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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3/20 12:55:38
Name eLeejah
Subject [일반] [펌] 대중문화(에 관한) 책의 족보
전성원님이 <아름다운 서재>라는 도서목록집에 기고하신 '대중문화 책의 족보'라는 글입니다. 족보라는 제목에 걸맞게 '대중문화'라는 개념에 관한 통시적인 소개에 매우 충실한 글입니다. 개인적으로 아는 분은 아니지만 친구의 친구의 친구 같은 느낌으로 페이스북 친구가 되어있는데 그러다보니 제 '취향'에 매우 맞춤한 레퍼런스들만 등장합니다. '문화' 연구가 아닌 '대중문화' 연구는 일정 부분 소위 빨간 냄새를 지울 수가 없기는 합니다만 혹여 파란 대중문화 연구 저작들이 누락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대중'문화에 매우 관심이 많지만 전문적으로 훈련받고 있지는 않은 사람으로서는 매우 훌륭한 소개글이라고 생각하고 퍼옵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한번 읽어보셔도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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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책의 족보

전성원(계간 『황해문화』 편집장)

숲에서 나오니 숲이 보이네
………
그 알 수 없던 나무
나무 사이를 끝없이 헤매이며
어두운 숲 속을 날아다니던 시절
저 파란 하늘 한 조각 보고파 울던
그 수많던 시간들을 남긴 채
광야로 광야로 광야로

저 숲에서 나오니 숲이 보이네
푸르고 푸르던 숲
내 젊은 날의 숲

하덕규, 「숲」 중에서

폴 부르제(Paul-Charles-Joseph Bourget, 1852~1935)는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One must live the way one thinks or end up thinking the way one has lived)”고 했는데, 문화란 ‘사는 대로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자 조건’이다. 문화란 하덕규의 노래에 나오는 숲과 같기 때문이다. 문화란 우리의 삶 그 자체이기 때문에 우리가 숨 쉬는 공기와 잠시도 떨어져 살 수 없는 것처럼 우리 중 누구도 문화와 거리를 두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문화를 온전한 또는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보기란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문화연구 - 문화(culture)에 대한 새로운 정의에서 출발
‘인문사회과학 출판인협의회(인사회)’에서 지난 2006년부터 <아름다운 서재>란 제호로 펴내고 있는 도서목록집의 한 부분으로 ‘대중문화 책의 족보’를 정리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가장 난감했던 부분은 ‘대중문화’란 영역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분야에 해당할 만큼 넓게 분포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문화란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인간의 완성 상태 혹은 지향으로서 ‘인간 사고와 표현의 가장 뛰어난 정수’, 다시 말해 교양(敎養)을 갖춘 엘리트들만이 획득할 수 있는 고도의 의식 수준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고, 예술과 결합해 ‘문화예술’이란 이름으로 호명되는 예술작품, 다시 말해 인간의 생각과 경험을 다양하게 기록하는 지적이고 상상력이 깃든 작품의 총체를 뜻하기도 한다. 그러나 오늘날 ‘대중문화(mass culture)’라고 이름 붙은 것들과 이것에 대한 연구·분석방법론을 의미하는 ‘문화연구(Cultural Studies)’는 문화를 기존의 정의와 조금 다른 의미로 재해석하고 있다.

영국 노동계급 출신의 지식인이자 문학비평가, 문화연구의 태두로 손꼽히는 레이몬드 윌리엄스(Raymond Williams, 1921~1988)는 케임브리지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대중(노동계급)이 일궈놓은 문화(대중문화)에 대한 기존의 부정적이고, 비판적 시각을 넘어서 새로운 문화업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윌리엄스의 문화에 대한 정의는 비록 직접적으로 문화에 대해 이야기한 바는 없지만 카를 마르크스가 주장했던 경제결정론(문화를 단순히 토대를 반영하고 토대에 의해 결정되는 상부구조의 한 부분으로 간주)에 입각해 경제에 종속된 것으로 보았던 속류 유물론과 매슈 아널드(Matthew Arnold, 1822~1888)같이 문화란 “대충 교육받은 다수가 아닌, 고도로 교육받은 소수가 항상 인류의 지식과 진실의 기관 역할을 해왔다. 말의 진정한 의미에서 지식과 진실은 결코 인류의 대다수가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엘리트 문화론(『교양과 무질서』, 한길사)에 대한 비판이었다. 한편 이와 같은 윌리엄스의 주장은 역사학자 에드워드 톰슨(Edward P. Thompson, 1924~1993)의 『영국노동계급의 형성』(이하 2권, 창비)에 크게 빚지고 있다. 톰슨은 윌리엄스가 정의한 총체적 삶의 방식으로서의 문화 개념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문화들 간의 투쟁, 긴장, 갈등에 초점을 맞추어 사회적 의식과 존재와의 변증법적 상호작용을 통해 주어진 조건에서 인간들이 역사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이 저서에 담고 있다.

