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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4/11/17 01:27:18
Name 된장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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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일반] 글래디에이터2 - 이것이 바로 로마다(강 스포일러) (수정됨)


영화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사후 16년인 서기 200년, 쌍둥이 황제 게타와 카라칼라가 지배하는 로마제국의 군대가 북아프리카의 국가 누미디아를 침공한다'는 아주 근본없는 설정으로, 이것은 엄밀한 역사영화 아니라고 언급하고 시작합니다.(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180년에 죽었고, 저 두 사람은 연년생에다가 211년에 공동통치를 했으며, 누미디아는 작중 시점에서 200여년도 전에 로마한테 망했습니다.)

누미디아인 코스프레를 하는 우리의 로마인 주인공 '루시우스 베루스 아우렐리우스'(누가 로마인 아니랄까봐 로마인의 신이 아닌 누미디아인의 신에게는 제물도 안 바칩니다.)는 전작에서 삼촌 콤모두스 사후 황위를 노리는 로마의 '늘 있는 WWE'를 피해 도망치다가 결국 '로마는 힘으로 깽판을 치는 나쁜놈이야'라고 결론을 내리고 누미디아인 아내도 만나고 누미디아인 군대에 있다가(타키투스의 게르마니아에 나오는 그 유명한 '로마는 힘으로 이겨놓고는 그거를 평화로 부르네 어쩌네' 그것도 나옵니다) 쓸데없이 멋있으라고 투구도 벗어던지고 선봉장으로 나선 로마의 장군 마르쿠스 아카시우스에게 누미디아인 아내도 잃고 자기는 노예로 잡혀갑니다. 여기서 그는 아내를 죽인 화살을 꺾은후 자기의 아내를 죽인 로마에 복수를 맹세합니다.

뭐 늘 있는 전쟁씬은 중요한게 아니고 하여간 중요한거는 마르쿠스 아카시우스는 '로마에 4마리의 백마가 이끄는 마차를 타고 개선장군으로써 개선식을 한다'는 부분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아우구스투스 이래 제정시대 로마에서는 오로지 '임페라토르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만 할 수 있는 이런 정식 개선식을 하면서 시민들의 환호를 받으며 이 인간은 본인이 '로마의 구석'을 받은자라는걸 당당하게 인증하는데요. 당연히 젊은 쌍둥이 공동 카이사르 중(실제로는 연년생) 맛탱이가 간 카라칼라 말고 그나마 제정신인 게타는 칼까지 뽑아 들면서 '느그 마누라는 대체 나한테 왜 협조 안함? 너도 사실상 황제 행세 하면서 니만 인기 독차지 하지 말고 내가 다스리는 로마의 권위와 영광을 빛내는 행사인 콜로세움 검투 경기에 참석하라'라는 식의 엄포를 놓습니다. 마치 동시기에 어느 한나라 황제가 권신한테 칼 들이 밀고 '니가 날 안 섬길거면 차라리 나를 폐위해라'라고 협박하는 대목이 생각나는 부분이었네요.

근데 알고 보니까 그 마누라라는 양반이 전 황제 콤모두스의 누이이자 그 명성 높은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딸인 루실라네요? 게다가 이 부부 게타 황제가 그렇게 견제하는 이유를 알겠다는 듯이 '나라를 위해 로마가 늘상 즐기는 정복전쟁을 수행할 뿐인 황제'에 대한 충성심은 조금도 없고 언제나 '프린켑스' 견제하기 바쁜 원로원 의원들이랑 짝짜꿍 해서는 쿠데타를 획책하고 있었네요. 하여간 무슨 '쌍둥이 황제가 정복 전쟁만 하고 시민들은 돌보지 않네, 내가 정상화하겠네' 같은 쿠데타 모의자 특유의 '정상화' 발언하면서 반란을 정당화 합니다.(전작에서 '성군 아우렐리우스 황제'와 '로마의 영웅 막시무스'도 열심히 불쌍한(?) 게르만족 처 죽이면서 힘으로 이민족들을 억눌렀던거 같고 '원래 로마는 그런 무산자들한테 빵과 서커스로 달래던 국가 아니었어?'라고 의심하면 지는 겁니다, 원래 쿠데타 모의자들이 다 지들 '구국의 결단' 이렇게 포장하니 넘어갑시다.) 늘 있는 로마의 흔한 '할 수 있다 나라면!'인 사람이었군요, 역시.

