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분 더 시키자!"
"그래!!"
배는 이미 꽉 찼다.
다만 오랜만의 이 알싸한 분위기를 조금 더 즐기고 싶다.
애들은 음식점 놀이터를 왔다 갔다 하며 배를 채우고,
우린 그 애들 짬짬이 지켜보며 서로 마주앉아 삼겹살을 안주로 부어라 마셔라 하고 있다.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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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놀드' 형님을 모델 삼아 미친듯이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다 양 쪽 어깨가 보기 좋게 나가버린(?)게 벌써 10년이 넘었다.
특정한 동작 말고는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없어 젊은 혈기에 그냥 그렇게 지내다,
왼쪽 수술은 4년 전 마쳤고 드디어 오른쪽 어깨 수술까지 받은게 일주일 전 일이다.
왼쪽 어깨 수술 받은 후 아 이제 웬만하구나 싶은 생각이 든게 그로부터 1년이 넘었을 때의 일이라, 또 그 과정을 겪어야 하는 심난함 때문에,
늘상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야 하는 사람이 거의 그렇듯 만만치 않은 목 부위의 고통 때문에,
수술 받기 전 2주 동안은 에라 모르겠다 하며 거의 매일 취기로 몸과 마음을 달래고 싶어 했고,
걱정스럽지만 내 마음을 아는 아내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술상대를 해주곤 했다.
"나는 다시 결혼한다 해도 너랑 한다"
"허허"
무슨 의미의 웃음인지 원.
수술 하루 전, 역시나 몇잔 걸치고 이런 저런 얘기에 섞여 나온 내 저 대단(?)한 결심의 한마디에 아내는 그냥저냥한 너털웃음 소리만 흘려내고는 별 말이 없다.
멋대가리 없는 여자 같으니라고.
하긴 뭐 30대 여성 설문조사 결과 가장 후회하는 일 2위가 '이 남자랑 결혼한 것'이라니, 내 아내라고 별 수 있겠나 싶고 저렇게 웃고 마는게 진정 그녀다운 모습인 듯도 싶다ㅡ_ㅡ
수술을 받고 병원에 있는 나흘동안, 아내는 아이들을 등교 등원시켜야 하기 때문에 밤 동안은 어머니가 함께 있어 주셨고, 아내는 아침 9시가 조금 넘어서야 병실에 들어서곤 했다.
어머니와 다시 교대하는 저녁 시간부터 아내가 오는 아침까지의 시간동안이 왜 그리 긴지,
아침 9시가 가까와 오면 뭐가 그리 설레이는지 허헛.
"내가 볼때 오빠는 미쳤어."
언젠가 회사 점심시간에 아내랑 통화하다가 '아침 출근 할때 인사하고 엘리베이터 문 닫히자마자 네가 보고 싶다' 라는 얘기를 했더니 대뜸 뱉어낸 아내의 한마디가 귓가에 웽웽 울린다.
"너 밥에 약 타니?"
약기운이 아니고서야 내가 너 같은(?) 여자를 왜 이리 좋아하겠냐 하는 말에도
"좀 심하게 탔나 봐"
라고 받아치는 사람이다.
수술 받은 첫 날은 그만하라 해도 거의 쉬지를 않고 다리를 주물러 주기도 하고, 진저리를 치며 만류를 해도 발가락 맛사지까지 해 준다.
마취 약 탓에 쭈그러든 폐를 다시 원상태로 만들어야 한다며 8시간 동안은 자지 말고 틈틈이 심호흡을 하라는 간호사의 말에 정말 8시간 동안 옆에 앉아서 잠들지 않도록 쉴새 없이 말을 시켜주고 같이 호흡을 해 준다.
"너무 잘 해 주니까 무섭다.."
이 말에 또 병실이 떠나가라 웃어댄다.
아니나 다를까ㅡㅡ;,
수술 받은 다음 날은 또 뭣이 어쩌고 하며 뭔 일 때문에 아픈 사람을 붙잡고 인상 써 가며 투정을 부린다.
이 사람이 아픈 사람한테 뭐 하는 건가 싶어 하도 어이가 없어 눈을 부라리다가 뭔가 짚이는게 있어 뭐라 뭐라 했더니 이내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며 수그러든다.
아효.. 언제 철이 들꼬..
그래도.. 이 어이없음이..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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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내한테 그러는 것처럼, 아내도 나한테 그렇겠지.
남이라면 눈이 휘둥그레 떠질 일도 우리 서로한테는 그게 (아직까지는ㅡㅡ;) 매력으로 느껴지는 거다.
미혼인 후배들에게 술자리에서 한 얘기가 바로 정답인 거다.
"나 우리 와이프 너무 좋아하고, 우리 와이프도 나 되게 좋아하거든. 니들도 니들이 그렇게 느낄 수 있고, 니들을 그렇게 느끼는 그 단 한 사람 꼭 만나라."
그리고 또 더한 애정을 담아 여기 PGR 식구들에게 한마디 더 하고 싶다.
가끔씩 남여가 편을 갈라 쌍수를 들고 설전을 벌이며 더 이상의 웬수가 없다 싶을 정도로 싸워대는 모습을 보며 싸우지 말라, 서로 이해하고 잘 지내자 소리는 하고 싶지도, 소용도 없거니와,
다만 그 웬수같은 와중에도 웬수가 아닐 수 있는 소중한 단 한 사람을 만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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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받은 것 덧 날까봐 1주일을 꾹 참다 드디어 둘이 소주 얼마를 헤치우고,
삼겹살 집을 나와 편의점에 들러 간만에 한보따리 먹거리를 사들고 집으로 들어온다.
아이들은 게임기에 정신이 팔려 또 얼굴들이 벌겋고,
우리 둘은 맥주 한잔씩 더 하며 또 얼굴들이 벌겋다.
웨하스, 오징어땅콩, 조청유과, 썬칩, 꼬깔콘, 오감자,
과자 살 돈이 어딨냐고 늘 외쳐대는 짠순이 아내 덕에 평소엔 잘 먹지도 못하는(ㅠㅠ) 과자 배터지게 먹어대며
오늘 밤에도 철부지 아내와 괴짜 남편은 또 언제 으르렁거리며 싸워댈지도 모르고 그저 좋다고 헤헤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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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다른 아무 무엇도 없이 그저 달랑 짐 하나만 매고 이곳 저곳을 여행하는 누군가를 TV를 통해 보며
정말로, 정말 너무나도 간절하게, 진심으로 너무너무 부럽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지금도 어느 한 구석은 그 순간의 그 누군가의 모습 내 눈 앞에 펼쳐졌었던 그 광경이 사무치도록 부럽다.
하지만 말이다.
우리 두 사람 피가 섞인 아이들이 저렇게 예쁘게 커 가는 모습 보며,
오직 서로에게 유일한 서로가 마주 앉아 아주 잠깐이라도, 그게 착각이라 할지라도, 더 이상일 수 없이 충만한 마음으로 웃음지을 수 있는 이 모습도
꽤 괜찮은 모습이 아닐까.
한번 사는 인생,
이렇게 사는 것도 꽤 의미있는 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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