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2/05/15 09:41:05
Name 영혼
Subject [일반] 놓을 수 있을까.




신기한 일이다. 어느샌가 흩날리던 벚꽃은 언제 그랬냐는듯 사라져버렸다. 아니, 벚꽃이 있었는지도, 누구를 위해 흩날렸던지도 글쎄, 잘.
그리도 기다렸었는데. 따스했고 또 쌀쌀했던 봄날은 진즉에 내 곁을 지나어버렸건만, 살랑이던 마음은 이미 기억에 없다.

어제는 한차레 비가 쏟아졌다. 비로소 봄이 끝났다. 고 생각했다. 누구도 알려준 적 없고 그리 생각하지 않았지만 혼자 그리 결정하기로 했다.
이 비는 끝이다. 봄의, 며칠, 아니 몇년째였는지도 모를 나만의 봄이 비로소 끝이 났다.

비가 와, 비가 와. 누구라고도 할 수 없는 목소리가 생각난다. 비는 온다. 때때로 내리기도 한다는데, 도통 비가 간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어쩌면 비는 내킬때면 가끔 우리에게 찾아오곤 하는 손님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비는 항상 우리를 찾아오지만 이별의 약조는 찾을 수 없는.
단지 이제 오지 않을 뿐, 그만 내리게 되었을 뿐. 언젠가 빗물처럼 누군가에 적시었던, 누군가가 내리었던 날들 또한 떠나지 않고 머물 것만 같다.

잠시잠깐 숨을 돌리고 나니 어느샌가 쏟아지던 봄비는 언제 그랬냐는듯 사라져버렸다. 아니, 비가 내렸는지, 그 흔적들도 글쎄, 잘.
쓸데없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언제라고 꼬집어 말할 수 없을만큼 황망하게 자취를 감춘 빗방울을 보니 쓸데없이, 너의 생각이 났다.

너는 나를 놓을 수 있을까. 나에게서 사라질 수 있을까.
떠난 적 없는 생각이 다시금 나를 찾아올 때 비로소 그 생각에 적시어질 수 있을까. 나는 이 비를 놓아버렸듯 너를 놓을 수 있을까.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진리는나의빛
12/05/15 09:52
수정 아이콘
시간이 답이죠..
12/05/15 09:52
수정 아이콘
진리는나의빛님 // 매력적인 오답이기도 합니다.
Darwin4078
12/05/15 09:57
수정 아이콘
놓을 수 없어요. 죽을때까지 놓으려고 노력할 뿐.
아니, 애초에 노력같은거 안하는 걸지도 모르죠.
12/05/15 09:59
수정 아이콘
Darwin4078님 // 어찌 저는 구구절절 이렇게 길게 써야하는 말을 단 두 줄로 표현해내십니까.. ㅠㅠ
PoeticWolf
12/05/15 10:19
수정 아이콘
비로소 봄이 끝났다. 고 생각했다. 누구도 알려준 적 없고 그리 생각하지 않았지만 혼자 그리 결정하기로 했다.

이 문장에 다 들어있군요. 시간이 답이거나... 다른 사람이 답이거나... 힘내세요 영혼님.
12/05/15 11:18
수정 아이콘
시적늑대님 // 다들 저마다의 답을 찾거나, 혹은 답을 찾지 못하여도 그런대로 살아가는 편이겠죠.
켈로그김
12/05/15 10:39
수정 아이콘
다른 사람이 답이더군요.
그렇게 치열하게 평생을 놓아줄 것 같지 않던 사람도
내 곁에 다른 사람이 생기면서 점점 옅어져 갔습니다.
12/05/16 05:32
수정 아이콘
켈로그김님 // 그럴겁니다. 그럴지도 모르겠는데, 그렇지 않을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별로네
12/05/15 10:53
수정 아이콘
켈로그김님 말씀처럼,
다른 누군가를 만나고 결혼하고 아이들을 가지고 사회생활을 하며 점점 옅어져 갑니다.
그리고 옅어져 가며, 슬펐던 과거가 아니라 행복했던 추억으로 승화시킬수 있더군요.