한편 로마의 유력자 '마크리누스'는 이 콜로세움에서 행해지는 정복 축하 행사를 벌이는데 루시우스를 눈여겨 보고 루시우스 잡아다가 복수를 하게 해준다고 해놓고선 검투사로 삼아서 로마에 대려갑니다. 거기서 막 이런 저런 검투사로서의 훈련도 받고 게타와 카라칼라 앞에서 검투 경기로 펼치며 눈도장을 찍습니다. 여기서 루시우스가 베르길리우스의 '저승 문턱에 가면 사람이 타락하네' 어쩌네(죄송합니다. 제가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잘 안납니다.) 하는 시를 인용하는 발언을 하며 게타 황제를 벙찌게 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여기서 나오는 게타 황제는 사실 이 영화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입니다.(실존 인물도 좀 불쌍하긴 했지만요). 앞서서 말했듯이 이 영화의 게타와 카라칼라 형제는 높은 인기를 자랑하는 전 황제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딸과 결혼한, 군사적 영웅으로써 높은 인기를 자랑하면서도 자기들한테 불만이 많은 '권신' 아카시우스를 견제하지 않을수 없는 처지입니다. 이 형제가 억지로 계속 정복전쟁을 펼치는 것도 로마 황제의 본질이 '로마의 최고 존엄(아우구스투스)'이자 '임페라토르(최고 사령관 동지)'이기 때문에 정복전쟁을 통한 군사적 권위만이 아직 불확실하기 그지없는 자신들의 권위를 확립하는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군사적 권위를 확보하려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심각해 뭔 짓을 할지 모르는 형 로마에 놔두고 자기가 원정을 뛸 수도 없어서 뛰어난 장군인 아카시우스를 이용할 수 밖에 없으니까, 아카시우스를 견제하면서도 쳐낼수는 없는데, 그러다 보니 아카시우스의 군사적 권위가 정복전쟁을 하면서 임페라토르 급으로 높아지는 심각한 딜레마에 처한 상황인거죠. 즉 자기도 지금 자기가 잘못하고 있는거 알고, 자기의 폭주가 저승으로 가는 목줄 죄고 있는거 아는데 그걸 정면으로 루시우스가 찌르고 있으니까 벙찐거에요. 나중에 게타가 다시 루시우스를 회상하면서 괜히 다시 베르길리우스의 이 대목 언급한게 아닙니다. 이 청년은 사실 심적으로 엄청나게 몰려있는 상황인거죠.

하여간 이런저런 검투 경기가 벌어지고 황제 찬탈을 노리는 마크리누스와 로마에 대한 복수를 노리는 루시우스가 어쩌고 하는 사이 결국 아카시우스의 반란은 그놈의 루시우스 살리겠다고 마누라 말 잘못 들었다가 실패로 돌아가고 게타는 '내가 진짜 그 인간이 이럴줄 알았다'는 식으로 나오며 반란을 진압한 마크리누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면서 그를 권력의 중추에 들입니다. 그러나 아카시우스의 권위를 실추시키라고 공개 처형을 권한 마크리누스의 간언을 듣다가 되려 자신의 권위마저 박살이 나고 결국 마크리누스의 사주를 받은 형의 손에 죽고 마는데 이때의 반응 보면 내가 형을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해줬는데라고 진짜 억울해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농담이 아니라 위에서 말했듯이 항상 군주로서 정신적 압박에 시달리던 이 청년의 진심일 겁니다. 이 청년은 역사상에서도 상당히 흔한, 자기의 부족한 권위를 세우려고 발악하는 젊은 군주들이 억지로 권위를 내세우려다 폭군으로 몰락하는 전형이에요.

