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4/04/10 23:51:59
Name aDayInTheLife
Link #1 https://blog.naver.com/supremee13/223411791794
Subject [일반] 창작과 시샘.(잡담)
저는 영화를, 음악을, 그리고 주로 소설을 좋아합니다. 양심상, 책을 좋아한다고 이야기 하긴 좀 애매하고, 대체로 소설, 혹은 이야기거리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제가 어떤 기승전결을 좋아한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좋아하는 것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또 그안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다보면 어떤 맥락을, 가끔은 우연을, 그리고 어떤 인과관계를 읽어내는 걸 좋아한다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이상하게도 제가 좋아했던 두개의 과목은 과학과 역사였습니다. 원인과 결과가 있고, 어떤 흐름이 있으며, 논리적이면서도 또 괴상하기도 하니까요.

여튼, 그런 것들을 좋아해서 이것저것 접하면서 저는 조금씩 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봤던 것 같습니다. 어떤 글을 쓰고, 때때로 악기를 다뤄보기도 하고, 영화 관련 워크숍도 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걸 남들에게 보여주고, 이야기를 듣는 건 참 민망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구요. 일단, 제가 스스로 자신감이 많이 부족한 사람이긴 하지만, 또 그렇게 표현을 한 걸 드러내는 건 조금 더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이 들더라구요. 비슷하게, 제가 커뮤니티나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도 쓴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주변에 어쩌다보니 있긴 한데, 막상 그 사람들에게 '글을 읽어 달라'라던가, 혹은 제가 보여준 경우는 또 되게 드문 것 같습니다.

어떤 것을 좋아하지만, 그런 것들을 잘 하지 못한다는 걸 깨닫는 건 굉장히 아픈 경험입니다. 잘하고 싶고, 재능이 있었으면 하지만, 그 재능이 없다는 걸 깨닫는 건 뼈저리고 굉장히 시무룩한 일이죠. 특히나, 그게 굉장히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 시기에 깨닫게 된다면요. 저는 굉장히 빠르게 철이 들었고, (라고 생각하고) 저는 굉장히 빠르게 주변 환경과 제 상황에 대해서 수긍한 케이스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내가 잘 할 수 없는 것들을 굉장히 빠르게 깨달아 버렸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그런 '창작자'들에게 일종의 경외감, 내지 시샘을 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세상을 만들어낼 수 있고, 어떤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으며, 어떤 생각을 그 이야기와 세상 속에 담아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다는 것. 너무 부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또 저는 저와 반대되는 이야기들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더더욱 부러워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조금은 내성적이고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조금 어둡거나 복잡한 사람이라, 그와 반대되는 낙관적이거나 긍정적인 이야기나 사람들에 대해서는 마치 '제가 도달할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한 사람들인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고는 합니다.

오늘 갑자기, 이런 생각을 정리해서 쓰고 싶다는 욕심이 든 이유는, 그냥 오늘 아무것도 안해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집중의 문제인지, 의욕의 문제인지, 혹은 뭐 다른 것들의 문제인지 책을 읽거나 게임을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집중하거나 같은 걸 못하고 그냥 이래저래 시간에 끌려다니면서 하루를 보낸 것 같아서요.
전에 제가 넷플릭스 영화 '틱, 틱.... 붐!'을 보면서 굉장히 많은 공감을 했다는 글을 짧게 나마 쓴 것 같습니다. 무엇도 하지 않았고, 또 무엇도 시도하지 않았으면서도 그저 부러워하고만 있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면서도 또 막상 나와 내가 만들어낸 무엇인가를 드러내는 건 너무나도 부끄럽고 위험한 일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저는 아직까지 주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런 측면에서 모든 창작물에 대해 일종의 애증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닐까 되돌아보게 됩니다. 나도 저런 걸 쓰고 싶다는 부러움과 질시, 그러면서 나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과 가정 같은 걸요. 저는 그런 측면에서 리뷰를 쓰는 사람으로서, '평론가는 창작자가 되지 못한 사람들이다.'라는 이야기가 모든 경우를 담진 못하지만, 저라는 사람은 담는 건 아닐까 싶긴 합니다.

덧. 최근에 본 가장 제가 '부러운' 이야기는 인터넷 도시전설 위키, SCP재단의 SCP-1342 항목이었습니다.
그 마지막 문장은 너무나도 아름답고 설레는 이야기라, 나무위키에서 꼭 검색해보시길 추천드리고 싶네요.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코로나시즌
24/04/11 02:32
수정 아이콘
결국 그 열망으로 만들 수 밖에 없습니다. 허접하고 처참해서 부끄럽기까지한걸 말이죠.


