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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4/02 12:19
진실이라.. 학창시절, 사학개론 시간에 진실과 진리, 객관과 주관, 텍스트로서의 역사학에 대해 골머리 싸매던 기억이 나는군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08/04/02 12:26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살아갈 수록 옳은 것과 그른 것의 경계를 나누기가 힘이 듭니다. 님께서 말씀하신 진실이라는 것이 그 해답이 될 수 있겠지요.
08/04/02 12:43
5.18만 생각하고 4.3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는데, 좋은 글 읽고 갑니다.
하...4.3을 폭동이라고 한 그 우익단체가 뉴라이트를 말하는 거지요? 진짜 생각이 이리 다를수도 있군요.
08/04/02 13:16
수업시간 사회선생님 에피소드가 잘 이해가 안가네요. 뭔가 좀 복잡한 상황인듯...
선생님이 뭔가 잘못 알고 있는게 있는건가요? 제주도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결국 폭동이 맞다는건가요 아니라는 건가요?
08/04/02 13:16
어제 학교에서 4.3 사건관련 비디오를 봤었는데 내용을 요약하자면, 당시 경찰들의 탄압이 심하니깐 제주도에 일반 서민들의 경찰에 대한 분노가 꽤 컸다고하더군요. 그래서 제주도의 사회주의자들이 제주도민들이 자신에게 협력해줄것이라고 믿고 독자적으로 (상부 공산당의 명령없이)우익세력을 죽였는데 이를 발단으로 이승만정권이 제주도에 9연대를 투입하고 토벌을 명했습니다. 하지만 9연대장 김익렬은 토벌해서는 안되고 이들을 설득해야한다고 주장했지만, 미군정청과 조병옥 경무부장은 오히려 이 9연대장을 빨갱이로 몰고 군에서 내쫓습니다. 그리고 결국 초토화작전을 하기로 합의다고하더군요.
그 중간에 보면 미군이 촬영한 사회주의자들이 부락에 불을 질렀다는 비디오가 있는데, 그 비디오를 보면 마을주민들이 사회주의자들이 불을 질렀다고 주장하는 인터뷰같은게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까지 생존한 마을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저 사람들은 우리마을 사람이 아니다. 처음보는 사람이다라고 말하네요. 즉 미군에 매수된 외지인이겠지요? 제작진들의 생존한 마을 주민들의 말을 종합해서 불을 질른 단체를 알아보니 우익세력인 대동청년단의 소행이었다고하네요. 현재까지 생존한 대동청년단이었던 사람의 인터뷰를 보니깐 자기네들이 한거 맞다라고도 하구요. 경찰과 군대에 의해 죽기 싫어서 산으로 도망간 서민들이 많았는데, 경찰과 군대는 산에 도망간 사람이 있으면 대신 그 가족을 죽이는 대살까지 했다고하네요. 한 어린아이를 목을 매 죽으려하면 살짝 놓아주고 죽으려하면 살짝 놓아주는 만행까지 저질렀다고합니다. 자신이 산으로 도망가, 대신 아내가 죽임을 당하자 50년째 홀로 사는 한 할아버지, 100살이 넘어서도 돌아오지 않는 두자식을 눈을 감지도 못하고 처절하게 기다리는 한 할머니... 하지만 이들은 소리내 울지도 못했습니다.
08/04/02 13:24
threedragonmulti님// 4.3의 진실이 무엇이든 간에, 제주도 사람들은 이에 대한 이야기 자체를 꺼내는 것이 아직까지도 감정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니다. 왜냐하면 어디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발생한, 대상화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라 바로 자신들 혹은 자신들과 관련된 사람들의 일이니까요. 남의 상처는 '역사'로 기록할 수 있지만, 자신의 상처는 '일기'로 밖에 기록할 수 없습니다.
ps 전 왜 이야기를 꺼낸 선생님이 가장 측은하게 느껴질까요. -_-;;;
08/04/02 13:33
견벽청하라는 말이 기억나네요. 참 MB대통령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아주 잘 아는것 같습니다.. 이러다간 4.19도 공산주의자들이 사주한 폭동이라는 말이 교과서에 나오지 않을까 격정되네요.
08/04/02 13:49
평소 깊게 관심을 가지지 못했던 부분들을
인터넷 검색으로나마 새삼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무거운 마음이지만 잘 읽었습니다.
