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센의 장치는 에디슨의 축음기와 매우 유사하지만, 실린더가 강철 와이어로 감싸져 있고, 와이어에 전자석이 접촉해 있다는 점이 달랐죠. 이때 전자석이 축음기의 바늘 역할을 하며, 실린더가 회전하면서 소리가 기록되었죠. 폴센은 이 장치를 텔레그래폰Telegraphone 이라고 불렀습니다.
폴센은 미국, 영국, 프랑스 등에서 텔레그래폰의 특허권을 획득하고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 출품해 좋은 평가를 받습니다. 하지만 초창기 기술이었던 만큼 음질이 좋지 않았고 고장이 잦았습니다. 게다가 디스크 그래모폰의 성능은 계속 발전했기 때문에 폴센의 텔레그래폰은 실패합니다. 그럼에도 폴센과 그의 조수 페더 O. 페더센Peder O. Pedersen 은 텔레그래폰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데요. 1907년 그들은 녹음의 감도를 높이고 왜곡을 줄이는 DC 바이어스 시스템에 대한 특허를 미국에서 획득합니다. 이 기술은 이후 30년 동안 AC 바이어스가 발명될 때까지 자기 녹음 장치에서 필수적인 기술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와이어 레코드는 디스크 레코드보다 더 오랜 시간 연속적으로 재생할 수 있다는 차별점이 있어 1920년대 방송 및 군사 통신 분야에서 자기 녹음기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 시작합니다. BBC에서는 무게 1톤, 길이 3,000m의 강철 리본으로 30분 동안 녹음하는 강철 리본 레코더를 사용했습니다. 이는 1937년 일본으로 수입되어 NHK 도쿄에서도 사용되었죠.
와이어 레코더와 강철 리본 레코더는 풀리면 다시 감기가 매우 어려웠고, 끊어질 경우 다시 용접해야 하는 등 사용성이 안 좋았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28년, 독일 엔지니어 프리츠 페우머Fritz Pfeumer 는 종이 테이프에 산화철을 코팅하여 녹음 테이프를 만들었고, 세계 최초의 테이프 레코더인 사운드 페이퍼 머신Sound Paper Machine 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운드 페이퍼 머신의 코팅된 자기 테이프는 표면이 고르지 않았고, 코팅이 잘 붙어있지 않아 재생 중에 자성 입자가 헤드와 접촉하면서 떨어졌죠. 이로 인해 이 기계는 "샌드페이퍼 기계"라는 악명이 붙게 되었죠.
이러한 테이프 레코드의 한계들로 인해 대다수 유럽에서는 디스크 레코더가 주류였습니다. 반면 독일만은 예외였습니다. 프리츠 페우머의 사운드 페이퍼 머신을 시작으로 릴투릴 레코더가 주류였죠. 1930년대 독일의 AEG에서 마그네토폰Magnetophon을 1935년에는 K1을 연이어 발표했고, 1939년 독일 대부분의 방송국에는 마그네토폰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1942년에는 AC바이어스가 도입되어 마그네토폰의 음질이 크게 개선되며 고품질의 사전 녹음된 방송을 송출할 수 있었죠.
당시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는 마치 연설장에 있는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 자기 테이프 레코더를 애용했습니다. 이렇듯 독일에서는 군사적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테이프 레코더 기술을 비밀에 부쳤습니다. 참고로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은 고품질 방송이 라이브로만 가능하다고 생각해, 독일에서 이러한 방송이 지속적으로 송출되는 것에 대해 당황해했다고 합니다.
Fig 4. 엘비스 프리슬리도 쓰게 된 마그네토폰1945년 7월, 독일이 항복한 지 두 달 후, 미국 육군 통신단의 존 멀린John Mullin 은 프랑크푸르트 외곽의 한 라디오 방송국에서 독일제 마그네토폰을 발견합니다. 독일의 통신 기술에 매료된 멀린은 마그네토폰을 개량해 1946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IEEE 회의에서 선보입니다. 이후 멀린은 Ampex Co., Ltd.와 협업하여 1948년 Ampex 200 모델을 완성하죠.
당시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이었던 "빙 크로스비 쇼Bing Crosby Show"에서는 녹음 음질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는데요. 이 쇼의 관계자들이 고품질의 Ampex 200을 보게 되고 ABC 방송국에 도입합니다. 이를 본 메이저 녹음 스튜디오들도 앞다투어 Ampex 200을 도입하죠. 참고로 1954년 엘비스 프레슬리Evis Presley 는 자신의 첫 싱글 <댓츠 올 라이트That's All Right〉를 Ampex의 자기 테이프 기계로 녹음했습니다. 이렇듯 Ampex는 1950년대 미국 릴투릴 시장을 지배했습니다.
곧이어 휴대용 테이프 레코더도 등장합니다. 1951년 스테판 쿠델스키Stefan Kudelski 가 만든 나그라Nagra 가 그 주인공이죠. 나그라는 시네 카메라와 동기화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추고 있어, 영화 촬영 현장에서 주요 음향 녹음 장비로 사용되었습니다.
Fig.5 차량에서 쓸 수 있는 테이프 레코더테이프 레코더는 1950년대 폭발적인 발전과 대중화로 빠르게 디스크 레코더를 대체합니다. 1960년대에는 방송국, 녹음 스튜디오는 물론, 가정용 오디오 장비까지 테이프 레코더가 대세가 되죠. 초기의 테이프 레코더는 모두 오픈 릴 방식으로, 작동을 위해 테이프 릴이 필요했습니다. 고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오픈 릴 테이프 레코더는 높은 테이프 속도를 유지해야 했고, 이는 많은 테이프를 소비했습니다. 이로 인해 릴과 전체 기계의 크기가 상당히 커질 수밖에 없었는데요. 커다란 테이프 릴은 테이프가 풀려서 엉키는 등 관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카트리지 안에 테이프를 사용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집니다.
