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4/09/03 23:32:38
Name aDayInTheLife
Link #1 https://blog.naver.com/supremee13/223571318029
Subject [일반] <희생> - 다시, 근원의 질문으로. (스포)
근 2주가 지난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CGV 아트하우스에서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전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번 기회를 통해서 처음 접하게 되었구요, <희생>을 봤습니다.

<희생>의 이야기는 굉장히 난해합니다. 스토리를 요약하기도 쉽지 않구요, 어찌보면 굉장히 뜬금없는 일들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당황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 같기도 하구요. 그래서 이번 글은 어찌보면 리뷰라기 보단 그저 하나의 감상문에 가까운 글일 수도 있겠네요.

니체, 윤회 등의 이야기들이 초반부를 나오지만, 아무래도 영화의 가장 중심에 놓여진 이야기는 성서적 신화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동시에, 그 신화적 이야기를 어떻게 개인이 '받아들이느냐'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네요. 영화의 오프닝 크레딧을 장식하는 다빈치의 '동방박사들의 경배'와, 죽어버린 나무를 심어 물을 준다는 이야기로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것은 그 신화적 이야기로 걸맞은 시작과 끝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믿음이 없던 이가 세상의 종말 앞에서 구원 받은 뒤로, 집을 불살라 희생제를 지내고, (다시) 말문이 트인 아이의 유일한, 그리고 영화의 끝을 장식하는 대사로 '빛이 있으라'를 되묻는 것은, 그런 점에서 하나의 거대한 윤회 내지 원을 그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찌보면 앞서 언급한 윤회나 니체 같은 것들이 빠져도 될 것 같으면서도, 또 굉장히 중요한 물음들을 던지고 있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영화 외적으로 바라보면, 이 영화는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유작입니다. 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고 만든 작품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런 점에선 이 영화는 약간... 유서 같기도 합니다. 모든 것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확실한 세상의 끝에서는 번뇌하고, 또 구원을 바라기도 하구요. 바흐의 마태수난곡이 흘러나오며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말하는 이 영화는 분명 냉전 막바지의 공포감을 담고 있으면서도, 그 상황을 자세히 묘사하진 않으면서 상당히 '일반적'인 이야기로 변환합니다.

