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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9/01/30 01:39:14
Name MDRT
File #1 E0869_00.jpg (141.1 KB), Download : 70
Subject [일반] 아버지의 손.


한때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던 사진 한장이 있었습니다.
강수진의 토슈즈를 벋은 발이었지요.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울퉁불퉁한 발을 보며 감동하고 자신의 삶을 반성하기도 했었습니다.
저역시 홈페이지에 그녀의 사진을 간직하기도 했습니다.
그녀처럼 되고싶었지요

자신의 꿈을 위해서 달려나간 자랑스러운 증거를 저도 갖고 싶었으니까요

며칠전 워낭소리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70분 남짓한 영화는 제게 어떤 감상또는 감정의 과잉이나 공감을 가질수는 없었습니다.
감정으로 처리되어지지 않는 거대한 먹먹함 그자체였습니다.

말로 형용할수 없는 위대함을 느꼈습니다.

소가 살아가는 이유와 주인인 할아버지 인생의 이유에 대한 생각을 할수 있었습니다.
워낭소리는 소와 주인인 할아버지의 우정을 그린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란 화두를 담담히 그려낸 한 소와 한 인간의 이야기입니다.



마지막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서
극장 관객중 어떤 누구도 일어서지 못했습니다. 극장불은 꺼져있고 여기저기에서 훌쩍거림만 들릴뿐이었습니다.

“우리를 키우기 위해 헌신했던 이 땅의 모든 소와 아버지들에게 이 작품을 바칩니다.”

이 한마디에 저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제 아버지가 계속 생각이 나더군요.

영화에서 주인공인 할아버지는 포스터의 손처럼 거친 손을 갖고 있습니다.
맨손으로 을 갈기도 하시니까요. 50년을 넘게 농사를 지으신 증거가 손에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영화내내 할아버지의 손은 저를 눈물짓게 만들었습니다.
제 아버지도 할아버지와 똑같이 매우 거친 손을 갖고 계십니다

인쇄소를 매우 작게 운영하시는 아버지는 여전히 자신이 앞장서 일을 하십니다
매일 종이와 싸우며 여기저기가 베어 많은 흉터와 기계를 다루다 다치셔 두손가락은 구부려지지도 않습니다.

60세가 되신 올해에도 관절염을 가진 어깨를 갖고 또 종이와 기계와 싸우십니다.

좋아하는 것이란곤  소주를 섞은 쏘맥과 국이있는 아침.
그리곤 일을 하시는게 그분 인생의 전부입니다.

언젠가 아버지 일을 돕기위해 공장에 가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아침 여섯시에 찬 바람을 뚫고 30분을 걸어 수색기차역에서 파주행 기차를 타고 운정이란 곳에 내려

난방도 안되는 곳에서 시린손을 비벼가며 기계와 종이와 싸우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긴거리를 불만도 없이 묵묵히 출근하시는 모습이 그렇게 안타까울수없었지요.


10여년 전 경제한파에 자신이 진 빚에 가족들이 괴로워했던 모습을 기억하며 언제나 미안한 마음을 갖고 계신분에게는
그정도의 거리정도는 불만조차 못할 이유였나 봅니다.

밤까지 일을 하고 공장에서 주무셔도,  쉬는 날에 출근을 하셔도 말이죠.


문득 생각했습니다. 과연 어릴때 아버지의 꿈도 이런 삶이었을까 하구요.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 꿈이 뭐냐고 물었을때 쓸쓸한 표정으로 국회의원이라고 말씀하시던 그표정이요.

나중에 아버지 형제들께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6.25때 태어나 전후의 가난한 가정에서 고생만하다 중학교 시절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동생들 학비를 대기위해 중학교를 중퇴하시고 원효로에 있는 인쇄소에서 일을 시작하셨다는 것을요.

6남매중 가장 공부를 잘했음에도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자신의 꿈을 버리셨던 거라는 것을.

나이를 먹을수록 아버지를 조금씩 이해하게 됩니다.
올해 서른이 되어서 좋은건 김광석의 노래가 좋아지고, 아버지를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왜 술을 드시는지.
아주 가끔씩 왜 그렇게 서글피 우시는지를요.

그렇지 않고 세상을 살아가시기에는 너무 세상은 쓸쓸한 곳이었던것같습니다.

당신의 인생을 모두 이해할수는 없지만
이런 삶들을 조금씩 이해하게 됩니다.

저희 아버지는 사회적으로 대단한성공을 이루시진 못하셨지만,
제 아버지의 손이 제게는 강수진의 발보다 더욱더 위대하다 생각되어집니다. (강수진씨의 위대함을 폄하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인생을 위해 노력하며 사는 것보다 자신을 희생해서 남을 살리는 것이 더욱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우리네 아버님들의 손은 모두 거칠겠죠.
그렇게 세상과 어렵게 싸워가며 치열히 저희를 위해 살아오신거겠죠.

오늘 문자를 보냈습니다.
문자 확인도 잘못하셔 처음 온 문자가 화면에 뜬것밖에 보지 못하시지만,

'아버지 사랑합니다'라고.

아버지, 진심으로 키워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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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1/30 01:47
수정 아이콘
꼭 보고싶네요. 저 다큐..
서늘한바다
09/01/30 01:58
수정 아이콘
저도 보고 싶네요... 그냥 눈시울이 붉어질거 같아서 웬지 혼자 가야 할거 같아요...
higher templar
09/01/30 13:27
수정 아이콘
글 잘 읽었습니다. 워낭소리... 너무 슬플까 걱정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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