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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4/01/07 06:09:59
Name 류지나
Subject [일반] [스포일러] 콘크리트 유토피아 관람 후기 (수정됨)

저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물을 좋아합니다. 이 장르는 파멸한 세계에서 살아가는 인간 군상을 다루는 스토리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그래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생존과 인간성을 저울질하는 고뇌가 매력적인 이야기지요. 사실 장르라고 부를 만큼, 일종의 클리셰나 전형적인 스토리는 어느 정도 결정되어 있는 셈입니다.

게임으로 들자면 디스 워 이즈 마인이나 프로스트 펑크, 림월드 같은 유명한 작품들이 있구요. 영화로는 나는 전설이다나 매드맥스 시리즈가 생각이 나네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재난이 일어난 요소가 '지진'인 만큼, 포스트 아포칼립스 중에서도 재난 아포칼립스로 구분할 수 있겠습니다.


영화는 포아 장르팬이라면 누구든 짐작할만한 뻔한 스토리로 진행됩니다. 아, 뻔하다고 안 좋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좋게 이야기하자면 장르의 힘을 타고 그대로 솟구쳐오릅니다. 오프닝부터 황궁 아파트 국가가 건설되는 시퀀스까지는 그야말로 시원하게 내달리며 장르의 힘을 보여줍니다.

미리 스포일러하자면, 보통 포아 장르가 세계관 설명-집단 형성-갈등의 고조-파멸(또는 해피엔딩) 순으로 이루어진다고 보는데, 이 영화는 그 공식 그대로 따라가거든요. 사실 클리셰가 싫다고 어설프게 비틀다가 망하기보다는 그냥 장르 클리셰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장르팬들은 바로 그 '뻔하면서도 익숙한 맛'을 보려고 팬질 하는거니까요.


그래서 영화 중반까지 보면서 저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포아 장르물의 가장 큰 문제는, 힘이 떨어지는 후반 전개입니다. 많은 작품들이 사실 제대로 뒷문을 못 닫아서 망하거든요. 클라이맥스까지야 시원하게 내달렸다손쳐도, 기승전결에서 '결'에 해당되는 부분을 망가뜨리거나 우왕좌왕하는 작품들이 수두룩합니다.

아니나다를까, 이 영화도 결국 예상한대로 흘러가기 시작합니다. 많은 분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듯이, 후반 전개가 어설퍼지거든요.


후반 전개가 어설픈 이유는 많은 부분에서 주명화(박보영 역) 캐릭터의 문제입니다만, 일단 먼저 큰 부분부터 짚고 넘어가봅시다.


[1] 영화의 세계관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영화 내내 세계관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사실 재미도 없는 세계관을 관객에게 억지로 때려박느니, 그냥 무시하는 것은 좋은 선택입니다. 다만 이 때문에 주명화라는 인물을 다룰 때 고심했어야 했습니다.

대충 감잡아보자면, 대한민국 전역이 지진 때문에 망했습니다. 영화에서는 아파트에 고립된 주민들이 몇 달간 버티는 장면이 나오는데, 만약 대한민국이 행정력이 존재한다면 그 오랜 기간동안 이들을 방치해둘 리가 없지요. 영화 초반에 잠깐 구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그 이후로는 전혀 언급이 없는 것을 보면 대한민국 전체가 망한 것이 분명합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황궁 아파트 주민들이 범한 죄는, 사실 온전한 죄가 아닙니다. 만약 서울 정도만 파멸한 수준의 지진이었다고 칩시다. 그러면 당연히 아파트 외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 이치에 맞습니다. 도덕적 문제가 아니라, 회복될 행정력과 공권력이 무섭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라 전체가 패망한 수준의 재난 앞에서는 선뜻 남을 돕자고 나설 수가 없습니다. 도덕은 생존 이후의 덕목이기 때문이지요.

