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4/07/05 20:24:55
Name aDayInTheLife
Link #1 https://blog.naver.com/supremee13/223502710781
Subject [일반] <퍼펙트 데이즈> - 일상, 반복, 변주, 그리고 낙관.
빔 벤더스 감독의 <퍼펙트 데이즈>를 보고 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짐 자무쉬 감독의 <패터슨>이 떠오르는, 반복되는 일상과 그 속에서 발생하는 작은 사건들을 자세히 바라보며 따뜻한 시선을 견지하는 영화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퍼펙트 데이즈>는 도쿄 화장실 프로젝트에서 화장실 청소를 하는 히라야마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이 사람은 일정한 루틴을 따르고, 상당히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영화 상에서 다루는 취미는 책과 식물, 사진, 그리고 (카세트 테이프로 듣는) 음악입니다.

영화를 맨 처음 보다보면 독특하게 느껴지는 건 4:3 비율입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좌우가 빈 화면을 보게 되실 텐데요. 화면이 상당히 좁게 느껴질 수 있는 비율입니다만, 외려 화면에 여유가 좀 느껴지는 느낌이에요. 영화 자체가 급박하거나 몰아붙이는 것 없이 상당히 여유롭게 진행되는 만큼, 화면비와 연출의 측면에서도 그 여유가 느껴집니다.

영화에서 첫번째로 느껴지는 건 노동과 일상에 대한 예찬입니다. 반복되는 삶의 일상 속에서, 적어도 몇몇 사건 전까지는 굉장히 묵묵한 주인공과 함께 그가 얼마나 이 일에 성심성의를 다하는 지,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도 즐거운 순간을 가지는 지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를 성실하게 하나하나 따라가는 카메라를 통해 바라봅니다.

그 다음은 아날로그에 대한 애정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영화에서 가장 부자연스러웠던 순간이 히라야마가 핸드폰을 쓰던 순간이었어요. 영화에서 기술적 요소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애초에 몇몇 화장실이 굉장히 현대적이지만) 영화는 그 아날로그 감성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드러냅니다.

이 영화의 중반부를 넘어서 영화는 일종의 변주가 강하게 두드러집니다. 몇몇 사건이 발생하고, 그에 따른 일상의 흐름도 같이 따라 변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여전히 따뜻한 유머와 시선을 견지한다고 느껴집니다. 저는 이 영화는 낙관과 따스함으로 만든, 일종의 '장인'의 손과 행복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요. 혹은, 어떤 따뜻한 일기장을 쓰는 것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성실한 손과, 그 손으로 일궈낸 일상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요. 그 점에서 일상과 예술을 다룬 <패터슨>과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영화는 왜 모든 것은 가만히 있을 수 없는가, 라고 묻지만, 이에 대해 '다음은 다음이고, 지금은 지금일 뿐'이라며 흘러넘기듯 받습니다. 때때로, (제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책을 못읽어봐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영화는 노자의 도덕경의 이야기 같기도 합니다. 성실한 손과 발로 이루어진 일상이라는 점에서요. 가끔씩은, 현대인에게는 너무나 '이상적인'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 불쑥 끼어들때가 있긴 하지만, 그 성실함과 따스함에 대한 예찬이 참 좋았습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24/07/05 22:24
수정 아이콘
외국에 있을 때 봤는데, 이 영화 본 뒤로 테이프를 꽤 사서 돌아왔어요.
aDayInTheLife
24/07/05 22:26
수정 아이콘
테이프 세대가 아닌데도 흥미가 생기더라구요 크크
이쥴레이
24/07/06 09:29
수정 아이콘
루틴의 중요성!
야쿠쇼 코지 연기가 무척좋아서 칸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 탈만한 영화라고 봅니다. 셀위댄스때도 느꼈지만 일본 국민배우라고 해도되죠. 가슴따뜻한 영화라고 봅니다.