오늘날 문화연구 분야에서의 문화란 단지 예술이나 학문뿐만 아니라 사회 제도나 일상적 행위에서 어떤 의미나 가치를 표현하는 삶의 방식을 뜻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대중문화라고 이야기하는 것들 역시 그 범주 안에 속한다. 다시 말해 대중문화의 정의는 이처럼 고매한 교양으로서의 문화예술로 시작해 ‘음주문화, 주차문화, 화장실 문화’같이 삶의 일상적인 다양한 영역을 두루 포괄하는 개념이다. 실제로 문화연구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무엇보다 일상생활을 주요 연구 대상으로 부각시켰다는 점이다. 그로부터 ‘일상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명제가 시작되었다. 문화연구는 지금까지 미학이나 마르크스주의 같은 거대 담론에 의해 간과되었던 일상생활의 영역을 ‘문화’로 보고, 그것을 실천적인 연구 과제로 삼는다.

앞서도 이미 ‘문화’가 우리 사회의 전 분야를 두루 망라하고 있는 숲과 같은 것이라고 이야기했지만, ‘문화연구’의 범위는 지구화 담론으로부터 출발해, 미학과 정치, 광고 산업과 광고 분석, 문화정책, 문화 산업론 등 매우 다양한 영역에 걸쳐져 있기 때문에 연구대상이 매우 포괄적이어서 학문적 경계 영역을 명확히 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그런 까닭에 문화연구를 다룬 저서들을 보면 과학의 가치중립성 논쟁, 페미니즘, 탈식민주의, 오리엔탈리즘, 퀴어 운동, 미디어 코드 분석 등 서로 연관이 없을 것 같은 분야들까지 문화연구란 이름 아래 다루고 있다. 레이먼드 윌리엄스를 계승한 스튜어트 홀(Stuart Hall, 1932~2014) 같은 문화연구론자들은 ‘문화연구'의 가장 큰 특징으로 이와 같은 학제 간 연구를 이야기한다. 또한 문화연구는 궁극적으로 이론적·실천적 개입에 그 목표를 두고 있는 매우 실천적인 학문이기도 하다. ‘문화연구’는 방법론적·이론적 혼합성과 정치적 실천성으로 인해 제도권으로 편입되는 것에 저항하는 요소가 있지만, 한국사회에서는 1990년대 변혁이론의 퇴보 속에 그 빈자리를 채우며 성장해 왔고, 강단을 중심으로 발전해온 탓에 이미 상당부분 제도권에 흡수되어 있으며 이런 현상은 국내만의 문제가 아니라 외국의 경우에도 비슷한 딜레마가 되고 있다.

대중(mass), 대중사회(mass society), 대중문화(mass culture)
문화연구 영역에서 의미하는 문화란 특별한 구분이 없는 한 일반적으로 대중문화를 의미한다. 대중문화란 말 그대로 ‘대중’과 ‘문화’가 합쳐져 이루어진 말이다. 그것은 대중이라는 새로운 주체의 출현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20세기 초엽 미하일 바흐찐(Mikhail M. Bakhtin)이 『프랑수아 라블레의 작품과 중세 및 르네상스의 민중문화』(아카넷)에서 이야기했던 “언제나 존재하였으며 결코 지배계급의 공식문화와 합쳐지지 않았던 민중의 독특한 웃음 문화를 무시한다면, 우리는 결코 과거 인류 역사의 문화적, 문학적 삶과 투쟁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없을 것”이란 말은 오늘날 아더 아사 버거(Arther Asa Berger)의 『커뮤니케이션의 이해, 이론과 사상』(커뮤니케이션북스)에서 “수억의 사람들의 주목을 끌어온 매체에 대해서는 그것이 어떤 것이라도 진지한 관심과 연구를 기울여야 할 가치가 있다”는 말로 되풀이된다.

