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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때 그랬다면? - 영등포부 승격
3. 시흥의 둘째 딸, 안양
4. 시흥의 셋재 딸, 관악
5. 시흥의 넷째 딸, 구로
6. 시흥의 다섯째 딸, 동작
7. 시흥의 여섯째 딸, 광명
8. 그때 그랬다면? - 시흥 있는 시흥
9. 시흥의 일곱째 딸, 안산
10. 시흥의 여덟째 딸, 과천
11. 시흥의 아홉째 딸, 서초
12. 시흥의 열째 딸, 군포
시흥의 열두 딸들 - 아낌없이 주는 시흥의 역사 (9)
14. 그때 그랬다면? - 소래읍이 오지 않았다면
지난 편에서 1989년 시흥군의 분할 폐지를 살펴보았다. 그때 쟁점을 나눠보면 다음과 같다.
1. 군포읍과 의왕읍을 합치느냐? 따로따로 승격하느냐?
2. 수암면과 군자면을 소래읍에 합치느냐? 안산시에 편입하느냐?
3. 시흥의 이름은 어디에 줄 것이냐?
거슬러 올라가면 소래읍을 부천군에서 시흥군으로 편입해 온 것이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 요인 같다. 소래는 편입된 이후에도 시흥군의 나머지 지역과 교류가 별로 없었고 오히려 예나 지금이나 부천시와 왕래가 잦은 편이다. 만약 소래읍이 시흥군에 편입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안양시가 시흥군에서 분리 승격한 이래 시흥군은 동부와 서부로 나뉘어졌는데, 안산시와 과천시가 뒤이어 분리 승격하자 안양시의 영향으로 이미 많이 개발된 동시흥과 아직 안산시의 영향력이 뻗어나오려면 시화공단을 기다려야 하는 서시흥은 인구 차이가 심하게 났다. 동시흥의 인구는 16만 명을 넘는 반면 서시흥의 인구는 소래읍이 빠지면 3만 명을 넘는 정도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원 역사처럼 서시흥에서 시흥군의 이름을 가져가는 것은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가장 쉬운 방안은 서시흥이 전부 안산시에 편입돼 안산시가 1914년의 안산군을 온전히 회복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마지막으로 남는 시흥의 이름을 탐낸 군포읍과 의왕읍도 연합에 성공하기 쉬웠을 것이다. 그리고 안산시에서 서시흥을 편입하는 분위기에 편승해 신 시흥시에서 반월면 북부 5개리를 편입했을 것이다.
구 안산군의 회복, 군포+의왕+반월 일부가 통합된 가상의 시흥시
안산시와 시흥시 사이에 낀 작은 지역은 반월면 팔곡일리(현 안산시 팔곡일동)로, 아무 데도 언급이 없었기 때문에 그대로 두었지만 다른 반월면 지역과 단절되었기 때문에 현 역사처럼 결국은 안산시에 편입되었을 것이다.
위의 그림에서 목감·조남리만 안양으로 편입
또는 안양시와 맞닿은 수암면 목감·조남리의 요구를 받아들여 안양시로 편입하고 나머지 지역은 그대로 안산시에 편입되었을 수도 있다.
군포읍이 시흥시로 승격, 구 안산군의 회복, 의왕시의 분리 승격, 목감·조남의 안양 편입
군포읍과 의왕읍이 원 역사처럼 통합이 결렬되어 각자 시로 승격하는 방안은 어떨까? 행정 편의를 위해서는 시흥의 이름이 남는 편이 좋은데, 군포읍과 의왕읍이 서로 힘겨루기를 하면 시흥에 들어온 역사가 짧은 의왕읍이 결국 밀려나고 군포읍이 시흥시로 승격했을 것이다. 그리고 반월면 북부 5개리가 신 시흥시로 편입되는 데에도 시간이 더 필요했을 것이다. 목감·조남리가 안산시로 편입될지 안양시로 편입될지는 둘 다 가능하겠지만 각 지방의 의사가 더 잘 반영되었을 것이니 안양시로 편입하는 것이 더 그럴 듯하다.
수암·군자면 시흥군 잔류, 군포·의왕시 분리 승격
정말 만에 하나의 가능성인데, 1989년은 막 시화공단이 조성 중이었을 때이니 시화공단에 힘입어 서시흥이 독자적인 시로 될 것이라 보고 서시흥을 그대로 시흥군으로 남겨두고 군포읍과 의왕읍을 각각 시로 승격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시흥군은 일단은 군으로 존속하겠지만 결국은 시흥시로 승격했을 것이며, 시의 세를 유지하기 위해 목감·조남·거모는 물론 원 역사에선 결국 안산시로 편입되는 화정·장상·장하·수암동도 그대로 시흥시에 남았을 것이다. 장상·장하·수암동을 관할하는 행정동이 안산동이니 안산동이 안산이 아니라 시흥시에 있는 대체 뭔지 첫눈에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었을 것이고.
군포읍과 의왕읍이 분리 승격하든 함께 승격하든, 소래읍이 없어서 나머지 서부 시흥군이 주변 시에 흡수 통합되거나 시화공단에 의지해 존속했다면 현재의 시흥시와 같이 소래권-정왕권의 힘겨루기가 중심이 되고 구심점을 찾지 못하는 다핵도시로 남지는 않았을 것이다.
※ 이 글은 밀리로드의 “시흥의 열두 딸들” 연재글을 묶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