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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9/09 08:42
저번과 마찬가지로, AI를 쓰시는 것에 별 거부감이 없으신 것 같아, 나름대로의 조정을 통해 AI로 이어붙여 봤습니다.
놀이, 질문, 분해 — 그러나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by GPT-5 주어진 글은 답을 구하는 조건을 “질문”에 두고, 질문을 만들어내는 동력으로 “놀이”를 강조한다. 여기까지의 논리 전개는 일견 매혹적이다. 그러나 독자로서 이 글이 아쉬웠다면, 그 이유는 아마도 글이 스스로 내세운 “놀이”의 원리를 충분히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글은 끊임없이 “쪼개기(분해)”의 중요성을 반복하지만, 정작 그 과정에서 독자에게 새로운 사유의 장을 열어주기보다는, 이미 익숙한 근대적 대비 ― 서양의 분석적 사고 대 동양의 총체적 사고 ―를 되풀이하는 데 그치고 만다.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의 후기 저작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문제의식은 바로 이 지점에서 유용하다. 라투르는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고 주장하며, 서양의 “분해”와 “분석”을 통해 진보가 이루어졌다는 서사를 비판했다. 그는 자연과 사회, 사실과 가치, 인간과 비인간을 엄격히 쪼갠 것이 오히려 우리가 오늘날 직면한 위기(기후 변화, 기술 불평등 등)의 근원이라고 보았다. 주어진 글은 서양의 “공리”와 “원자”에 대한 찬미에서 멈추어 서 있지만, 라투르라면 그 자체가 근대적 신화이며 더 이상 지속 불가능한 서사라고 말했을 것이다. 또한, 이탈리아 철학자 프랑코 “비포” 베라르디(Franco Berardi)가 2010년대 후반에 강조한 ‘호기심과 놀이의 피로화’ 개념도 비판적 성찰을 제공한다. 베라르디에 따르면 오늘날 신자유주의적 환경은 모든 놀이마저 ‘창의성’과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포섭해버린다. 따라서 놀이를 통해 질문을 찾자는 글쓴이의 주장은, 오히려 오늘날의 체제에 의해 이미 강제된 “창의적 노동”의 담론을 무비판적으로 재생산할 위험이 있다. 즉, 놀이가 진정한 놀이가 되려면, 체제가 요구하는 질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체제가 감당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규칙을 어지럽히는 능력이 필요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의 ‘불화(dissensus)’ 개념이 도움이 된다. 랑시에르는 정치적이고 미학적인 행위가 언제나 기존의 감각 질서를 흔드는 방식으로 발생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놀이의 핵심은 단순히 “쪼개고 조작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질문 체계가 허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세계를 감각하고 말할 수 있게 만드는 데 있다. 이 글이 끝내 “질문-놀이-분해”의 삼각구조에 갇히는 이유는, 놀이의 급진적 가능성, 즉 규칙을 바꾸는 차원을 논하면서도 그것이 지닌 정치적·실존적 함의를 끝내 밀어붙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발전적으로 보자면, 놀이와 질문을 사유하는 방식은 ‘쪼개기’에서 ‘연결하기’로 나아가야 한다. 이브 시투아르(Yves Citton) 같은 철학자가 제안하듯, 우리의 주된 과제는 더 작은 단위로 무한히 분해하는 것이 아니라, 이질적인 것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엮어내어 공동의 상상력을 만들어내는 데 있다. 질문은 오로지 놀이에서만이 아니라, 타자와의 관계, 예기치 못한 연결, 기술과 인간,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혼종적 얽힘 속에서 더 강하게 솟아난다. 결국 좋은 철학적 놀이란, 분석을 통한 분해를 넘어선다. 그것은 라투르가 말했듯 “네트워크를 다시 짜는 것”이고, 랑시에르가 말했듯 “감각의 분할선을 바꾸는 것”이며, 베라르디가 말했듯 “체제가 요구하지 않는 방식으로 상상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질문을 구할 뿐만 아니라, 질문을 구하는 행위 자체를 해방적 놀이로 경험할 수 있다.