한편 동생을 살해한 카라칼라의 반응도 재미있는데 이미 매독(로마시대에는 아마 없었던거 같지만 대충 넘어갑시다)에 걸려 제 정신이 아닌 상황에서도 이 사람은 자신이 맛이 간 틈을 타 실세는 동생인 게타가 다 잡고 있는게 내심 불만이었습니다. 당연히 기억에도 없을 게타가 태중부터 탯줄로 목을 감았느니 어쩌느니 하는 발언도 여기서 나온거죠. 그럼에도 정작 동생인 게타를 죽이는건 주저하는데 마크리누스가 자신의 애완동물인 원숭이를 죽일거라는 식의 말을 하자 그제서야 게타를 죽이는 행동에 나섭니다. 중간에 보면 게타가 그놈의 원숭이한테 화를 내면서 원숭이 잘못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카라칼라는 게타가 보는 자신이 그 애완 원숭이랑 다를게 없다고 생각하는겁니다(실제로 게타가 미처버린 형을 보며 생각하는 것도 어느 정도는 그랬을거고요) 그래서 애완 원숭이나 다름없는 자신의 초라한 처지를 게타가 언제 처낼지 모른다고 생각이 미치자 게타를 살해한거죠. 보면 카라칼라가 게타를 죽이기 전에 게타의 손가락을 칼로 쳐서 자르는 장면이 있는데 이는 실제로 게타가 오로지 권력을 좌지우지하며, 신적인 권위으로 사람들의 생사를 결정하던 그 손가락을 자름으로서 게타의 황제로서의 신성함을 거세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로마의 황제는 그 자체가 신성화된 존재로, 로마의 최고 제사장이기도 했으므로, 신성화된 로마황제로서의 권력을 박탈한다는 상징적인 행위인거죠.

그럼에도 카라칼라는 본인이 게타를 완전히 살해하지 못하고 마크리누스의 도움을 받아서야 살해할수 있었는데 나중에 자신의 애완 원숭이(이자 카라칼라 자기자신을 상징하는 존재)와 마크리누스를 공동집정관에 올리는 행위를 보면, 결국 카라칼라는 동생을 죽임으로써 자신이 꼭두각시에서 벗어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자신의 의지를 결정하는 꼭두각시의 주인이 동생에서 마크리누스로 바뀐거 뿐입니다. 마크리누스가 루실라를 죽이면서 카라칼라를 제물로 바치려는걸 보면 그래도 형 생각은 해줬던 동생을 죽임으로서 스스로 파멸에 길에 들어서는 셈입니다. 어떻게 보면 '나는 결국 꼭두각시로서 죽을거'라는 자기 실현적 예언의 비극이라도고 할 수 있을지도요.

그리고 이 공동 집정관 임명 대목에서 마크리누스가 힘으로 '어흥' 좀 하니까 원로원 의원들이 바로 마크리누스 거수기로 변하는 장면을 보여줌으로서 이런 놈들에게 원로원 위주 정치를 돌려주겠다 운운했던 전작 말년의 아우렐리우스가 노망이 났다는 사실도 확실히 알려줍니다. 애초에 아카시우스랑 루실라한테는 충실한 의원인거 마냥 굴었으면서 마크리누스한테 빚지니까 있는거 없는거 다 불어버린 의원님만 봐도 크크크...사실 따지고 보면 로마 역사에서 원로원이 그렇게 고귀한 인물들만 있는것도 아니고 식민지에서 사채 폭리 놓고 빚 때문에 반란 일으키던 인간들 있던거 생각하면 이게 딱 로마 다운 모습이긴 하죠.

