬는 시간이라는 안내방송이 나왔습니다. 역시 여기까진가, 더 이상은 전진하지 못하나, 싶더군요. 저희는 점심 겸 저녁으로 치맥을 먹었습니다.
5. 행진, 다시
맥주를 마시던 도중 행렬이 다시 움직이고 있다는 연락을 받은 저희는 급하게 경의선 신촌역 방향으로 갔습니다.
퍼레이드카가 사라진 명물길을 지나가는데, 중간에 한 건물을 통채로 이용한 현대무용 퍼포먼스가 벌어지고 있더군요. 건물의 각 층에서 다른 조명이 빛나고, 다른 춤이 수직적인 무대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었고, 무용수들은 각 층을 오가며 춤을 추었습니다. 저희는 걸음을 멈추고 한동안 지켜보았습니다. 지미집까지 동원한 제법 본격적인 촬영도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퍼포먼스가 절정에 다다르자 무용수들이 모두 길바닥으로 내려와, 이제까지 각자 다른 춤을 추며 이합집산하던 모든 무용수가 함께 한 동작으로 움직였습니다. 이미 퍼레이드는 다른 길로 가버렸음에도 호응은 충분히 뜨거웠습니다.
"열 시에 다시 한 번 공연합니다!"라는 외침을 뒤로 하고 저희는 다시 경의선 신촌역 방향으로 갔습니다. 저 멀리서 음악소리가 들려오더군요.
아웃백과 올리브 영 사이의 삼거리에서 마침내 저희는 퍼레이드와 합류했습니다. 반대집회는 끝나있었으나 여전히 소수의 기독교인들이 행렬을 방해하려 했습니다. 허나 경찰이 그들의 진입을 막으며 적극적으로 퍼레이드를 지켜주고 있더군요. 대치하되 충돌하지 않았던 퍼레이드 참여자들을 높게 사준 것인지도 모르고, 아니면 '빨리 한 바퀴 돌게 해주면 해산하겠다'라는 협의가 있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가장 바깥 차선으로 우리는 걸었습니다. 90년대 인기가요가 연이어 울려펴지고 떼창이 이어졌습니다.
행렬은 신촌역 교차로를 우측으로 돌아, 2호선 이대역 - 2호선 신촌역을 잇는 큰길로 전진했습니다. 경찰이 차선 위에서 저희를 보호해주었습니다. 전동휠체어 혹은 일반휠체어를 탄 여성장애인 분들도 행렬 사이사이에서 함께 즐거움을 누렸습니다. 모두들 기분 좋게 걸었고, 노래했고, 피켓을 흔들었습니다. 길가의 사람들은 더러 행렬에 합류해주고, 사진을 찍고, 또 환호해주었습니다. '뭐야 이것들은'하는 시선도 없진 않았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함께 소리쳐주고, 힘내라고 외쳐주고, 하이파이브를 하는 사람들이 반갑고 즐거웠습니다. 개인적으로 특히 기뻤던 건 이성애자 커플들이 눈에 띄게 좋은 호응을 해주었다는 사실입니다. 굳이 호모포비아가 아닐지라도 자기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외면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거라 생각하기에, 호응해주는 이들이 반갑더군요. 또한 이런 퍼레이드가
[소용이 있구나]라고 느껴져 한층 더 기뻤습니다. 행렬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으니, 아마 그 중에는 저와 비슷한 기쁨을 느낀 분들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퍼레이드는 2호선 신촌역에서 다시 차없는 거리 방향으로 선회했고, 미샤 앞의 무대 부근에서 몇 곡인가의 노래를 부르다가 해산했습니다. 행렬의 끝 지점에서 학교 선후배를 우연하게도 만났습니다. 제가 성소수자가 아닌 건 그들 모두 알고있지만(저는 5년차 남녀 CC입니다) 저는 그들 중에 성소수자인줄 몰랐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모두들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해산하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그만한 큰 모임이 열렸던 것치곤 거리가 상당히 깨끗했습니다. 환경미화원분들이 치워주셨든지, 아니면 주최측에서 참여자들을 독려해 치운 것이리라 생각했습니다. 보기 좋았습니다.
6. 해산
잔여 열기는 곳곳의 소규모 퍼포먼스로 이어졌습니다. 마술쇼도 벌어지고 춤판도 벌어지고 하더군요.