08/04/02 15:00
빨갱이들이 사주한 폭동인지 자주정부 수립을 위한 민중항쟁이었는지
두 가지 주장이 서로 충돌할때는 대부분의 경우 진실은 한쪽 보다는 그 정중앙 근처에 있는 경우가 많더군요. 그 진실이란 것도 사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 라고 한마디로 결론지을수 있는게 아니겠죠. 뭐 줏대없는 중립같기도 하네요
08/04/02 16:33
태바리님// 제주4.3연구소에서 나온 <(무덤에서 살아나온) 4.3 '수형자' 들 : 제주4.3 인권유린의 기록> 이 괜찮습니다.
08/04/02 17:01
본문의 에피소드와 밑의 댓글들을 놓고보면 결국 사회주의 세력이 우익 제주도민들을 죽이고 군경은 이에 대해 사회주의 세력이라고 추정한 제주도민들을 죽이고 했던 모양이군요. 정말 우리의 아픈 역사의 한 단면입니다.
08/04/02 17:21
이 사건의 주모자란 이유 하나만으로도 이승만, 조병옥은 역사의 죄인으로 단죄 받아 마땅합니다. 조순형은 생각만 해도 이가 갈리는군요.
08/04/02 19:20
이런 학살과 보복극은 어찌 되었든 먼저 시작한 자가 더 나쁜 것이지요.
약간 과하게 진압한 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 사건의 주모자들인 공산주의자들 보다, 진압한 대한민국 정부측을 더 비난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 같습니다. 이런 대량학살극에 항상 먼저 불씨를 당기고, 나중에 선전전을 시작하는 것은 한국, 베트남 등지에서 이미 증명된 공산주의자들의 수법이죠. 죄는 먼저 저질러 놓고, 비겁하게 양민들 뒤에 숨어 총알받이로 내세우고, 나중에 감정에 호소하기요.
08/04/02 19:26
'주체적 자주정부를 수립하려는 의지에서 일어난 자발적 항쟁이며,
이승만 정권은 이를 폭력으로 억압하려했기 때문에 일어난 비극이다.' 주체적 자주정부라는 공산당식 용어부터 일단 거슬리지만, 한반도의 정통성을 가진 대한민국 정부가 버젓이 존재하고 있는데, 정부를 수립하겠다는 주장부터가 반란의 시도가 아닌지 되묻고 싶습니다. 누구 마음대로 정부 수립합니까?
08/04/02 19:41
위청님//
한국, 베트남 등지에서 증명되었다라. 과연 반대쪽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까요? 반대쪽도 역시 정확히 똑같이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 것은 너희들이 잘하는 짓이잖아.' 라면서요. 물론 진실이라는 것도 있겠지만 그것이 그렇게 명확하진 않을 것입니다. 6.25때 과연 북한만 잔혹한 살인을 저질렀을까요? 광주항쟁때는 어땠을거라 생각하십니까? 누구나 한가지 모습만 가지고 있을 수 없습니다. 더군다가 단체인 경우에는요. 이러한 것이 전쟁이고 잔혹한 것입니다. 그리고 어찌됐던 그러한 일을 저지른 것은 잘못입니다. 이라크 전쟁이 이라크만의 잘못으로 이러났다고 생각하신다면 할 말이 없겠지만, 저는 충분히 평화적인 덜 희생적인 방법으로도 이라크 전쟁을 이끌어 갈 수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여, 정부 수립이 그렇게 쉽진 않지만 많은 점이 다르고 많은 사람의 의견이 모아진다면 시도하는 것 자체를 욕한다는 것은 그것도 잔혹한 폭력을 통해서는 잘못입니다. 좀 더 극단적으로 해석하면 캐나다는 퀘벡을 밀어버려야 되고, 중국의 티벳 사태도 아무리 많은 사람이 죽던지 용인할 만하며 이미 세계로 부터 합법성을 인정받은 이스라엘 땅에서 독립을 외치는 팔레스타인도 크나큰 잘못을 하고 있는 것이겠군요.
08/04/02 19:50
정부 수립을 시도조차 하지 못하게 막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 설령 제주도민 전체가 100% 독립에
찬성한다 하더라도, 나머지 국민이 반대한다면 군대를 보내 전쟁을 해서라도 막아야 하는 겁니다. 제주도가 무슨 티벳이나, 인도나, 팔레스타인처럼 제국주의 시절, 혹은 세계대전 이후 강제로 빼앗은 땅도 아닌데, 정부 세우고 싶다고 세우게 해주면 그게 국가입니까? 이명박 마음에 안 든다고 전라도민 90%가 독립하고 싶다면 독립시켜 줘야 합니까? 노무현 마음에 안 든다고 경상도민 70%가 정부 세우고 싶다면 가만히 놔둘까요?