어쨌든 우리의 주인공 루시우스는 아마도 친부 막시무스의 파트리아-클레엔테스 꽌시 관계였을 아카시우스의 죽음과 엄마가 사실 너 안 버렸다 너는 사실 자랑스러운 내 아들 이런 이벤트를 거친 후 '바로 로마에 대항하는 스타르타쿠스 놀이' 때려치우고 로마 귀족 '루시우스 베루스 아우렐리우스'로 돌아옵니다. 사실 이 대목에서 '얼마전까지는 로마에 대한 복수! 운운하던 놈이 왜 갑자기 로마의 영웅 행세냐? 우디르가 심하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까놓고 말하면 얘는 처음부터 '무슨 로마인도 아닌 놈이 로마 시인의 시는 왜 그렇게 줄줄 외고 다니는거임?'이라고 누가 대놓고 물어볼 정도로, 걍 처음부터 로마인이지 야만인 같은게 아니었습니다. 그냥 로마한테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고 도련님답게 '나 버림받았어 으앙'이라고 징징거리다 그거 아니라니까 이제와서 '자랑스러운 로마인'으로서 옛날 로마 황제였던 할아버지 생각도 나고 로마인의 명예 긍지 뭐 이딴거 막 생각나는거죠. 그러니까 나중엔 죽은 누미디아인 마누라 죽인 화살도 시원하게 내려놓고 '그 동안 엔조이 즐거웠다'이러는거구요. 그러니까 폴 메스칼은 이런 배역에 아주 딱 맞는 캐스팅이라고 봅니다. 얘는 막시무스랑 달리 '우락부락하고 듬직한 로마 군단장'이 아니라 '버림받은 로마 노블리스 도련님'이 본질인 녀석이라, 로마에 들어설때 로마의 화려함에 취하지 말라 어쩌고 했던것도 사실 따지고 보면 지가 로마에 미련이 있으니까 로마인으로서의 뽕에 취하지 말자는 자기 암시 같은거죠.

뭐 하여간 루실라고 원로원 의원이고 다 처형되려는 마당에 마크리누스는 루실라를 접견해 공화주의의 이상 어쩌고를 설파하는 루실라에게 자기가 아우렐리우스의 노예 출신임을 고백하면서 '옛 주인 아씨, 도당체 로마가 언제부터 그딴거였습니까요? 로마는 원래 누구나 힘있는 자들이 권력을 두고 알아서 죽고 죽이는 싸움 끝에 쟁취하며 자유와 권력을 얻는 투기장이고 그래서 좋은거였는뎁쇼?'라고 반박합니다. 전작에서 공화주의와 로마의 꿈 운운하던 성군 아우렐리우스도 결국 자기같은 노예를 힘으로 부리던 '로마인다운 로마인'이었던 거고 나는 그런 옛 주인님식 위선 안 떨면서 그가 말하는 허상에 반하는 인물이 되겠다는 선포로, 전작에서 '시민들이 주축인 공화정 로마의 꿈' 같은 개소리는 위선적인 헛소리라는 식으로 지적합니다. 마크리누스는 결국 카라칼라건 루실라고 다 죽여버리고 정당한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후계자인 루시우스도 죽여서 자기가 황제가 되려고 하지요.

영화의 압권은 바로 이 클라이막스 부분입니다. 결국 마크리누스와 루시우스는 1:1로 붙어 로마의 프라이토리아니와 레기온이 정면으로 맞 붙으려는 찰나, 신이 각자 자신의 편에 있다고 외치고 드잡이질을 합니다. 마크리누스는 그 나이에도 불구하고 실력으로 루시우스를 압도해 루시우스를 죽기 전까지 몰아붙입니다만 루시우스의 더러운 막시무스 갑옷 템빨을 이기지 못하고 루시우스에게 캐발리고 죽습니다. 결국 루시우스가 말한 '마크리누스를 죽이기 위해 신이 선택한 남자가 나'라는 외침을 증명한 셈이죠. 여기서 뭐 이제 루시우스는 주인공답게 "명예로운 시민들의 로마를 살리자! '메이크 로마 그레이트 어게인!'에 로마군 여러분들도 동참을 하자!" 어쩌네 하는 감동적(?)인 연설을 하면서 로마군을 선동하고 결국 그들의 지지를 받아내는데 성공합니다.

자 그런데 여러분, 이 부분이 마치 무슨 공화정, 민주주의 옹호처럼 사용되어서 '감동적인 민주주의 크악' 하는 부분 같지만 사실 이게 굉장히 웃기는 지점입니다.