작중의 주명화는 남편 김민성의 인간성과 죄책감을 끊임없이 상기시킵니다. 하지만 캐릭터 스스로가 내포한 한계 때문에 설득력이 거의 없는데요. 문제는, 이 인물이 설득력을 잃어버리는 것이 바로 감독의 의도여서 문제입니다. 감독 인터뷰를 찾아보면 관객들이 '재난 앞에서 희망을 대변하며 질문을 던지는(https://www.sisaweek.com/news/articleView.html?idxno=207102)' 것이 바로 주명화인데요. 안타깝게도 감독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주명화는 그저 이 장르에서 흔하게 나오는 '옳은 행동을 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트롤'로 밖에 비치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게 파 보죠


[2] 주명화라는 캐릭터

작품의 주연 3인방 중 김영탁(모세범), 김민성은 뭐 더 말할게 없습니다. 지극히 포아 장르적 인물이고, 또 전형적인 인물입니다.

그래도 잠깐만 짚고 넘어가자면, 김영탁은 되게 잘 만든 캐릭터라고 생각합니다. 파멸에서 재난을 만나서 오히려 상승(대표가 됨)으로, 상승한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서 분골쇄신 노력하는 모습, 그리고 우유부단한 사람들이 많은 영화에서 드물게 결단력이 있는, 쉽게 말해서 선과 악을 모두 내포한 입체적인 인물이라는 점에서 좋은 캐릭터에요. 사실 이 인물이 대표가 된 이후로 한 행동은 구구절절 옳거든요.(생존을 위해서라는 점에 한한다면) 다만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모순과 죄악 때문에, 결국 파멸하고 마는 인물입니다.


김영탁이 워낙 포스있게 나와서 상대적으로 김민성은 좀 흐릿해보입니다. 소시민의 대표주자라고 할까요. 심기가 여리고 우유부단해서 영탁과 아내 사이에서 흔들리는 존재입니다. 사실 김민성은 영화 내내 고뇌하는 존재인데, 제 생각에는 스토리 분량을 너무 못 받았습니다. 김민성의 고뇌 대부분은 주명화가 가져가버려서 김민성은 영화 내내 아이템 셔틀이었거든요. 아파트 입주민들의 약탈의 선봉에 서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등 악인은 아니나, 결국 상황을 거스르지도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죄였습니다.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는 회색분자가 가겠지요.


많은 분들이 주명화를 보고 '답답하다' 라거나 '저러면 안된다'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일단 앞서 언급한대로, 포스트 아포칼립스, 그러니까 세상이 멸망한 뒤에 사람들이 가장 먼저 추구해야 할 것은 생존이거든요. 도덕은 그 다음에 챙기는 거구요. 저는 이 캐릭터의 가장 큰 문제는 대안이 없는 도덕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들겠습니다.

주명화의 첫 선택을 보지요. 아파트에서 외부인을 쫒아내자는 의견에 주명화는 반대의견을 냅니다. 하지만 '민주적인 투표'방식으로 밀려나자 주명화는 찍소리도 못하고 사그라들게 되는데요. 1차적인 문제입니다. 만일 자신의 양심을 끝까지 관철하고 싶었다면 투표가 아니라 다른 방법을 찾던가, 아니면 그 직전에 있었던 '아파트 대표'를 뽑을 때 나서서 정치력을 확보하던가, 뭐라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어떤가요. 입으로만 도덕을 내뱉으면서 하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습니다.

주명화의 두 번째 선택은, 황궁 아파트에 눌러사는 것인데요. 영화에서 주명화는 남편을 추궁합니다. 밖에서 살인하고 왔냐고. 김민성은 어물거리며 넘기지만 주명화는 남편을 더 이상 내보내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가지 말라고 합니다.

아까 언급했던 세계관과 연결지어 생각해봅시다. 세상 전체가 파멸했습니다. 아파트와 입주민은 자원을 빨아먹기만 하지 자체 생산력은 전무합니다. 이 시점에서 살고 싶으면 외부에서 자원을 수급해와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주명화는 자신의 배급만으로 충분하니까 더 나가지 말라고 하지만, 주명화는 간호사, 즉 아파트 입장에서 보면 전형적인 '비생산적인-먹고사니즘에서' 인물인데요. 이 상태에서 남편만 내보내지 않는 다는 것은 너무나 현실을 못보고 있는 것이죠. 좀 냉정하게 얘기하자면, "남편이 손에 피를 묻히는 건 싫지만, 남이 손에 피를 묻혀 가져오는 보급품은 받겠다" 는 겁니다.

