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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9/25 18:20:50
Name 드라코
File #1 학살_그_이후.jpg (22.1 KB), Download : 52
Subject [일반] 학살 그 이후(베트남전 학살논란 관련 부분 발췌)


학살, 그 이후

지은이 권헌익 켐브리지대학교 트리니티칼리지 교수 겸 선임 연구원

인류학의 노벨상인 ‘기어츠 상’ 1회 수상작

발췌 내용

p18

하미의 학살은 1966년부터 1969년까지 한국 파견군이 베트남 중부에서 저지른 수많은 대량학살 사건 가운데 하나로 양력 1968년 2월 25일에 벌어졌다. 미 제 5해병연대가 이 마을의 안전 책임을 한국군 동료들에게 이양한 직후의 일이었다.1)

미주 1)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편,<<베트남전쟁과 한국군3, 청룡부대편>>,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03] 412쪽
------> 그 지역의 관할이 한국군이었음을 알려주는 주석

P45,46

전투촌 이라는 이상은 원래 대단히 자민족 중심적인 개념이었다. 외국인 전투원과 관계된 게 아니라 베트남 마을 사람들과 관련된 것이었다. 주민-병사 라는 표현은 반드시 두 정체성이 완전히 융합되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으며, 하이픈으로 연결된 이 정체성은 서로 반대되는 두 각도에서 다르게 보일 것으로 기대되었다. ‘벤 타’ 즉 ‘이편’이나 혁명세력의 이상적 관점에서 보면, 하이픈으로 연결된 사람은 병사였다. ‘벤 타’에서는 이 사람이 ‘벤 키아’, 즉 ‘저편’의 눈에는 단순한 주민으로 비치기를 기대했다. 때로는 ‘저편’은 이런 기대를 저버리고 ‘이편’의 관점을 받아들였으며, 이 관점을 왜곡하고 또한 왜곡을 과장했다. 따라서 마을의 모든 산사람과 물건을 군사적으로 정당한 파괴의 목표로 규정했다.41)

미주 41) James S. Olson and Randy Roberts, My Lai: A Brief History with Documents (Boston: Bedford, 1998), 16쪽

이런 일이 벌어지면 ‘이편’은 처음에 상대편에 투사했던 관점을 취했다. 파괴된 대상은 어느새 ‘이편’의 눈에서 평범한 마을 사람들과 민간인 희생자들로 바뀌었고, 법으로 보호받는 대상을 무자비하게 파괴한 행위는 분노와 고발을 불러일으켰다. 전쟁 중인 양쪽은 상대편에서 차용한 관점으로부터 민간인 지위를 규정했고, 무고한 마을 주민들에 대한 집단학살은 이런 치명적인 거래를 완성했다.



p46, 47

즉, 병사의 죽음은 풍부한 풍요의 상징들로 둘러싸인 반면, 마을 지지자들의 죽음은 그와 거리가 멀었다.

주석
다른 어떤 증거보다도 이런 점이야 말로 전시 베트남 마을의 ‘주민-병사’가 병사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평범한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입증해준다. 어떠한 무장 충돌 상황에서도 민간인 비전투원의 절대적인 생존 권리는 침해하는 것은 전쟁범죄이다.
Judith G. Gardam, Non-Comatant Immunuty as a Norm of International Humanitarian Law (London: Brill, 1993)를 보라.

p63, 64

1972년 미국으 퀘이커교 구호활동가인 다이앤 존스과 마이클 존슨은 꽝응아이 성과 꽝남 성에서 민간인 집단학살 사건, 그중에서도 특히 한국 군대가 저지른 사건에 관한 정보를 수집했다. 두 사람은 45건 이상의 사건 가운데 13건에서 100명이 넘는 민간인이 살해된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해졌다. 이 과정에서 한국군 병사들은 20명이 넘는 비무장 민간인 무리를 살해했다고 전해졌다.10)

미주 10) Frank Baldwin, Diane Jones, and Michael Jones, America`s Rented Troops: South Korean in Vietnam (Philandelphia: American Friends Service Committee, 1975)


p85 86

현 공산당 세포에서 성 당국에 제출한 2개의 비밀 보고서에서는 이 짧은 시기동안 19건의 집단학살 사건이 벌어졌다고 기록했다.48)

미주 48) (박정희[한국 대통령, 1962~1979] 군인들의 범죄), (한국용병에 맞선 투쟁에서 디엔안 사람들이 거둔 승리), 그해 4월에 일어난 북베트남 정부 신문 기사:(미국과 그 똘마니들이 꽝응아이와 꽝남에서 저지른 야만적인 범죄를 비난한다.)


