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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4/23 23:36:34
Name No.42
Subject [일반] 아들과의 첫 만남.
프야매 오후 10시의 게임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때, 만삭의 아내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왜?"
"배가 아픈 것 같아."
"진통?"
"그런가봐. 시간 재고 있어."

그렇게 얼마간을 갸우뚱거리고 아프다고 끙끙대더니 결국 새벽 2시에 난 차에 시동을 걸었다. 아내는 시간이 지나며 점점 통증이
심해지는 듯 했다. 새벽을 하얗게 지새고, 아침이 될 무렵에 아내는 무통분만약물의 도움으로 잠이 들었다. 안자고 버텨보려
열심히 눈꺼풀을 들어올렸지만, 나도 결국 잠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불편한 소파 위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낯선 간호사
목소리가 날 깨운다.

"아빠, 일어나셔요! 아기 나왔어요!"

놀라움도 느끼기 전에 나는 주먹만한 눈꼽을 내던지며 튀어나갔다. 막 분만실에서 나오는 빨간 꼬마녀석이 눈에 들어왔다.
간호사가 멋적은 투로 말한다.

"엄마가 분만실 들어가실때 절대 아빠 깨우지 말라고 하셔서..."

평소부터도 분만은 혼자 쓱 하고 나오면 되지 뭘 들어와서 옆에서 구경하고 서있냐던 쿨한 우리 아내. 결국 날 내버리고 솔플에
성공하셨나보다. 그렇게 튀어나온 우리의 홈런이. 10개월간 너무너무 보고싶었던 나의 아들과 난 첫 대면을 했다. 태어난 지
10분도 안된 녀석 치고는 눈망울이 크고, 시선이 제법 살아있다. 제일 처음 본 곳이 눈꼬리였다. 아버지, 나, 남동생까지 죄다
위로 치켜올라간 눈꼬리인 우리집, 장모님과 아내의 순하고 예쁜 쳐진 눈매. 어떤 유전자가 장착되었나가 궁금했다. 사내녀석이니
내 눈이 좀 낫지 않나 싶었더니 여지없이 위로 째진 눈이다. 덤으로 우리집안 남자들의 눈썹도 그대로 달려있다. 숱이 많고
새까만 머리칼도 눈에 들어온다.

'너도 짤없이 반곱슬.'

눈을 이리 저리 굴리다가 내 얼굴을 바라본다.

'반갑다, 소년. I am your father.'

아내와 장모님의 반대가 없었다면 태명이 Luke가 되었을 녀석이지만, 아직 인간의 언어를 구사하지 못하므로 아빠의 철지난
개그에 반응할 수는 없었을 게다. 더구나 텔레파시로 쏘았으니까. 사진을 많이 찍어주라는 간호사의 말에 나의 갤쓰리가 불을
뿜었다. 신생아실로 가는 아들 녀석을 배웅하고 나니 그 모습이 자꾸 눈에 어른거린다. 남들 죄다 하는 얘기의 지겹지도 않은
반복인지 몰라도... 나랑 똑같이 생겼다. 아내 다음으로 나와 가까운 친구놈 카톡으로 방금 찍은 사진을 날렸다. 결혼도 비슷하게
하고, 임신도 비슷하게 해서는 며칠 전에 득녀한 녀석이다. 녀석도 딸 사진 보내며 자랑질했으니 이제 마이 턴이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 아니냐는 질문에 자음연타가 답으로 온다. 답장을 쓰려는데 성질도 급하지 전화도 걸려온다. 전화기 너머
친구놈이 빵빵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미니미, 복사판, 붕어빵 뭐 식상한 어휘들이 난무하며 나와 아들의 닮음을 되새김질한다.

몸을 푼 아내의 곁을 지키며 사진들을 닳도록 보았다. 역시 갤쓰리는 감성이 있다. 사진을 넘기려니 자꾸 만지게 되고, 만지고
있자니 가슴 한 켠에 뭉클함이 온다. 성질 급하기론 나도 우사인 볼트라, 페이스북에 올려놓은 아들사진에 리플들이 주루룩
달려있다. 여기서도 미니미론이 대세다. 아들이 잘 생겼다는 칭찬을 날린 친구 한 녀석만 엄마 닮았다고 외롭게 우기고 있다.