08/04/02 19:54
위청님// 4.28일, 토벌대 대표 9연대장 김익렬과 무장대 대표 김달삼은 평화 협정을 맺었습니다. 그냥 놔두었으면 알아서 타협할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김익렬을 해임하고 이를 무효화합니다. 그리고 나서 무장대인지 아닌지 여부는 제대로 판단도 하지 않는 무차별 학살이 벌어집니다. 한국 정부의 인간 이하의 조처만 아니었으면 제주도민 30만 중에서 5만 명이 죽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자, 사태의 진정한 원인을 밝혀봅시다. 제주도민 5만 명이 학살당한 것이 무장대가 4.3일에 봉기해서일까요? 아니면 이승만/조병옥 등의 강경 진압 방침 때문일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전자 때문에 사태가 그 정도로 전개되기는 어려워보입니다. 즉, 무장대의 봉기는 'Point of no return'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ps. 한국 정부는 '한반도'가 아닌 '휴전선 이남'에만 정통성을 가지고 있으며, 48년 당시에는 38선 이남에 대한 정통성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아닙니다만, 어쨌건 사실과 부합하지 않기에 지적합니다. 다음을 참조하십시오. -> http://minihp.cyworld.com/pims/board/general/board_view.asp?domain=&tid=57364053&board_no=14&search_type=&search_keyword=&item_seq=1157713&cpage=1&list_type=2
08/04/02 19:57
이명박 마음에 안든다고 독립을 시도하지는 않습니다. 노무현 마음에 안든다고 독립을 시도하지 않고요.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그들은 이미이나 다른 방법을 택하지 독립을 시도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땅콩 까먹듯이 쉽게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고요. 위청님 글을 보니 왜 세상에서 전쟁이 사라지지 않은지 알만하군요.
08/04/02 20:00
항상 민간인들 뒤에 숨어서 군경이나 애국인사들을 살해하고, 그 보복으로 민간인의 대량학살을 오히려
유도하여 선전에 활용하는 것은 적백내전 시절부터 존재해온 공산당의 오랜 전술입니다. 이 자들은 대량학살을 바라고 이런 짓을 하는 겁니다. 이 자들이 민간인들 뒤에 숨을 때 부터 이미 민간인들의 희생은 예견된 겁니다. 역사상 이런 공산당 게릴라 조직을 상대한 군대치고, 안 잔인한 군대가 없었습니다. 피난민들 틈에 섞인 임산부가 갑자기 군경을 향해 총질을 하거나, 마을에 들어온 군인들을 따뜻하게 환대한 다음 수류탄을 까대기도 합니다. 이른바 사회주의자들이 한국전쟁 당시 국군과 미군에 의해 대량학살이 저질러졌다는 장소로 선전하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벌어졌던 일들입니다. 이런 일을 당하면 병사들은 눈이 뒤집히고 근처 마을을 불태우거나, 주모자들을 잔인하게 처형하기도 합니다. 물론 잘못된 일이지만, 적어도 북한이나 베트남처럼 이런 일들을 의도적이고 전략적으로 저지르지는 않았습니다. 6.25 때 북한만 잔혹한 살인을 저지른 것은 아니지만, 전쟁 중 이성을 잃은 병사들에 의해 저질러 질 수 있는 잔혹한 보복과 학살행위가, 의도적으로 저질러진 대량 학살과 비교될 수는 없습니다.
08/04/02 20:02
그리고 '제주도민 전체가 100% 독립에 찬성한다면' 위청님 말씀처럼 전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제주도 분리'가 정치 의제로 설정되고 이에 대한 협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절차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맞습니다. 다른 나라들도 분리를 하든 하지 않든 간에, 절차적으로는 그렇게 문제를 해결하고 있고요. 그게 민주주의적인 원리에 기반한 정치입니다.
위청님의 주장대로 전쟁을 벌이는 것이 맞다면, 중국의 티벳 침략도 정당합니다.
08/04/02 20:09
잘못된 전제와, 편집된 근거와, 잔인하고 단순한 성격이 합쳐지면 저런 이론이 나올 수 있는 건가보군요. 짐승에게 먹이를 주지 맙시다.
08/04/02 20:11
어느 나라가 그렇게 절차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서 자기네 영토를 분리시켜 주었는지 되묻고 싶네요.