1968년 정월 24일(음력) 오전 9시 30분, 한국 해병대는 탱크와 장갑차를 하미의 두 번째 작은 마을인 쏨떠이 경계 밖에 남겨두고 세 방향에서 마을로 진군하기 시작했다. 오전 10시에 군인들은 마을 사람들을 응우옌 씨 집과 두 작은 마을 사이의 공터를 비롯한 각기 다른 세 지점에 모았다. 공터에서는 지휘관이 사람들 앞에 책상을 놓으라고 지시했다. 생존자들에 따르면, 지휘관은 책상 뒤에 버티고 선채 무척 길고 격렬하게 느껴지는 지령 연설을 늘어놓았다. 베트남 통역자가 마을 사람들에게 연설을 간추려 설명했다. 중화기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병사들은 분주하게 주변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생존 여성인 응우옌티본은 군인들이 먹을거리와 사탕을 주려고 한다고 생각했다. 전에도 그런 일이 흔했기 때문이다. 본은 군인들이 오늘은 무엇을 선물로 줄지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또 다른 생존 여성인 바호아는 누군가 숙덕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군인들이 우리를 죽이면 어떻게 하지?” “농담하지 마. 그런 말 하지 말라고. 악운을 자청하고 있어.”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도 들렸다. “먹을 걸 주려고 온 거야. 날 믿어, 믿으라고.”
사건이 벌어진 때는 오전 10시가 지난 직후였다. 장교가 연설을 마치고 모인 사람들을 등지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로부터 몇 걸음 떨어지자 장교는 재빨리 손짓을 했다. 손짓을 신호로 수풀 속에 숨어 있던 M60 기관총과 M79 유탄 발사기가 불을 뿜었다. 군인들이 마을 사람들에게 발포를 시작했고, 이 생지옥에서 빠져나가려는 사람은 파편 수류탄 세례를 받았다. 본은 마을 어머니들이 자신과 여동생 위로 쓰러지는 것을 느꼈다. 비호아는 자기 쪽으로 수류탄이 날아오는 걸 보고 아이들 위로 쓰러졌다. 그리고는 아무 느낌도 없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멀리 파랗게 고구마 이 보이자 그쪽으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본은 조용하고 칠흑같이 컴컴한 곳에서 시체들 밑에 깔려 숨 쉬기도 어려웠던 당시를 기억한다. 움직이려고 애를 쓰다가 갓난아이였던 여동생이 우는 소리가 들려 동작을 멈췄다. 아이는 계속 울었고, 군인들이 울음소리를 들을까 무서웠다. 빠르게 지껄이는 외국인의 목소리가 들리다가 다시 조용해졌고, 이내 수류탄 폭발음이 들렸다. 공격은 2시간 동안 계속 되었다. 다른 학살 장소에서는 마을 사람 70명이 응우옌 집단의 제단이 있는 방에 꾸역꾸역 넣어졌다. 몇몇 사람들은 군인들이 먹을 것을 나눠주려는가 보다고 생각했다. 집주인은 긴가민가한 생각이 들어 손자 3명을 데리고 조상 제단 뒤에 숨었다. 공터에서 기관총 소리가 들리자마자 학살이 시작되었다. 정오까지 135명의 마을 사람이 죽었다. 그 가운데 총을 들고 싸울 만한 나이의 성인 남자는 3명에 불과했다. 뱃속의 아이가 3명이고, 4명은 신원 불명이었다. 나머지는 여자, 노인, 10대소녀, 갓난아이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이 등이었다.

----> 생존자들의 증언

p97, 98

올슨과 로버츠가 말하는 것처럼, “모든 전쟁에서 그러하듯이, 군인들은 다른 군인들에게서 배웠고 신화와 소문, 거듭 되풀이되는 이야기와 미신이 확고하게 지지받고 과학적으로 입증된 이치로 변했다. 가장 흔한 믿음은 베트남 사람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베트콩의 첩자일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주석
Olson and Roberts, My Lai 6쪽. 1967년부터 1969년까지 미 공군 차관을 지낸 타운센트 훕스는 민간인을 전투원으로 오인한 이런 잘못의 책임을 문화적 차이 탓으로 돌린다. “미국인들은 베트남 지역 정치의 핵심에 접근하지 못했다. 베트남 사람들이 그런 핵심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친밀한 관계를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언어와 문화적 차이라는 만만찮은 장벽을 뚫고 들어갈 만한 지식과 기술을 갖춘 충분한 요원을 제공하는 게 미국의 능력 밖의 일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The Limits of Intervention, 70~71쪽


