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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5/09/18 13:46:32
Name 슈테판
Subject [일반] 종교개혁의 디테일 (수정됨)
최근 The reformation(종교개혁)이라는 테마에 꽂혀 있습니다. 종교개혁에 관해 세계사 시간에 얼핏 배운 수준의 내용을 바탕으로 만들어져 있었던 제 나름의 막연한 줄거리는 아래와 같았습니다.

- 중세 서유럽은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카톨릭 교회의 지배 시스템이었다.
- 카톨릭 교회는 면죄부(면벌부)를 발행하여 일반인들의 경제적인 부담을 가중하였다.
- 독일 비텐베르크의 사제 마르틴 루터는 면벌부를 비판하는 95개조 반박문을 게시했다.
- 독일인들이 이에 호응하여 종교개혁이 진행되고 독일은 신교 세력과 구교 세력으로 양분되었다.
- 유럽인들도 이에 호응하여 유럽 전체가 신교 세력과 구교 세력으로 양분되었다.
- 유럽이 30년 전쟁에 휘말리고 독일이 그 무대가 되며 결국 각국의 신앙을 존중하는 베스트팔렌 체제가 성립되었다. 이 과정에서 교황권은 약화되고 세속 왕권이 강화되었다.

이 정도만 알고 있어도 대강의 흐름을 파악해 오는데는 불편이 없었지만, 몇 권의 책을 찾아 읽으며 디테일을 추가로 알게 되니 흥미로웠습니다.

- 중세 서유럽은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카톨릭 교회의 지배 시스템이었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면서도 틀린 말이고 실상은 더 복잡합니다.
 
이미 로마 교황청은 소위 아비뇽 유수를 겪으며 프랑스 아비뇽 교황청과 이탈리아 로마 교황청이 분열되는 등 헤게모니가 상당히 손상되어 있었습니다. 프랑스 교회는 갈리아주의를 내세우며 종교 영역에서도 민족적 독자성을 주장해 오고 있었고, 독일에서는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권력이 압도적이었습니다. 볼테르가 신성로마제국을 신성하지도 로마도 제국도 아니었다고 조소한 것은 신성로마제국이 종이 호랑이가 다 된 18세기 가서 이야기이고, 종교개혁 시대의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권력은 명실상부 제국 황제의 권력이었습니다. 

로마 교황청도 이탈리아에서 영향력이 있었지 독일에서 루터를 직접 처벌할 집행력은 없어 독실한 카톨릭교도였던 신성로마제국 황제 칼이 직접 루터를 보름스 의회로 불러들여야 했습니다.

- 카톨릭 교회는 면죄부(면벌부)를 발행하여 일반인들의 경제적인 부담을 가중하였다.

카톨릭 교회의 면죄부 제도에도 나름의 논리는 있었습니다. 성인들이 공덕을 쌓으면 누군가는 자신의 죄를 씻는 이상의 공덕을 쌓을 수도 있습니다. 그 공덕이 허망하게 사라질 리는 없고 어딘가(천국 창고)에 보관됩니다. 천국 열쇠를 가진 베드로의 후계자 교황이라면 그 공덕을 빌려 대사면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그 대사면이 지나치게 빈번해지면서 희소성이 떨어졌습니다. 나중에는 면죄부라는 증서를 발행하여 판매하는 식으로 남발되었습니다. 처음 한 두 번은 감동적입니다. 그러나 대사면과 면죄부 마케팅으로 재미를 본 바티칸은 이러한 이벤트를 남발합니다.
 
레오 교황은 성 베드로 성당의 건축을 위해 유럽 각국 귀족과 제후들로부터 기금을 미리 받고 대신 이들에게 면죄부 판매 권한을 위탁합니다. 일단 너희 돈으로 대성당 건축비를 내고 그 다음에 너희가 내 권능을 빌려 면죄부를 발행해 팔아서 충당하여라.
 
이 과정에서 면죄부의 부당한 강매, 여러 차례 발행된 면죄부 간 효력의 충돌, 기존 면죄부의 효력 문제, 면죄부 판매 과정에서의 과도한 마케팅, 카톨릭 교리에 어긋나고 미신의 수준으로 떨어진 마케팅 등의 폐해가 심각했고, 로마에서 멀리 있는 독일에서는 더욱 극심했습니다. 이러한 면죄부 제도의 폐해에 대하여는 유럽 지식인들 대다수가 비판했고, 심지어 이탈리아 본국 성직자들 포함 로마 카톨릭 지식인들도 공감했습니다.

- 독일 비텐베르크의 사제 마르틴 루터는 면벌부를 비판하는 95개조 반박문을 게재했다.