퀴어문화축제의 뒷풀이는 이태원과 홍대 등지의 바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정보가 있었고, 저희 일행은 의논 끝에 삼삼오오 흩어지기로 했습니다. 그대로 신촌에서 술을 마시기로 한 그룹이 있었고, 게이 바로 간 그룹이 있었고, 레즈비언 바로 간 그룹도 있었습니다. 저는 친구를 따라 합정 쪽의 레즈비언 바로 갔습니다. 기본적으로 금남 구역이긴 하나, 오늘 같은 날은 어쩌면 남성의 출입을 허용할 수도 있다고 친구가 그러더군요.
허나 아쉽게도 금남의 규칙은 오늘도 적용되고 있었고(이곳 또한 남성의 출입으로 인한 소란과 피해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금남의 규정을 엄히 유지하는 것으로 압니다) 친구들이 미리 제게 양해를 구해둔 상태에서 합의 하에 이동했던 것이기 때문에 저는 아무 불만없이 그들과 헤어져 집으로 왔습니다.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동안에도 축제의 즐거움이 마음을 채우고 있어서 자꾸 웃음이 나더군요.
7. 끝, 그리고
제 행사 참여 후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성적소수자에 대한 약간의 설명과 제 견해피력으로 마무리를 갈음할까 합니다. (이하의 내용은 자유게시판의 관련글을 읽어보기 전에 작성해둔 내용입니다.)
1) 설명 : LGBT 혹은 LGBTQIA란?
성적소수자를 통칭하는 단어인 LGBTQIA는 이하의 어휘를 조합한 말입니다. (각 어휘는 리그베다 위키 등에서 검색해보시면 상세한 설명이 나옵니다.)
- L : 여성 동성애자(Lesbian)입니다.
- G : 남성 동성애자(Gay)입니다.
- B : 양성애자(Bisexual)입니다.
- T : 성전환자(Transgender)입니다.
- Q : 퀘스처닝(Questioning)입니다. 특정 성 정체성을 가진 사람을 지칭하는 게 아닌, 자신의 성적 특성에 의문을 가진 모든 이를 총칭합니다. 쉽게 말해 '어쩌면 나는 게이/레즈비언일지도 몰라'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두루 널리 포용하는 개념입니다.
- I : 인터섹슈얼(Intersexual)입니다. 선천적으로 남녀의 성기를 모두 갖고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클라인펠터 증후군과는 다릅니다.) 줄여서 IS라고도 합니다. 대략 2만명에 한 명 꼴이라 하니 꽤 많은 편이지만, 영아기 때 수술받은 바람에 당사자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 A : 무성애자(Asexual)입니다. 성욕이 없거나 극히 적은 사람들입니다. 다만 무성애자 안에서도 다양한 성향이 있어서, 연애는 즐기지만 성행위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또한 병이나 장애가 아니며, 치료의 대상도 아닙니다.
이렇듯 성적 소수자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습니다. 덧붙여 시위 현장에는 '성노동자도 성적 소수자다'라는 피켓이 보였습니다. 그에 관해서 저는 회의적이긴 한데, 아직 확실한 판단은 안 서는군요. 오늘부터 한동안 생각해보려 합니다.
2) 설명 : 동성연애자 or 동성애자
동성연애자라는 말은 현재 정치적 올바름의 차원에서 지양되고 있습니다. 이성애자가 연애를 할 때만 이성애자가 아니듯, 동성애자 또한 연애를 할 때만 동성애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동성연애자라는 말은, 삶 전체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성적지향을 연애적 측면에 국한시킴으로써 성적소수자 담론을 지나치게 축소시키고, 나아가 동성애를 성적 문란의 이미지로 직결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물론 한두글자를 바꾼다고 해서 어휘 자체의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어휘의 정치적 올바름에 관한 문제는 어휘에 따라붙은 사회적 맥락에 관한 이의제기이죠. 우리는 각자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그 의도에 동의하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면 될 것입니다.
3) 사견 피력 : 왜 퍼레이드처럼 눈에 띄는 짓을 해야하는가? 안 보이는 곳에서 자기들끼리 조용히 살아가면 안되는가?