단, 잊혀지진 않네요. 아직까지도. 아마.... 죽을때까지도........?
12/05/16 05:32
수정 아이콘
별로네님 // 저두요. 아마. 끝까지
확고한신념
12/05/16 00:03
수정 아이콘
글 좋네여,
근 한달간 봤던 글중에 가장 좋았어요
12/05/16 05:32
수정 아이콘
확고한신념님 // 좋게 읽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쉬림프골드
12/05/16 17:09
수정 아이콘
너는 나를 놓았겠지만.... 나는 너를 놓을 수 있을까요?
사람을 사람으로 잊고 싶지만....
내 마음 속의 네가 비워져야 비로소 다른 누군가를 담을 수 있을것 같아요...ㅠㅠ
12/05/16 20:38
수정 아이콘
쉬림프골드님 // 아무도 확신할 수 없는 문제일거에요. 사실 잊지 못하더라도, 아니 그러지 않더라도 상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37280 [일반] [동영상] 강정호 스윙이 정말 엄청나네요. [44] 새로운삶6576 12/05/17 6576 0
37279 [일반] [해축] 케니달글리쉬 감독이 경질당한 것 같습니다. [58] 박주영6356 12/05/17 6356 0
37278 [일반] 다시금 수면위로 떠오른 김일병 사건을 보면서... [42] 만뎅이9259 12/05/17 9259 0
37277 [일반] [그날]5.18....후추알(1) [7] 후추통5463 12/05/16 5463 3
37276 [일반] 잠깐 미국 있으면서 불편한점들 [26] 다음세기7171 12/05/16 7171 0
37275 [일반] 전 세계에서 법정 공휴일이 가장 많은 나라 Top10 [17] 김치찌개11907 12/05/16 11907 0
37274 [일반] 1g당 비싼 물질 TOP 16 [15] 김치찌개5659 12/05/16 5659 0
37273 [일반] 어머니의 발바닥 .. [6] 메롱약오르징까꿍3305 12/05/16 3305 2
37272 [일반] 알바로서의 현장근로직 (노가다)에 대한 잡설들. [18] 고구마줄기무��19043 12/05/16 19043 1
37271 [일반] 후추통, 인사드립니다. [20] 후추통6782 12/05/16 6782 0
37269 [일반] 통합진보당 부정경선 관련 뉴스 모음 [25] giants4737 12/05/16 4737 0
37268 [일반] 오늘 UFC ON FUEL 대회(경기결과 있음. 스포주의) [16] wish burn5788 12/05/16 5788 1
37267 [일반] [야구]삼성라이온즈 5할승률 복귀.. [66] 유리자하드5851 12/05/16 5851 0
37266 [일반] 이 남자를 폭로한다.(2) + 동생 [33] Hook간다6958 12/05/16 6958 2
37265 [일반] 금단의 사랑 [15] happyend6939 12/05/16 6939 15
37264 [일반] 인피니트, 갱키즈의 뮤직비디오와 백지영의 티저가 공개되었습니다. [7] 효연짱팬세우실3843 12/05/16 3843 0
37263 [일반] [오늘] 5.16 [16] 눈시BBver.29822 12/05/16 9822 9
37262 [일반] 2013 WBC 앤트리는 어떻게 짜여질까요? [44] 새로운삶6051 12/05/16 6051 0
37261 [일반] 가슴에 내려앉는 시 모음16 [3] 김치찌개3934 12/05/15 3934 0
37260 [일반] 미국인들이 가장 기피하는 섬뜩한 직업 Top10 [11] 김치찌개9149 12/05/15 9149 0
37259 [일반] kbl fa이동상황 [30] 워터플러스5222 12/05/15 5222 0
37258 [일반] 여러분들의 형제 자매는 어떠신가요? [71] 그리메7890 12/05/15 7890 0
37257 [일반] 경북 안동시 건동대학교 폐교 결정 [13] bins7570 12/05/15 7570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