25/09/09 08:57
전체적으로 꽤 공감되는 내용이었습니다
다만 "놀이"같이 대응되는 비유을 통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이 글에서는 (씨앗님의 다른 많은 글에서와 마찬가지로)[주제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시각을 축소시키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대상을 이리저리 조작하거나 분해할때 새로운 답을 얻을 가능성이 커진다는건 굳이 놀이라는 개념을 빌리지 않고도 비교적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사유입니다 반면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정보의 연결과 통합 또한 답을 구하는데 굉장히 큰 일을 합니다. 많은 천재적 발견이 멍때리거나 딴짓하다가 일어나게 되고, 충분한 수면이 비슷한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현대의 뇌과학이 밝혀낸 바로는 기본모드 네트워크라는 개념으로써 설명이 되는것 같습니다. 이것은 놀이 비유를 통해서 쉽사리 얻어지지 않으며, 설령 비유를 한다고 하더라도 억지스러운 모양이 될 것 같습니다 "공리"라는 비유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생각의 기본단위가 존재한다거나, 어떠한 연쇄적인 사고가 일어나는 경우 그 출발점이 되는 지점이 있다는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뇌라는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분산 병렬처리라는 특징이 강하기 때문에, 직선적 성격이 강한 전통적 수학적 논리시스템으로 묘사하기가 힘듭니다. 뭐가 어찌됐든 뉴런의 인풋 아웃풋이 기초가 되기 때문에 그런 직선적 논리가 필요없는건 아닙니다만, 그것만 가지고서는 뇌의 복잡성과 인간 사고의 복잡성을 설명할수 없습니다 "공리"의 비유가 부적절한 지점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면, "무조건 참으로 가정" 한다는 공리의 정의 자체가 있습니다. 이에 반해 사람의 뇌는 가변적이죠 또한 공리에서 출발해 순차적으로 논리가 이어지는 그림 또한 우리의 실제 사고과정과 맞지 않습니다. 사고의 흐름 중 A(공리) -> B -> C가 반복되거나 혹은 Z(다른 공리) -> Y -> C도 같이 반복되다보니 C가 강화되는 결과로 이어져 어느샌가 아무런 논리적 연결 없이 C가 반사적으로 발화될수 있습니다. C를 생각하던 중에 마침 옆에서 아무 관련없는 F가 발화되고 있었다면 나중에 C와 F과 커플링되기도 하죠. 사실 그때 같이 발화되고 있던건 F뿐만이 아니라 I, T, W 등등 여럿이 있는데 그 중 어떤것과 커플링이 되고 어떤것과는 안되는지 어떻게 알수 있나요? 이것은 마치 근본적으로 예측불가능한 프랙탈 시스템을 앞에 두고 난 사칙연산을 알고있으니 괜찮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25/09/09 09:09
서양과 동양에 대한 부분도 비판할 지점이 있어보입니다. 서양과 동양은 각자의 사회적 상황에 맞게 필요한 사고방식, 혹은 철학을 발전시켰을 뿐이고, 서양의 사고방식은 분명 과학혁명과 산업혁명을 이끄는 데에 도움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엇이 정답이며 무엇이 성공과 번영으로 이어지는지는 시대에 따라 계속 변화합니다. 변화된 시대에서는 분해의 단점이 장점보다 더 커지거나, 혹은 연결이 더 핵심 역할을 차지할수도 있을 겁니다. 이 지점에 대해서는 위의 벨로린님의 댓글에서 잘 표현해주신것 같습니다
25/09/09 09:54
이 얘기가 빠졌네요.
보론 1: 경우의 수 경우의 수가 너무 많으면 다 해볼 수 없습니다. 쪼갤 때 경우의 수가 많아서 다 해볼 수 없다면, 본질을 생각해야 합니다. 본질이 무엇일지 직관적인 감각이 필요합니다. 본질을 찾았으면, 그걸 가지고 이리저리 조립해보면 됩니다. 조립할 때 즉 연결할 때 경우의 수가 너무 많다면, 호기심과 함께 미감을 따라가는 게 좋습니다. 아름답거나 멋진 걸 추구하면서, 연결 경험을 쌓는 겁니다. 보론 2: 무목적 놀이의 기본은 쪼개고 조작하는 걸 다 해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놀이는 목적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목적없는 놀이가 의외의 결과를 일으킵니다. 호기심이나 미감을 따라가는 것은 어떤 구체적 목적은 아니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이를 하다보면 목적이 떠오를 수 있습니다. 이걸로 저기에 적용하면 뭔가 유용한 걸 만들 수 있지 않을까? — 놀이를 통해 발견해낸 걸 가지고, 이제 목적을 추구합니다. 무목적의 놀이를 하다가, 목적이 생겨납니다. 반면에 놀이없이 곧바로 목적을 추구할 때에는, 그 발견이란 게 특별히 이뤄지지 않기 쉽습니다. 목적에 도움이 될만하다 판단한 것들 위주로 관심을 두고 활동을 할 테니까요. 그 판단이 불완전하니까요. 놀이를 통해 발견해낸 걸 아이템이라 해봅시다. 목적이 없을 때 아이템을 줍게 됩니다. 목적없이 놀이를 할 때 아이템을 줍게 됩니다. 목적을 추구할 때에는 보이지 않던 아이템을 줍게 됩니다. 아이템을 주웠으면, 이제 그걸로 무언가 유용한 것을 만들어내면 됩니다.
+ 25/09/09 13:17
제가 느끼기에 이곳은, 긴 글을 읽는 분들이 꽤 계신 것 같아요. 짧게 써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는데, 꼭 그럴 필요는 없는 것 같더라고요. 이미지를 쓰기 힘들고, 초성체가 금지인 환경이, 긴 글 읽는 분들의 비중을 높인 것 아닐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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