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집 뒤뜰은 왠만한 집 한 채가 들어설만큼 넓다.
따져보면 뒤 뜰이 원래 집터였고, 지금 우리 집이 들어선
자리가 제법 넓은 채마밭이 있던 자리다. 앞뜰에 새로
집을 얹은 후 원래 있던 집을 허무니 그 게 넓은 뒤뜰이
된 것이다.
그 뒤뜰은 오랫동안 동네 주차장 정도로 쓰이다 오육년
전부터 거기다 어머니가 텃밭을 꾸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고춧대를 몇 이랑 세우는 정도더니 몇 년 사이 손이 느셨는지
이제 호박도 키우고, 갖은 푸성귀에, 올 해엔 오가피 나무까지
한 이랑을 차지하고 들어섰다.
설에 집안 남자들이 모여 둘레둘레 차례를 다니다 우리집
뒤뜰 옆을 지나며 아버지가 한 마디 농을 던지셨다.
"우리 집사람 농장 한 번 봐바라."
뒤뜰 양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던 오랜 감나무 두 그루도
그루터기 체 들어내고 시멘트로 이었던 우물 터도 마저 다독여
이제 뒤뜰 전체가 어머니의 농장이 되었다.
그 곳에서 고추도 나고, 배추도 나고, 집에서 아쉽지 않게
먹을 만큼의 소소한 밑반찬 거리들이 난다.
작년이던가에는 반년만에 집에 내려온 내 손을 끌고 가서
자랑스레 보여준 절구통만한 호박도 난다.
어머니는 농사가 그리 손에 익은 사람은 아니다. 인근에
내노라하는 부잣집 둘째 딸로 자라 집안 농사에 가끔 손을
보태긴 했겟지만 시늉 이상은 아니었던 것 같다.
설에 찾아뵌 큰외삼촌은 어머니의 텃밭 이야기에 대고 우스개
한 마디 던지며 웃으셨다.
"어릴 때 밭일을 시켜보면 어찌나 꼬물대는지 이 쪽 이랑 하나
매면 저 쪽 이랑에 풀 나고, 저 이랑 풀 잡으면 다시 이 쪽 이랑에
풀나고. 그 게 어디 일이 되나."
일 손이 재바른 사람에겐 어머니의 텃밭 일이 속 터질 꼴일지
모르지만, 따로 큰 소출을 기대하고 하는 건 아니다보니 어머니의
텃밭을 두고 흉 볼 일은 아니다.
어머니는 텃밭에서 소출이 나면 조금씩이나마 자식들에게
그 것을 나눠주신다. 작년 가을엔 텃밭에서 난 거라며 고춧가루
한 봉지를 보내셨다. 봄에 고춧대가 들어선 이랑을 본 기억이
있으니 되짚어보면 아마 작은 비닐봉지로 세 봉지 쯤 소출이
났을 것이다.
고추 농사는 손이 많이 간다. 작은 순이 올라 올 때 부터 물 대는
것을 신경써야하고, 좀 자라면 일일이 고춧대마다 지지대를
세워줘야한다. 또 병은 어찌 그리많고 해충에도 약한지 자칫
잠시 손을 놓으면 병이 들어 한 해 농사를 몽땅 말아먹기 쉽다.
어찌어찌 소출을 받아도 그 걸 고춧가루로 만들려면 늦여름 부터
햇볕에 며칠을 차츰 말려야 한다. 비 오면 걷었다, 해 나면 다시
펴고 여간 신경 쓰이는게 아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작은 고춧가루
봉지를 받은 날 어머니께 전화를 내며 그 깟 얼마나 소출이 난다고
여기까지 보냈냐고 퉁퉁거리면서도 눈꼬리가 아파와서 혼이 났다.
뒤뜰 어머니의 텃밭은 이제 그리 삶의 번사가 많이 남지 않은
어머니의 소일거리일 것이다. 자식들에 대한 이런 저런 아쉬움을
달래는 마음의 휴식처일 것이다. 그리고 자식들을 다 키워낸 후
늙어가고 있는 자신의 존재감을 당신 가슴 속에서 다시 일깨우는
장소일 것이다.
설 아래 들여다본 뒤뜰 어머니의 텃밭은 한 겨울을 숨을 죽이며
쉬고 있었다. 잎과 잔가지를 다 털어낸 오가피 나무만 이랑 한 가운데에
소복하게 무리를 지어 덩그라니 서 있었다.
이제 봄이 오면 저 뒤뜰엔 어머니의 발길이 잦아질 것이다.
흙을 뒤엎고 풀을 고르고, 고랑을 잡아주느라 손도 바빠질 것이다.
그리고 이마에서 햇볕 한 줌을 훔쳐내고 잠시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어머니가 말갛게 웃을 것이다.
...zzt
예전엔 풀방구리 제 집 드나들듯 출석부를 찍던 곳이었는데
이젠 PGR에 예전만큼 자주 오지 못하네요.
뭐.. 자주 드나들 때도 그렇게 글을 자주 남긴 편은 아니긴
합니다만...
생각나서 왔다가 왠지 그냥 가기 멀뚱해서 오랜만에
글하나 남깁니다.
박서가 정규 리그에 진출하면 다시 자주 올련지도요..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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