그 반대의 경우라면 예를 한 수 십개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설마 중국-티벳 관계를 한국-제주도 관계와 동일시 하는 건 아니겠지요? 제주도가 오랜 기간 동안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국가였는데, 1950년대에 티벳처럼 갑자기 군대를 투입해서 점령한 영토라던가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는 않을 겁니다.
08/04/02 20:13
위청님// '항상 민간인들 뒤에 숨어서 군경이나 애국인사들을 살해하고, 그 보복으로 민간인의 대량학살을 오히려
유도하여 선전에 활용하는 것은 적백내전 시절부터 존재해온 공산당의 오랜 전술입니다. 이 자들은 대량학살을 바라고 이런 짓을 하는 겁니다. 이 자들이 민간인들 뒤에 숨을 때 부터 이미 민간인들의 희생은 예견된 겁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정말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근거가 전혀 없이 주장과 추측만 있다는 점에서 음모론 이상으로 여겨지지 않습니다. 그런 식의 글을 쓰실 것이라면 저도 이런 식으로 반박할 수 있습니다. "6.25 당시에 의도적인 민간인 살해는 수도 없이 많다. 가장 자주 쓰인 방법은 남한군이 인민군으로 가장하여 마을을 장악한 뒤, 인민군을 지지한다는 의사를 밝힌 - 이것이 진의에서 나온 것이든, 생존을 위한 처세술이든 간에 - 마을 사람들을 모두 살해하는 방식이다. 이래도 의도적인 민간인 살해가 없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여기에는 아무런 근거도 없습니다. 그저 제가 읽은 소설들에 종종 등장하는 장면들일 뿐입니다. 추측일 뿐이지요. 위청님의 주장도 마찬가지입니다.
08/04/02 20:17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와 공산당 무장괴뢰 조직의 대표가 동등하게 평화 협정을 맺는다는 것
자체가 웃긴 말입니다. 우리 영토 안에서 무장반군과 무슨 평화협정이 있을 수 있는지요? 그렇게 우익인사를 살해하고 반란을 선동하고 주모했으면, 대한민국 정부의 처분만을 기다릴 노릇이지, 이 세상 어느 정부가 테러범들하고 평화 협정을 맺습니까? 강경진압 방침 자체가 책임이 될 수는 없는 겁니다. 러시아에서 인질극이 터졌을 때, 푸틴의 강경진압 방침으로, 초등학생을 사이에 두고 대전차포까지 쏴대며 공방이 오간 결과, 수 백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테러범보다 푸틴을 더 비난할 수는 없는 노릇과 마찬가지 입니다. 강경진압 방침은 당연한 거고, 민간인과 양민 희생에 따른 책임은 그들을 방패막이로 내세운 반군들에게 더 큰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08/04/02 20:20
위청님//
1. 일단 분명하게 이야기 해 둘 부분은, 당시에 제주도 분리가 논해질만큼 상황이 극단적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충돌이 있었을 뿐이며, 합의를 통한 사태 해결도 가능했습니다.(실제로 합의가 이루어지기도 했고요.) 도대체 왜 이것이 생뚱맞게 '신원 조회도 하지 않는 학살'로 이어졌어야 했는지 제 머리로는 이해가 안 갑니다. 현명하신 듯 보이니 설명도 가능하시리라 믿습니다. 2. 제주 4.3 사건과 관계없이, 만약 제주도민(물론 한국 내의 다른 지역에도 해당됩니다.) 100%가 분리를 요구한다면 당연히 협의 과정을 거쳐야합니다. 협의 과정에 따라 현상태를 유지할 수도, 연방 체제로 이행할 수도, 아니면 아예 별개의 국가로 분리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강제로 해당 주민들의 의사를 억압한다면 그건 독재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이런 협의를 거치고 있는 사례로는 캐나다의 퀘벡이 대표적입니다. 노르웨이도 스웨덴으로부터 이런 식으로 독립했습니다.
08/04/02 20:33
아, 그리고 기본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었는데, 1948년 4.3일 당시에 남한에는 합법적인 정부가 없었습니다.(미군정이었지요.) 남한 정부는 5.10일에나 성립됩니다. 따라서 무장대의 봉기를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에 대한 도전'으로 보는 것은 비약입니다. 당시 무장대의 슬로건은 ' 경찰과 서청의 탄압 중지와 단선·단정 반대, 통일정부 수립 촉구'입니다. 남북한 총선거가 화두였으며, 제주도 당국의 폭정 - 47년 3.1 총격 사건, 48년 3월 고문 치사 사건 - 이 있던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생각하면 충분히 고려할 법한 슬로건들입니다.