제 생각에 주명화가 진짜 도덕적 인물이었다면, 여기서 해야 할 말은 "우리, 아파트를 떠나자" 여야 합니다. 남의 희생에서 얻는 수확물을 얻고 있다는 점에서는 주명화도 똑같은 죄인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 말을 못함으로서 이 인물의 한계가 단숨에 결정지어졌습니다.


주명화의 마지막 선택은, 김영탁 사칭범 모세범의 정체 밝히기였습니다. 영화의 결로 치닫는 부분이자, 안타깝게도 영화의 마무리가 엉성해졌다고 생각되어지는 부분입니다. 사실 사태의 거의 대부분은 주명화가 어설프게 행동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먼저 모세범의 정체를 알았다고 해도, 그 사실을 폭로하는 것은 보다 정제된 자리여야 했습니다. 식량을 구하러 갔다가 매복에 당해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쳐서 사람들이 손에 무기를 쥐고 감정적인 상태에서 주명화는 돌발적으로 모세범의 정체를 폭로하는데요. 이야기를 파멸로 이끄는 행동이었죠. 저는 손에 총을 쥐고 있는 사람에게 대체 무슨 깡으로 저러나 싶었습니다. 아니나다를까, 결국 혜원에 대한 아무 보호 조치도 없었고, 애꿎은 혜원은 분노한 모세범에게 죽죠.

둘째로, '폭로'는 했지만 뭘 어떻게 하자는 해결책은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미리 몇 사람에게 언질했다가 폭로의 순간 바로 모세범을 포박해서 잡았다면 훨씬 희생이 덜했을 겁니다. 대표직을 박탈하고 모세범을 내쫒으며 새 대표를 뽑아서 자리를 수습해야 한다고도 안 했습니다. 명화의 폭로로 리더쉽을 잃고 혼란해진 틈을 타 외부의 적이 쳐들어왔고, 결국 그대로 무너져내렸죠.


주명화는 결국 남편을 잃지만 어찌어찌 살아남아 맘씨고운 생존자들 곁으로 갑니다. 사실 이 엔딩이야말로 포아 장르팬들을 가장 실망케하는 부분이었을 겁니다. 제가 [1]에서도 언급했지만, 영화 내내 '파멸한 세계'를 보여줘놓고, 이제와서 '어딘가에는 착한 사람들이 살아있었답니다~'라고 하면 굉장히 난감합니다. 더 고약한 것은 이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있는지를 영화에서 보여주기도 어렵습니다. 완전 사족이거든요.

솔직히 말하자면, 영화가 19금이었으면, 부상당한 남편을 데리고 가는 것을 목격한 노숙자는 인육을 먹고 있는 것이었으며, 잠시 쉬러 앉은 부부에게 노숙자들이 습격해서 그대로 파멸하는 엔딩으로 갈 수도 있었습니다. 사실 포아 장르적으로는 그게 맞아요. 감독은 마지막 부분을 희망을 주겠답시고 상당히 영화 전체적인 부분과는 어긋나는 엔딩을 강제 삽입함으로서 영화 전체적 완성도를 무너뜨렸습니다. 제가 보기엔 감독이 몰라서 그런게 아니라, '완성도를 희생해서라도 메시지를 전달하고싶다' 라는 의도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근데 그 메시지를 주는게 주명화라서...... 주명화를 길게 설명한 이유가 바로 이거 때문이거든요. 영화의 2/3에 해당되는 주명화의 트롤짓 부분에서는 "재난 앞에서 선과 악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라고 화두를 던져놓고 뜬금없이 갑자기 엔딩에서는 "그래도 착하게 살자" 라고 하면 으음.........