그렇다면 대중 혹은 대중사회는 언제 출현했을까. 대중사회의 개념은 희랍의 초기 사회이론가에서 토크빌(Tocqueville), 마르크스(Marx), 만하임(Mannheim) 등을 거쳐 후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밀즈(C.W.Mills), 마르쿠제(Marcuse) 등의 사회이론가들을 거치는 사회학적 계보를 가지고 있다. 1900년에 이르러 18세기 계몽사상에 의한 과학 ․ 이성 ․ 진보의 힘은 유럽의 체제를 크게 바꿔놓았다. 산업화와 도시화에 의한 사회구조의 변화는 새로운 발명(증기기관, 내연기관, 무선통신, 사진, 영화 등), 철도와 기선의 출현(미 대륙 횡단철도, 유라시아 횡단철도, 대양 운송)으로 인해 낡은 농업사회의 자급자족제도를 파괴하고, 도시로 유입된 다수의 노동자 계층을 생성시켰다. 농민에게는 전통적 생산수단을 현대화하도록 강요(문화적 재생산의 차단)했고, 인구의 이동성을 높여 도시의 거대화를 초래한다. 자유주의, 자유자본주의 모델은 그 물질적 장점으로 인해 정치적인 틀을 크게 변모시킨다.

이 시기는 언론, 상거래, 과학적 탐구의 자유, 노동의 유동성과 확대된 선거권에 기반한 민주적 자치(自治)에 대해 각성한(영국의 경우 1867년 도시소시민, 노동자, 1884년 광산노동자, 농민, 1918년 남성 보통선거, 1928년 보통선거 확립) 시대이다. 대중사회가 출현하던 시기에 지구상의 인구는 1900년 당시 16억 3천만 명에서 2000년 무렵 60억으로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산업화와 도시화, 새로운 기술의 출현은 대중들의 의식을 변화시켰고, 교육받은 중산층과 소수 기술노동자 계층의 출현으로 새로운 형태의 매스 미디어들(신문 - 1700년대부터 인쇄되어 구독되었던 소책자나 정보지로 출발, 18세기에 이르러 일간지가 일반화됨, 1840년대 대중잡지, 1920년대 라디오, 1940년대 TV)의 출현을 가속화시켰다. 1843년 영국 카툰 잡지 「펀치(Punch)」, 사진의 출현, 포르노그래피가 사회적 문제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근대 이전의 문화란 소수의 한정된 계층만이 즐길 수 있는 엘리트 계급의 문화와 기층 계급의 문화로 구분되어 있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생산력이 증대되고(물론 세계체제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비유럽권에 대한 착취 구조가 완성단계에 이른 결과), 노동자들의 의식 향상에 따른 사회적 요구로 인한 보통선거 실시와 대중교육을 통해 문화수용능력이 향상되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문화를 향유할 수 있게 되었다.

매슈 아널드를 비롯해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통해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등장한 대중들(정치적·문화적 무자격자)에 대해 두려움과 증오를 표시했다. 이들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엘리트에 의한 지배의 종언과 대중에 의한 통치였으며, 대중을 군중(mass), 어중이떠중이, 폭도(rabble)로 바라보았다.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대중의 반역』(역사비평사)에서 사회는 소수 엘리트 집단과 다수의 대중, 두 집단으로 구성되었으며 역사 이래 소수의 엘리트가 다수를 지배해왔다고 주장한다. 오르테가는 - 볼셰비즘의 발호에 위협을 느끼고, O. 슈펭글러의 『서구의 몰락』(책세상)에서 영향을 받아 - 대중이 피지배계급으로 원래의 사회적 위치를 벗어나 자유를 증대시키고, 문명 발전의 열매(문화예술)를 모두 다 누리려 한다는 데 불만을 토로했다. 지고(至高)의 선과 미를 깨우치지 못한 대중의 예술적 취향을 사회에 퍼뜨리려는 것은 문화적으로 자격이 없는 대중들이 만들어 낸 비지성적이고 충동적이며 문화적으로 가치가 없는 낮은 수준의 문화(대중문화)가 사회 전체를 주도하는 결과를 초래할 ‘대중의 반역’으로 보았다.

대중문화 :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 투쟁의 장
문화연구에서 대중문화의 영역은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가 대중에게 널리 유포되는 장이자, 동시에 이에 대한 저항이 병존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문화연구를 추동해 온 개념들의 정의는 그 자체로 문화연구의 성격을 드러내준다. 문화유물론, 물질적 실천, 인간이 무엇을 하고, 그들이 세계를 어떻게 변형시키는지에 대한 관점에서 인간 현실을 기술한다. 물질주의는 사람들의 세계를 사회, 문화, 정치, 기술, 경제적 관계들로 설명한다. 반본질주의, 아무것도 미리 보장된 것은 없고, 어떤 관계도(상응하여) 필요하지 않으며, 어떠한 정체성도 내재되어 있지 않은 수렴적 역사를 기술한다. 권력은 차이를 만들고, 관계를 형성하고 정체성과 위계를 구조화할 뿐만 아니라, 실천을 가능하게 하고, 사회적 주체에 힘을 실리게 한다. 환원주의. 모든 역사를 하나의 입장으로 엮어내는 유일한 구조는 존재하지 않는다.