08/04/02 20:33
제가 너무 흥분한 것 같군요. 4.3 사건에 관해서는 어차피 입장 차이가 좁혀지기 어려운 듯 하니
약간의 답변을 끝으로 저는 그만 하겠습니다. 케나다 퀘벡의 사례를 드셨는데 일단 퀘벡이 독립한 다음 사례를 드셔도 늦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 지역의 구성원들이 독립을 간절하게 원해도, 절대로 독립시켜 주지 않는 사례가 훨씬 더 많기 때문에 따로 예시를 들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 굳이 원하신다면 사례를 들겠습니다만, 그런 요구 까지 하시지는 않으리라 믿습니다. '제주도 분리' 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은, 본문에 나오는 '4.3 항쟁은 주체적인 정부를 수립하려는 제주민들의 자주적인 항쟁이였다.' 라는 문구 때문입니다. 제주도 분리가 논해질 만큼 상황이 극단적이지 않았다는 진리탐구자 님의 주장은, 본문의 문구를 반론하는 것이고 제 주장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이 역시 더 이상 논의하지 않겠습니다. 또한 무장대와 토벌대 간에 어떤 식으로 이미 합의가 이루어 졌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 그 합의에 대해 아시는 것이 있다면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합의를 통한 사태 해결은 무장대의 일방적인 항복과 대한민국 정부의 처분을 기다리는 방법 밖에 없다는 점에서 상당히 비현실적으로 들립니다. 공산당의 무장 조직들이 양민들을 방패막이로 내세운 사례는 이미 광범위하게 수집되어 있습니다. 양민들 틈에 숨어서 게릴라 활동을 벌인다는 것 자체가 이미 양민들을 방패막이로 내세웠다는 것과 동의어입니다. 베트남과 한국전쟁 당시에 벌어진 국군과 미군에 의한 학살사례를 파헤쳐보면 대부분의 경우가 이러합니다. 마을에 들어온 국군과 미군을 환대하면서 이곳에 공산군이 없다고 안심을 시킨 뒤, 갑자기 총격이 가해져 병사들 몇 명이 쓰러지고 나면, 눈이 뒤집힌 병사들에 의해 마을이 불태워지거나 학살당하는 경우는 한국과 베트남에서 숱하게 일어났던 사건등입니다. 원하신다면 베트남과 한국에서 벌어졌던 사례들을 다시 조사해서 몇 개 올려드리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시길.
08/04/02 20:38
위청님// 적어도 이는 제주 4.3 항쟁에는 적용할 수 없다고 봅니다. 제주 4.3 연구소의 글을 퍼옵니다.
"...본 위원회에 신고된 희생자의 가해별 통계는 토벌대 78.1%(10,955명), 무장대 12.6%(1,764명), 공란 9%(1,266명) 등으로 나타났다. 가해 표시를 하지 않은 공란을 제외해서 토벌대와 무장대와의 비율로만 산출하면 86.1%와 13.9%로 대비된다. 이 통계는 토벌대에 의해 80% 이상이 사망했다는 미군 보고서와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특히 10세 이하 어린이(5.8%·814명)와 61세 이상 노인(6.1%·860명)이 전체 희생자의 11.9%를 차지하고 있고, 여성의 희생(21.3%·2,985명)이 컸다는 점에서 남녀노소 가리지 않은 과도한 진압작전이 전개됐음을 알 수 있다. " 즉, 토벌대의 일방적인 학살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08/04/02 20:43
진리탐구자 님 덕분에 모르던 사실을 몇 개 알 수 있어 일단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주 4.3 연구소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봤을 때 토벌대가 과도한 진압작전을 한 것도 사실이고, 진압작전의 탈을 쓴 공산당에 대한 피 맺힌 분노를 일방적인 학살로 보복했다는 것 또한 사실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 일의 발단을 먼저 제공한 측은 무장대 측이고, 무장대가 저지른 학살에, 토벌대가 더 큰 학살로 보답했다고 보는 게 옳을 것 같은 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08/04/02 20:49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 350명의 무장대가 제주도 내 24개 경찰지서 가운데 12개 지서를 일제히 공격함으로써'
그 어떤 슬로건을 내걸든, 일단 강경진압을 피할 방법도 그럴 명분도 없어 보입니다.