왜 그들은 적의 얼굴과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이의 얼굴을 구별하지 못했는가? 찰리중대의 어느 병사는 이른바 자기 머릿속에서 민간인이 적으로 뒤바뀐 과정을 설명할 때 - “누가 적일까? 민간인과 비민간인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좋은 놈일까, 나쁜 놈일까? 그들은 모두 똑같이 생겼다” -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은 무엇인가? 교육받은 무장한 직업군인이 마을 소녀도 구별할 수 있는 같은 것과 다른 것을 분간하지 못한다면 현대의 전쟁에 관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57)

미주 57) Hy Van Luong, "Vietnamese Kinship: Structural Principles and Socialist Transformations in Northern Vitenam." Journal of Asian Studies 48, no. 4(1989) 742쪽

p236

하미의 135인 희생자 기념비는 한 무리의 한국 참전군인들이 마을에 헌정한 것이었다. 학살로 이어진 군사작전에 직접 참여했던 이들도 포함된 옛 군인들이 마을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찾아온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런 이례적인 방문객들에 관한 소식을 접하고 하미 사람들이 처음 보인 반응은 놀랍고 믿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조용한 목소리로 화나고 무섭다고 말했다. 많은 생존자들이 옛날 기억이 떠올라 밤에 잠이 오지 않고 입맛까지 떨어졌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p238

베트남 전쟁의 숨겨진 역사와 전쟁 범죄의 폭넓은 함의에 관한 대중적 관심이 중국해 양쪽 모두에서 폭발적으로 고조되었다. 양국의 정부는 대중적 각성의 분출에 발 빠르게 대응했다. 베트남 정부는 전쟁범죄의 역사에 관한 추가적인 보도를 억제하는 한편, 국내 언론의 협조를 구하는 요청서를 잇달아 발표했다. 이런 검열의 이유로 거론된 것 중에 내가 들은 한 가지 내용은 “베트남은 비극적인 과거를 잊어서는 안되지만 초월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이 발언은 여러 공식 채널을 통해 널리 퍼져 나갔다.

p239

이 무렵 한국의 정치는 과거 베트남전쟁을 통해서 군에서 경력을 쌓은 군인 출신 국가 지도자들이 이끈 권위주의, 반공 정권이 남긴 유산과 결별하기 위해서 분투하고 있었다. 한국 대통령은 과거의 갈등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으면, 베트남 국가주석은 이 발언을 받아들이고 양국 사이에 건설적인 미래를 만들자는 정중한 발언으로 화답했다.

p240

희생자 가족 대표들은 “외국의 영향력에 굴하지 말고 마을의 유산을 지키자”고 목소리를 높혀혔다. 어느 가족 대표는 기념비를 바꾸자는 생각은 ‘제 2의 학살’, 즉 학살의 기억에 대한 이라고 규정했다.
2000년 12월 기념비가 공식적으로 공개되었을 때, 비석 뒷면의 문구는 사라지고 없었다. 연꽃을 새긴 대리석 위에 덮어서 가려버린 것이다. 새로은 비석은 ‘증오와 반감’의 흔적을 지워버리고, 비통의 자취를 없앤 채 화해를 찬양했으며, 불의의 역사를 말하지 않으면서 부당한 죽음을 기억하고자 주장했다. 이 비석은 “비극적 과거를 잊지는 말되 초월한다”는 새로운 교의에 걸맞은 새로운 양식을 창안했다.
기념비를 둘러싼 논쟁은 국가 기관이 진정한 화해 과정을 실행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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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gr 사이트에 처음 글쓰기 버튼을 사용해 보네요..




 




좀 두렵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다른곳에 올렸던 내용인데 베트남 학살 이야기가 나와서 올려봅니다.




 




책 내용을 발췌해서 문제가 된다면 삭제하겠습니다.




 




원래 영어로 출간된 책이라 번역 작업을 해서 읽기 쉽게 되어 있진 않더군요.

인류학의 노벨상이라는 기어츠 상을 받은 책이고...
저자는 켐브리지대학교 트리니티칼리지 교수 겸 선임 연구원이므로
신빙성에 대한 의문은 별로 없으시기라고 봅니다.


제 판단으로는 신빙성이 있는 글이라고 생각됩니다

발췌 내용들은 과연 한국군이 맞는가에 대한 부분들과 민간인과 전투원에 대한 구분과
사건에 관한 최근의 일들에 대한 부분입니다.

