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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09/21 13:30:48
Name happyend
Subject [일반] 구한말 흔한 기부왕
요즘 글쓰는 일이 정말 싫어서 유게에 약간 방심하면서, 그냥 좋은 정보글정도로 생각하면서 글 올렸다가 호되게 얻어맞고 정신이 번쩍나네요....

아래글과 연관해서....쓰는거니 제목도 바꾸겠습니다.

약간의 사과차원에서 좋은 이야기를 하나 더 해보겠습니다.(흠...아래 글이 좋은 이야기라고 느끼지 않으신다면 어쩔 수 없지만요.)
이글도 아래글도 출처는 <올리버 에비슨 자서전>입니다.

간단하게 이분을 소개하면 영국태생의 가난한 공장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미국을 거쳐 캐나다로 이민한 뒤 그곳에서 의사가 된 분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에 학교다니는게 재미없어서 때려치고 아버지가 일하는 모직공장에서 2년간 일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그는 매우 귀중한 경험을 합니다. 오로지 초등3학년 정도 다닌 경험만으로도 공장 노동자들에겐 충분한 지식인(?)대접을 받아서 11살의 나이로 야학을 해본거죠.
자서전에는 이 경험에 대해 그다지 말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겸손한 성격때문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또 하나 그의 성격에 영향을 미친 것은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는 공장의 작업반장 같은 일을 하였는데, 노동시간을 줄이면 생산성이 늘것이란 점을 사장에게 설득해서 시간을 줄기고,생산성을 대폭 향상시켜 냅니다. 한번 그 결과를 맛본 사장은 이후 다시 벌어진 노동시간 단축 협상에서는 군말없이 시간을 줄여줍니다.대화와 타협 그리고 인내심을 배워가는 과정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올리버 에비슨에게 다른 기독교인과 다른점은 미신적 요소를 전혀 믿지 않은 합리성과 기독교 교파에 대한 포용성입니다.이것은 당시로선 그다지 일반적이지 않습니다.이분은 1860년 생이거든요.
이런 성격을 낳게 한 것이 바로 그 공장노동자로서의 경험입니다. 공장은 합리적이지 않으면 절대 돌아자기 않는 시스템이란 점이 근대이전 농업노동과 차이가 있는 법이니까요.

그런 그가 우여곡절끝에 의사가 되었을 때 선교열풍이 일었습니다. 그래서 의료선교사로 우리나라에 오게 되고, 제중원을 맡아 이후 세브란스병원으로 성장시켰으며 연세대학교를 만들게 됩니다.

이분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굉장히 감탄하는 부분이 있다면, 합리성입니다. 물론 선교사이고 철저한 기독교신자라는 점에서 약간의 편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절대 그 편견이 합리성을 무너뜨리지 않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기독교 선교는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들이 벌어지긴 했습니다.
일,청,러시아 인들은 조선정부와 관계에서 정치적일 수밖에 없어보였지만 대부분의 조선인들에게 미국은 은혜로운 나라였습니다.

왜 이런 생각을 갖게 되었냐면, 바로 일본이 미국의 은혜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당시 엄청난 호황을 누리던 고래잡이산업에서 필요한 급유와 급수 등을 위해서는 일본의 항구가 필요했고,그때문에 거의 일방적인 퍼주기식 개항을 유도합니다. 그 덕분에 일본인은 미국에서 환대받고 수많은 혜택을 입었습니다.

구한말 조선인들은 미국은 그런 은혜로운 나라라고 여겼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소위 우정국사건이 벌어집니다. 개화파들은 왕비의 총애를 받는 민영익의 변심에 초조한 나머지 정변을 일으킵니다.이게 갑신정변입니다.(저의 예전 글 '어는 비상한 사람의 비상한 삶과 죽음"에 이 정황은 소개했습니다.)
이 정변의 최대 수혜자는 알렌입니다. 칼맞은 민영익을 살려낸 알렌은 그 댓가로 왕과 왕비의 무한한 애정을 바탕으로 수많은 이권을 챙기고 선교사업을 전폭적으로 지원받을 수 있는 물질적 토대를 완성했으니까요.

물론 민영익의 치료로 얻능 혜택은 우연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필연이었습니다.고종황제는 미국을 은혜로운 나라로 여겼습니다. 알렌에게 무한한 퍼주기를 했던 것도 그때문이었습니다. 선의의 나라 미국에 대한 고독한 황제의 짝사랑은 물론 부질없었습니다. 미국은 조선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득이 없었거든요.

어떻든 이런 정황은 올리버 에비슨이라는 의료선교사가 한국에서 기적에 가까운 일들을 할 수 있는 토대가 됩니다.

제가 자서전 속에서 소개할 부분은 그가 겪은 여러 에피소드중에서 인상적인 부분입니다.
아래 글에서 제가 본문 그대로를 발췌하지 않았더니 약간의 오해가 있어서 이번엔 그대로 발췌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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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일부 서양인들은 동양인들이 감사가 무엇인지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중략

아주 최근에 부유한 한국인 신사가 외과 치료를 위해 부인을 병원으로 데려왔다. 그는 그녀를 특실에 입원시켰다. 옆방은 그녀의 하인이 사용하게 했다. 수술이 시행돼 그녀의 걱정거리는 완치됐다. 그녀가 퇴원하게 되었을 때 그는 청구된 돈을 지불했다. 그녀를 위해 이루어진 모든 것과 의사, 간호사의 세심한 배려에 크게 고마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 감사를 표시하기 위해 가난한 환자를 위해 써달라고 당시 약 750달러에 해당하는 2,000원을 병원에 기증했다. 그는 무료로 치료를 받는 심하게 앓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 것을 봤다. 그의 마음속에 이전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그 사람들을 도와 줄 생각이 생겼다고 말했다.감사?보은?그렇다! 둘다 한국에서 매우 흔한 것들이다.