08/04/02 20:51
위청님//
1. 제주 4.3의 발단은 무장대의 봉기가 아닙니다. 47년 3.1일에 제주 경찰이 시위군중에게 발포하여 6명이 사망한 것이 그 원인입니다. 이 외에도, 48년 3월에 '고문 치사 사건'이 발생합니다. 즉, 4.3이 어느날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억압적인 통치 속에서 발생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 제가 중점적으로 보고 있는 것은 '제주도민 5명 중 1명을 죽게 한 상황'의 원인입니다. 제가 보기에 무장대의 폭력은 그 상황에 대한 본질적인 원인이 아닙니다. 말하자면 수습이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었다는 것입니다. 3. 당시 김익렬과 김달삼의 협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경비대가 처음으로 토벌전에 나선 것은 4월 22일부터였다. 미군정의 지시에 따라 4월 28일 연대장 김익렬과 무장대 총책 김달삼 간의 평화협상이 열렸다. 두 사람은 네 시간에 걸친 협상 끝에 다음과 같은 3개항에 합의하였다. 첫째, 72시간 내에 전투를 완전히 중지하되 산발적으로 충돌이 있으면 연락 미달로 간주하고, 5일 이후의 전투는 배신행위로 본다. 둘째, 무장해제는 점차적으로 하되 약속을 위반하면 즉각 전투를 재개한다. 셋째, 무장해제와 하산이 원만히 이뤄지면 주모자들의 신병을 보장해준다. 또한 귀순자 수용소를 세우되 군이 직접 관리하고 경찰의 출입을 통제한다." 4. 불행히도 이 합의는 깨지게 됩니다.협상 사흘만인 5월 1일 우익 청년단이 제주읍 오라리 마을을 방화하는 세칭 '오라리 사건'이 벌어졌고, 5월 3일에는 미군이 경비대에게 총공격을 명령함으로써 협상이 깨지고 말았습니다. 서청 등의 우익 청년단들이 욕먹는 건 괜히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를 지시한 것은 미군정입니다. 미군정은 이들을 무장대로 위장시켜 마을을 습격하게 합니다. 말하자면 앞으로는 협상하는 척 하면서, 뒤로는 일부러 협상을 깬 것입니다. 5. 그 이후, 소강상태가 지속됩니다만, 이승만 정권이 본격적으로 통치를 하면서 강경 진압 방침이 강화됩니다. 그리고 '신원 조사도 받지 못한 무고한 민간인'들이 숱하게 사망하게 됩니다.
08/04/02 20:58
당시 김익렬의 증언입니다.
"경찰은 폭동진압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과오와 죄상을 은폐하기 위하여 오히려 폭동을 조장, 확대하려고 하였다. 경찰들은 폭도를 가장하여 민가를 방화하고는 폭도의 소행으로 선전하고 다녔고, 이렇게 되자 폭도들도 산에서 내려와 각 지서를 습격하여 중지되었던 전투가 다시 개시되었다."
08/04/02 21:04
계속 리플 달아서 죄송합니다만,
4.3사건의 발단이 지속적이고 억압적인 통치 속에서 발생했다고 보기에는, 그 주모자인 '김달삼' 의 행보와 최후가 너무나도 북한과 연관이 많이 되어 있는 것 같군요. "남한 정권이 수립된 직후인 1948년 8월 21일부터 26일까지 황해도 해주에서 인민대표자대회가 열렸는데 김달삼은 여기에 참가하여 '제주 4·3투쟁에 관한 보고'를 하였다. 이 해주대회는 북한 정권 수립을 위한 예비 절차로서 남한에서는 1,002명의 대의원이 참가했고, 제주에서는 6명이 참가했다. 그는 여기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위원회 헌법위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의 최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공통적인 것은 한국전쟁 발발 이전에 유격대를 이끌고 태백산 지구에서 유격전을 벌이다 전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위키 백과에서 퍼 온 내용인데 김달삼의 정체가 이 정도라면, 이미 4.3 사건의 모든 명분이 다 거짓에 불과할 뿐이라는 걸 입증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진리탐구자 님과 토론을 하다보니 누가 더 나쁜 놈인지 헷깔리기 시작하는데, 이런 자가 제주도에서 설치게 놔두는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이고, 당연히 강경진압의 방침은 옳았다고 봅니다. 3.1 시위군중에게 발포와 48년 3월에 고문치사 사건이 있었다고 해도, 그 사건에 북한의 헌법위원 겸 빨치산 유격대장이 상관할 일은 전혀 아니니까요. 기회를 틈타서 무장봉기를 시도했고, 그 것을 대한민국 국군이 진압하였고. 그 와중에 민간인 희생이 숱하게 나왔는데, 정부군 측에 살해당한 사람이 더 많았고. 이 정도로 결론을 내리고 저는 이제 진짜 돌아가겠습니다.