'루시우스 베루스 아우렐리우스'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손자이자 군사 영웅 막시무스의 아들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또 다른 군사 영웅 아카시우스의 이름으로 로마군을 동원'했고 '이탈리아 반도에서 동원할 수 있는 유일한 군사력'인 프라이토리아니와 '권신 아카시우스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한 로마군'을 장악했으며 사실 무슨 불쌍한 로마 시민들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거에는 처음부터 애초에 관심도 별로 없습니다.

루시우스는 그냥 힘으로서 경쟁자를 제거하고 대충 선대 황제와 자신과 연관이 있는 군사 권력자들의 권위를 빌어 로마의 황제가 되는데 가장 선결 조건인 로마군을 장악함으로써 '로마군의 통수권자이자, 최고존엄이자 이런 길을 처음으로 제시한 독재자 카이사르의 후계자'인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루시우스 베루스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투스'가 되었을 뿐입니다. 전 이 영화가 루시우스를 로마군이 방패 위에 올리는 장면을 안 보여준게 이 영화 최후의 눈속임이라고 생각합니다. 크크크 결국 신의 이름으로 경쟁자를 처냄으로서 신의 선택을 받은 '최고 제사장'은 나라는 것도 보여줬고 말이죠? 이 영화에서 로마 황제를 두고 언급되는 '신'이라는 것은 결국 '로마 황제라는 그 직위 자체의 신성함과 로마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권위의 상징'이고 이 권위 쟁탈자의 최종승자는 루시우스라는 게 이 영화의 결론입니다. 즉 이 영화는 공화주의 찬양이 아니라 '사실 느그들의 로마는 원래 이런 것'이라는 걸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로마의 역사라는게 마크리누스가 지적했듯이, 언제부터 '공화정 로마의 꿈' 같은게 잘 돌아가는 국가의 역사였나요? 원로원이 멋대로 법적 근거도 없는 원로원 최종권고를 선포하고 힘으로 반대자들을 때려죽이고, 마리우스와 술라같은 군사령관들이 군벌이 되어 로마를 장악해 멋대로 로마시민들을 제대로 된 법적 근거도 없이 죽이고, 민중파 운운하면서 민중을 위한다던 민중파 영수 카이사르는 내전을 통해 원로원을 힘으로 때려잡고 종신 독재를 선언했습니다. 이른바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 역시 힘으로 내전을 제압한 이후 영화 속 아우렐리우스 마냥 공화정을 복구하겠다고 떠든 다음에, 실질적으로는 황제 노릇을 하면서도 평생을 공화국의 제1인자라는 직함으로 기만질을 시전했고요. 공화정부터 제정시기까지 로마는 항상 군대와 힘의 논리로 권력의 향배가 정해지는 국가였고 각지의 사령관들은 기회만 되면 군대의 추대를 받아서 황제를 자칭했습니다. 결국 로마의 본질은 내부적으로나 외적으로 2200년간의 역사에서 오로지 '할 수 있다 나라면!'이라고 군대와 실질적인 힘을 장악한 권력자가 강권으로 국세를 확장하고 최고존엄이 결정되는 국가였던 겁니다. 이 영화 마지막 장면은 그것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고 로마인들의 조상인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짐승인 늑대의 젖을 먹었기 때문에, 로마인들 역시 오로지 힘으로 모든걸 결정하는 짐승의 피를 이은 자들라는 폭로인 것 입니다.

마크리누스는 이 영화에서 개인으로는 패배했을지는 몰라도 '로마의 본질은 사실 이런것이다'라는 것 보여줌으로서 허상에 불과했던 루실라의 논리를 꺾고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그녀의 아들이 자신에게 승리함으로써 독재자가 되는 길을 열여주기도 하면서 위선적이나마 공화정 복권을 원하던 아우렐리우스의 손자를 자신과 같은 존재로 만들어서 승자가 되기도 한 것이고요. 이 영화에선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인용하면서 '적에서 이기는거는 그와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루시우스는 마크리누스를 개인으로서는 이겼으나 군대를 장악하고 로마의 최고존엄이 됨으로서 '마크리누스와 같은 존재가 되어' 결국 자신의 할아버지 말대로 궁극적으로는 패했습니다.

