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우리나라에서 다시 계엄(戒嚴)이라는 일이 일어날 줄이야 누가 알았으리요?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알고 경계(警戒)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더욱 슬프도다! 그러하니 오늘은 계엄과 경계에 들어가는 경계할 계(戒)의 자원과 이에서 파생된 한자들을 다루고자 한다.
戒는 창 과(戈)와 두 손을 나타내는 받들 공(廾)으로 이루어진 회의자다.
왼쪽부터 戒의 갑골문, 금문, 진(晉)계 문자, 초계 문자, 소전. 출처: 小學堂
갑골문부터 지금까지 형태가 거의 변화가 없이 이어졌다. 약간의 변화라면 갑골문에서는 두 손 사이에 무기가 있는데 그 뒤로는 손이 무기를 받드는 형태가 된 정도? 갑골문에서는 받들 공 대신 오른손을 뜻하는 또 우(又)를 써서 오른손으로 무기를 잡는 형태로 쓰기도 한다.
戒는 《설문해자》에서는 "경계함{警}이다. 두 손으로 무기를 잡고 있는 것을 따른다. 경계함{戒}으로써 근심이 없다.”라고 풀이했고, 현대에도 이 풀이에는 변함이 없다. 즉 손으로 무기를 잡고 경계 태세를 취하고 있는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또는 무기를 잡고 경계하는 움직임에서 더 나아가 무기 자체를 뜻하기도 한다. 이는 나중에 재질을 나타내는 나무 목(木)을 더한 기계 계(械)로 파생되었는데, 전국시대 문헌에서는 戒를 械로 읽고 '무기'로 해석해야 할 때도 있다.
갑골문에서는 戒를 쓴 문장의 훼손이 너무 심해 제사 이름으로 쓰였다는 것 외에는 용례를 더 파악할 수 없으나, 금문에서는 경계함이라는 원래의 뜻으로 쓰이고 있다.
경계할 계(戒, 계엄(戒嚴), 경계(警戒)/경계(鏡戒) 등. 어문회 4급)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다음과 같다.
戒+木(나무 목)=械(기계 계): 계투(械鬪), 기계(機械)/기계(器械) 등. 어문회 준3급
戒+言(말씀 언)=誡(경계할 계): 계명(誡命), 권계(勸誡) 등. 어문회 준특급
戒에서 파생된 한자들.
앞서도 말했지만, 械는 지금은 기계장치의 뜻으로 쓰고 있지만 옛날에는 무기의 뜻으로 쓰였다. 중국에서 무기를 잡고 마을끼리 유혈 분쟁을 벌이는 단어인 계투(械鬪)에 그 뜻이 남아 있다. 《설문해자》에서는 械를 수갑의 뜻으로 풀이하는데, 죄인을 경계하기 위해 수갑을 채워 놓는다는 뜻으로 본 것 같다. 수갑이든 무기든 이에서 지금의 기계라는 뜻이 인신된 것이다.
械는 일상에서 많이 쓰이는 한자지만 그 쓰임의 대부분은 기계라는 말이 차지한다. 이 기계는 두 가지 한자 표기가 있는데, 그릇 기(器)를 쓰는 기계(器械)와 베틀 기(機)를 쓰는 기계(機械)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른 두 기계의 풀이는 이렇다.
기계5(器械)
「1」 연장, 연모, 그릇, 기구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2」 구조가 간단하며 제조나 생산을 목적으로 하지 아니하고 사용하는 도구를 통틀어 이르는 말. 의료 기계나 물리ㆍ화학의 실험용 기계 따위가 있다.
기계6(機械)
「1」 동력을 써서 움직이거나 일을 하는 장치. 단위로 대, 조, 틀 따위가 있다.
기계 제조.
기계가 돌아가다.
기계를 돌리다.
기계를 조립하다.
그는 기계를 잘 다루는 숙련공이다.
공장에 새로 기계 한 대를 들여놓았다.
나는 기사가 손본 기계에 기름칠을 하고 공구를 챙겼다. ≪조세희,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2」 생각, 행동, 생활 방식 따위가 정확하거나 판에 박은 듯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그 사람은 사과 깎는 데는 기계야.
「3」 자기 뜻이 아닌 남의 뜻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요즘 남자들은 돈 벌어 오는 기계로 전락했다.
