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시판
:: 이전 게시판
|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24/01/12 19:48
개인적으로는 박정희 대통령의 출신지역이 문제였다기 보다는...
중국의 지도자 장제스가 대만으로 쫓겨나가고, 마오쩌둥이 중국을 장악한 것이 더 크지 않았을까 합니다. 즉, 한반도 서부축의 무역상대가 사실상 없었던 반면에, 한반도 동부축의 무역상대들은 건재했던 것이 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요. 아무리 박정희 대통령이 독재자라고는 해도, 중국이 여전히 장제스의 치하 아래에 있었다고 가정한다면, 군산, 목포 등의 항구가(물론 부산보다야 규모가 적었겠지만) 쇠락하지는 않았을 듯 하고, 그렇다면 사회간접자본의 투여부터 시작해서... 충청, 전라 쪽의 자본들도 나름대로 더 성장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 때문에라도 박정희 대통령이 한반도 서부축에도 자본 투여를 줄일 수는 없지 않았을까... 뭐 그렇게 생각합니다.
24/01/12 21:25
저도 비슷하게 생각합니다. 지연을 절대로 무시할 순 없겠지만, 박정희가 집권하던 1960~1980 직전까지의 시기는 서쪽은 무역상대가 없다시피 하고 동쪽이 그나마 교역을 할만한 지역이었죠. 더군다나, 그 당시의 기술력으로 중공업, 무역항을 할만한 지반은 동해안 밖에 없었던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서해안, 남해안은 대규모 무역항을 할만한 입지가 거의 없었을뿐더러 그 당시에 무역항으로써 입지가 좋았던 제2의 도시였던 부산을 키우는게 일본, 미국과의 교역에도 더 이점이 있었죠. 물론 그 덕에 서울과 부산 중간에 있던 경북(특히 구미)이 대통령의 지연과 더불어 혜택을 크게 보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 개인적인 생각인데 박정희가 호남출신이라고 하더라도 호남은 예나 지금이나 국내 최대의 곡물 생산지역 입니다. 부국강병을 위해 공업, 특히 중공업을 크게 발전시키면서도 국민들의 불만을 잠재워줄 쌀밥과 고깃국을 어떻게든 만들어냈어야 했던 독재정권 이었기에 호남은 그래도 농업 생산력을 높이는데 집중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지금이야 호남평야에 공장 짓자는 말은 얼마든지 할 수 있겠지만, 그 당시에는 호남평야에 쌀 이외에 다른 짓을 하자는 생각이 쉽게 나오진 않았을거 같습니다.
24/01/12 19:52
호남출신이라도 아무 상관없었을 것 같습니다.
살해 당하기 전에 부마항쟁 때 경남을 쓸어 버릴 계획도 있었으니 죽지 않고 살아서 행했다면 오히려 경상도권에서 장난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24/01/12 19:59
전라권이 좌파, 좌파라고 하는데 사실 전라권도 민주당 편을 들 뿐, 꽤나 보수적이죠.
5.18때 '김일성은 오판말라'라는 피켓을 내걸었던 것도 알려지고 있고, 민주당계 계파/정당 중에 전라권에 기반한 조직들은 대체로 민주당계 내에서는 꽤나 보수적인 편이기도 하고요.
24/01/12 20:03
박정희때 경부고속도로나 구미공단 등을 밀어준 것도 영향이 분명 있었겠지만, 지역구도를 본격적으로 이용한건 전두환이었다고 봅니다.
경남지역쪽도 김영삼을 비롯한 야권 인사들의 영향력이 컸고, 광주항쟁보다 부마항쟁이 먼저 일어났던 것만 봐도 그렇죠.
24/01/12 20:47
박정희가 호남출신이었다면 반신 취급이 아니라 일베 합성 필수요소 취급 받고 나머지는 별차이 없었을지도 모르죠
말년 독재 행각을 감싸주는 주요 이유가 지역구도에도 영향을 받았을테니까요
24/01/12 21:30
지금보단 호남에 더 투자했을 것 같긴 한데 근본적으로 구도가 바뀌진 못했을 것 같습니다.
경부축 발전은 일제시대부터 쌓여온 현상이고, 특히 미일과 대규모 교역하기엔 부산항 입지가 너무 사기라... 애초에 그 당시에 우리나라는 경부축 하나 개발하는 것만 해도 국가의 명운을 건 수준이었으니 여력이 없었다 봐야죠. 그나마도 경부축이 일제시대부터 쌓여온 기반도 있고 입지도 좋으니까 어떻게든 꾸역꾸역 된 거지 아예 호남권을 새로운 축으로 성장시킬만큼의 여유가 있었을 것 같진 않습니다.
24/01/12 21:30
윗분 말씀대로 호남지역에서의 박정희은 지지율은 경북에 비견될 정도로 높았습니다.