문화연구의 대중성은 ‘반엘리트’주의적이며 대중이 지배체제에 대해 보이는 복종 또는 종속은 단순한 조작에 의한 것이 아니며 전면적 복종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대중은 복잡하고, 모순적이고, 능동적인 방식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살려나간다. 문화연구 입문서 구실을 하는 위의 책들 역시 ‘이데올로기’의 다양한 정의와 쓰임새를 소개하는데 상당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이데올로기란 용어를 학문적으로 처음 사용한 사상가가 ‘마르크스’는 아니었지만 이 개념을 사회 전체적인 영역으로 확장시킨 사상가는 ‘마르크스’였다. 마르크스 자신은 명확하게 문화이론이라 할 만한 것을 내세운 적이 없지만, 현대의 문화이론 가운데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을 받지 않은 문화이론 역시 거의 없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이데올로기란 일정한 ‘허위의식’을 조장하여 현실을 왜곡하고 은폐하는 기능 - 권력을 지닌 계급이 자신의 이익을 정당화하기 위해 현실을 포장하는 이념 - 이다. 지배계급에 의해서 생산되는 대중문화는 지배계급의 지배를 용이하게 하고 이를 즐기는 대중들에게 계급적 갈등과 불평을 느끼지 못하도록 하는 허위의식을 갖게 만든다. 사회변동의 주체가 되어야 할 노동계급이 허위의식으로 가득 찬 대중문화를 즐김으로써 이데올로기는 계급의식이 생겨나지 못하게 막는 역할과 지배방식을 은폐하는 역할을 한다. 문화적 텍스트(종교, 법, 도덕, 관습, 책 등)는 이와 같은 이데올로기의 무의식적 반영물이다. 문화와 관련해 마르크스는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진술을 남기고 있는데, ‘토대-상부구조(base and superstructure)’의 문제 - 사회를 이루는 두 요소, 즉 경제적 기초(토대)와 사회적 의식의 모든 형태들인 상부구조의 관계를 어떻게 보는가<『정치경제학 비판 요강』(백의)>에 따라 마르크스주의 문화론의 문화에 대한 해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핵심은 토대가 상부구조를 결정(determination)한다는 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속류 마르크스주의의 경제결정론에서 상부구조의 영역에 속하는 문화는 아무런 자율성을 지니지 못한다. 그것은 단지 토대가 되는 경제구조의 단순한 반영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이해된다. 모든 문화는 그것을 생산한 사회의 경제구조의 단순한 반영일 뿐이라는 해석에 따르면 대중문화와 대중은 경제구조에 의해 이미 결정된 의식을 반영하는 존재에 불과하다. 이와 같은 마르크스주의 문화론(특히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문화론)은 서구 유럽에서 사회주의 혁명의 실패와 파시즘의 등장이라는 역사적 사건들을 배경으로 한 것이었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사상가들은 미국 망명 생활과 전후 미국의 세계지배를 통해 경험한 미국의 문화산업이 지닌 산업적 특성에 주목했다. 이들은 대중문화와 문화산업을 부르주아의 이데올로기적 지배와 연관시켜 현대의 대중문화가 노동자 대중의 진정한 의식을 말살하고 허위의식을 주입하며 결과적으로 자본주의 체제의 지배를 정당화하고 유지·강화하는 데 기여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사회 변혁이란 궁극적으로 대중의 실천을 통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 이들의 대안은 지나치게 반대중적이며 비관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같은 프랑크푸르트학파로 분류되었던 발터 벤야민은 아도르노나 마르쿠제와는 다른 자신만의 독특한 이론적 입장을 지닌 인물이었다. 특히 『기술복제시대의 예술』(길)은 대중문화와 관련해 많은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는데, 과거의 예술이 아우라(aura)라는 흉내 낼 수 없고, 복제할 수 없는(일회적이라는) 속성상 주술적인 신비를 갖춘 것이었던 것에 반해 현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은 상품적 가치와 동시에 전시적 가치를 지니게 되었고, 이와 같은 아우라의 상실 덕분에 이제까지 예술작품이 지녔던 기능과 대중의 수용태도에도 커다란 변화가 생겨난다. 과거 예술에 대한 대중의 수용방식이 작품 속에 자신을 동화시킴으로써 일체감을 체험하는 것이었다면, 현대의 예술에 대해 대중은 작품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두는 비판적 수용태도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벤야민은 이것을 ‘예술의 정치화’라고 말한다. 벤야민의 주장이 다른 프랑크푸르트학파와 두드러지게 다른 점은 매스 미디어와 대중문화의 부정적 가능성에 대해 인식하면서도 동시에 대중문화가 갖고 있는 진보적 가능성에 대해서도 주목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복제 기술은 예술 작품을 둘러싸고 있던 신비(아우라)를 소멸시킴으로써 대중의 비판적 수용 가능성을 열었다. 즉, 예술작품, 문화적 텍스트의 의미는 더 이상 전통의 권위와 의식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닌 소비의 순간, 수용자(주체)의 태도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현대의 문화적 기술을 진보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적극적이고 실천적인 예술가들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중문화가 지배 블록과 피지배 블록의 헤게모니가 투쟁하는 장이라는 인식은 이탈리아에서 파시즘 체제에 저항하다 옥중에서 사망한 안토니오 그람시의 독창적인 헤게모니 이론에 기대고 있다. 본래 헤게모니란 말은 레닌이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사회주의 혁명과정에서 헤게모니를 행사해야 한다는 주장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그람시는 이 개념을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배의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데 적용하고 있다. 그는 자본주의적 발전에 필연적으로 수반되기 마련인 억압과 착취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사회주의 혁명으로 전이되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헤게모니 개념을 이용하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의 지배계급은 사회를 단순히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힘(알튀세르의 개념을 빌자면 억압적 국가장치Repressive State Apparatuses : RSA) 또는 유화적인 제스처만으로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 ․ 지적 리더십을 통해 이끌어가는 상황 - 피지배계급이 현재의 권력구조와 사회질서를 능동적·자발적으로 지지하고 있음을 의미 - 을 지칭한다. 지배계급이 헤게모니를 장악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그러한 믿음(가치체계)을 생산하는 사회적 형식들(역시 알튀세르의 개념을 빌자면 이데올로기적 국가 기구Ideological State Apparatuses: ISA) - 즉, 시민사회의 다양한 형식들(가족, 종교, 교육, 법률, 정치, 미디어와 문화산업)이 발전해 있기 때문이다. 지배계급은 이런 장치들을 통해 현재의 질서와 체제에 대해 대중의 자발적 복종을 이끌어낸다.

