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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10/20 23:58:35
Name 종백이
Subject [일반] 영화 그래비티 감상기 - ‘삶을 대하는 태도’ (스포 많음)
오늘 그래비티를 보고 왔습니다. 요즘 신작 소식들을 챙겨보지 못한 터라 사전지식 없이 극장을 찾았는데 대만족이었네요.

다녀와서 관련 정보를 검색해보니 개봉 전부터 기대가 컸던 영화였군요. ‘아차, 내가 놓치고 있었구나’ 싶었습니다.

여자친구와 밥을 먹으며 한참을 영화에 대해 이야기했는데요. 보통 영화 이야기가 길어지는 경우는 영화가 정말 좋아서거나 반대로 너무 나빠 화풀이를 할 때더군요.^^

스포가 많으니 영화 보시기 전 스포 노출이 싫으신 분들은 피하셔야겠네요.


크게 정리하면 그래비티는 제게 세 가지 측면에서 매력적인 영화였습니다.

1. 첫 번째는 우주 공간을 체험하는 듯한 영상 연출입니다.

단언할 순 없지만 제가 살면서 지구 대기권을 벗어나 볼 일은 아마 없을 것 같은데요. 이 영화, 우주라는 공간은 저런 곳이겠구나 느껴지게끔 만들더군요.  

많은 분들이 얘기하시는 첫 롱테이크 장면부터 그랬구요.  

영화 속의 우주가 더 없이 아름다운 장관을 선사했다가도, 어느 순간 더없이 음습하고 공포스러운 공간으로 탈바꿈한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2. 두 번째는 뻔한 이야기임에도 손에 땀을 쥐게 되는 이야기 구조입니다.

90분이 조금 넘는 영화니 러닝 타임 자체가 긴 영화는 아닙니다. 그러나 제 체감시간은 훨씬 짧더군요.

이야기 구조는 이보다 단순할 수 없습니다. 우주 공간에서 미아가 된 과학자가 지구로 귀환하기 위한 악전고투의 드라마죠. 등장인물도 산드라 블록과 조지 클루니 두명 뿐입니다.

그럼에도 주요 시퀀스에서 느껴지는 서스펜스가 대단합니다.

시각적인 면 외에도 음향이 극적 긴장감을 주는데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하는데요.

특히 ‘무음 처리’가 효과적으로 쓰였다고 봅니다.

극적인 장면에 오히려 아무런 소리도 넣지 않으면서 우주라는 공간이 주는 적막감과 공포를 더욱 잘 묘사했다고 느껴지더군요. (영화가 끝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영화상에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무음 상태일 때 실제 제가 관람한 영화관도 쥐죽은 듯 고요했습니다. 옆에 앉아있던 어린이에게 괜시리 고맙더군요.^^)

과거에 ‘베리드’란 영화를 보고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요.

‘어떻게 관 속에 들어간 남자 이야기로 영화를 만들 수가 있는 건가? 내가 각본을 썼다면 20분 분량 채우고 나 안해 일건데...’라고 느꼈지요.

그래비티 역시 비슷한 감정이 들게 합니다.

3. 세 번째는 영화의 주제 의식입니다.

개인적으로 생각한 그래비티는 ‘삶의 태도에 대한 영화’입니다.

이야기 구조는 물론이고, 시각적인 묘사나 영화적 도구들도 ‘삶’이란 주제를 일관되게 지지하고 있다고 보는데요.

주인공 스톤 박사(산드라 블록)는 딸을 잃은 순간부터 삶의 의미도 함께 잃어버린 여자로 묘사됩니다.

지구에선 근무 시간외에 의미 없는 드라이브로 삶을 그저 ‘살아내는’ 인물이죠.

그랬던 그녀는 영화 전반에서 내적 성장을 거치며 삶에 대한 태도를 완전히 바꾸게 됩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영화 초반 삶에 무기력한 태도를 보이던 그녀는 우주가 좋은 점으로 조용함을 꼽습니다.

그랬던 그녀는 실제 죽음에 가까워졌다고 자각한 이후부터 적막을 거부하게 됩니다.

교신이 끊어진 맷 코왈스키(조지 클루니)에게 사고 직전에 하려던 시시한 농담을 계속해달라며 시끄러운 수다를 애원하고, 우연히 이어진 중국인과의 교신에서 개 짖는 소리를 듣고 오히려 안도감을 느끼게 되지요.

이야기적 요소 외에도 주인공이 뱃속의 아이처럼 웅크리는 장면, 탯줄을 연상시키는 생명선, 주인공이 바다에 떨어진 뒤 헤엄쳐 나오는 장면 등의 묘사들은 그 자체로 ‘삶’이란 영화의 주제 의식에 힘을 보태구요.  

