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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2/10 11:10
요즘 뇌과학에 대한 책들을 읽어가고 있습니다.
생물은 유전자를 복제하는 기계인데, 뇌라는 건 생물이 '운동'을 하는 쪽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기관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식물에게는 뇌가 없고, 동물인 멍게는 움직이며 지내다가 성체가 되면 자기 뇌를 먹어치우고 식물처럼 붙박혀지내고) 그리고 인간이 '나'라고 생각하는 자아, 의식이란 건 그 뇌가 작동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부산물이라고 하는 거 같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몸을 움직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가 움직일 수 있는 부분은 골격근 정도로, 몸의 극히 일부분입니다. 불수의근, 내장, 세포 등 몸의 대부분은 태중에서 나라는 의식이 생기기도 전부터 나의 의식과는 관계없이 쉼없이 자율적으로 작동합니다. 내가 제어할 수도 없지요. 뇌도 다른 신체부위와 마찬가지로 내가 의식이 있든없든, 잘 때도 기절했을 때도 식물인간이 될 때도 쉼없이 자율적으로 작동합니다. 뇌는 지금도 쉼없이 내가 제어하지 못하는 생각들을 만들어내고 나는 그것을 내 의지로 멈출 수도 없습니다. 그런 걸 생각해보자면 정말 '나'라는 것이 내 몸의 주인이 맞긴 한 걸까? 라는 생각이 들죠. '내가 이 버튼을 누르겠다'고 생각하기 10초 전에 이미 뇌는 그걸 누르겠다고 판단했다는 실험이 있습니다. 우리 몸과 뇌가 이미 플랜을 세워 행동한 것이고 '나'라는 자아는 후에 그 결정된 내용을 받은 것일 뿐이라는 거죠. 그런 걸 보자면,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자아와는 아무 상관없이) 뇌와 몸은 그저 유전자를 퍼뜨리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고 모든 판단도 그런 기계적인 과정에서 뇌와 몸이 하고 있는 것이며 '자아'는 그렇게 뇌가 프로세싱한 결과값을 나중에야 받는 건데 거꾸로 '내가 뇌를 작동해 생각을 하고 몸을 움직이고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일 뿐 아닌가 하는 상상이 들어요. (게다가 우리가 시각, 청각 등으로 외부에서 받아들이는 정보들은 외부의 현실 그 자체가 아니라 뇌가 적극적으로 보정, 왜곡, 창조를 해서 전해주는 정보, 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환상'이라고 하고.) 그렇다면, 외부 침입자가 체내에 침투하면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몸이 알아서 백혈구 등을 동원해 처리하는 것처럼, 인류가 서로 좋아하고 미워하고 협동하고 경쟁하고 문명을 만들고 하는 것도 그렇게 '나'와 상관 없이 인류의 몸들이 자율적으로 유전자를 퍼뜨리는 작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일까, '나'는 몸이라는 기계에 영문도 모르고 올라탄 불청객인 걸까, '나'는 뇌의 필요에 의해 생성된 기능들, 소프트웨어 모듈들 중 하나일 뿐일까, '나'는 몸과 뇌가 만든 매트릭스 안에서 뇌가 알아서 하고 있는 판단을 내가 한 판단이라고 착각하며 사는 것일까, '나'는 나와 상관없이 진행되는 1인칭시점의 영화를 보고 있을 뿐인데 내가 컨트롤러를 쥐고 캐릭터를 조종하고 있는 거라고 착각하는 것일까... 그것이 완전한 사실이라 밝혀진다고 해도 우리는 '그렇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지' 하며 그냥 똑같이 살게 될까요. (유발 하라리 같은 경우는 고통이야말로 우리가 처리해야 할 유일한 대상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다른 건 다 허구라도 우리가 느끼는 고통은 어쩔 수가 없다....)
24/12/10 23:51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도 나오는 얘기인데,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나나 내가 의식하는 나나 결국은 하나라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의식은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라, 무의식만으로는 대처할 수 없는 유연함을 인간에게 부여합니다.
24/12/10 12:20
동전의 양면이긴 하지만, 저는 [의식]에 대한 연구나 논의가 재미있더라고요. 특히 다니엘 데닛의 주장이 충격적이었습니다. [의식이란 특별한 것이 아니다. 뇌에서 병렬적으로 이루어지는 정보처리활동 중 그 시점에서 목소리가 가장 큰 것일 뿐이다.] 그의 주장을 깊숙히 생각해보면, 영혼이나 자아, 삶의 목표, 미래 계획, 행복추구 등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득해지고, 결국 인간은 탄소/산소/질소의 결합물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소개해주신 책을 읽으며 의식에 대한 생각을 가다듬어 봐야겠네요.
24/12/10 23:52
이 책도 뇌 안에서의 민주주의를 강조하는데 대니얼 데닛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좋은 주장을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4/12/10 14:54
다 좋은데.... 2011년 발매라면 너무 옛날 연구들만 담은 책이 아닐까요? 심지어 그 고대의 알파고도 16년 나왔는데....
본문을 보지 못해 섵부른 예상일 수도 있지만, 현대 신경과학이 알고 있는 것과는 좀 거리가 있을 수 있겠다라는 생각은 드네요. (순전히 발매 시점 때문에라도)
24/12/10 23:55
본문에도 남겨 놨는데 2011년이 마침 신경과학과 심리학을 강타한 재현성 위기의 해이기도 합니다. 책에서 초반에 소개하는 무의식의 편향을 측정한다는 실험이 실제로는 아무 의미 없는 거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문에도 남겨 놨는데 2011년이 마침 신경과학과 심리학을 강타한 재현성 위기의 해이기도 합니다. 책에서 초반에 소개하는 무의식의 편향을 측정한다는 실험이 실제로는 아무 의미 없는 거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https://pgr21.net/freedom/102115 졸고지만, 이 서평의 7장에 나오는 IAT입니다). 그래서 저도 글쓴이의 최신작 또는 무의식에 대한 최근 경향을 따로 읽어봐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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