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지란 무엇인가 ::
서론
의지가 무엇인지는 상당히 난해합니다. 쇼펜하우어는 표상에 대해서는 과학적으로 설명해놓고, 의지에 대해서는 신비주의적으로 설명했습니다. 목적론적이고, 난해합니다. 우리는 복잡하거나 모호하거나 불확실한 것에 대해서, '다양한 관점'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 관점 중 단순한 하나를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P. 의지는 공리입니다.
본론
수학이나 물리학에서 참이라 간주되는 걸 '공리'라 하죠. 공리는 증명된게 아닙니다. 간주된 것입니다. 논리를 이야기할 때, '전제'도 공리에 해당합니다. — Q. 의지란 무엇인가! — P. 의지는 공리입니다. 인간 정신에 있는 '공리'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공리는 창조될 수 있습니다. 개인이 스스로 생성할 수 있습니다. 내가 나의 공리를 스스로 창조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자신의 공리를 스스로 창조할 수 없다면, 인간이 기계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이미 설정되어 있는 공리들로 그저 기계적인 프로세싱으로 돌아가는 존재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혹은 그저 우연에 따라 변덕스럽게 돌아가는 무의미한 존재란 의미일 것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공리를 창조하는 존재입니다.
관우 : 배신은 없다.
루피 : 해적왕이 될거야.
그의 공리가, 그가 누구인지 설명합니다. 그가 갖고 있는 공리 중에서, 그가 스스로 창조한 공리가, 그의 본질입니다. DNA도 공리이긴 하죠. 그러나 이는 운에 의해 주어진 공리입니다. 스스로 생성한 공리와 동일한 자격이 있다고 보기 곤란합니다.
'인간은 목적이지, 수단이 아니다.'
이런 말이 있죠. 저는 이렇게 해석합니다. 인간은 스스로 의지를 생성하는 존재이다. 목적론적 발언을, 생성론으로 바꿔서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게 된 원인 중 하나는 니체입니다.
니체 초인사상에는 낙타, 사자, 아이가 나옵니다. 그중 사자가 바로 '의지'를 생성하는 존재입니다. 이 글의 관점으로 니체를 해석하자면, 사자는 용의 명령 즉 기존 공리를 부정하고, 새로운 공리를 설정하는 존재입니다. 공리axiom은 정리theorem을 생성하죠. 공리는 참이라 간주된 것이고, 정리는 공리에 의해 참이 된 것입니다. 공리에 의해 정리가 생성되는 과정은 아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공리계 관점에서 본 니체의 초인사상입니다. 다시 결론을 적어놓겠습니다.
P. 의지는 공리입니다.
그런데 이건 단순하게 말한 것이고, 실제로는 이렇게 봐야 진실에 더 가까운 말이 될 것입니다. 의지에는 근력과 체력이 있습니다. 의지에는 맥락이 있습니다. 근력과 체력에 한계가 있고, 맥락에 따라 발현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무한한 근력과 무한한 체력을 갖고, 어떤 맥락과 조건에 관계없이 발현되는 의지 — 그런 건 아마도 신이 가질 수 있는 의지일 것입니다. 인간은 무한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의지를 공리라 해석할 때, 그걸 완고한 의미로 해석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가진 공리들끼리 충돌날 수도 있습니다. 수학이나 물리학의 공리계라면, 모순없이 잘 정돈되어 있는 것이겠지만, 인간 정신에 있어 공리는 충돌이 나고, 힘싸움을 해야 합니다.
의지가 있는데, 두렵다면 어떨까요?
의지가 있는데, 수치스럽다면 어떨까요?
의지가 있지만, 자랑하고 싶다면 어떨까요?
의지가 있지만, 칭찬받고 싶다면 어떨까요?
의지에는 근력과 체력이 있고, 맥락이 있습니다. 삼국지의 관우는 '배신은 없다'라는 공리를 조조에게 테스트받은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공리가 대체 얼마나 강한지를 시험받은 것입니다. 조조가 관우를 극진히 대하고, 적토마까지 선물해줬는데, 형님인 유비가 어디있는지 알게 되자, 유비의 가족들을 데리고 탈출합니다. 조조가 아무리 잘 대해줬어도, 관문들을 지키는 조조의 군대를 베어버리고 유비를 향합니다.
인간은 의지를 생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의지에 복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창조한 의지에, 자신이 복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때 명령자가 복종자를 착취해서는 안 됩니다. 명령자와 복종자가 함께 기뻐야 합니다. 니체는 그것에 '자유'라는 의미를 부여한 듯합니다. '의지의 자유'에 대해서 논하면서 그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의지에 복종하는 훈련이 바로 '낙타'입니다. 초인사상의 낙타입니다. 낙타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기뻐합니다. 고통과 기쁨이 함께 있습니다. 더욱 무거운 짐을 달라고 합니다. 가장 무거운 짐을 갈망합니다. 초인사상의 첫 단계가 바로 복종훈련인 것입니다. 처음에는 남의 명령에 복종했더라도, 그건 훈련과정일 뿐, 사자가 되어서 명령을 거부하고, 스스로 의지를 창조합니다.