물론 조용히 사는 성적소수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지금 눈에 띄는 사람들은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예전에 영화감독 김조광수 씨의 결혼식에 관해서도 비슷한 주장이 있었습니다. 왜 굳이 공개결혼이라는 '법석'을 피워야 하느냐 하는 거죠. 성적소수자 그룹 내에서도 비슷한 요지의 거부감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고요.
이는 가시성 획득에 관한 문제입니다. 김조광수 씨는 인터뷰에서 '내가 이효리였으면 비공개 결혼식을 했을 것이다'라고 했었지요. 그들의 개인적 문제인 결혼식이, 공개결혼이라는 방식을 통해 사회문제화되었고, 이윽고 성적소수자와 무관한(그리고 무관심한) 사람들에게도 '우리의 문제'가 되었지요. 이런 과정을 통하지 않으면 우리는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잉어의 피에는 울지 않지만 꾀꼬리의 울음에는 눈물짓는다, 목소리가 있는 자는 행복하여라' 라는 말이 있죠. 우리는 잡음이 없으면 좀처럼 그늘을 쳐다보지 않습니다. 우리가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는 동안에도 우리 주변 어딘가에서는 약자가 핍박에 신음합니다. (여성의 투표권도 그랬습니다.)
한국의 TV방송과 영화에서 동성애를 재현하기 시작한지 얼마나 되었는지 기억하십니까? 영화에서는 1996년에서야 《내일로 흐르는 강》 등의 작품에서 다루어졌고, TV방송에서는 2005년 무렵에야 겨우 CF에서 다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SK텔레콤의 현대생활백서 시리즈 동성커플 편, 휴대전화 스카이의 레슬링 편을 기억하십니까? 조인성이 오묘한 분위기를 내며 맥스웰 하우스 캔커피를 광고하던 게 기억나십니까? SBS의 TV연속극《인생은 아름다워》가 방영되는 동안 신문에 났던 광고(《인생은 아름다워》 보고 '게이'된 내 아들 AIDS로 죽으면 SBS 책임져라!, 며느리가 남자라니 동성애가 웬 말이냐!)를 기억하십니까? 전부 10년도 안됐습니다. 동성애가 그 무렵부터 생겨났을까요? 그럴리가 없지요. 그 무렵부터 이 문제가 성적다수자에게 겨우 가시화되기 시작한 것 뿐입니다. (덧붙여, 이 와중에도 여전히 레즈비언들은 가시화되지 않고 있음을 혹시 눈치채고 계십니까?)
좀 더 크게 보면, 이러한 성적소수자의 가시권 획득은 보편적 인간의 범위를 재구성하는 일입니다. 어디까지가 '인간'이며 '정상'인지를 재정의하는 과정인 것입니다. 본인이 특정 지역 출신이라는 이유로, 혹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혹은 키가 작다는 이유로 법에서 결혼할 권리를 보장하지 않거나, 사실혼 관계를 인정받지 못해서 유산 또한 주고받지 못하거나 한다면, 이는 상징적 차원을 넘어서 현실적 생존의 문제가 됩니다. (한국에서도 이에 관한 실제 사례가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압니다.) 양쪽 모두 당사자들에게는 시급한 문제인 것이죠.
물론 뭐 '내 알 바 아니다'라고 하면 더 이상의 논의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충분히 합리적인 이유니까요. 세상 모든 일을 올바르게 대할 수는 없고, 어느 선까지 신경쓰며 살 것인가는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며, 이는 존중받아야 마땅합니다. (물론 '내 알 바'가 되는 날이 언제 다가올지는 아무도 모르지만요.) 그러나 그것이 타인의 생존투쟁을 부정하거나 금지할만한 이유는 못되는 듯 싶습니다.
[나의 편안한 외면을 위해 너희는 언제까지고 억압을 감수해라]라는 의견에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4) 사견 피력 : 그들에게 성적지향을 누릴 자유가 있듯, 우리에게도 그들을 혐오할 자유가 있는 게 아닌가?
혐오할 권리란 존재하는가, 라고 되묻고 싶습니다. 국적이나 인종과 같은 선천적 특성을 근거로 타인을 혐오하는 것이 과연 자유인지 묻고 싶습니다.
한편으로는 이 문제가 누군가에게 양해 혹은 이해를 구해야 하는 문제인지, 아니면 누군가가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빼앗겨서 생긴 문제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이상입니다. 다음 번 글은 게임게시판에서 좀 더 가볍게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