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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11/21 17:20:21
Name 사악군
Subject [일반] 일하기 싫다.
오늘은 일진이 좋지 않은 것 같다.

일하기 싫은 거야 어제 오늘 일은 아니고 가끔 꽤 자주 오는 기분이긴 하지만,
평소에는 "아 오늘 참 일하기 싫다~" 라면서 곧 별 불만없이 일을 하곤 한다.

아침에 법원에 다녀왔다. 저번 기일에 이미 할만한 건 다 진행해서 종결했어도 될 사건이다.
상대방은 굳이 서면하나 더 내겠다고 기일을 잡아달라고 했다. 아.. 그냥 참고서면으로 내도 될 것을.
그 후 서면이 하나 더 왔다. 음. 역시 그냥 참고서면으로 냈어도 됬을 서면이다.
기일을 한 번 연기해달라고 해서 동의해줬다. 오늘은 연기된 기일이다.

..안 나오네? 이 자식이 빠져가지고..-_-... (사실 상대방 소송수행자가 아는 후배임)
돌아오면서 싫은 소리 좀 해야겠다 하면서 사무실로 돌아왔다.

'법무관 님 A씨 이의 하신대요...' '네??'

그걸 왜 이의하시지.. 이거보다 좋게 나올 수가 없는데. 충분히 잘 설명드렸던 것 같은데.

A씨는 구상금 사건의 피고다. A씨는 트럭을 몰다가 갑자기 유턴하던 무보험 오토바이 운전자와 사고가 났다.
오토바이 운전자의 과실이 커서 오토바이 운전자만 형사처벌을 받았지만.. 오토바이 운전자는 크게 다쳤다. 10주.
그래서 오토바이 운전자의 딸 보험중에 부모님 사고 보상해주는 보험이 있어서 그 보험에서
치료비를 지급해줬다. 그리고 이제 A씨에게 보험금 구상 청구가 들어온 것이다..
보험회사는 A씨의 과실을 30%로 보면서, 500만원 정도 되는 돈을 청구했다.

A씨는 일단 과실을 전부 부인했지만 사실 그건 좀 어려운 상황.  
법원에서는 화해권고결정이 나왔는데 100만원 정도 되는 금액으로 화해권고결정이 나왔다.
1/5. 이정도면 아주 좋은 결과다. 상대방이 이의신청을 할 것 같지만 우리쪽에서
할 이유는 없다.. 판결로 간다면 늘어날 가능성도 있고 똑같이 나올 가능성이 많은데
화해권고는 이자나 지연손해금 지급도 장래부터 시작하고, 소송비용도 지급하지 않지만
판결로 가면 이미 한 6개월치 20%이자에 소송비용도 물어내야 한다. 대충 계산해도 10~20만원
더 내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걸 충분히 다 설명드렸었는데.. 왜 이의하신다는 거지.

'제가 다시 전화해볼께요'

--

'형편이 너무 어려워서 그것도 낼 수가 없어요..'
'선생님 근데 재판으로 가면 이것보다 더 내시게 될 가능성이 높아요'
'어떻게 좀 잘 좀 도와주세요'
'지금 도와드린 거고 도와드리고 있는 거에요 ㅠㅠ'
'.........'
'선생님 진짜 제가 다 안타까워서 그래요. 저야 이거 이의신청 내면 그만입니다.
내고 기일 출석 한번 더 하고 종결하고 판결만 기다리면 되요.
잘못하면 200만원 이상 내게 되실지도 모르고 아무리 좋은 결과가 나와봤자 똑같은 결과밖에
안될텐데 그럼 소송비용, 이자 해서 10~20만원 손해보신다니까요'
'.....몸으로 때우는 게 낫겠네요.'
'이건 민사 절차라서 몸으로 때우는 거 같은 건 없어요. 어차피 자력이 없으시면
상대방도 재판에 이겨도 선생님한테 없는 돈을 가져갈 수는 없는 건 똑같은 건데,
어쨌든 120만원 채무 지시는거 보다 100만원 채무지시는 게 낫잖아요?'
'이의 제기하면 더 많이는 안나오는 거 아니에요?'
'이건 형사 벌금이 아니에요.. 어차피 상대방이 이의할 수도 있는 거지만 너무 유리하게 나온 결과인데
이걸 우리가 이의하기 너무 아까워요.'
'....'
'...'
'잘 좀 도와주세요..'
'....선택은 선생님이 하시는 거지만 선생님 형편도 어렵고 하시니까 도와드리고 싶어서 그래요.
정말 꼭 이의하셔야겠어요?'
'...예'

아.. 내가 이렇게 무능한 사람이었나. 진심으로 상대를 위해 전력으로 설득해보려 했는데 실패했다.
자괴감에 빠져있다가 다시 한번 전화해보았다. 위 내용 반복.

