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질문지, 질문지, 질문지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장애를 가진 아동들이 재활 치료라는 걸 시작하려면 진료부터 봐야 한다. 어느 병원이든 마찬가지다. 진료에 따라 재활 프로그램 자체가 크게 달라지는 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결국 움직이지 않는 근육을 움직이게 해 주고, 기능하지 않는 신체 기관을 기능하게 해 주는 것이기에 세부 내용과 진행 순서 등에서는 차이가 있을지언정 쓰는 도구나 방법론은 거기서 거기다. 그래서 전국 어디든 재활실마다 분위기나 생김새가 크게 다르지 않기도 하다.
게다가 진료라는 것도 대부분 설문 형태를 띠고 있다. 이 역시 대동소이하다. 의사가 아이를 이리저리 살펴서 병명을 정답지처럼 딱 내주기를 기대한다면, 실망이 클 것이다. 진료실에 들어가기 전에 아동이 평소 보이는 행동이나 발달 과정에 대해 묻는 수많은 질문들에 대한 답을 부모가 먼저 작성해야 한다. ‘이름을 부르면 쳐다보나요?’, ‘두 손가락으로 콩을 집을 수 있나요?’, ‘계단을 5개 이상 혼자 오를 수 있나요?’, ‘니은이나 디귿과 같은 자음을 발음할 수 있나요?’, ‘엄마를 쳐다보면서 엄마라고 부르나요?’
아내가 하도 이 센터 저 병원을 돌아다니는 통에 우리는 이런 질문지들을 꽤나 많이 작성했어야 했는데, 이게 무슨 짓인가 싶었다. 어차피 아기 상황을 의사가 판단해 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부모에게 묻는 형국이고, 그 진료 결과에 따라 재활 프로그램이 크게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센터나 병원에 갈 때마다 같은 일을 반복하니 짜증이 났다. 게다가 우리 아이의 경우 ‘진료 결과’라고 할 만한 게 나온 적도 없었다. 다들 “너무 어려서 확정할 수 없고, 더 지켜봐야 한다”는 답을 이리저리 다양한 표현으로 할 뿐이었다. 나중에는 의사가 뭐라고 할지 예상한 채 진료실에 들어갔고, 토씨 한두 개 틀린 것에 불과한 답을 2분 만에 듣고 나오기도 했다.
어느 날 접수대에서 비슷한 질문지를 받아 들고 온 아내한테 애꿎게 짜증을 냈다.
“또 질문지야? 이번 의사 레퍼토리 내가 맞춰볼까? 아니, 당신도 다 알지 않아?”
노련한 아내는 이미 진작부터 내가 풍겼던 분위기를 통해 내가 짜증 낼 걸 감지했는지 별다른 대꾸 없이 질문지를 꾸역꾸역 채워나갔다. 나의 짜증은 독백이 됐다.
“이럴 거면 진료 결과를 병원들끼리 공유하고, 부모들이 집 근처 재활 센터만 가게 하면 얼마나 좋아? 이게 뭔 낭비야?”
아내는 날 다룰 줄 알았다. 질문지에 시선을 두고서, 내 짜증에 질문으로 답했다.
“막내가 손가락을 쓰기는 하지?”
아이는 뭘 들고 있질 못했다. 장난감을 눈앞에 가져다 놓으면 그걸 쳐다보면서 움키려고 손을 허우적거려야 정상인데, 우리 아이는 가만히 있었다. 장난감에 시선도 주지 않았고, 따라서 손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천장의 전등만 응시했다. 빛 외에는 외부 자극에 대해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그러니 손을 움직이지 않았다. 답답해서 손에다 장난감을 쥐어주면 그제야 그걸 잠깐 쳐다봤는데 손에 힘이 없어 놓치기 일쑤였다. 놓친 장난감은 아이의 시야 밖으로 떨어졌고, 아이는 다시 멍한 상태가 됐다. 아내는 그 잠깐 장난감 쥔 순간들을 머릿속으로 전부 그러모아서 ‘손을 쓸 수 있는 것 아닌가?’라는 희망으로 치환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내가 내 짜증을 일찍부터 감지할 수 있었던 것처럼, 나 역시 아내의 그 말을 통해 어떻게 해서든 소망을 붙들고 싶어 하는 엄마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어느 병원의 어느 질문지에든 우리가 제출한 답은 대부분 ‘아니요, 할 수 없습니다’였고, 그걸 매번 우리 스스로 답을 적어가며 재확인한다는 건 잔인한 일이었다.
‘아니요, 우리 아이는 아직 부모를 알아보지 못해요.’
‘아니요, 우리 아이는 아직 엎드리지 못해요.’
‘아니요, 우리 아이는 아직 움직이지 않아요.’
질문지를 열 때마다 홍수 같이 쏟아지는 현실 앞에서 난 비효율적인 의료 시스템에 대한 짜증으로 버티고 있었고, 어느 새 엄마가 된 이 작은 여자는 반드시 찾아올 파도타기의 때를 기다리듯 소망의 줄기를 더듬으며 견디고 있었던 것을 그때 알았다. 매번 ‘아니요’라던 답이 하나라도 ‘예’라고 바뀌는 순간들을 얼마나 기대하면서 질문지를 풀었을까.
하지만 진료는 정확해야 했고, 난 아내의 희망을 다음으로 미뤄둘 수밖에 없었다.
“그 정도 가지고 할 수 있다고 하기는 힘들지. 막내는 아직 손 못 써.”
“... 그렇지?”
“하지만 될 거야. 우리 계속 기도하고 있잖아.”
“빨리 이 질문지 작성이 힘들어졌으면 좋겠다. 지금은 다 ‘아니요’라서 너무 쉬워.”
솔직히 그때 난 마음속으로 ‘그날이 올까?’라고 했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우리는 막내처럼 조용히 순서를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