시민사회에서 자본가 계급은 여러 민주주의제도를 통해 노동자 계급에게 경제적·정치적 이익을 주장할 수 있는 참여의 통로를 열어 놓고 있다. 헤게모니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대중문화는 사회의 지배적인 힘과 피지배자의 힘 사이(성이나 세대, 인종, 계급, 지역 등의 다양한 요소들)에 투쟁과 타협, 갈등과 교류가 일어나는 영역이다. 이에 따르면 대중문화의 영역에서 의미의 생산은 구조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도 아니고, 대중의 실천에 의해서만 생겨나는 것도 아니다. 문화의 의미는 구조와 실천의 집합 혹은 대결 과정에서 형성된다. 다시 말해 구조의 반영이라 할 수 있는 텍스트와 그것을 수용하는 대중의 문화적 실천의 상호작용에 의해 발생한다는 것이다. 각각의 집단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주어진 문화를 수용하고 해독한다. 대중문화는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피지배계급의 저항력과 지배계급의 통합력 사이의 투쟁의 장(battle ground)이며, 현재 우리가 속해있는 사회의 문화란 이와 같은 투쟁과 타협이 서로 ‘타협적 평형(compromise equilibrium)’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최근 보수와 진보가 사이버공간을 통해 벌이고 있는 일련의 힘겨루기 역시 대중에 대한 문화적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한 투쟁이라 할 수 있다.

문화실천의 장(場)으로서의 일상, 실패와 성공의 공간
『대중문화 낯설게 읽기』(문경)에서 강인규는 “기호학은 읽고 쓰는 능력을 일컬었던 기존의 ‘리터러시(literacy)’라는 개념을 대체하여 문화에 대한 이해와 판단 능력을 포함한 새로운 읽고 쓰는 능력”이란 점에서 기호학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문화의 영역에서 대중은 지배계급에 의해 조작의 대상이 되는 동시에 나름의 미학적 판단에 따라 대중문화 텍스트를 실천하는 주체이다. 기호학은 우리가 오랫동안 낯익은 것이므로 당연하고, 올바른 것으로 받아들여 왔던 모든 것을 새롭게, 그리하여 낯설게 받아들이라고 한다. 이때의 낯설게 읽기란 기존의 읽기 방식과 그런 방식 안에 내재되어 있던 이데올로기와 제도를 해체한다는 점에서 부정의 읽기이다. 기호학은 부정의 읽기, 비판적 읽기를 통해 새로운 의미의 세계를 창조하며 이 과정에서 기존의 의미체계(지배이데올로기)와 투쟁을 벌인다는 점에서 진보적 실천 행위가 된다.