어릴때 카세트 음악 늘어짐이 생각 나서 정말 좋았습니다.
aDayInTheLife
24/07/06 10:19
수정 아이콘
그 조용한 울림이 좋더라구요. 연기나, 영화나.
카세트 세대는 살짝 빗겨나가 있는데 궁금증이 생기더라구요 크크
행복을 찾아서
24/07/06 15:53
수정 아이콘
제 멋대로의 해석일테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히라야마 상의 표정 변화에서 느껴지는 그 애달프기도, 행복하기도 한 감정이 너무도 공감이 돼 한참동안 뇌리에 남겨져 있네요. 좋은 영화였다고 생각합니다.
aDayInTheLife
24/07/06 17:28
수정 아이콘
참 좋았어요 결말도
24/07/07 17:15
수정 아이콘
이 글을 보고 방금 보고 왔습니다 감사감사 합니다
aDayInTheLife
24/07/07 17:15
수정 아이콘
흐흐 재밌으셨나요!
24/07/07 17:56
수정 아이콘
잘봤습니다! 이런 감성 영화 좋아요
아이폰12PRO
24/07/10 08:42
수정 아이콘
너무너무 좋았습니다! 리뷰도 참 따뜻하네요 잘 보았습니다!
aDayInTheLife
24/07/10 09:04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25/01/02 00:00
수정 아이콘
넷플에 이 영화 올라와 이글이 생각나 보게 되었습니다.
큰 사건사고 없이도 몰입도가 상당히 좋았습니다.
영화을 통해 velvet underground - pale blue eyes 오랫만에 들으니 한국 영화 접속도 생각나더군요. ^^
aDayInTheLife
25/01/02 06:55
수정 아이콘
흐흐 재밌게 보신거 같네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2238 [일반] 이런저런 이야기 [11] 공기청정기6613 24/09/08 6613 3
102237 [정치] 지금이 한국 정치사의 분기점일지도 모른다 [38] meson14412 24/09/07 14412 0
102236 [일반] 땡볕에서 KISS OF LIFE 'Sticky'를 촬영해 봤습니다. ㅠㅠ 메존일각6279 24/09/07 6279 22
102235 [일반] [서평]《과학적 창조론: 창조의 복음》 - 과학적 방법론으로 창세기 1장을 독해하다 [19] 계층방정7391 24/09/07 7391 3
102234 [정치] 보수정권에서 "호남 인사 소외" 가 두드러지는 이유? [45] 헤일로10831 24/09/07 10831 0
102233 [정치] 수심위, '명품백 의혹' 김여사 불기소 권고…무혐의 처분 수순 [53] 덴드로븀9772 24/09/07 9772 0
102232 [일반] 소리로 찾아가는 한자 29. 가릴 간(柬)에서 파생된 한자들 [4] 계층방정6307 24/09/07 6307 4
102231 [일반] 사기 경험담 [24] 시무룩9161 24/09/06 9161 16
102230 [일반] 여권 재발급 도전기 [19] 계란말이8457 24/09/06 8457 4
102229 [일반] 갑자기 직원 빼가기를 당하니 허탈하네요 [120] 앗흥19847 24/09/06 19847 23
102228 [정치] 이번 의료사태로 인하여 득을보는 사람은 누군가요...? [129] 능숙한문제해결사14039 24/09/06 14039 0
102227 [일반] 오랫만에 하는 미국주식 맞추기 도미노 피자이벤트(완료) [220] 기다리다9003 24/09/06 9003 5
102226 [일반] 내일 결혼합니다 [142] 랜덤여신13744 24/09/06 13744 98
102225 [일반] 인류역사상 9번째로 충돌전 발견된 소행성 [27] Dowhatyoucan't12425 24/09/05 12425 3
102224 [일반] (스포일러) 도쿄 사기꾼들 감상 [10] 한뫼소9873 24/09/05 9873 3
102223 [일반] 애플 '나의 찾기' 25년 1분기 한국 도입 발표 [10] 츠라빈스카야8534 24/09/05 8534 0
102222 [일반] 갤럭시 탭 S10 울트라 렌더링 이미지 유출 [19] SAS Tony Parker 10470 24/09/05 10470 1
102221 [정치] 노인 기본소득이 되려는 기초연금 폭탄 [86] 사람되고싶다14922 24/09/05 14922 0
102220 [정치] 휴대폰 메시지 확인하는 인요한 최고위원 [77] 전기쥐12969 24/09/05 12969 0
102219 [정치] 전문가 아닌 사람들이 주도하는 의료말살정책 [179] 여수낮바다17299 24/09/05 17299 0
102218 [일반] 스팀덱 사용기 [47] 은달8110 24/09/05 8110 8
102217 [일반] <Chloe chua> 링링이라 불리는 소녀를 아시나요. [4] 옥동이6307 24/09/05 6307 3
102215 [일반] 사용시간 오래가는 스마트워치 찾다가 찾은 가민 포러너55 [34] 지그제프8780 24/09/05 8780 3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