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2/06/20 22:48:41
Name 바람모리
Subject [일반] 그때의 난 뛰는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지만 행복했었지.
확실히 언제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군요.
분명히 기억나는건 그때의 내가 대학교 새내기였다는 겁니다.
두번정도 걷어차이고 나서 인생에서의 첫 연애를 할때였지요.
차인게 네번이었던가?
더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좋지 않은 기억은 쉽게 잊어버리는 나의 뇌세포에 건배를..

그후로 몇번의 연애에서도 그랬지만 전 항상 대가 센 여자들만 만났었어요.
항상 수동적인 자세로 연애에 임했죠.
몇시까지 어디로 오라고 하면 가서 기다리고..
저기가자 하면 가고..
조금 비싼 선물을 바치고 아주 싼 선물을 받았죠..
아주 좋지 않은 자세에요.
마지막 연애때는 저런 수동적인 자세를 버리지 못해서 헤어졌드랬죠.

그날은 아마 발렌타인 데이였을거에요.
만나자는 연락이 와서 나름 기대감을 가지고 나갔었죠.
손을 잡게 허락해준지가 얼마 되지 않아서 항상 기분이 붕붕 뜬 상태였거든요.
이곳저곳을 왔다갔다 하다가 헌혈버스가 그애의 눈에 띄었어요.
헌혈을 하자더군요.
난 피를 뽑았고 그애는 간호사가 혈관을 찾지 못해서 안뽑았어요.
증정품으로 초콜렛을 주더라구요.
그애가 낚아채가더니 물었죠.
"줄까?"
전 고개를 끄덕끄덕했어요.
아마 꼬리가 있었다면 미친듯이 흔들었을 겁니다.
지금도 정확하게 기억이 나요.
난 하나도 못먹었고 그애가 다 먹었어요.

그리고 또 어느날이었어요.
시간이 늦었는데 나오라고 하더군요.
같이 동대문을 걸어다녔지요.
별로 했는일은 없었고 뭐 사는것도 아니고 그냥 동대문 쇼핑몰 일대를 왔다갔다 했어요.
두타 앞에서 공연인지 패션쇼인지 하길래 그거 구경도 하구요.
스킨십이라고는 손잡는것 밖에 없었는데 정말 행복했어요.
감히 그 이상을 바라지도 아니 상상도 하지 않았어요.
정말 지금 내가 생각해도 찐따같지만 그땐 그랬습니다.
그러다가 그애는 막차시간이 되서 집에 가버렸지요.
남겨진 저는 일단 지하철을 탔는데 막차였습니다.
을지로입구까지만 가더라구요.
교통카드말고 뭐가 더있나 하고 보니까 이천원이 있었습니다.

집에는 걸어가다가 날이 샐것이 분명하고 한동안 고민하다가 왕십리에 자취하는 친구 생각이 났어요.
반대방향으로 뛰기 시작했습니다.
이제와서 의문이 드는데 그때의 난 왜 뛰었을까요.
을지로 4가역쯤까지 뛰었을 겁니다.
배가 너무 고팠어요.
이천원을 가지고 김밥천국에서 김밥을 한줄 샀습니다.
뛰다가 힘들면 걷다가 그렇게 그렇게..
한손에 바통처럼 김밥한줄을 들고 한시간을 갔습니다.
그때의 나에게 물어보고 싶어요.
배가 고파서 김밥을 샀는데 뛰기만 하고 왜 안먹었니..

예.. 그렇게 친구의 자취방에 도착해서 을지로입구부터 여기까지 한시간걸려 왔다고 자랑했습니다.
씻고 나니까 너무 피곤해서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느지막히 일어나서 보니까 김밥에서 쉰냄새가 나길래 버렸습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tannenbaum
12/06/20 22:53
수정 아이콘
아...
싱그러운 내가 진동하는 글입니다
안아주고 싶습니다
9th_Avenue
12/06/20 23:02
수정 아이콘
뭔가 귀여우면서도..씁쓸합니다. 미묘한 글이네요.
왼손잡이
12/06/20 23:09
수정 아이콘
호...호갱님..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ㅠㅠ

저도 그런적 있어요.
여자친구 데려다주고 차가 끊겨서 근처 찜질방에 가서 자고
찜질방이 문을 닫아서 피시방에서 밤새고 첫차타고 집에가고..