08/04/02 21:12
위청님// mbc에서 방영한 이제는 말할 수있다 4.3편을 보면 제주도의 공산당이 상부의 지시없이 제주 공산당이 독자적으로 벌인 일이다라고 당시 제주공산당원이었던 분이 인터뷰하죠.
또한 군경과 공산당이 전투를 벌였는데, 군경은 4명전사, 공산당은 96명이 전사했다고 국군은 기록을 하였지만 마을주민들의 증언 등을 종합하였을때 공산당원은 16명이 전사했다고 입을 모아 말합니다. 그럼 나머지 80명은 누구일까요? 그렇죠. 아무 죄없는 민간인을 죽여 전공이라고 기록했습니다.
08/04/02 21:38
위청님과 진리탐구자님의 리플을 읽어보니까 많은 공부가 되네요.
여기저기서 이것저것 읽어봐도 정확한 원인은 참 알기 어렵습니다. 벌써 60년이나 지난 일임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해방직후의 혼란기에서 자신들의 신념을 위해서 충돌이 일어난 것에 대해서는 그럴 수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우익측의 억압에 의해서 촉발된 것인지, 좌익측의 전술에 의해 야기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서로 다른 쪽에 서 있던 사람들이었으니 이런저런 충돌이 있었겠죠. 다만, 아무리 문제가 있었다고 해도 인구의 1/5이 목숨을 잃은 것은 정말 있어선 안될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당시 치안유지를 할 의무가 있었던 우익측에서 더 많은 학살을 한 건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위청님의 말씀대로 "이 일의 발단을 먼저 제공한 측은 무장대 측이고, 무장대가 저지른 학살에, 토벌대가 더 큰 학살로 보답했다." 가 사실이라해도 토벌대의 잘못이 더 큰것 같습니다.
08/04/02 21:44
위청님// 이미 그에 관해 밝혀진 자료도 많고, 와이숑님이 말씀해주신 다큐멘터리나 제주 4.3사건(혹은 항쟁)과 관련된 책도 많이 나와있습니다. 그런 자료들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때 최소한 위청님께서 근거없이 주장하시는 공산당의 선동에 놀아난 제주 도민들에 대한 정당한 응징이라고 하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이자면 당시 상황은 진리탐구자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정부 수립 이전의 시기였습니다. 38선이 그어지긴 했었지만 북한=공산/남한=자본의 도식이 완벽하게 그어진 시기가 아닙니다. '저런 자들이 설치게 놔뒀으니'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죠. 당시까지 한반도는 어떤 체제를 선택할 것인가의 논의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었고 이 상황에서 남한에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해서 크게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 또한 당시의 강경진압은 정치적 의도가 다분했던 처사라고 봅니다. 무장 충돌을 피하려고 노력만 했다면 충분히 피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을 이용해서 친일vs독립세력의 대립이 주를 이루었던 한반도 내부의 문제를 반공논리로 전환시키려고 한 것 같거든요. 제주도민 30만이 죽어도 상관 없다는 식의 발언은 진압이 아니라 학살이고 그것도 정치적인 의도가 다분했다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08/04/03 00:31
대학교 1학년 때.. 다큐와 자료를 보고 꽤나 충격을 크게 받았었죠.
이후 3년간 후배들과 종종 토론했었는데, 유대현님이나 진리탐구자님의 입장이 거의 제 입장입니다. 위청님이 주장하고 싶으신 "정부의 쿠데타 진압작전"이라고 보기에는 국민으로 인정해 주는 부분이 없었죠. 설령 원인제공을 한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뺨때렸다고 구족을 멸하는 건 국가가 국민에게 취할 태도는 아닙니다. 4.3에서도, 광주 오월에 대해서도, "아주 사소한 사실들" "의혹들" "북과 연계되면 무조건 나쁜놈" "먼저 때린 놈" 식의 논리가 보통 등장합니다. .. 그냥 거기 있었던 사실만 봅시다. 아직 우리는 정부도 없었던 광복 후의 혼란기였습니다. 같은 민족끼리, 좀 더 어른인 (정부에 가까운) 집단이 한 집단을 몰살시키려 했고, 실제로 상당히 학살한 사건입니다. ..