그러다가 김대중이 떠오르기 시작하고 라이벌이 되기 시작하면서부터 호남은 티케이 특정지역 어르신들 표현을 빌리자면 '라도 것'들이 되어버렸죠. 만약 박정희가 호남출신이었다면 호남이 지금처럼 소외는게 좀 덜했을것같긴합니다.
24/01/12 23:12
박정희는 호남에서 아주 높은 지지를 받았었습니다. 윤보선을 꺽고 대통령 됐던 이유가 호남에서 대승 덕분이죠.
재밌는거는 김대중이 박정희에게 진이유가 전라도에서 득표율 차이가 별로 안났어요, 박정희가 영남에서 얻은 앞도적 득표율에 비해서요.
24/01/13 00:30
저도 크게 차이 없다는 것에 공감합니다.
경부축이 발전의 중심이 되는건 어쩔수 없는 현상이었다고 봅니다. 지역구도에 대해선 여러 말들이 있어서 여기서는 말을 아끼겠습니다.
24/01/13 00:50
경부축 위주의 개발과 그에 따른 호남소외 및 차별 현상은 박정희 하나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고 위에 분들이 언급해 주신 근본 지정학적 조건 외에도 6.25 당시 호남지역에서 유독 처절한 상호 학살로 지역의 엘리트 인재풀이 개박살났던 점도 상당한 요인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24/01/13 12:01
영호남 갈등의 시작은 저도 YS, DJ로 알고 있습니다. 13대 대선에서 야권단일화 후보로 YS가 추대되었는데 DJ가 불출마 선언을 번복하고 출마해서 노태우가 당선되었지요. 그 이전만 해도 영남도 호남도 다 야권이라서 지금처럼 원수처럼 생각하지는 않았지요.
24/01/13 13:07
편서풍이 부는 이상 중화학공업은 동남쪽 지역에서 발전할수밖에 없었습니다. (중국도 중국 기준 동쪽 해안선에 공장들 쫙 깐거처럼) 이걸 바꾸려면 지구 자전방향을 반대로 돌려야 하는데.. 호남 출신이든 저기 북한 출신이든 영남위주로 발전할수밖에 없었죠
24/01/13 14:17
별의미없다고 봅니다
다른 분들 말대로 산업이 미국 일본과 교역해야하니 영남권이 발달할수밖에 없었으니까요 개인적으로 님처럼 가정한다면 제가 보고 싶은건 어디선가 본거였는데 그 내용이... 박정희와 김일성이 대한민국에서 예토전생한다 대통령 선거에 박정희는 더불어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김일성은 국민의 힘 대통령 후보로 나온다 둘 중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가
24/01/15 09:07
일단 입지의 문제가 제일 컸고, 지역갈등 구조의 시작은 전두환이라고 보는게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전쟁 이후의 폐허에서 거의 아사 직전까지 쫄쫄 굶다가 이사람이 나에게 밀가루를 줬어..? (사실은 미국이 준거지만) 목숨을 구해준 사람의 은혜는 오래가는 법이죠.
24/01/15 17:07
박정희 시절은 영남, 호남을 가리지 않고 여당(공화당)에 대항하는 야당이 신민당으로 한 몸이었습니다. 물론 신민당내에서 YS, DJ가 경쟁했죠.
전두환 5공 시기에도 야당은 지역으로 분열되지 않았어요. DJ는 그당시 재야인사였기 때문에 뒤에서 야당을 돕는 사람이었지요. 그러다, 1987.6.29 선언이후 YS, DJ가 각기 다른 당(통일민주당, 평화민주당)으로 대선을 치르면서 YS는 영남의 야당지지자, DJ는 호남의 야당지지자들을 기반으로 세력화합니다. 두 사람의 분열로 민정당 노태우가 당선되었고. 6공 초기 민정당의 총선 실패로 여소야대가 되어 정치운영이 안되자, 민정당은 YS, JP에게 연합을 제안하죠. 그래서 탄생한 정당이 민자당. 이후 YS가 대통령이 되고 사실상 YS계가 이 당의 주류가 되죠. 결론적으로 정치 지역구도가 형성한 데는 박정희가 전혀 관계없고, 5공 6공을 거치면서 출신 지역을 기반으로 정치세력화한 YS, DJ, JP의 영향이 가장 크죠. 그중에서도 중공업발전에서 소외된 호남지역 민심을 활용한 DJ의 영향이 지대했다고 봅니다. 그런데, 60년대초 농업이 발달한 호남지역은 중공업공장을 짓는다고 해도 결사반대할 곳이었고, 상대적 산업 미발달지인 동남권지역 개발은 맞는 방향이었던 거 같아요. DJ가 경부선 고속도로 건설시 도로건설현장에 큰 대자로 누워서 반대한 일화가 있지요. 그 당시 도로, 공장 건설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보여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