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으로 꽃사과나무를 찾아보니 탐스럽게 분홍빛이 감도는 겹꽃 사진도 있던데, 제 기억에 한 장으로 피는 경우는 일반 사과나무와 꽃 생김새가 흡사했던 기억이 납니다.
한 달 전 쯤인 지난 4월에 부모님과 부산의 회동 수원지를 지나 상동으로 가서(향어와 꿩요리 등이 유명하지요)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식당 주변에 과수원이라기보다는 묘목을 키우는 듯 자그마한 꽃사과나무를 한가득 심어두고 있는 밭이 있어 오랜만에 꽃사과나무의 하얀 사과꽃을 구경하게 되었습니다. 아직 나무가 어려서인지 웨딩드레스처럼 풍성하게 하얀 빛을 담뿍 머금은 제 기억 속의 모습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작고 소박한 모습이더군요.
군대 있을 때 행군코스 후반부의 이정표라고 할 수 있는 교회 앞마당이 있었습니다.
찌는 듯한 강원도의 5월 한낮, 훈련을 끝내고 복귀하는 날 삽으로 도로를 정비하기 위해 저희 소대만 차출되어 뼈빠지게 작업을 하고 다시 중대와 합류하기 위해서 이 교회 앞마당에서 잠시 쉬는데 반짝이는 햇살을 받으며 하얗게 빛나고 있던 꽃사과나무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너무 이뻤던 탓에 같이 쉬면서 구경하던 소대장이며 선임들이 저건 무슨 나무냐고 나름 만물박사처럼 통했던 저에게 물어봤는데 감히 모른다는 대답을 할 수 없었던 저는 조팝나무니 배롱나무니 하얗게 담뿍 꽃이 피는 나무 이름을 있는데로 남발했지만 마침 교회에서 문을 열고 나오신 목사님이 꽃사과나무라고 정답을 말씀 해주시는 바람에 장난조로 엄청 욕을 먹았던 기억이 납니다.
강원도 특유의 찌르는 듯한 햇빛 아래 무리한 지시로 훈련과 작업을 동시에 해야했던 저희는 체력이 방전된 나머지 완전히 푹 퍼져서 쫄병들은 쫄병들끼리 바닥에 널부러져 앉고 몇몇 고참들이며 소대장은 교회 벤치에 앉아 수송차량이 올 때까지 꽃사과나무 아래로 쪼개지는 햇살과 윙윙거리며 날아다니는 벌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지요.
본래 전방 군부대는 말벌이나 땅벌에게 쏘이는 사고가 많아 다들 벌을 싫어하거나 무서워했는데, 그 날 꽃사과나무에는 윙윙거리는 소리가 커다랗게 들릴만큼 많은 벌떼가 있었는데도 어쩐지 꽃들 사이를 들락거리기 바빠서 이쪽에는 관심도 없는 무심함이 느껴지더군요. 결국 저희들 중 몇몇은 벌들을 무시하고 따가운 햇볓을 피해 나무 그늘로 몸을 밀어넣고 말았습니다.
그저 피곤했던 탓에 경계심이 수그러든건지, 벌이고 사람이고 다함께 꽃에 취했던 건지.
우리 소대원들의 심정을 이제와서 알 길은 없어도 다만 확실한 기억나는 것은 꽃사과나무를 마주보고 앉아 마치 ROTC 중위가 아닌 20대 낭만의 대학생으로 돌아간 듯 아련한 표정을 짓고 있던 소대장 '형'의 얼굴과, 눈치를 보면서도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선임들 사이에서 고개를 꾸벅이던 막내들의 졸린 모습, 군복이나 등에 멘 소총과는 멀찍이 떨어진 평화로운 정적 속에서 마치 자장가처럼 들려오는 벌들의 윙윙거리는 소리....그리고 풍경의 중심에서 하얗게 만발한 꽃잎들을 품은 채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황홀한 꽃사과나무의 모습.
나무 이름을 맞춘다는 핑계로부터 고참들의 벤치의자 한 켠을 작대기 두개로 차지하고 앉아서 이 아름다운 나무를 바라보고 있다가 이윽고는 먼 다짐을 하고 말았지요. 전역하면 반드시 꽃사과나무를 심겠노라고.
작대기 두 개는 개구리 모양으로 변한지 한참이고 또 다시 5월이 가는데 다짐은 아직 멀기만 합니다. 다들 어떤 꽃을 추억하고 계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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