08/04/03 00:37
제주도가 고향인 사람으로서... 정말 다가가기 힘든 문제입니다.함부로 묻지도 못하지요.
곧바로 제 할머니 할아버지, 증조 할머니 증조 할아버지와 연관되는 문제이니까요. 아직도 몇 곳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압니다. 마을 전체가 불타서 흔적도 없고, 대나무와 잡초들만 남아있는 곳이... 부끄럽게도 저는 4.3사건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여러 학살 사건과 차마 상상하기도 힘든 성적 범죄들은 어느 누구의 이념이 옳고 누구의 행동이 정당한지의 여부를 떠나서 쉽게 용서할 수 없습니다.
08/04/03 05:03
요새 중고등학생들은 제주도 4.3. 배우나요? 전 국사책에서 4.3.을 못배웠거든요.
전 대학교 1학년때 떨리는 마음으로(이게 그 운동권이란 말인가?라는 지금 생각하면 웃기는 심정) 학회에 처음 참석했는데, 첫 커리가 4.3.이었다죠. 전 선배들이 거짓말 하는 줄 알았습니다. 너무 끔찍해서...... 해방이후 그런일이 어떻게 생길수있는지. 거의 홀로코스트에 비견할만하다고 봅니다. 위청님 말씀도 일리가 없는 말씀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아무리 이승만정권의 정당성을 높게보더라도, 30만명중에 5만명은 말이 안되죠. 무장한 세력만 사살했더라도 목표는 충분히 달성했을텐데요. 인구수 6분의1을 없앤 '전쟁'은 없었죠. 6.25보시면 아시잖아요. 이건 전쟁이나 진압이 아닌 명백히 '학살', 제노사이드 였죠. 쩝. 요새는 그런 학회도 거의 없어지는 추세이고, 국사도 선택과목이고, 시국도 그렇고... 4.3. 이 뭔지 배울 기회가 없겠죠? 슬프네요.....
08/04/03 10:45
여기 위험한 사고를 하시는 분이 계시네요, 지역주민 대부분이 요구해도 군대를 보내서 진압하라니, 본문과 다른 문제지만 제주도민이 분리독립을 요구한다면 우리나라나 제주도 전체를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지만 그 지역주민이 원한다면 그렇게 해줘야 한다고 봅니다, 경상도, 전라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제가 수십명 선동하여 강남경찰서를 털었다고 무고한 강남주민 수천명을 학살해도 무방한 것인지, 당시 학살당한 제주도민이 수만명 수준인데 설사 공산당에 놀아난 수백명(?)이 있었다 해도 이들만 사살해도 충분했었을 것을 거의 무차별 사격을 한 수준인데 이게 괜찮다니 세상이 다양하지만 참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08/04/03 14:18
율리우스 카이사르님// 이제 고등학교에서는 국사가 필수로 지정되지 않았나요? 그리고 그 국사의 대부분의 내용은 근현대사이고.(근현대사 이전의 내용은 '전근대사'라는 파트에 들어가게 되더군요.) 게다가 선택형 수능인 지금도 대부분의 학교에서 근현대사를 선택해서 가르치기 때문에 학생들이 수능 과목으로 근현대사를 선택하든 선택하지 않든 수업을 한 번 쯤은 듣습니다. 근현대사 교과서의 내용도 충실한 편이라 그것만 마스터해도 모를 일은 없겠더군요.
그래서 예전에는 다들 현대사의 진실을 몰랐기 때문에 518과 같은 충격적인 사건 하나 딱 터뜨려주면 충격과 공포를 통해 관심을 끄는 효과가 있었는데, 오히려 요새는 다들 근현대사를 도통하고 와서 영 관심이 시들시들한 모양이더라고요. 이건 개인적인 사례입니다만, '그런 학회'에서 역사세미나를 참여했었는데, 세미나의 내용이 참여자들이 학교교육을 통해 습득한 사전 지식에 못 미쳐서 세미나가 김을 새버리는 일도 경험한 적도 있습니다. 이를 테면 이런 식입니다. '오늘은 광주 민주화 항쟁에 대해 공부해봅시다', '이거 다 학교에서 배웠는데...'
08/04/03 15:44
진리탐구자님// 제가 학교다닐때만 해도 교련있었고 박정희 집권은 쿠데타가 아니라 혁명이었고, 4.3.은 실려있지도 않았어요.
요새는 교과서에 4.3. 있나보죠? 다행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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