긴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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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군
13/09/25 18:36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화해와 초월이 무엇인지 그게 얼마나 의미있는 말인지 생각해보게 되네요.
13/09/25 18:39
수정 아이콘
얼핏 이름만 들어본 책인데 잘 보고 갑니다.
리듬파워근성
13/09/25 19:07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항상 관심있던 소재였는데 이리 편하게 읽게 될 줄이야...
가슴이 먹먹하네요.
2막2장
13/09/25 21:41
수정 아이콘
음.. 저희 아버지께서 본문에 언급된 청룡부대의 일원으로 베트남 참전 하셨고요. (해병대 190기 병장)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아버지께서 제게 얘기하시던거와 달라서 당황스럽습니다.
관련해서 몇번 댓글을 단적이 있는데, 오늘은 달지 않으렵니다.
무엇때문에, 어떤 상황에서 학살이 이루어 졌는지도 적혀져야 옳은게 아닌가 싶어요.
jjohny=Kuma
13/09/25 21:58
수정 아이콘
찾아서 읽어보았습니다. 참고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다시 달지 않으신 것을 존중하여 저도 좌표는 달지 않겠습니다.
2막2장
13/09/25 22:41
수정 아이콘
존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닉이 지금과는 달랐던 시절 달았던 댓글이네요.
쪼니님은 카이스트 재학생+솔로로 알고 있는데 피쟐 보단 학업+연애에 신경 쓰셔야 되지 말입니다?
jjohny=Kuma
13/09/25 22:41
수정 아이콘
대학은 졸업했구요 흐흐 솔로는 노코멘트
13/09/25 21:42
수정 아이콘
이런 학살행위들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들이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이죠.
13/09/25 22:50
수정 아이콘
한나 아렌트가 악의 평범성을 논한건 학살행위를 정당화 하려는게 아니라, 생각함을 멈춤으로서 어느 순간 자기도 모르게 악을 행하고 있을수 있으며, 그러므로 생각함을 멈추면 안된다라고 주장한것 아니였나요?
나이트해머
13/09/25 23:44
수정 아이콘
베트남전 한국군 학살 논란이라...

자료의 교차검증이 되질 않고
한국군의 실상을 감안하면 과대포장된 구석이 많은데
이걸 확인해보지도 않고 무작정 학살이라고 치부한다면
이건 북한군 삐라만 믿고 유엔군 및 한국군이 북쪽에서 무분별한 학살을 저질렀다고 주장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궁금합니다.

생존자 증언이요? 그런건 삐라에도 실어놓던데요.

그리고 본문은 '저자가 이름있는 사람이니 신뢰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인류학은 전사연구와는 전공이 다른데요. 이건 잘못된 권위에 의존하는 오류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죠. 전문 연구가의 연구도 교차검증이 안되면 완전히 믿는건 위험이 따릅니다.
드라코
13/09/26 00:30
수정 아이콘
언급하신대로 이 책은 피해자에 대해서 인류학적으로 접근한 책입니다.
책의 많은 부분이 죽은에 대한 관념과 제사 문화와 그이후 문화의 변화에 대해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책이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닌 신빙성을 지닌 책이라고 말씀 드렸지 절대적 진리라고 말씀 드리진 않았습니다.

책에 머릿말에 나온 부분 입니다.

나는 1994년 여름 베트남 중부 지방을 처음 방문했을 때 하미를 비롯한 꽝남 성의 여러 지역에서 벌어진 학살 사건에 관해 알게 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국가와 지방 문서보관소를 뒤지면서 진상조사 연구를 하게되었다. 1997년에는 켐브리지대학교 에번스 펠로십의 지원을 받아 베트남전쟁 당시의 민간인 학살의 역사를 마을 차원에서 민족지적으로 연구할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2000년에는 영국학술원에서 특별 연구비를 지원받아 하미에서 추가 연구를 지원하였고, 몇 차례 미라이를 연구차 방문할 수 있었다. 또 경제사회연구위원회에서 제공한 연구지원금(2003~2006) 덕북에 이 책에 담긴 연구 결과를 냉전의 비교사와 비교문화라는 넓은 얼개 안에 핵심 요소로 자리매김시킬 수 있었다. 이 기관들의 아낌없는 지원에 감사드린다.

라고 나와있습니다.