그래도 영화 전반적으로 장면들도 훌륭했고, 특히 이병헌 배우의 연기가 탁월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엔딩에서 무너지는 포아 장르물이 한 두개도 아니니까, 이 정도면 전체적으로 준수하고 흥미진진했다고 평가할 만 합니다. 아마 시리즈가 기획되어있다고 언뜻 들은거 같은데, 시리즈로 나와도 관람 의사가 충분히 있을 만큼 재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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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룡객
24/01/07 06:27
수정 아이콘
뭔가 미스트같이 뒤통수를 후리는 결말을 원했는데 설득력을 잃은 느낌이었습니다.
비카리오
24/01/07 06:56
수정 아이콘
영화 그냥 즐길줄만 알지 깊이는 모르는 입장에서 보면, 영화 스토리나 설정이 참신은 한데, 결론과 은유 같은게 좀 뻔했던것 같습니다.
겨울삼각형
24/01/07 09:03
수정 아이콘
(수정됨) 저도 보면서 주명화 캐릭터한테 느낀 감정은

뭔가 대안은 없고 불만만 있는 캐릭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영화 흐름상 마지막 파멸은 뭐 정해져 있긴 했지만, 그 파멸을 가속화 시킨건 주명화 아닌가? 하는 생각도..


그리고 제가 예상한 흐름은

외부인을 일단 다 내보내고, 뭔가 자원을 기부하는 사람만 빈 집을 분양(?) 하는 방법이었는데,
그냥 빈 집을 방치하는 것도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지막 씬부분도,
난민들이 주는 음식이 주먹밥인거에 이질감을 느꼈어요.

쌀도 구하기 힘들고, 식수도 구하기 힘든데,
그걸로 밥을 해서 먹는다고?
그리고 그걸 공짜로 나눠준다고??

뭐 근처 식자재 마트라도 점거한건가?
미메시스
24/01/07 09:10
수정 아이콘
전체적으로 공감합니다.

이런 장르에서 도덕적 우위를 가지고 맞말을 하지만 사실 민폐인 등장인물은
감독도 그렇게 캐릭터를 잡는데 명화는 주인공 포지션이라 갸우뚱 했습니다.

아포칼립스는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군상을 보여주는게 장르적 재미인데 ..
장르 비틀기라기 보다는 장르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단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런 주제를 전하고 싶더라도
집단의 이기적인 선택으로 파멸되는 과정만 보여줘도 충분히 전달이 될텐데
자살하는 주민이나 병화의 입으로 반복해서 전달하는게 살짝 피로하기까지 했네요.

양쪽의 갈등을 잡아줘야 하는 민성은 작품 마지막까지 흔들리기만 하다가 죽어버리고
종교적인 메시지까지 노골적으로 넣다보니 이도저도 아니게 되버려
후반부 아쉬움이 컸습니다. 중반까지는 상당히 괜찮아서 더 아쉬운거 같아요 흐흐
MurghMakhani
24/01/08 13:46
수정 아이콘
이런 작품에서 영탁이 주인공역할을 끝까지 가져가버리면 너무 평면적인 이야기가 될테니 결국 반대편에서 이야기를 뒤엎어주는 게 필요해보이긴 한데 민성이나 명화나 영탁에 비하면 캐릭터가 너무 약하긴 했어요. 영탁이 명이나 암이나 확실한 인물이고 거기다 이병헌의 미친 연기력까지 더해지다보니 더욱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24/01/07 09:14
수정 아이콘
포스트 아포칼립스라는 극단의 설정을 해놓고는, 생존이나 생존을 위한 선택/경계가 후순위인 인물들이 너무 많습니다. 박보영 캐릭터가 그 정점이고요. 박보영 캐릭터도 그렇지만 난민(?)들이 쫓겨나면 죽을 상황이면 쫓겨나기 전에 더 강하게 뭐라도 하지 않았을까 싶은 그런 부분들도 있고요.
초반에는 꽤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는데 결과적으로는 이병헌 연기 제외하고는 많이 실망스러웠습니다.
차라리꽉눌러붙을
24/01/07 09:15
수정 아이콘
(수정됨) 포아의 껍데기를 쓴 아파트 불패론에 대한 고찰이라고 생각하면 좀 더 이해가 되는...