그러니까 엔딩부분 텅 빈 콜로세움에서 루시우스가 망연자실한 채 '엄마 이제 나 어떻게 해야 해요?'라고 중얼거리는 거는 게타에게 베르길리우스의 시를 말하며 게타의 상황을 조롱하던게 이제 자신에게 되돌아 왔기 때문입니다. 이제 루시우스는 자신을 추대한 로마군과 원로원을 존중하는 정치를 하겠다는 원수정 시기 황제들 마냥, 군사적 권위를 세우기 위해 자기가 조롱하던 게타 황제마냥, 임페라토르로서 호전적인 군사 정책을 펼쳐야 할 것이고, 시민들의 늘 있는 불만을 제어하기 위해 텅 빈 콜로세움을 검투사와 관중으로 다시 가득 채워야 할 겁니다. 설령 할아버지 말대로 공화정을 되살린다 운운해도 본작에서 묘사된 바처럼 무기력하게 거수기에 불과해진 원로원을 상대로 아우구스투스마냥 생쇼도 해야 할 겁니다. 그게 로마의 본질(힘과 명예!)이라는거 모르는 놈도 아니니 안 할 수가 없겠죠. 성공한다면 아우구스투스처럼 '평생 연극을 잘한 배우'로서 남을수 있겠지만 본질적으로는 게타와 같이 '로마의 고귀한 노빌레스 도련님'인 루시우스가 얼마나 잘해 낼 수 있을지? 죽은자들은 이미 말이 없고 남은건 산자들의 몫입니다. 아마도 리들리 스콧 감독도 그게 궁금해서 글래디에이터3 각본을 쓰는게 아닐까 생각해 보는 밤이로군요.

그렇기 때문에 전 이게 1편보다 내용도 주마간산으로 흐르고 개연성도 어딘가 이상하지만 1편보다도 오히려 더 '로마다운' 영화가 아닐까 최종적인 평을 내려봅니다.