정직한 텍스트일수록 진정한 현실에 가까운 것은 사실이지만 텍스트와 현실 사이엔 ‘좁혀지기는 하지만 만날 수 없는 거리’가 있다. 텍스트를 쓰는 주체 자신이 가진 이데올로기, 세계관 등의 프리즘을 통해 현실을 바라보고 현실을 선택한다는 점에서 우리가 읽는 텍스트란 말 그대로 현실을 재현(re-presense)한다. 재현은 단순히 의미생산에 그치지 않고 당대 권력과 유착해 지식을 생산하고 그 지식은 당대 진실로서 이데올로기적 속성을 띤다. 모든 재현은 본질적으로 정치성을 지닌다. 텍스트는 의미를 드러내는 만큼 감춘다. 롤랑 바르트는 신화란 반드시 먼 옛날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현대사회의 다양한 일상 속에 내재되어 있는 이데올로기적 작용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기호학은 대중의 일상문화 속에 숨어 있는 이데올로기를 들추어내고, 그 속에 은폐되어 있는 부르주아적 규범을 폭로한다. 독자는 기호학을 통해 주체의 의도대로 텍스트를 해석하고, 현실을 표상하는 것에서 벗어나 이를 뒤집어 읽고, 자기 나름으로 해독해서 다시 써야 한다. 텍스트를 다시 쓴다는 것은 세계를 다시 창조하는 것이며, 다시 쓰기를 통해 텍스트의 신화에 조작되던 대상이 주체로서 세계를 재구성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기호학이란 것이다.

이탈리아의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는 기호학을 ‘거짓말의 이론(theory of the lie)'으로 정의한다. 이 말은 역으로 어떤 것이 거짓말에 사용될 수 있다면 역으로 이를 통해 진실을 드러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예컨대 남성지배사회에서 ‘자연적으로’ 여성은 남성보다 육아와 가사에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의미화’된다. 기호학은 이처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을 문제 삼음으로써 현실을 낯설게 보여주는 장치다. 기호를 통한 의미의 구성은 언제나 특정 입장의 이익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기호는 단순한 언어유희가 아닌 물리적 실체이며 권력 관계를 지닌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문화를 텍스트로 읽고자 하는 사람들은 대중문화가 드러내고 재현하고 있는 모든 기호들에 대해 반드시 “이 기호는 누구의 이익에 봉사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다루는 것처럼 보이는 뉴스도 예외가 아니다. 현실은 그 자체로 이야기의 요소를 갖지 않지만, 뉴스로 재구성될 때, 그것은 이야기가 된다. 사건을 내러티브(narrative)화하는 과정에서 특정한 시각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어째서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모든 파업이 혹은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파업이 이미 ‘불법’이고 ‘과격’하며, 한국경제에 먹구름을 드리울 것이라고 보도되는지 짐작할 수 있다. 남자의 보살핌을 받아야 ‘여자다운 여자’가 되고, ‘과격한’ 지하철 파업을 근엄하게 꾸짖어야만 ‘온건한’ 시민이 된다. 기호학에서 ‘현실’이란 언제나 지배체제의 자화상일 뿐이다. 이런 ‘당연한 현실’을 거부할 때, 사회의 변혁을 가능케 하는 가장 근원적인 문제제기, 즉 ‘의미를 둘러싼 투쟁’이 시작된다.

앙리 르페브르는 『현대세계의 일상성』(기파랑)에서 일상을 ‘혁명 시도가 실패하는 원인이며 결과’로 봤다. 일상이란 매일같이 벌어지는 일들로 구성되어 있고, 이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된다. 그렇기에 일상은 우울한 것이다. 그러나 르페브르의 말처럼 모든 혁명은 일상에서 비롯되었고, 결국 실패하는 원인도 일상에서 비롯된다. 일상에서 시작되지 않는 변화는 아무 것도 변화시키지 못하며 일상에 매몰되는 변화 역시 아무 것도 성취해내지 못한다. 일상의 무기력증은 일상을 변화시킨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반복적으로 체득하게 한다. 일상성의 의미 속에 무기력하게 지배당하는 개인과 그와 같은 소비적 일상을 거부하는 개인, 이 개인이 주체적인 자아를 회복하는 것을 르페브르는 “일상성의 혁명”이라 불렀다.