부녀회장 중심으로 배타적 아파트 환경 구성
으랏차차 = 영차영차 밈
아파트 못 사면 다 망해요
아파트 가격 방어를 위해 공생을 포기하다보니 공멸
아파트 가격 방어 정책 때문에 실물경제(아파트 바깥)는 망하고 그 때문에 아파트 외부에서 재화를 조달하기도 어려워짐
부녀회장 아들이 죽음으로써 아파트 하나만 부양하다가 미래가 망할 수도 있다는 암시
아파트 못 사고 집 값 내리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바퀴 취급 등등...(농담)

근데 일반 포아물로 생각하면 디테일도 없고 허술한게 너무 많죠...
20060828
24/01/07 09:23
수정 아이콘
넷플릭스에서 저도 최근에 봤는데 진짜 속터지더라구요. 세계관 설명은 안해서 깔끔했는데 진짜 주명화 혼자 하드캐리..
Primavera
24/01/07 09:29
수정 아이콘
저는 의외로 나쁘게 안봤습니다. 하도 욕을 먹길래 볼 엄두도 못내다가 2주전쯤에 넷플로 봤는데
워킹데드의 분량 뻥튀기용 트롤들에 비하면 박보영은 선녀중에 선녀.

감독이 박보영 캐릭터를 완전 선역으로 설정한건지 아닌지는 모르겠는데
제 눈에는 얘도 처음부터 맛이 간 걸로 봤거든요 크크
이 캐릭터가 정상적인 선역이었으면 이병헌의 정체가 아파트 주민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별 신경을 안썼어야 했는데,
입으로는 아파트 주민여부로 사람 가리지 말자고 해놓고 이병헌 공격의 중요 명분은 "여러분! 이 사람, 아파트 주민이 아니었어요! 세상에나 마상에나!"
이러고 앉았으니... 근데 또 이게 현실에 많은 타입이거든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위선적임.
감독은 대한민국의 부동산 집착과 이기주의를 풍자하고 싶어서 박보영을 대척점을 대표하는 캐릭터로 도구화하다가 삐끗한거 같은데
의도치 않게 현실의 다른 지점을 까버리는 모양새가 돼서 꽤나 흥미로웠습니다 크크
24/01/07 09:46
수정 아이콘
마지막 부분이 너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데에는 저도 동의합니다만 그래도 이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는건 생각해볼만한 지점이 많아서 인거 같습니다.

이병헌도 자기가 가진 선이 있습니다. 김영탁과 충돌이 있을때도 김영탁이 칼로 찌르기 전까지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폭행까지는 아니였고, 극 초반 외부인을 내보내는 과정에서도 쇠파이프로 머리를 3대나 맞고 나서야 나가라고 일갈했고, 슈퍼마켓에서도 발포 이후에도 적극적으로 공격했죠. 혜원과의 충돌 역시 최초에는 협박으로 그쳤으나 혜원이 본인의 원죄를 폭로하자 그제서야 폭발하죠. 또 김영탁의 노모도 어느정도 시점이 지난 이후에는 온전히 모실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소변 수발까지 들어가면서 돌보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살짝 결이 다르긴 하지만, 혜원을 겁박하는 장면에서 혜원은 발이 시리다며 자기집에도 신발을 신은채 들어가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도 이병헌은 신발을 벗고 들어갑니다. 또 최후에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와서도 기어코 신발을 벗고 들어가고, 외부인들이 신발을 신고 침입하자 "왜 남의 집에 신발을 신고 들어오고 지랄이야"라는 대사를 합니다. 선악에 대한 부분은 아니지만, 역시나 개인이 가진 선이라는 의미에서는 이런 부분도 있었죠.