나이 서른 넷. 나와 똑 닮은 아들내미의 모습을 신생아실 창문 건너에서 바라보니, 내 인생 그다지 길지 않았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또 한 번의 식상한 표현을 빌자면, '이런 기분은 처음이야.' 울지도 않고 딴엔 근엄한 표정으로 세상 구경을 하는 저 녀석.
내 아들 홈런이가 앞으로 남은 내 인생에 수많은 '처음인 기분'을 안겨주리라. 저 녀석의 인생을 내 마음대로 재단하고픈 마음은
전혀 없다. 하고픈 공부를 시키고 하고픈 일을 하게 돕고 저가 사랑하는 아가씨와 사랑하고 결혼하게 하리라. 다만 한가지,
양키스는 무조건 응원하는 걸로. 아들 바란 이유가 그거 하나인데. (그러고보니 페북 리플에 여기 양키팬 하나 추가요도 있더라.)

막 울컥하는 벅참도, 눈물이 질질 흐르는 감동도 아니었지만, 내가 맛본 가장 큰 행복이요, 가장 큰 전율이 아니었나 싶다.
아들. 무사히 나와줘서 고맙다. 내 남은 평생, 잘해보자.



P.S. 리플을 산으로 가게 할 지도 모르는 추신... 본문 중 엄마 닮았다고 외롭게 우긴 친구 한 녀석...
       80년생 제 눈엔 뭐 그럭저럭이지만 남들은 미인이라고들 하는 케이블 채널 아나운서입니다. 남친 구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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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틸러스
13/04/23 23:40
수정 아이콘
이런 글은 첫 플에서 방향을 바로잡아야죠.
아드님 잘 키우시고 가내 두루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이제 밑으로 혼돈과 카오스가 이어질겁니다? 크크
사티레브
13/04/23 23:43
수정 아이콘
두번째리플도 자리를 제대로 잡아야겠죠
득남 축하드려요! 머리모양 잘 만드시길 :)
이제 밑으로..
Paranoid Android
13/04/23 23:45
수정 아이콘
미괄식 글이였다니..득남축하드리고 행복하세요^^
세번째글까진 포지션을잘잡아야겠죠.
잘모르겠지만 혼돈의카오스는 아랫분께서
13/04/23 23:45
수정 아이콘
그러면 제가 서두를 놓겠습니다. 평소부터 야구 글 재미있게 보고 있었습니다.
이제 다음 분...

그리고 순산 축하드리고 산모와 아기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Katarina
13/04/23 23:45
수정 아이콘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또 다이나믹한 삶이 펼쳐지실듯 크크크..
불량공돌이
13/04/23 23:46
수정 아이콘
직모가 보기에 반곱슬은 축복입니다만?
첫 아이지요? 축하드립니다. 제 마누라도 저렇게 혼자 슥 분만해주면 좋으려만..
쌀이없어요
13/04/23 23:48
수정 아이콘
세번째도 방향을 잃지 않아야겠죠.
축하드려요~^^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요.
다시 밑으로..
쌀이없어요
13/04/23 23:48
수정 아이콘
으아니! 세번째가 아니다 ㅠ
Paranoid Android
13/04/23 23:50
수정 아이콘
도대체가 타자속도가 얼마나 느린겁니끄아 크크크크
내가쓴댓글이 아닌데???하고있었네요 크크
13/04/24 17:32
수정 아이콘
가장 인상적인 리플입니다...
13/04/23 23:50
수정 아이콘
아이구 형님 ^^
jjohny=Kuma
13/04/23 23:53
수정 아이콘
형님 홈런이의 순산을 축하드립니다.

그나저나, 언제 만나뵈러 가면 될까요?
KillerCrossOver
13/04/23 23:53
수정 아이콘
모옹처럼 키우세요 :)
저글링아빠
13/04/23 23:55
수정 아이콘
혹시 아드님이 야구 음청 잘하게 되시면 엘지로...