다른 분의 검증이 필요하겠지만 현재로서는 저자는 현지에서 많은 조사와 연구를 하신 분이시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현지 조사를 하신 분이시니 현지의 관점이 많이 작용을 하는 부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그 관점이 저분의 책의 내용들을 사실이 아닐 것이다 라고 말 할 수 있는 것과는 차이가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후후하하하
13/09/26 21:42
수정 아이콘
본인의 주장을 위해 비전문가의 의견을 신빙성 있는 권위자의 주장이라고 말하고 계시네요.
속았네요.. 드라코님. 속이는 능력이 장난 아니신듯
드라코
13/09/26 22:55
수정 아이콘
무엇을 속였다는 말씀이신가요?
인류학자가 인류학적인 방법으로 학살이후의 죽음에 대한 문화를 정리한 책입니다.
그래서 그죽음에 원인에 관한 부분은 당연히 내용이 나와 있는 것이고요.
저는 그 부분중 일부를 정리해서 옮겨 온 것 뿐입니다.
제가 속인 건 무엇인가요? 전 인류학자라고 분명이 내용에 언급했습니다.
책은 엄청나게 복합적으로 쓰여진 책이라 제가 발췌 내용만으로 책을 10분의 1도 도 이해하기 힘듭니다.
정확하게 말씀 해주시기 위해 이 책은 도서관에 비치된 책이니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한번 읽어 보시고 말씀해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드라코
13/09/26 23:25
수정 아이콘
그리고 신빙성의 사전적 의미는

믿어서 근거나 증거로 삼을 수 있는 정도나 성질.

출처 http://krdic.naver.com/detail.nhn?docid=23820000

입니다.

학살쪽의 다른 주장들은 모두 허무맹랑한 주장이라고 생각하시니

인류학자가 쓴 근거가 있어 보이는 책의 내용을 옮겨 온 것 입니다.

이전에도 언급했지만 절대적 진실이나 진리라고는 말씀 안드렸습니다.

신빙성이 있는 내용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후후하하하
13/09/27 02:18
수정 아이콘
국가간의 결정에 의해서 자행된 전쟁에 대해서 개인의 책임을 물어서 학살로 치부하고 책임을 묻는다는 것 자체가 상식적이지 않은 것이고 학살이라고 내세우는 판단 기준도 상대군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한 방어적 수준을 넘어서지 않는다는 증거가 없으니까요.
그런 허무맹랑한 주장에 대해서 노벨상과 교수의 권위를 근거로 삼으려고 하지만, 신빙성이 그정도만으로 생기지 않는다는 상식적인 판단을 놓칠꺼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네요. 위의 댓글에서도 신빙성을 재차 꺼내신 것 보면 의도적으로 사용했다는 확신이 들고 그래서 속았다는 표현을 쓴겁니다.
드라코
13/09/27 11:39
수정 아이콘
글의 내용 중에 국가나 개인에 책임에 관한 부분은 없다고 생각됩니다.
민간인과 전투원의 구분으로 보았을때 이편과 저편의 개념에서 과도한 왜곡을 통해서
모든 민간인(주민)을 전투원으로 판단해 버린 부분이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희생자 대부분인 어린아이, 10대 여자, 여자, 노인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 어린아이와 10대 여자의 경우는 더욱 심각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내용을 옮겨오는 책의 저자 경력나 수상내역등을 기재하는 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책의 내용은 읽는 사람이 판단하는 것입니다.
저는 내용이나 저자를 보았을 때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해서 글을 올렸습니다.
물론 반대로 후후하하하 님처럼 허무맹랑한 주장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책의 내용에 대한 것은 스스로 판단하는 것인데 그 판단이 다르다고 해서
저에게 '속았다.', '속이는 능력이 장난이 아니신듯'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양민살상이냐?, 확살이냐?' 라고 사건에 대한 판단 기준이 다를 수도 있고
책의 내용이 일부는 진실일 수도 있고 일부는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 부분은 추후 검증이나 조사를 계속 밝혀지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명명백백하게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다고
자기의 주장에 반하는 내용은 모두 허무맹랑한 거짓 주장이라고
저는 생각하진 앖습니다.

'신빙성에 의문이 없으시기라고'는 표현이 잘못되었고 거슬리신다고 생각하신다면
'제 판단으로는 신빙성이 있는 글이라고 생각됩니다.' 라고 수정하겠습니다.
후후하하하
13/09/27 12:57
수정 아이콘
그 정도면 저도 수긍하겠고, 격식 갖추지 못한 의견을 들어주셔서 고맙게 생각합니다.
귤이씁니다
13/09/26 23:28
수정 아이콘
전쟁터에서 민간인 안죽였다!!라고 주장하는 것 만큼 허무한것도 없지요. 전쟁터에서 민간인 만큼 죽기 쉬운 존재들이 어디에 있다구요. 거기에 베트남전 처럼 게릴라전이 펼쳐진 전장이라면야 더 말할것도 없지요. 어떤 이유를 들던 사람 죽인건 죽인겁니다. 그럼 책임을 져야죠. 그 책임이 아무리 무겁더라도 말입니다. 자기합리화처럼 안쓰럽고 꼴보기 싫은 행동은 없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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