저는 특히 ‘무언가를 잡는다는 행위’에 대한 묘사가 인상적이더군요.

주인공은 중력이 없는 우주공간에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잡습니다.

처음 우주 한복판에 내버려졌을 때는 동료의 손을 잡았고, 그 둘을 이어주는 생명선을 잡고, 이후 생존의 과정에서는 우주선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무언가를 잡습니다.

무언가를 잡는다는 행위는 그 자체로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묘사처럼 보이더군요.

결론적으로 그래비티에 대한 개인적 감상을 한줄로 정리한다면,

삶이란 끈에 그저 매달려만 있던 한 인간이 다시금 그 끈을 단단히 붙잡게 되는 과정에 대한 영화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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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0/21 00:07
수정 아이콘
밑의 글에서 그래비티 너무 재미없게 봤다고 댓글달았었는데요.
2d로 봐서 영상미를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그 보다도
'무음'이 주는 효과를 제대로 못 느낀 것이 더 컸던것 같네요.
제 양옆으로 정말 영화를 보러 온건지 처먹으러 온건지 알수가 없는 두 커플이 앉아서 과자를 씹는 소리 뿐만 아니라 과자봉지소리까지 내면서 먹는데
진심 몇 번 울컥했습니다.
그래서 영화에 제대로 집중할 수가 없었어요. ㅠㅠ
4D로 다시 봐야 되나.. 으아..
Abrasax_ :D
13/10/21 00:14
수정 아이콘
커플을 죽입시다. 커플은 나의 원수!
13/10/21 00:28
수정 아이콘
저도 커플.. 그리고 왼쪽 커플은 남남 커플이었는데 둘이 오자마자 신발 벗고 앞에 의자에 다리 척하니 올리더라구요.
다행히 사람은 없었습니다만,, 정말 너무 먹더라구요. 극장와서 식사하더라구요.
Abrasax_ :D
13/10/21 01:04
수정 아이콘
아... 정말 너무하는 사람들이네요.
리니시아
13/10/21 01:14
수정 아이콘
저는 여친이랑 같이봤는데 저는 진짜 최고라고 엄지를 내밀었고
여친은 전혀 재미없다는 반응이더군요 -0-;;;
물론 저희는 숨죽여서 봤습니다
Abrasax_ :D
13/10/21 01:19
수정 아이콘
제발 그만...
13/10/21 00:13
수정 아이콘
오늘 3d imax로 봤습니다

무엇보다 제가본 영화장면중 최고의 장면으로 손꼽을만한

오프닝씬이 가장인상깊었습니다

고요하면서도 적막한 지구의 모습

그뒤로 서서히 들려오는 대사들

저도 스토리에서는 조금은 실망적인부분이있지만

영상미에서 모든걸채우고도 남는다고생각합니다.
13/10/21 00:16
수정 아이콘
제작과정에서 구체적으로 거기까지 의도한건지 꿈보다 해몽이 좋은건지...

아래 영화평에서도 달았다시피 영화내 과학적 오류는 많아 보입니다.

하지만 역대 SF 영화중 공감대를 가장 잘 이끌어낸 작품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실제 일어날 법한 일을 영화화한 작품을 볼 때, 실제로 극중 상황속에서 주인공의 행동이 내가 생각하는 것과 비슷할 때, 그런 종류의 간접 체험이 제 자신의 생각을 넓혀주는 것 같습니다.

p.s 이번에 스쿠버 다이빙을 배웠는데요. 개인적으로 바닷속 고요한 공간에 머무름이 굉장히 인상깊어서 제 가슴속에 아직까지 잔잔한 여운으로 남아있습니다. 내 숨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무음의 세계. 영화속에서는 맛배기로만 보여주고 100% 몰입으로 들어가려고만하면 역동적이거나 웅장한 BGM이 깔리더군요. 조금만 더 매니악 했으면 좋았을걸 아쉬운 감이 듭니다. 물론 아쉬운 맘이 생길 정도로 인상깊기도 했구요!
하늘바람꽃
13/10/21 00:19
수정 아이콘
전 마지막 장면에서 어류->양서류를 거치며 물에서 육지로 올라오는 (인간의 오랜 조상쯤 되는)척추동물의 첫 발걸음이 떠올랐습니다.
머도하
13/10/21 11:28
수정 아이콘
!!!!
니킄네임
13/10/21 00:26
수정 아이콘
영상충격이거니와 메타포가 감미롭게 표현되어있죠.
담백한 스페이스 오딧세이 2001 을 보는거 같았어요.
13/10/21 00:40
수정 아이콘
영화 재미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오갈 수 있어도 영상미 자체는 다들 인정하지 않을까 싶더군요.
다만 재미가 없으면 아이맥스 3d로 시청시 눈의 피로로 중간중간 졸기도 하더군요.
브릿츠
13/10/21 01:25
수정 아이콘
이 영화 마음만 먹었으면 2시간 반짜리로 만들 수 있었을 겁니다.