P.S. 처음에 배경 설정 자체가 참 근본이 없다고 했는데, 사실 원 역사에서 누미디아를 사실상 멸망시킨건 아우구스투스의 양아버지 카이사르입니다. 마치 루시우스의 양아버지뻘 되는 아카시우스가 본작에서 누미디아를 멸망시킨것처럼 말이죠. 이것까지 노렸을지는 모르겠는데, 노렸다고 한다면 작정하고 쓴 각본이 아닌가 싶기도 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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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남
24/11/17 06:33
수정 아이콘
주인공이 로마시민 어쩌구 저쩌구 연설할때 실소를 금할수없었습니다.
된장까스
24/11/17 06:39
수정 아이콘
어허 '새 임페라토르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가 '공화국의 제1시민'으로서 첫 연설하는거 뿐입니다.
닉네임을바꾸다
24/11/17 08:49
수정 아이콘
(수정됨) 실체야 어쨌든 로마시민의 지지를 인기로건 힘으로건 얻는데 실패하면 권력유지는 안되던 나라라...
SPQR 로마 원로원과 시민들이란 이름은...뭐...전제정으로 완전히 전환되고도 상징으로써는 쓰였으니까...
된장까스
24/11/17 08:58
수정 아이콘
뭐 사실 군대만 장악하면 장땡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요. 로마 시민들과 원로원의 추인을 받고 로마적 다신교 전통을 되살린 '로마 황제' 에우게니우스를 그딴거 내 알빠 아니라며 자기가 가진 군권으로 처 죽이고 로마의 유일황제로서 기독교를 항구적 국교로 삼은 테오도시우스 1세처럼 말입니다.
닉네임을바꾸다
24/11/17 09:17
수정 아이콘
(수정됨) 서순이면 국교화시킨게 먼저일걸요...법제적으로는 몰라도 보통 국교화시점은 칙령으로 발표한 380년으로 보는데...
된장까스
24/11/17 09:19
수정 아이콘
(수정됨) 다신교도인 에우게니우스가 서로마의 황제가 되어서 로마 원로원의 다신교 전통을 다시 세운것만으로도 그게 확고부동하진 않았다는 증거죠. 결국 거기서 테오도시우스가 힘으로 강권하여 최후의 저항을 완전히 분쇄했다고 보시면 될거 같습니다. 실제 당대 역사가들의 기록에 따르면 기독교인들은 에우게니우스와 테오도시우스의 프리기두스 전투를 밀비우스 다리 전투와 마찬가지로 기독교의 승리라고 여겼으며, 기독교화에 대항하기 위한 이교도의 마지막 저항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닉네임을바꾸다
24/11/17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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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서로마라해봐야 당시 테오도시우스 1세가 추대해놓은 황제를 아르보가스트가 죽여놓고 개입안하길 기대했다면...뭐...
된장까스
24/11/17 09:47
수정 아이콘
뭐 하여간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동굴곰
24/11/17 10:40
수정 아이콘
막판에 마크리누스 죽자마자 되도 않는 연설 듣고 전향하던 근위대장이 인상깊었습니다.
너 방금 전에 콜로세움에서 기병대 투입해서 루시우스 죽이려고 했잖아??
24/11/17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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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상황이?.... 에라 모르겠다!
했을지도요 크크
24/11/18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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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에 너무 실망해서 리들리 스콧의 사극을 보러 갈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멋진 리뷰를 보니까 좀 헷갈리네요. 다른 리뷰들을 좀 찾아보니까 선악구도의 단순함 같은 걸 많이 꼽던데... 전제주의적 폭력과 공화주의적 이상간의 대결을 그리고 있는 것은 허울일 뿐 실제로는 악한 폭력과 조금 선한 (곧 필연적으로 타락할) 폭력의 권력다툼일 뿐이라는 것이 감독의 중심 메시지인지, 아니면 단순한 선악구도를 그렸을 뿐인데 실제 로마가 너무 막장이라서 또는 검투사 영화를 만들려다보니까 어쩔 수 없이 쌈질로 선을 관철하다 보니 앞뒤가 안맞고 꼬여서 블랙코미디가 되어버린 건지. 아니면 제3의 해석이 가능한 정도로 실제로 아주 풍부한 영화인지.