'에라.. 바빠 죽겠는데 이거 전화 붙잡고 있을 시간에 일 다했겠네. 이젠 나도 모르겠다.'

이의신청서 작성해서 뽑아서 대리님한테 전달해 드리려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안타깝다. A씨는 답답한 사람이지만 나쁜 사람도 아니고.. 안타까운 마음이 자꾸 든다.
삼고초려라는데 한 번만 더 해보자..

......실패.

내가 그렇게 믿을 수 없는 사람이었던 걸까. 내 말하는 능력이 이렇게나 형편없었나.
사실 이런 일하면서 이정도로 확신을 가지고 말할만한 상황도 없는데 이런 경우에조차
의뢰인을 설득 못하면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지?

만감이 교차한다.

일하기 싫은 날이다.



-----
일하기 싫어서 pgr들어왔다가
몇자 적고 읽어보니..

일기는 일기장에 느낌이네요....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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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름발이이리
12/11/21 17:30
수정 아이콘
짜증나실만 하네요. 이해할 수 없는 인간들이 세상엔 많더군요. 나랑 상관없으면 상관없는데 일로 만나면 참..
소유이
12/11/21 17:42
수정 아이콘
흐유...
그래도 일은 해야된답니다...ㅠㅠ
일 하기 싫으시면 이의하세요...
그리움 그 뒤
12/11/21 17:45
수정 아이콘
일종의 현실회피가 아닌가 싶어요
여기서 이의신청을 안하면 지금 당장 결정...
이의신청하면 채무가 더 많아진다는 말은 알아들었지만....그래도 일단은 뒤로 미루고 싶다...라는 마음이 강한 것 같네요
12/11/21 17:47
수정 아이콘
내 선의가 안통하는 그럴때가 있더라구요...근데 그건 내 책임이 아니니 자괴감 느끼실 필요없습니다.
종종 느끼는 감정이라 그 허탈함이 이해되네요..힘내세요 ^^
12/11/21 17:51
수정 아이콘
고생한다...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흐흐.
켈로그김
12/11/21 18:50
수정 아이콘
저도 매일같이 비슷한 일을 겪는 터라 동감이 됩니다.
일종의 쥐어짜기, 종용, 사정을 통해 더 낫거나 유리한 결과물을 도출하려는 사람들..

'아니.. 그렇게 하지 않으셔도 이미 제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는 최선을 다 해 드렸습니다.' 라는 상황..

저라는 개인 혹은 제가 속한 직업단체에 대한 불신이 얼마나 깊으면 저렇게까지 해도 말이 안통하는걸까.. 싶기도 하고..

저도 오늘 이래저래 지치고 속상해서 술이 땡기는 날이었는데,
이 글을 보니 약사 친구 불러서 술한잔 해야겠다는 생각이 확 드네요 흐흐;;
Siriuslee
12/11/21 19:10
수정 아이콘
포기하면 편해요..
나루호도 류이
12/11/21 19:22
수정 아이콘
공교육에서 쓸데없는 학문대신에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능력' 을 길러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Hoyeonya
12/11/21 22:05
수정 아이콘
글 보다가 의문이 들었던게 A씨는 보험에 가입되어있지 않았나요? 오토바이운전자에 대한 배상을 왜 A씨가 직접 걱정하는지 글로만 봐서는 잘 모르겠어서 여쭤봅니다.

그리고 화해권고결정의 경우 재판부가 대충 인용하려고 하는 금액을 제시하는 것이 대부분이기땜에 뭐 판결로 가셔도 지금 결정문에서 나온거랑 크게 차이나지 않을 확률이 높으니까 맘 편히 하시고요. 죽어도 판결 받아야겠다고 하는 의뢰인들은 답이 없습니다. 뭐 어차피 판결 선고 나와도 바로 항소하겠죠 우리도 미국같은곳처럼 사실상 1심에서 소송 대부분이 종결되는 사법시스템 구축이 절실한데 말이죠.
사악군
12/11/22 10:28
수정 아이콘
공감해주신 분들 응원해 주신 분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사실 말이 안 통하는 분들은 저도 결국 포기하게 됩니다. 그런데 보통 그런 분들은 말이 안 통함과 동시에 진상+적반하장인 케이스가 대부분인데 이 분은 말은 안 통하지만 사실 사정이 딱한 케이스라서 말이죠.. 쉽게 포기가 안되더라구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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