초반 주인공 일행이 우주로 나가는 장면, 러시아에서 인공위성을 미사일로 격추시키는 장면 각 캐릭터의 개인사정 이야기 이어지는 우주유영에서의 화기애애 하하호호 스토리 등등. 그러나 이런식으로 갔으면 이 영화가 표현하려고 했던 것의 절반도 보여주지 못했겠지요. 짧은 플레이타임에 그 이상의 많은 이야기들을 담아냈다고 생각합니다.

클리셰의 남발을 이용해 평균적인 퀄리티를 뽑아내는 헐리웃이지만,
이런 심플함 역시도 헐리우드가 아니면 못하는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올해 최고의 영화였습니다.
데이비드킴
13/10/21 08:57
수정 아이콘
윗분 말마따나 러닝타임을 짧게 잡은 게 신의 한 수였다고 봅니다.
저도 올해 최고의 영화라고 생각해요.
미라이
13/10/21 09:26
수정 아이콘
일반극장에서 먼저 보고 메가박스m2관에서 다시 관람했습니다.
전혀 다른 영화더라고요. 영상과 사운드가 정말 중요한 영화입니다. 처음 작은 관에서는 놓쳤던 부분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작은상영관에서는 김빠진 맥주를 마시는듯한 그런 기분이었어요. 근데 그 김빠진 맥주같은 상영관을 나오면서도 올해 최고의 영화를 보았다라고 생각했었죠. 정말 대단한 영화입니다.
13/10/21 09:38
수정 아이콘
저는 무엇보다 호흡곤란에서 호흡을 할 수 있을 때...저도 모르게 숨을 참고 있다가 같이 내쉬게 되더라구요.
몰입감이 정말 훌륭했던 영화였어요. 4D로 한 번 더 보고 싶네요~
공안9과
13/10/21 09:42
수정 아이콘
팝콘 우적우적에 콜라 후루룩 꿀꺽이 아닌 각잡고 봐야할 영화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큰 흥행은 못하겠지만, SF계의 명작으로 길이길이 남을것 같네요.
jagddoga
13/10/21 10:54
수정 아이콘
공감되네요. 저도 팝콘 한통 헛개수 한컵 사갔는데 절반씩 남았습니다.
원래 영화 절반만 가도 오링 나는데...
Neandertal
13/10/21 09:51
수정 아이콘
저도 정말 좋게 봤습니다...저는 런닝타임이 꽤 길 줄 알았는데 깔끔하게 만들었더군요...
머도하
13/10/21 11:27
수정 아이콘
IMAX 3D로 봤습니다.
단언컨데, 올해 최고 영화입니다.

IMAX 3D 영상 - 우와, 인간의 기술력이 이렇게까지 발전했구나
영화속 우주비행사 - 인류는 참 위대하구나
우주 속에서 표류 - 인간이 우주앞에서 참 작구나
고군분투 - 인간의 삶이 보잘것 없진 않구나
지구 - 정말 소중한 삶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흙을 움켜쥐는 그 손

강추입니다. 반드시 3D IMAX로 보세요. 우주를 만끽하고 오세요.
몰입감이 정말..
13/10/21 14:07
수정 아이콘
남자 우주인이 주인공 꿈에서 조언한게 참 인상깊었구요. 중국기지로 우주공간에서 소화기로 이동하는게 슈퍼소년 앤드류가 생각나더라구요.
New)Type
13/10/21 17:47
수정 아이콘
Wall-E~
Eva!
허니콤보
13/10/21 14:19
수정 아이콘
단순하다는 스토리조차 저에게는 아주 좋았습니다. 허무하게 가버린 너의 이야기가 이러하고 지금 살기위해 발버둥치는 너의 이야기는 저러하고... 를 구구절절 설명하기엔 지금 상황이 너무 급박하며 닥친 우주는 너무 광대하지 않느냐 라고 말하는 듯 해서요. 주제를 살리기 위해 세세한 스토리는 의도적으로 간소화한 느낌이 들더라구요. 개인적으로는 다크나이트 이후 압도적으로 가장 좋은 영화였습니다. 연말 시상식이 기대되네요.
VividColour
13/10/21 22:37
수정 아이콘
쓸데없는 개인사나 로맨스가 들어갔으면 더없이 지루한 영화가 되었겠지요. 한시간반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고 정말 재밌게 봤습니다. .최고의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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