「4」 소매치기들의 은어로, 직접 손을 대어 훔치는 사람이나 그 손을 이르는 말.
두 단어의 뜻은 비슷하지만, 훨씬 더 넓게 쓰이는 것이 기계(機械)다. 기계적이라는 낱말이 기계(器械)가 아닌 기계(機械)에서만 파생되는 것도 이를 보여준다.
그런데 원래 조선에서 근대화를 겪으면서 영어의 머신(machine)이나 머시너리(machinary)를 번역할 때 쓴 말은 器械였다. 일본에서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는데, 처음에는 器械나 機械를 모두 사용하다가 어떤 계기로 인해 機械 쪽으로 기울어졌다. 조선도 일본의 영향을 받아서 머신 등을 번역할 때 機械를 선호했고, 이것이 굳어져 현대까지 이어진 것이다.
이는 원래 일상적으로 도구나 연장을 가리킬 때 쓰이는 한자어가 器械인 것과도 연관이 있으며, 이미 고전 한문부터 오래 이렇게 器械란 낱말을 써 왔다. 機械란 말도 쓰이기는 했지만 器械보다는 훨씬 덜 쓰였으며, 정교한 장치라는 데에서 비롯해 계획이나 속임수라는 뜻도 파생되어 나왔다. 그러다가 근대에 서양 문물을 도입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고, 전통적으로 널리 쓰인 器械를 누르기에 이르렀다. 機械가 器械를 누르고 머신의 번역어가 된 것은 너무나 일상적인 器械가 서양에서 들어 온 신기한 머신이라는 것을 부르기에는 부적합하다는 느낌 때문이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誡는 戒와 훈음이 '경계할 계'로 같은데, 말로써 남을 경계하게 한다는 의미가 있다. 《설문해자》에서는 誡를 “경계함{敕}이다.”라고 풀이하며, 敕은 “경계함{誡}이다.”라고 풀이한다. 그러니까 誡란 敕인데, 敕이란 誡라고 하는 순환논리에 빠진 것이다. 사전에서 모든 단어의 뜻을 순환논리에 빠지지 않고 풀이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이런 현상은 국어사전에서도 볼 수 있다. 이런 관계를 서로 풀이한다 해 호훈이라 하며, 《설문해자》에서는 호훈 관계에 있는 한자를 많이 볼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늙을 로(老)와 생각할 고(考)로, 당시에는 考의 뜻은 老와 같은 '늙다'였다. 지금의 '생각하다'는 '늙은이처럼 깊이 생각하다'라는 데에서 인신된 것이다. 이 두 한자가 한자 만드는 원리를 설명하는 육서의 다섯번째인 전주의 예시인데, 그래서 전주가 대체 뭐냐는 것에는 학설이 분분하며 그 중 하나가 바로 호훈 관계에 의한 파생이다.
戒와 誡는 용례에서 조금 차이가 있는데, 자원을 따지고 들어가면 戒는 물리력으로 경계하는 것이고 誡는 말로 경계하는 것이다. 기독교의 십계명 등에서는 戒가 아닌 誡를 쓰고, 가르쳐서 경계하게 하는 훈계에서는 誡가 아닌 戒를 쓰는 등 서로 혼용하지 않고 구분해서 쓰이고 있으나, 그 구분이 무엇인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戒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무기를 잡고 경계하는 뜻을 지닌다.
械(기계 계)는 木(나무 목)이 뜻을 나타내고 戒가 소리를 나타내며, 戒의 뜻을 따라 경계할 때 쓰는 무기나 죄인을 경계하는 데 쓰이는 수갑 등을 나타낸다. 기계란 뜻은 이런 경계용 도구에서 확장된 것이다.
誡(경계할 계)는 言(말씀 언)이 뜻을 나타내고 戒가 소리를 나타내며, 戒의 뜻을 따라 말로써 사람을 경계하게 하는 것을 뜻한다.
이상의 관계를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戒에서 파생된 한자들의 의미 관계도.
요약
戒(경계할 계)는 사람이 손으로 무기를 잡고 경계하는 모습을 본뜬 회의자이다.
戒에서 械(기계 계)·誡(경계할 계)가 파생되었다.
戒는 파생된 한자에 무기를 잡고 경계한다는 의미를 부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