후에 그의 부인의 건강이 계속 좋다는 소식을 전하러 병원을 들렀다가 내원하는 가난한 환자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병실이 가득 차 외면당하는 것을 다시 목격했음을 이야기 했다. 그는 이렇게 무엇도 지불할 수 없는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해 독립된 병상을 많이 가진 또 다른 병원 건물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으며, 이런 건물을 위해 1만원을 기부하겠다고 제안했다. 이런 소식을 들은 다른 사람들도 적은 기금을 기부했다.

그 후 어느날 다시 병원을 찾은 그는 사업에 대해 더욱 생각해보니 세브란스병원에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100개의 침대를 수용할 정도로 큰 건물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이 기부금을 10만원으로 늘리거나 병원측이 그렇게 많은 환자를 돌보기 위해 충분한 기금을 확보할 수 있다면 병원을 건축하고 장비를 갖추는데 얼마가 들던 필요한 금액을 기부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 신사가 보인 행동은 단순한 관대함이나 감사함 이상이었다.그는 비록 신앙을 고백한 기독교인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단순히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고백한 사람들보다 더욱 더 그리스도의 정신을 받아들인 사람이었다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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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물가를 고려한다면 2천원은 대략 1억정도 되는 금액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대한제국에서 고종의 월급이 3백50원 그리고 주사의 월급이 20원이었다고 합니다. 현재 공무원봉급과 비교해보면 대략 주사월급이 200만원정도라고 보고 2천원이면 대략 2억정도됩니다.

그런데 저 사건이 있을 때는 이로부터 최소한 20년은 지나때이므로 인플레를 감안하면 대략 1억정도되는 돈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이부분은 자신없습니다.물가공부를 더 해보겠습니다만...아직은 정확하지가 않아서)

어떻든

올리버 에비슨의 사례에 나온 신사는 양반을 의미합니다. 아마도 그 부자양반은 병원에 오기전까지 누가 어디서 어떻게 고통받는지 모르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과거의 우리나라 병원은 혜민국과 같은 빈민구제기관을 제외하곤 없었습니다. 그곳엔 양반이 가지 않았고, 대부분의 양반은 집에 의원이 찾아옵니다.

아마...조선시대에 병원이 있었고,부자든 가난하든 그곳에 가서 치료받을 수밖에 없었다면.....하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에겐 기부의 유전자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던 글입니다.
종교와 정치와 그런걸 떠나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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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9/21 13:44
수정 아이콘
기부의 유전자, 있습니다. 경제학이 가정하는 '이기적 인간'이란 학문의 토대를 구축하기 위한 '개념'이지 현실에 대한 설명이 아닌데 어느샌가 사람들이 현실에 대한 절대적 진실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죠. 저는 사실 남성성, 여성성도 시작은 신화적 세계관을 구축하기 위한 '개념쌍'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실제로 남성성과 여성성을 담지하는 다양한 의학적 발견들이 있었습니다만 개념이 현실을 규정하게 된 흥미로운 예라고 종종 생각합니다.

병원, 기부와 관련있는 일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기부의 유전자가 존재할 수 있다는 거, 동감하며 추천 한 방 누르고 갑니다. 보상을 기대하지 않는 순수한 증여를 우리는 사실 매일 매일 경험하며 살고 있지 않을까요? 가족, 연인, 친구, 동료 혹은 무어라 이름하든 서로가 서로에게 주는 것이 즐거운 다양한 이름의 관계 속에서 말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스타카토
12/09/21 13:53
수정 아이콘
아래글로도 충분히 좋았지만 이글로 더 큰 교훈을 얻네요.
추천드립니다!!!!!!
아나키
12/09/21 14:14
수정 아이콘
그는 비록 신앙을 고백한 기독교인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단순히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고백한 사람들보다
더욱 더 그리스도의 정신을 받아들인 사람이었다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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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핵심인 것 같네요.
곧내려갈게요
12/09/21 14:42
수정 아이콘
멋지네요.
역시 세상사람 살아가는 얘기가 제일 재밌는 얘기 같아요. 특히 해피엔드님께서 올려주시는 글들은 잘 알려지지 않은 과거의 일들을 알려주셔서 참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m]
Je ne sais quoi
12/09/21 14:48
수정 아이콘
언제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12/09/21 16:54
수정 아이콘
자기 몫까지 남에게 퍼주는 분들은 일반인의 정신력을 초월한 굉장한 분들이라고 생각하고
보통의 사람들도 남에게 선물하고 기분 나쁜 사람은 없지요.. ^^ 추천하고 갑니다.
루크레티아
12/09/21 19:19
수정 아이콘
종교 교리는 대부분 좋은 말들이죠.
각 종교의 교리대로만 세상이 흘러가면 정말 좋은 세상이 될터인데, 같은 종교를 믿는 사람들끼리는 교리로 싸우고,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끼리는 다름으로 싸우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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