스스로 창조한 의지가 있고,
의지에 복종하는 훈련이 갖춰져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 단계가 진행됩니다. 아이는 순수한 존재이고, 놀이하는 존재입니다. 자신의 의지에 따라, 자신의 나머지 정신이 조직됩니다. 마치 수정란이 DNA에 따라 몸을 조직하듯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정신이 조직됩니다. 그 과정에서 기쁨이 있습니다. 공리에 따라 정리들이 생성됩니다. 그 과정에서 기쁨이 있습니다. 습관은 정리의 일종이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의지에 따라 습관들이 생겨납니다. 의지에 따라 눈에 보이는 것도 달라집니다. 관찰에 공리가 적재되어 있습니다. 의지에 따라 인식들이 생겨납니다. 그리고 물론 의지에 따라 행동이 달라집니다.
P. 의지는 공리입니다.
다만 이는 의지를 보는 다양한 관점 중 하나입니다. 의지를 수학에서 공리에 해당하는 거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공리를 스스로 창조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두고 어떤 관점에서는 자유라 부를 수 있습니다. 의지를 창조할 수 있고, 그 의지에 복종할 수 있고, 이로써 기쁨을 느끼면, 자유라 할 수 있습니다.
보론 1 : 시적 공리
의지는 명시적으로만 작용하는게 아니라, 마치 시처럼 무의식적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무의식적으로 의지의 명령이 활동하고, 이에 대한 복종이 활동합니다. 그걸 일일이 확인할 수 없고, 일일이 감시할 수 없으며, 의식적인 선택으로 일일이 다룰 수 없습니다.
보론 2 : 칸트와 니체
칸트는 <판단력비판>에서 두 가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첫째는 순수이성과 실천이성에 대한 메타적인 설명입니다. 그것의 핵심 키워드는 목적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미적 현상과 천재에 대한 설명입니다. 바로 이 둘째가 니체의 초인사상과 연결되는 거라고, 저는 이해합니다. 즉 초인사상은 미적인 것이며, 또한 인간의 천재성을 키우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천재가 명시적으로만 자신의 정신을 지휘할 수 없습니다. 무의식의 창조적 힘이 필요합니다. 예술가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니체는 고대 그리스에 빠져있던 사람이었고, 고대 그리스는 탁월성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미적 문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니체는 소크라테스가 그걸 훼손했다고 생각하고, 소크라테스를 맹비난한 것으로 이해합니다.
인간정신은 지적인 면에서뿐만 아니라, 인격적인 면에서도 무의식에 상당히 의존합니다. 욕구가 일어난 다음에 그 욕구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가 인격이라 생각하지만, 애초에 어떤 욕구가 일어나며, 어떤 타이밍에 일어나는지, 그 욕구와 함께 다른 어떤 욕구가 함께 일어나는지, 이런 것들도 인격적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마 그 인과관계에 신경회로가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불안에 시달리고, 그 불안을 잠재우려고 생각을 길게 일어나갑니다. 그러나 불안은 해소되지 않으니, 생각을 지나치게 하게 되고 그 결과 점점 정신이 쇠퇴해갑니다. 그런데 초인사상은 이러한 인격적인 것을 미적 현상을 통해 조화시키고 조직하려는 것이라 이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니체가 이런데 관심을 가진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그가 건강하지 않은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확실치는 않지만,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전병이 있었던 걸로 압니다. 불건강 → 건강 → 고귀 → 신 ::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불건강에서 건강으로 가는 방법을 찾았고, 그걸로 만족하지 않고 고귀해지는 낭만을 가졌던 것입니다. 고귀는 그리스 신화에서 영웅에 해당합니다. 인간과 신의 중간항이죠. 니체 철학은 건강철학이고, 생성철학이고, 미적철학입니다. 제가 볼 때 그렇습니다. 그리고 영웅주의적 성격이 있습니다. 헤겔의 전체주의와 대조적으로, 니체는 개인주의적입니다. 그를 선해하자면 — 영웅같은 개인들이 세상에 출현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줄 것이니, 나는 초인들을 탄생시키는데 공헌을 해야겠다. — 이렇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보론 3 : 데이비드 흄
참고로 저는 제 스승이 흄이라 생각합니다. 개연적 사고를 하고, 생동성 개념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경험주의자이고, 단순성을 추구합니다. 이 글의 맥락입니다. 의지라는 매우 난해한 것을 극단적인 미니멀리즘으로 설명했습니다.
P. 의지란 공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