특히 카트리지 테이프가 필요했던 분야는 차량용 오디오 장비였습니다. 진동이 많은 차량에서는 오픈 릴 테이프는 물론 디스크 레코드 장비도 무용지물이었기 때문이죠. 차량용 오디오 장비는 진동에 강한 테이프 레코드여야 했고, 작고, 카트리지에 담겨 있어야 했습니다.
이에 1962년 피델리팩Fidelipac 카트리지가 미국에서 판매되기 시작했으며, 차량용으로 매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 카트리지는 4트랙 스테레오 시스템으로 10분 동안 재생할 수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3년 뒤 출시된 리어제트Learjet 의 카트리지는 8트랙으로 약 60분 동안 재생할 수 있었습니다. 이 8트랙 카트리지는 큰 성공을 거두었고 표준 차량용 스테레오로 자리 잡았습니다.
Fig.6 표준화 전쟁 - 필립스 vs RCA한편, 유럽에서는 음악 테이프의 인기에 힘입어, 1958년 RCA 빅터는 카트리지형 테이프를 발표하고, 테이프 레코더와 함께 약 150종류의 음악 테이프를 출시했습니다. 그러나 이 카트리지는 대량생산 시 정밀도를 유지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원하는 수준의 녹음/재생 성능을 달성하려면 매우 좁은 헤드 간격이 필요했는데, 당시의 제조 및 부품 기술로는 이를 구현할 수 없어 품질 관리에 실패하죠.
미국에서 차량용 스테레오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1964년 유럽에서는 필립스Philips 에서 개발한 콤팩트 카세트 테이프가 주목받고 있었습니다. 필립스를 이어 RCA도 자신들의 카트리지 디자인을 개발해 유럽에서 대중화하려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이후 RCA는 유럽 제조업체들과 협력하여 다시 더 작은 카트리지인 DC 인터내셔널 타입을 만들어냅니다. 그렇게 해서 콤팩트 카세트 테이프와 DC 인터내셔널이 경쟁하게 되죠.
필립스는 DC 인터내셔널과 경쟁하면서 소니에 콤팩트 카세트 포맷을 채택하도록 접근하며, 개당 25엔의 로열티를 제안합니다. 하지만 소니가 이를 거절하죠. 필립스는 가격을 크게 낮추어 제안하지만, 또다시 소니가 거절합니다. 결국 필립스는 소니에게 무료로 라이센스를 제공하기로 합니다. 그리고 독점금지법과 다른 회사와의 형평성을 고려하여 1965년 필립스는 모든 회사에 특허를 무료로 공개합니다. 이러한 결정을 통해 필립스의 콤팩트 카세트는 표준이 되죠.
Fig.7 워크맨의 등장이처럼 카세트 테이프가 점차 대중화되고 있었지만, 주로 녹음 및 업무, 학습용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음악 감상용으로는 LP가 더 대중적이었죠. 카세트 테이프가 LP의 자리를 넘보게 된 계기는 무엇보다 휴대용 카세트 테이프 플레어이어의 등장이었죠.
1966년 소니에서 첫 번째 콤팩트 카세트 테이프 레코더 TC-100를 출시했었는데요. 말이 콤팩트지 휴대가 간신히 가능한 카세트 테이프 레코더였죠. 2년 후에 출시된 TC-50부터를 진정한 콤팩트 카세트 테이프 레코더라 부를 수 있었습니다. 이후 출시된 워크맨과 사이즈도 큰 차이가 없었고, 무엇보다 아폴로 10호 우주선 승무원들이 사용하면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소형 휴대용 테이프 레코더에는 문제가 있었는데요. 걸으면서 받는 충격 때문에 카세트 테이프의 회전에 간섭이 생겨 재생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이었죠. 소니에서는 1975년 출시한 고성능 휴대용 Hi-Fi 데크 TC-D5에서 이 문제를 해결합니다.
하지만 TC-D5는 하이엔드 카세트 레코더인 만큼 기능도 많고 부피도 컸습니다. 이를 들고 출장을 갔던 소니의 창립자 중 한 명인 마사루 이부카는 불편함을 호소했는데요. 이를 들은 소니의 명예회장인 이부카 마사루는 사람들이 항상 휴대하며 들을 수 있는 기기의 컨셉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기자들의 취재용으로 쓰이던 소니의 프레스맨Pressman 에 녹음기능과 스피커를 없애고 스테레오 앰프를 장착한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와 가벼운 헤드폰 개발을 지시합니다. 이렇게 해서 1979년 워크맨Walkman 이 출시됩니다.
최초의 워크맨은 소니 창업 33주년을 기념해 가격을 33,000엔으로 책정되었는데요. 처음 두 달 동안 30,000대 이상이 판매되었고, 1989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1억 대 이상이 판매되었습니다. 하지만 CD의 등장과 휴대용 CD플레이어가 등장하며 워크맨과 카세트 테이프는 쇠퇴합니다.
Reference.김토일. (2005). 소리의 문화사. 살림.
기디언 슈워츠. (2022). 오디오, 라이프, 디자인. 을유문화사
Masanori Kimizuka. (2012). Historical Development of Magnetic Recording and Tape Recorde. National Museum of Nature and Science Systematic Examination of Technology Report, Volume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