마르틴 루터는 구체적으로는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의 사제였습니다. 루터는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사로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수입해 카톨릭 신학을 체계화한 아퀴나스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에 있었습니다. 루터가 오캄주의에 가까웠다는 진단도 있습니다. 루터는 자신의 신학적 입장을 담은 반박문을 몇 차례 발표하는데 이는 당대의 통상적인 토론 관행이었고 면죄부는 그 중 하나의 각론이었습니다. 그런데 면죄부에 대한 신랄한 비판 내지는 비아냥을 담은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이 당시 시대 상황과 맞물려 독일 전역에서 선풍적인 반응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 독일인들 다수가 이에 호응하여 종교개혁이 진행되고 독일은 신교 세력과 구교 세력으로 양분되었다.

지역별 차이가 있지만 루터파의 영향력이 압도적이었습니다. 특히 출판물의 양만 비교하면 루터의 출판물 또는 루터파의 출판물은 반루터파 카톨릭 진영의 출판물을 현저히 압도했고, 배 이상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도시민들과 농민들은 거의 루터의 입장을 지지했고, 읽고 쓰는 사람들은 대부분 루터의 소비자였다고 보아야 합니다. 심지어 성직자들조차도 아우구스티누스회를 비롯 상당수가 루터를 지지합니다.

- 유럽인들도 이에 호응하여 유럽 전체가 신교 세력과 구교 세력으로 양분되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사태의 절반만을 묘사합니다. 신구 갈등 이상으로 신교 세력이 더 크게 분열되었습니다. 비유가 적절할 지는 모르지만, 마치 중일전쟁의 시대에 국공내전이 병행되었고 국공내전이 못지 않게 파괴적이었듯, 구교와 신교의 싸움 이상으로 신교 내의 노선 갈등도 파괴적이었습니다.

루터는 면죄부 반대 뿐만 아니라 세례와 성찬 이외의 성사의 폐지, 교황제에 대한 비판, 공의회의 개최 등을 주장하는 후스주의적 입장으로 나아갔고, 독일의 영주들과 귀족들이 이에 호응하며 루터를 비호했습니다.

한편 루터는 성서에 대한 강조, 만인제사장주의 등도 주장했는데, 이 측면에 주목한 개혁자들은 루터보다 훨씬 급진적인 사회운동으로 나아갑니다. 뮌처가 대표적인 인물이고 루터의 영향을 받은 상당수의 성직자들과 농민들이 반봉건제를 내세운 농민 반란에 참여합니다.

농민 반란은 성서에 근거하여, 만인평등을 천명하며, 봉건영주의 과도한 수탈과 착취를 금지 제한할 것을 요구하고, 이 모든 요구의 옳고 그름을 다시 성서에 근거하여 논의할 것을 요구하면서 대규모 무장 행동으로 발전합니다.

농민 운동에 대해 영주들(심지어 신교파 영주들)은 탄압과 학살로 응징하는데, 사실상 독일 전역을 뒤덮은 내전이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루터는 철저히 영주들을 비호하고, 농민반란파와는 단절하며, 루터파는 제도권에 편입됩니다.

- 유럽이 30년 전쟁에 휘말리고 독일이 그 무대가 되며 결국 각국의 신앙을 존중하는 베스트팔렌 체제가 성립되었다. 이 과정에서 교황권은 약화되고 세속 왕권이 강화되었다.

이미 루터 생전에 독일 신교 진영 영주들과 구교 진영 영주들은 각기 동맹을 형성하며 대치합니다. 신교 진영 영주들은 슈말칼덴 동맹을 만들어, 신성로마제국 황제 칼 5세에게 영주들의 신앙의 자유를 주장 요구합니다. 한편 당시 칼 5세는 신교 영주들의 요구를 아주 무시할 수는 없는 정치적 상황이었습니다. 동쪽에서는 투르크 군대가 발칸을 누비며 비엔나까지 다가올 정도로 위협적이었고, 남쪽에서는 이탈리아 로마 교황청과도 대치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한편 당시 로마 교황들은 루터 문제에 있어서는 독일 제국과 입장을 같이 하며 황제의 힘으로 루터를 제거하려고 했으나 정치적으로는 독일 황제에 대항하는 독자적인 연합을 형성하려 하며 독일 황제의 심기를 거스르다가 독일 군대에 의해 로마 원정까지 당합니다. 교황권은 이미 약해질 때로 약해진 상황이었습니다.