저는 이 영화가, 떠나온 자가, 돌아갈 곳을 태워 바치는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떤 점에서는 노사제의 마지막 희생제를 보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어요. 그리고, 이야기는 다시금, 다음 세대가, 처음으로 시작하는 건 아닐까, 그렇게 생이라는 게 시작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사다드
24/09/04 07:17
수정 아이콘
주7일 근무로 바쁘게 살다보니 감독전 하는것도 몰랐네요. 자주 영화 보시고 사유하시는 것이 부럽습니다. 타르코프스키의 <봉인된 시간>을 읽어보시지 않으셨다면 권해드립니다. 제 인생책입니다.
aDayInTheLife
24/09/04 07:46
수정 아이콘
고생많으십니다. 저는.. 그냥 다른 거도 해보고 싶긴 한데 집중력이 딸려서 영화를 주로 보게 되더라구요.
책 추천 감사합니다. 읽어보겠습니다!
MurghMakhani
24/09/04 08:49
수정 아이콘
이동진의 언택트톡으로 봤는데 이동진씨가 자기가 언제 타르코프스키 얘기를 또 해보겠냐면서 엄청 열심히 얘기하시더라고요. 흥미로웠던 것은 이 작품이 타르코프스키 작품세계를 집대성한, 말씀하신 대로 유작인 게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작품이었던 것과는 달리 영화를 만들 당시 타르코프스키는 자신이 시한부 상태라는 것을 몰랐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들에 대한 극중 주인공의 애틋한 마음은 당시 타르코프스키 본인의 상황이 많이 투영된 거라 합니다. 아들을 러시아에 두고 이탈리아에 망명하게 되어 한참동안 볼 수가 없었다 하니... 사실 저는 영화 볼 때 왜 그렇게 아들에게 눈물겨울 정도로 애틋한 마음을 보내는지 확 와닿지는 않았는데(영화 내 중요한 사건과는 별개로 주인공-아들 간의 관계는 그저 계속 함께 사는 관계였으니까요) 해설을 들으니 좀 알겠더라고요.
aDayInTheLife
24/09/04 09:32
수정 아이콘
우왕! 언택트톡!
저도 그거로 봤으면 좋았을 텐데 주말에는 시간이 없어서..
여튼 유작의 느낌이 물씬 풍기면서도 또 막상 자신이 시한부인 걸 몰랐다니 흥미롭네요.
말을 걸던 주인공 대신 말을 하는 아이로, 어찌보면 이것도 다음 세대에게 횃불을 넘기는 영화일지도요.
24/09/04 08:59
수정 아이콘
대사 분위기 상황 발성 전개 모두 초중반에 불쾌해서 견디기가 쉽지 않았는데 오히려 영화를 다 보고 나니 감독의 의도에 대해 여러 측면에서 고민해볼 수 있는 영화였습니다
aDayInTheLife
24/09/04 09:33
수정 아이콘
굉장히 어려우면서.. 또 묘하게 의도적인 부분들이 있더라구요. 쉽진 않지만 다시금 행간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영화였습니다.
24/09/04 11:57
수정 아이콘
감독의 의도를 전달하기 위한 목적에서는 의도적으로 관객의 불편을 유도할 수도 있는 거겠죠? 알못이라 갈 길이 머네요 크크
aDayInTheLife
24/09/04 12:13
수정 아이콘
아 그래도 좀.. 떠멕여 줬으면 좋겠어요 크크크크
짐바르도
24/09/04 13:58
수정 아이콘
소싯적 영화광 혹은 영화광 지망생들의 필수 코스였죠... (사실 이해 거의 못함)
aDayInTheLife
24/09/04 14:07
수정 아이콘
(저도 이해 못함)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2348 [일반]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의 순례길 [11] 식별10366 24/09/27 10366 25
102347 [일반] 아이폰으로 교통카드를 사용하다. [48] 김삼관10980 24/09/27 10980 1
102346 [일반] [2024여름] 홋카이도 비에이 사계채의 언덕(四季彩の丘) [13] 烏鳳6424 24/09/26 6424 7
102344 [일반] [2024여름] 시원한 여름을 만들어 주는 삿포로 경치 [6] 워크초짜6506 24/09/26 6506 4
102343 [일반] [2024여름] 대관령의 일출 [2] 니체5231 24/09/26 5231 5
102341 [일반] 숱 조금만 쳐주시고요. 구레나룻은 남겨주세요 [40] 항정살10507 24/09/26 10507 11
102340 [일반]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1] 아몬8236 24/09/26 8236 10
102339 [일반] 축구에 있어서, 실리주의 내지는 실용주의는 무엇인가. [7] Yureka6556 24/09/26 6556 1
102338 [정치] 한덕수 “전기-가스요금 올려 소비 억제해야 [133] 항정살13068 24/09/26 13068 0
102337 [일반] 어느 분의 MSI A/S 후기(부제: 3060 Ti가 4060과 동급?) [8] manymaster5910 24/09/26 5910 0
102336 [일반] 스며드는 어이없는 개그의 향연 '강매강' [19] 빼사스8258 24/09/26 8258 1
102334 [일반] 갤럭시 S25U 긱벤치 등장, 12GB 램 탑재,아이폰 16 프로 맥스보다 높은 멀티코어 [41] SAS Tony Parker 10291 24/09/26 10291 1
102332 [정치] 검찰 수심위, 김건희 여사 불기소 권고 및 최재영 기소 권고 [127] 전기쥐17487 24/09/25 17487 0
102331 [일반] [역사] 히틀러의 무기에서 워크맨까지 | 카세트테이프의 역사 [4] Fig.17866 24/09/25 7866 4
102330 [정치] 김영환 "금투세로 우하향? 신념 있으면 인버스 해라"…한동훈 "대한민국 인버스에 투자하자는 거냐" [126] 덴드로븀19214 24/09/24 19214 0
102329 [일반] 소리로 찾아가는 한자 35. 돌 석(石)에서 파생된 한자들 [6] 계층방정7602 24/09/24 7602 3
102328 [일반] 최종 완결된 웹소설 "디펜스 게임의 폭군이 되었다" [26] 아우구스투스13790 24/09/24 13790 1
102327 [일반] 나이키런 블랙레벨 달성했습니다.(나의 러닝 이야기) [21] pecotek9271 24/09/24 9271 11
102326 [일반] (삼국지) 조예, 대를 이어 아내를 죽인 황제(3) -끝- [29] 글곰8128 24/09/24 8128 22
102325 [일반] 참 좋아하는 일본 락밴드 ‘JUDY AND MARY’의 ‘BLUE TEARS’ [17] 투투피치6491 24/09/24 6491 3
102324 [일반] 단편 후기, TV피플 - 미묘하고 나른한 일상의 이상. [2] aDayInTheLife6002 24/09/23 6002 0
102322 [정치]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한 어느 의사의 생각 [151] 아기호랑이25324 24/09/23 25324 0
102321 [정치] "이달 월급, 다음달에 준다니…" 필리핀 가사관리사 2명 이탈 (이데일리 단독) [36] 덴드로븀12275 24/09/23 12275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