지금 생각하면 정말 머저리 같은데 그땐 왜그리도 행복헀던지 아우..
12/06/20 23:14
수정 아이콘
파이팅
화잇밀크러버
12/06/20 23:37
수정 아이콘
재미있는 글이네요. 흐..
12/06/20 23:46
수정 아이콘
아마 꼬리가 있었다면 미친듯이 흔들었을겁니다.
이 표현 너무 좋네요. 글쓰고 싶어지게 만드는 문장이에요.
12/06/21 00:03
수정 아이콘
누구나 이런 시절을 떠올리며...웃지 않을까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웃으며안녕
12/06/21 10:25
수정 아이콘
풋풋한거죠.
다만 조금은 리드를 병행해야 대참사를 막을 수 있죠.
히히멘붕이다
12/06/21 13:40
수정 아이콘
제목도, 내용도 너무 귀엽네요^^ 정말 귀여운 남자신 것 같습니다. 제가 남친만 없었어도....응?!
Luminary
12/06/21 14:08
수정 아이콘
바람모리 님 글...은 좋아요.^^
가벼운 향기가 나는것 같거든요.
그래서 팬이에요...
그렇다고 고백은 아닙...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40185 [일반] 미국에서 가장 돈을 잘 버는 직업 6가지... [20] Neandertal7721 12/11/07 7721 0
39319 [일반] 캐드펠 수사와 슈가맨 [2] epic3738 12/09/24 3738 0
39272 [일반] 구한말 흔한 기부왕 [7] happyend5347 12/09/21 5347 8
39083 [일반] 양승조 의원이 발의한 의료법 80조 개정안(내용수정) [81] GoThree6315 12/09/11 6315 0
39044 [일반] 딸아이의 4번째 생일 [28] 영혼의공원4880 12/09/07 4880 1
38973 [일반] [잡담] 나의 일본드라마 BEST 15 (2) [40] 슬러거11928 12/09/02 11928 0
38269 [일반] 용서한다는 것... [14] 해소3947 12/07/22 3947 1
38202 [일반] 피부 관리..에 대한 고민 [98] Siver Tiger8509 12/07/17 8509 1
37799 [일반] 그때의 난 뛰는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지만 행복했었지. [17] 바람모리3934 12/06/20 3934 0
37636 [일반] 내 인생에서 최고는 너였어...... [28] 가슴이아프다6047 12/06/10 6047 1
37630 [일반] 응급실에 갔다왔습니다.(배탈, 식중독 조심하세요) [10] The xian6954 12/06/10 6954 0
36605 [일반] 여느때와 다름없는 약제부에서 벌어진 꽁트. [11] 영혼3989 12/04/11 3989 0
36525 [일반]  이 남자를 폭로한다. [111] Hook간다10705 12/04/08 10705 0
36339 [일반] 일본인 여자와의 연애.... [16] Eva01014818 12/03/31 14818 0
36242 [일반] 훅간다의 요즘 [8] Hook간다5919 12/03/27 5919 0
35891 [일반] 방을 뒤적이다가.. 그리고 병원에서... [15] Hook간다5929 12/03/12 5929 0
35679 [일반] 요로결석 체험후... 후기(?) [31] 복제자8967 12/03/02 8967 0
35637 [일반] 24년 인생살면서 느껴본 최악의 고통(부제: 요로결석ing,...) [45] 복제자11088 12/02/29 11088 0
35626 [일반] 처제가 날 변태라고 부르는 이유.. [69] Hook간다21164 12/02/29 21164 7
35456 [일반] 첫 발걸음 [4] TheGirl3478 12/02/20 3478 1
34594 [일반] 실화괴담 좋아하시나요? [23] 우리고장해남5638 12/01/10 5638 0
34014 [일반] [음악] 내맘대로 2011년 인디결산 1탄 [18] 코리아범3965 11/12/21 3965 2
33141 [일반] 49만원짜리 라식 라섹 강남역 xxx 안과와 간만에 강남가본 촌놈의 느낌. [24] 깜풍9430 11/11/16 9430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