루터의 생전 그리고 사후 독일 신교 영주 동맹과 황제 및 구교 영주 동맹은 몇 차례 엎치락 뒤치락을 거칩니다. 황제와 구교 동맹이 신교 영주 동맹을 박살내기도 하지만, 위에서 말한 지정학적 상황으로 인해, 그리고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는 루터파의 세력 확장으로 인해 결국 제국은 프로테스탄트 영주들을 아예 배제하고 갈 수는 없었습니다. 최종적으로는 아우크스부르크 화의를 통해 각자의 종교의 자유를 존중하기로 하는 합의를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신교 세력과 구교 세력의 갈등은 잠재해 있었고, 한 세대 정도가 지나서야 다시 30년 전쟁으로 발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을 계기로 한 교황권의 약화와 속권의 강화는 틀린 말이 아닌 것이, 정치권력이나 군사력의 차원이 아니라 사회생활의 차원에서 뚜렷하게 진행됩니다. 독일과 북유럽에서는 성직자들과 수도사들이 로마 카톨릭의 체제에서 이탈해, 독일의 신교도 제후국들에 소속된 교회를 설립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루터파 성직자들은, 사회생활의 많은 영역을 규율하는 권한을 교회가 아닌 세속국가가 행사하도록 합니다. 법의 영역에서는, 교회법의 규율 범위가 줄어들고, 세속의 법에 의한 규율의 범위가 확장됩니다. 루터파 법학자들은 독일의 법체계를 정돈하여 이러한 변화에 부응합니다. 

종교개혁은 독인인들 나아가 유럽인들의 생각과 삶의 방식을 바꾸어 버렸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전술적으로는, 프로테스탄트 동맹 측이 패배한 적이 더 많다고 할 수 있고, 로마 카톨릭과 신성로마제국을 무너트리는데 성공한 것도 아니었으나, 사람들의 생각과 삶의 방식을 바꾸는 데 성공한 이상, 정치적 패배에도 불구하고, 개혁을 되돌릴 수는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내용상 오류를 지적해 주시거나 더욱 흥미로운 디테일들을 추가해 주시면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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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쥐
25/09/18 13:50
수정 아이콘
종교 개혁이라든지 유럽 중세라든지 르네상스라든지 이런 사건에 대해 구도 대 구도로 단순화시키면 빠지는 게 많고 되게 복잡한 디테일이 있더군요..
슈테판
25/09/18 14:09
수정 아이콘
정말 그렇습니다. 세계사 교과서나 먼나라 이웃나라 수준의 지식만 가지고 있었지만, 찾아 읽으면 읽을수록 디테일은 다르더라구요.
15년째도피중
25/09/18 16:11
수정 아이콘
나름 루터 관련 뭐 좀 들춰봤다고 제가 아는 수준에서의 첨언을 하고 싶었는데 "루터는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사로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수입해 카톨릭 신학을 체계화한 아퀴나스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에 있었습니다." 부분을 보고 패배를 선언하고 물러납니다. 제가 주로 아는 건 루터가 빨간 머리에다 수녀와 결혼했다는 이유로 이들의 결혼이 악마의 결합이라고 비난받더라는 둥의 곁다리 이야기들이라...크크

아직도 신학 부분은 봐도 봐도 어렵네요. 대충 이해하자면 루터는 원론주의자, 근본주의자에 가깝다. 아퀴나스 주의라는 것은 그의 신학 대전을 통해 '이성'을 더욱 강조한 개념에 가깝다고 봐야 할까요? 저는 이것을 나름 로마 교황청의 천여년 간의 '신앙과 이성의 주도권 싸움에 대한 종전 선언'정도로 이해했습니다만, 왠지 실상은 더 복잡할 것 같군요. 잘 읽었습니다.
25/09/18 16:21
수정 아이콘
신학이 신이 우리를 만들었으니 찬양해야함 헤헤 처럼 취급받지만 중세철학 그 자체죠 크크크크
슈테판
25/09/18 18:01
수정 아이콘
사실 저도 아퀴나스주의에 대하여 하나도 모릅니다. 그냥 아우구스티누스주의는 좀 더 플라톤주의적이고, 아퀴나스주의는 좀 더 아리스텔레스주의적이다 라는 정도만 알지 디테일을 모릅니다. 전자가 신앙을 보다 강조하고, 후자가 이성을 보다 강조했다고 하지만, 디테일에 들어가면 그것도 꼭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샤한샤
25/09/18 17:00
수정 아이콘
대충 어 개신교라는게 생겨났대~ 라고 퉁치고 있다가
가만.. 옛날에 루터파랑 칼뱅파랑 별개라고 배웠었지? 에서 시작해서 조금 파고들어가보면 진짜 혼돈도 이런 혼돈이 없죠

그러므로 여러분 크루세이더 킹즈와 유로파 유니버살리스 하세요
양성론 합성론 성상파괴주의 단성론 아리우스파 네스토리우스파 후스파 다 배울 수 있습니다~
슈테판
25/09/18 18:02
수정 아이콘
좋은 게임들을 추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류지나
25/09/18 19:41
수정 아이콘
구교 대 신교의 갈등은 교과서에서 묘사하는데, 정작 신교도 내부의 루터파 대 칼뱅파의 대립은 왠만하면 잘 언급이 안 되더라구요. 루터파와 칼뱅파는 서로를 카톨릭보다 더 미워했다고 할 정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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