우리는 일상을 늘 진부한 것으로 생각하고, 그로부터의 일탈을 꿈꾼다. 먹고, 마시고, 싸고, 자고, 노는 모든 것이 우리의 일상이다. 다람쥐 쳇바퀴란 표현이 잘 말해주는 것처럼 우리의 일상은 그물보다도 더 촘촘하게 짜인 인간관계와 사회의 그물망에 포섭되어 있다. 아주 작은 부분 하나까지 권력 관계와 이해관계로 얽혀있다. 하지만 바흐친에서 미셀 드 세르토에 이르는 수많은 문화연구자들은 일상이 단지 파편화된 개인이 권력 관계 속에서 수동적으로 무기력한 삶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틈바구니 속에서도 이에 대항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즉, 우리들 스스로가 주체적인 존재로 실천해간다면, 문화의 일상은 더 이상 무기력한 삶의 반복이 아니다. 대중문화를 공부한다는 것은 그런 의미가 있는 작업이다.

추천도서(*본문에서 언급한 도서들은 제외)
대중문화연구 입문서
김창남, 『대중문화의 이해』, 한울아카데미, 2010.
원용진, 『새로 쓴 대중문화의 패러다임』, 한나래, 2010.
강준만, 『대중문화의 겉과 속』(이하 3권), 인물과사상사, 2013.
존 스토리, 『문화연구와 문화이론』, 현실문화연구, 1999.
정재철 엮음, 『문화 연구이론』, 한나래, 1998.
박명진 외, 『문화, 일상, 대중: 문화에 관한 8가지 탐구』, 한나래, 2007.
그래엄 터너, 『문화연구입문』, 한나래, 1995.

대중문화 이해를 위한 기본교양서와 문화연구의 사상가들
C. 라이트 밀즈, 『파워 엘리트』, 부글북스, 2013.
강상현·채백 엮음, 『대중매체의 이해와 활용』, 한나래, 2002.
강준만, 『고독한 대중』, 인물과사상사, 1997.
레이먼드 월리엄스, 『시골과 도시』, 나남출판, 2013.
레이먼드 윌리엄스, 『기나긴 혁명』, 문학동네, 2007.
레이먼드 윌리엄스, 『키워드』, 민음사, 2010.
로제 카이와, 『놀이와 인간 - 가면과 현기증』, 문예출판사, 1994
롤랑 바르트, 『신화론』, 현대미학사, 1995.
루이 알튀세르, 『아미엥에서의 주장』, 솔, 1998.
릴라 간디, 『포스트식민주의란 무엇인가』, 현실문화연구, 2000.
마빈 해리스, 『문화의 수수께끼』, 한길사, 2000.
막스 베버,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길, 2010.
만하임,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 김영사, 2012.
박정순. 『대중매체의 기호학』. 커뮤니케이션북스, 2009
발터 벤야민,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 사진의 작은 역사 외』, 길, 2007.
수잔 벅 모스,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 문학동네, 2004
스튜어트 홀, 『대처리즘의 문화정치』, 한나래, 2007.
신혜경, 『벤야민 & 아도르노 : 대중문화의 기만 혹은 해방』, 김영사, 2009
아르놀트 하우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전4권), 창비, 1999.
아르준 아파두라이, 『고삐 풀린 현대성』, 현실문화연구, 2004.
안토니오 그람시, 『그람시의 옥중수고 1·2』 , 거름, 1999.
앤드류 밀너, 『문화유물론의 이론적 전개』, 현대미학사, 2005.
어빙 팽, 『매스커뮤니케이션의 역사』, 한울, 2011.
엘리아스 카네티, 『군중과 권력』, 바다출판사, 2010.
연구모임 사회 비판과 대안 엮음,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테제들(사회비판총서 1)』, 사월의책, 2012.
요한 하위징아, 『호모 루덴스 - 놀이하는 인간』, 연암서가, 2010
우치다 타츠루,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 - 교양인을 위한 구조주의 강의』,갈라파고스, 2010.
월터 리프먼, 『여론』, 까치글방, 2012.
임영호, 『스튜어트 홀의 문화 이론』, 한나래, 1996.
장 보드리야르, 『시뮬라시옹』, 민음사, 2001.
전경수, 『문화의 이해』, 일지사, 1999.
제임스 프록터, 『지금 스튜어트 홀』, 앨피, 2006.
존 팩스턴, 『파시즘』, 교양인, 2005.
존 피스크, 『커뮤니케이션학이란 무엇인가』, 커뮤니케이션북스, 2001.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 『슬픈 열대』, 한길사, 1998.
테오도르 아도르노, M.호르크하이머, 『계몽의 변증법』, 문학과지성사, 2001.
토크빌, 『미국의 민주주의』(이하 2권), 한길사, 2002.
피에르 부르디외, 『구별짓기 - 문화와 취향의 사회학(상·하)』, 새물결, 2005.
피에르 부르디외, 『상징폭력과 문화재생산』, 새물결, 1995.
앤드류 에드거, 피터 세즈윅 엮음, 『문화 이론 사전』, 한나래, 2012.