해당 보이저 scp위키란을 보니 한국 sf중 경이감을 주는 작가인 김보영씨가 떠오릅니다. 단편 중에 [땅 밑에] 란 sf가 있는데 추천드립니다. 정말 만족하실겁니다. 단편선집에 실려 있습니다.
aDayInTheLife
24/04/11 08:14
수정 아이콘
책 추천 감사합니다.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결국 욕망이 부끄러움을 이기는 날이 오겠..죠? 흐흐
할러퀸
24/04/11 18:22
수정 아이콘
저도 창작에 미약하나마 열망(?)을 가진 사람으로 말해보자면.. 이 글도, 글쓴님이 올려주신 리뷰들도 읽을때마다 훌륭한 하나의 창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추천 누르고 있어요.
aDayInTheLife
24/04/11 18:23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흐흐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1691 [정치] 우리에게 필요한 것 : 집단소송제도, 증거개시제도, 징벌적손해배상 [20] 사람되고싶다9037 24/06/13 9037 0
101690 [일반] [서평]《꼰대들은 우리를 눈송이라고 부른다》 - 쓸데없이 예민한 사람들의 불평이 세상을 진보로 이끈다 [7] 계층방정10390 24/06/13 10390 4
101689 [일반] 로스쿨 지원자수가 어마어마하게 폭등 중입니다. [59] 버들소리19957 24/06/12 19957 2
101688 [일반] 증권사 보고서란 대체... [48] 시린비16510 24/06/12 16510 0
101687 [일반] 단순 맞짱도 학폭으로 취급해야 하는가? [138] 北海道18345 24/06/12 18345 1
101685 [정치] 의사 파업이 전면 확대될 분위기입니다. [239] 홍철30114 24/06/12 30114 0
101684 [일반] 전통주 회사 전직자의 주관적인 전통주 추천 [67] Fig.117603 24/06/11 17603 28
101683 [일반] [웹소설] 조선출신 중국 대군벌 [18] Crystal12523 24/06/11 12523 4
101682 [일반] aa [60] 삭제됨14224 24/06/11 14224 3
101681 [일반] 갤럭시 버즈 3 프로 디자인 유출 [49] SAS Tony Parker 15972 24/06/11 15972 0
101679 [일반] 판단할 판(判)과 반 반(半)에서 유래한 한자들 - 짝, 판단, 배반 등 [6] 계층방정8935 24/06/11 8935 4
101678 [일반] 인간이란 [7] 전화기8136 24/06/11 8136 0
101677 [정치] "군인은 국가가 필요할 때 군말 없이 죽어주도록 훈련되는 존재" [83] 조선제일검15985 24/06/11 15985 0
101676 [일반] [서평] 《#i세대》 - 스마트폰과 함께 자라나는 것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8] 계층방정10113 24/06/10 10113 5
101674 [정치] 국민권익위,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 "청탁금지법 위반사항 없어" [114] 일신16531 24/06/10 16531 0
101673 [일반] 교감 뺨 때린 초등생, 이번엔 출석정지 중 자전거 훔쳤다가 덜미 [50] Leeka18639 24/06/10 18639 10
101672 [일반] <고질라 마이너스 원> - 쉽게 삼켜지지 않는 입 안의 가시. [42] aDayInTheLife12595 24/06/09 12595 0
101671 [정치] 현재 보수의 아젠다란 대체 무엇인가 [72] 사람되고싶다20215 24/06/09 20215 0
101670 [일반] 책 후기 - <컬트> [2] aDayInTheLife9427 24/06/09 9427 1
101669 [일반] [팝송] 비욘세 새 앨범 "COWBOY CARTER" [1] 김치찌개10401 24/06/09 10401 1
101668 [일반] [웹소설] 사이버펑크를 살아가는 불명예퇴직자를 위한 무일푼 생활 안내서.. [6] 카미트리아11697 24/06/08 11697 3
101667 [일반] 제가 들었던 노벨상 수상자 강의에 대해서 [29] 성야무인13727 24/06/08 13727 11
101665 [일반] 부린이가 알아야 할 대출상식 44가지(24년5월) [18] 유랑15235 24/06/08 15235 18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