축하드립니다^^
부스터온
13/04/23 23:59
수정 아이콘
이런 훈훈한 분위기(?)를 도저히 벗어날 수 없군요 크

축하드립니다. ^^
중학교일학년
13/04/24 00:05
수정 아이콘
요새 친구녀석들도 미니미 자랑하느라 바쁜데.. 얼마전 사진으로만 보던 친구의 2세를 보니 정말 판박이더군요 크크크크.... 친구인 제가 봐도 이쁘던데 본인은 오죽 할까요... 그래서 그런지 이런 글이 참 훈훈합니다.

참 연하의 남친은 어떻게 생각하신답니까?? 크크크
13/04/24 00:08
수정 아이콘
순산 축하드립니다.
아내분이 산후조리원에 계실 동안 진정한 마지막 휴가를 즐기시기 바랍니다.
2주일 후부터 지속될 즐거운 지옥에 오신 것을 미리 환영합니다 동지여.

-from 5개월 된 딸내미 아빠.

ps) 저는 아이가 유치원 들어갈 나이 되면 롯데나 기아, 혹은 넥선 어린이회원에 가입시켜서 야구장 데리고 다닐 겁니다. 야빠소녀로 키울 거예요~
tannenbaum
13/04/24 00:09
수정 아이콘
득남을 축하드립니다^^
좋은 아빠가 되실겝니다
PoeticWolf
13/04/24 00:10
수정 아이콘
순산 축하드립니다!
제 딸 아이도 지금 80일 갓 지났는데, 앞으로 더 예뻐지고, 그 행복한 마음 깊어지기만 할 겁니다.
정말 애기 얼굴만 보느라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어요 요즘.
그리고 랭겜만 시작하면 귀신 같이 울기 시작하는 효녀..
안철수대통령
13/04/24 00:16
수정 아이콘
축하드립니다!
건강하게 키우시길 기원합니다~!
Baby Whisperer
13/04/24 00:42
수정 아이콘
축하드립니다. 이제 인생의 새로운 챕터로 넘어가시네요. ^^
저는 이제 1년 7개월 된 딸의 아빠입니다.
점점 고집이 생기고 말을 안들어서 짜증이 나다가도 "뽀뽀" 하면 슥 입술을 내미는 딸 때문에 오늘도 웃습니다. 하하.
호야랑일등이
13/04/24 01:08
수정 아이콘
득남 축하드립니다. 결혼할 나이가 되다보니 2세에대한 상상을 해보곤 하는데 실감나는 리뷰(?)글이네요 크크
13/04/24 01:42
수정 아이콘
와 요새 제 주위에서 간간히 결혼한다는 소식만 들어도 신기한데 아기는 정말 상상이 안가네요! 축하드려요!
가만히 손을 잡으
13/04/24 08:22
수정 아이콘
축하드립니다.
Je ne sais quoi
13/04/24 08:44
수정 아이콘
축하드립니다. 루크라니 크크. 자신의 태명은 아나킨이길 바라셨던 겁니까?
사악군
13/04/24 09:25
수정 아이콘
축하축하 축하드립니다! 아기는 정말 신세계죠..흐흐 아 아들보고 싶다..
다시한번말해봐
13/04/24 09:35
수정 아이콘
축하드립니다!!!!! 글도 참 맛깔나네요! 다시한번 축하드립니다-!
영원한초보
13/04/24 10:36
수정 아이콘
그런데 정말 본인 닮은거 맞나요?
왜 첫 아기 갖은 아빠들은 다 자기 닮았다고 하죠?
그것도 딸인데 자기 닮으면 안될 것 같은데 자꾸 자기 닮았다고 그러네요!!
42번님은 아들이니 다행이네요. 요새 딸 바보 친구들 때문에 카카오 스토리 보기가 싫어서
아무튼 축하드립니다.
13/04/24 17:09
수정 아이콘
최근 들어 본 글 중에 가장 따뜻하고 부들부들한 글이 아니었나 싶네요 :) 축하드립니다!
13/04/24 17:28
수정 아이콘
축하해 주신 여러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0^

갓 태어났을 때도 아 나 닮았다 싶더니, 부은게 좀 가라앉으니 더 똑같아졌습니다...
힘차게 식사하고 최선을 다해 취침하는 아들녀석을 보니 든든합니다. 어서어서 자라나서 세 마리 허스키를 돌보는데 노동력을 제공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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