대중문화연구 분야의 책들
강내희, 『신자유주의와 문화 - 노동사회에서 문화사회로』 , 문화과학사, 2000.
강내희, 『한국의 문화변동과 문화정치』, 문화과학사, 2003.
고길섶 외, 『문화읽기: 삐라에서 사이버문화까지』, 현실문화연구, 2000
권혁태, 『일본 전후의 붕괴-서브컬처 소비사회 그리고 세대』, 제이앤씨, 2013
김창남 외, 『대중음악의 이해』, 한울, 2012.
더글라스 켈너, 『미디어 문화 - 영화.램.MTV.광고.마돈나.패션.사이버 펑크』, 새물결
딕 헵디지, 『하위문화 : 스타일의 의미』, 현실문화연구, 1998.
발트라우트 포슈, 『몸 숭배와 광기』, 여성신문사, 2001.
백원담, 『동아시아의 문화 선택 한류』, 펜타그램, 2005.
셧 쟐리, 『광고 문화 : 소비의 정치 경제학』, 한나래, 1996.
신현준, 『가요, 케이팝 그리고 그 너머 - 한국 대중음악을 읽는 문화적 프리즘』, 돌베개, 2013.
신현준, 『빽판 키드의 추억』, 웅진지식하우스, 2006.
에드가 모랭, 『스타 - 스타를 통해본 대중문화론』, 문예출판사, 1992.
엘리스 캐시모어, 『스포츠, 그 열광의 사회학』, 한울, 2010.
우석훈, 『문화로 먹고살기 - 경제학자 우석훈의 한국 문화산업 대해부』, 반비, 2011.
원용진 엮음, 『대중매체와 페미니즘』, 한나래, 1993.
월터 레이피버, 『마이클 조던, 나이키, 지구 자본주의』, 문학과지성사, 2001.
윌리엄 H. 데이비도우, 『과잉 연결 시대 - 일상이 된 인터넷, 그 이면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수이북스, 2011.
이동연 엮음, 『아이돌 - H.O.T.에서 소녀시대까지』, 이매진, 2011.
이와부치 고이치, 『아시아를 잇는 대중문화 - 일본, 그 초국가적 욕망』, 또하나의문화, 2004.
장 피에르 바르니에, 『문화의 세계화』, 한울, 2008
전성원,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 인물과사상사, 2012
정준영, 『열광하는 스포츠 은폐된 이데올로기』, 책세상, 2003.
제임스 트위첼, 『럭셔리 신드롬』, 미래의창, 2003.
제임스 트위첼, 『욕망, 광고, 소비의 문화사』, 청년사, 2001.
칼레 라슨 외, 『애드버스터 - 상업주의에 갇힌 문화를 전복하라』, 현실문화연구, 2004.
크리스 바커, 『글로벌 텔레비전』, 민음사, 2001.
크리스틴 글레드힐, 『스타덤 : 욕망의 산업 1·2』, 시각과언어, 1999.
클라우디아 스프링거, 『사이버 에로스:탈산업 시대의 육체와 욕망』, 한나래, 1998.
폴 윌리스, 『학교와 계급재생산 - 반학교문화, 일상, 저항』, 이매진,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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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無嶋
14/03/20 13:00
수정 아이콘
예나 지금이나 어느 학문이나 보학은 참 책 많이 읽어야 하네요;;;
14/03/20 13:29
수정 아이콘
제가 학계 종사자(?)가 아니라 말을 더하는게 좀 조심스럽지만 다독은 다독대로 정독은 정독대로 쓰임이 있지 않을까 싶네요^^; 근데 글 쓰신 분도 그렇지만 다독에 훈련되신 분들은 정말 어마어마하게 읽으시더라구요. 부러우면서도 '뭐 책 10배로 더 읽는다고 세상을 10배 더 누리며 사는 건 아니잖아' 자기 위로도 해보고 그럽니다. 아가가 생기니 책 읽을 시간은 정말 안나네요^^;;;
아케미
14/03/20 16:42
수정 아이콘
우와! 저 이 분야의 참고문헌 목록이 정말 필요했는데... 관심은 많은데 독서 가이드가 마땅찮아서요ㅠㅠ 좋은 자료 정말 감사합니다! 스크랩하겠습니다!!
14/03/20 17:10
수정 아이콘
제가 받을 감사가 아닌 듯 합니다만 어쨌든 필요하신 자료였다고 하니 기분은 좋네요^^ 즐거운 독서생활 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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