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 지브리의 젊은 제작자들이 ‘바다가 들린다’의 기획안을 들고왔을 때 원로들은 의아해했다고 합니다. 이런 일상의 잔잔하고 섬세한 이야기를 굳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할 필요가 있나? 마법세계로 떠나지도 않고, 하늘을 나는 것도 아니고, 하다못해 역동적으로 달리거나 만화적 과장도 넣지 않을거라면, 애니여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전통파(?)에게 애니메이션(animation)이란 말 그대로 죽어있던 무언가를 움직이게 하는 (animate) 예술이었고, 실사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어떤 움직임과 그 움직임이 그려내는 멋진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던거죠. 톰과 제리든 신데렐라든 토토로든요. 그게 아니면 왜 배우한테 시키지 힘들게 셀에 그림을 그리고 있냐는 거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학교에서 남학생과 여학생이 서로를 의식하며 미묘한 감정을 나누는 이야기는 매력적인 애니메이션 소재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후의 역사를 알죠. 90년대 이후 일본의 아니메는 학교를 배경으로 삼은 수 많은 꽁기꽁기한 야기를 만들었습니다. 학교에서 스포츠를 하고, 괴물과 싸우고 하면서도 친구들과의 재밌는 에파소드들, 이성과의 묘한 분위기의 순간들, 축제나 수학여행 같은 학창시절의 이벤트들이 촘촘히 채워졌어요.
이건 나름의 전통들의 합이었어요.
터치나 에이스를 노려라 같은 학원 스포츠물에서의 연애 감성 확장, 메종일각이나 오렌지로드 같은 본격 러브 코메디의 등장이 열어 놓은 가능성 위에서, 동급생이나 투하트 같은 일본의 미소녀 게임과 애니화의 성공이 더해져 어떤 ‘여캐’가 나오느냐가 작품의 색깔을 결정짓는 학원물의 전성기가 펼쳐졌습니다.
그 다음엔 메카로 적과 싸우는 비밀 작전 기지든 오컬트 파워로 악마를 막는 조직이든, 사실상 다르게 그려진 학교가 계속해서 배경이 되어 변주되어 왔습니다.
미야자키 선생님, 왜 학교생활이 애니여야 하냐고요? 매력적인 2D 여캐들이 나와서 일상도 함께하고 미션도 해냬야 하잖아요. 이제 시대가 변했습니다.
이런 시기 일본 문화를 접한 바다 건너 한국의 팬들에게 학교는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바로 '원본 없는 복제', 시뮬라크르로서의 '가짜 추억'입니다. 나의 실제 경험을 넘어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이상적인 학교생활에 대한 강렬한 향수를 느끼게 된 것입니다.
요새는 어떤 지 모르겠습니다만, 저 고등학생 때는 남녀가 같은 반도 아니었고, 동아리 활동이란 것도 제한적이었고, 친구들과 농구하고 게임하는 즐거운 기억도 많지만 아니메 속의 학교와 같은 가능성이나 비밀이 숨어 있던 곳은 아니었어요. 그러니 아저씨가 되어 보는 아니메 학교에 대한 상념은 가진 적도 없는 것에 대한 상실감 같은 거죠.
반면에 덴지는 어떤가요. 같이 도망가자는 레제의 제안을 덴지가 거절한 건, 덴지에게는 나의 잠재력을 믿고 나에게 집중해주는 프로페셔널한 시스템, 몰두할만한 흥미로운 경험들, 함께 성장하는 동료들, 매력적이고 개성 있는 여성들과의 이벤트 같은 것들이 있어서에요. 다시 말해, 후지모토 타츠키의 뒤틀기로 가득차 있더라도, 덴지는 아니메 학교를 다니고 있었던 겁니다.
반면에 현실에서 우리는 소련의 살인 병기로 키워진 적은 없지만, 솔직히 공부 병기가 되기를 노골적으로 바라는 곳에서 경쟁에 모든 것을 걸라고 배우며 자랐잖아요. 우리는 시골쥐였지만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모든 것을 뒤로 미루며 책상 앞에 앉아있던, 도시쥐의 실패를 몹시 두려워한 시골쥐였습니다.
덴지와 레제가 이런 곳일까 상상하며 놀던 교실과 수영장 속에서 바라본 그 파아란 하늘이 있는 곳이 학교라면, 우리도 학교에 다녀 본 적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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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래도 리뷰이니 평가를 허겁지겁 하자면 체인소맨 레제편은 환상적인 허구를 멋진 움직임으로 잡아냈다는 전통적인 가치와, 학교에서의 섬세한 연애 감정이라는 오타쿠적 로망을 함께 잡아낸 수작입니다. 아니메를 본다면 놓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