개인적으로는 전자보다는 차라리 후자가 낫겠다 싶은 게 전자는 많이 그럴듯하긴 한데 또 제가 생각하기로는 너무 현대인 감성으로 바라본 좀 아쉬운 로마 캐해라고 할까요. 실제로 로마의 본질이 폭력에 기반한 군사국가라는 건 틀린 말은 아닌데 현대의 보다 세련된 제국들을 비교대상으로 삼아 버리는 초역사적 감수성이 너무 들어간 거 아닌가 싶은 거죠. 로마는 동시대 기준으로 본다면 (한참 후대를 기준으로 하더라도) 특이할 정도로 그 폭력의 독점이라는 국가의 본질을 S.P.Q.R의 합법성이라는 외관으로 포장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 나라였고, 로마의 특이성이나 매력은, 좀 단순화하자면, 국가의 본질은 폭력의 독점이지 로마도 예외는 아니었어 라는 어찌보면 빤한 특색을 알고보면 다 똑같네 라는 수준에서 다른 고대국가들과 공유했다는 점이 아니라, 그런데 로마는 신기하게도 그 시대에 그걸 공화주의니 원로원이니 뭐니 하면서 민중에게 합법성의 형태로 국가권력의 정당성을 제시하고 동의를 얻어내려고 참 애쓰긴 했네? 라는 데 있는 거죠. 목숨걸고 노력한 사람도 많고 논쟁과 논리도 잘 기록이 되어있고. 뭐 결국 군인황제끼리의 끊임없는 내전으로 전락하기는 했지만 우리가 로마를 기억하는 건 그렇게 전락했다는 사실보다는 그렇게 전락하지 않으려고 애쓴 인간적, 제도적, 담론적 실천들이 이후 계몽과 혁명의 시대 찐 공화주의의 자양분이 되어주었다는 부분에 있지 않나? 거기다 대고 몇시간의 스펙타클을 연출하면서 전달하려고 하는 메시지가 결국 굳이 애배배 로마도 알고보니 똑같던데요 라는 거는 그 너무, 요샛말로 논리로 압쌀!을 외치는 쿨찐아싸 화법 아뇨? ... 라는 나쁜말 하면 안되겠죠?
된장까스
24/11/18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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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로운 시민들의 로마를 살리자! '메이크 로마 그레이트 어게인!'에 로마군 여러분들도 동참을 하자!" 이런 연설 부분이 '공화주의니 원로원이니 뭐니 하면서 S.P.Q.R의 합법성으로 민중에게 합법성의 형태로 국가권력의 정당성을 제시하고 동의를 얻어내려고 참 애쓰긴 했네?'하는 부분이긴 합니다. 다만 결국 그 연설 자체가 결국에는 본작에서 그렇게까지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한 시민보다는 항상 그 허울 뒤 로마의 권력에서 실세로 군림하던 '로마군'들에게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 오묘함이 더 돋보이는거죠.
된장까스
24/11/18 09:49
수정 아이콘
(수정됨) 뭐 그리고 허울이나마 '공화주의니 원로원이니 뭐니 하면서 민중에게 합법성의 형태로 국가권력의 정당성을 제시하고 동의를 얻어내려고 참 애쓰긴 했네? 라는 데 있는 거죠. 목숨걸고 노력한 사람도 많고 논쟁과 논리도 잘 기록이 되어있고. 뭐 결국 군인황제끼리의 끊임없는 내전으로 전락하기는 했지만 우리가 로마를 기억하는 건 그렇게 전락했다는 사실보다는 그렇게 전락하지 않으려고 애쓴 인간적, 제도적, 담론적 실천들이 이후 계몽과 혁명의 시대 찐 공화주의의 자양분이 되어주었다는 부분에 있지 않나?' 부분에 포커스를 두었으니 감독이 끊임없이 전작에서선 후속작에서건 '공화정 로마의 이상 재건'이라는 화두를 들이밀었던거라 생각합니다.

다만 폭군을 처단한 영웅 막시무스의 죽음으로 이제 로마의 공화적 이상이 되돌아 올 거라는 이상적 메시지로 끝난 전작과 달리 이번작의 주인공 루시우스는 살아있는 자로서 로마의 이상으로 가려진 적나라한 허울과 맞닥들여 그 허울로서 권력을 잡았으니, 이제 어떻게 해야할지 스스로도 아직 알 수 없다는 결말로 끝나는것으로, 전작보다는 조금 더 시니컬한 결말인거죠. 전작의 결말만 해도 '모든 로마 시민들이 모인' 콜로세움에서 시민들이 폭군의 처단을 목격하는 것으로 끝났지만 이번작의 결말은 '로마 시민 아무도 없는' 콜로세움에서 주인공이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할 지 '이미 죽은 어머니(로마의 공화적 이상)'에게 묻지만 대답을 듣지 못하는 걸로 끝나니까요. 실제 역사상 로마도 몰락해 가면서 허울이라도 공화정 로마의 이상을 견지하던 프린키파투스 체제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를 기점으로 점점 더 황제 권력이 전제화 되는 도미나투스 체제로 끝났기도 했고 말이죠.

사실 이런 로마의 공화적 이상의 몰락의 경우엔 로마 공화주의 그것 자체가 현대 공화주의의 자양분인 만큼, 그 몰락과정이 지금에 있어서도 주요한 반면교사가 된다는 점에서, 어떤 면으로 보면 현 시국과 아예 안 통하는 것도 아니고, 로마 공화정의 후예를 자처하는 현대 공화주의자들에게 있어선 항상 주시하지 않을수 없는 부분이란 사실 역시 분명하다는게 이런 종류의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메시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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