박서준 역시 지진 발생 당시 트럭에 깔린 여성의 남자친구가 자리를 뜨고난 이후에도 최선을 다해 여성을 구하고자 했고, 외부인 모자가 문을 두드렸을때 최초 문을 열어준건 박서준이였고 "문을 열어준 곳도 여기뿐"이라는 대사가 나옵니다. 또 박보영의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안다, 오빠는 나쁜 짓 하고도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라는 대사를 보더라도 박서준은 근본적으로 선한 인물이라는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런 박서준이 본인의 선한 인간성을 잃어가면서까지 지키고자 했던건 가족, 즉 박보영입니다. 그런데 박보영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 갈수록 박보영과 괴리되는 원인이 되죠.

박보영의 언행은 트롤이라는 표현에 저는 거부감이 조금 있는데, 트롤짓을 안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박보영은 인간이 가지는 일종의 양심, 혹은 최소한의 선을 의인화해놓은 인물에 가깝고, 그런것들은 논리적인 대안 제시와는 상당히 떨어져있는 부분이거든요. 우리 마음속의 양심이 하는 말들은 "이러저러하기 때문에 이렇게해야한다" 라기 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해야하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니까요. 그리고 인간은 이성과 감성이 섞여 있는 존재라는 점까지 생각하면 보다 박보영 언행이 이해가 가는 부분이 많아지더라고요.

부녀회장은 이병헌을 꼭두각시로 앞에 세우고 뒤에서 배후조종하는 모습을 원했던것 같으나, 실질적인 물리력 + 생존에 필수불가결한 방범대가 아니면서 생기는 힘의 차이를 결국은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또 감정이 배제된 실용적인 시스템을 만드는 역할을 했고 시스템에 따라 움직이는것 같았으나, 아들의 사망 순간 결국은 인간으로 돌아와 감정에 휘둘리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인간은 이성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걸 반증하는 인물이기도 하고요.

소장 역은 부상 이후에 하는 역할이 없어 배급이 적습니다. 그런데 소장의 부상은 외부인과의 충돌과정에서 생긴거거든요. 일종의 상이용사라고 생각하면 머리가 복잡해지는 부분입니다. 또, 결국은 이에 불만을 가진 소장이 외부인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게 된다는 점 까지 생각하면 더더욱요. 하는만큼 배급한다는게 너무나 심플하고 당연한 사실 같지만 인간 사회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외부인 입장에서는 이미 쫓겨난 순간 돌이킬수 없는 사이라고 봐야겠지만, 이후 떼로 몰려다니며 약탈을 벌이고, 외부인들을 바퀴벌레 취급하고, 이빨을 모은다고 시체를 능욕하고, 그 이빨로 아이들 장난감으로 삼는 등, 황궁 아파트 측에서 감정적으로도 선을 넘는 일을 지나치게 많이 했습니다. 이것 역시 인간은 이성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봐야겠죠.

이런 디테일들이 담겨있는 영화라서,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고 그런 면에서는 상당히 좋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꼬라박았다는 의견에 동의하면서도, 더 아쉽기도 합니다. 단순히 생각하면 스테인글라스 뒷편으로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장면에서 끝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긴 한데... 모르겠네요.
스토리북
24/01/07 09:52
수정 아이콘
보고 있으면 입에서 "어쩌라고"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푸른 모래
24/01/07 10:17
수정 아이콘
괜찮긴 한데 박보영이 안예뻣으면 보다 말았을거 같네요 영화
항정살
24/01/07 10:26
수정 아이콘
전 오히려 박보영이 다른 스케빈저 무리에서 살아가는 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인간에게는 선한 마음이 남아있고, 아비규환에서도 인간성을 유지 해야 인간으로 살아갈수 있다는 엔딩이니까요.
탈리스만
24/01/07 10:43
수정 아이콘
원작인 네이버웹툰의 유쾌한왕따 추천합니다.
좋아하는 작가인데 저도 영화를 보고나서 접했고,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24/01/07 10:53
수정 아이콘
저도 지난 주에 뒤늦게 봤는데, 생각보다 재밌었습니다.
근데 결말 부분의 개연성이 박살나서 좀 아쉬웠습니다.
24/01/07 11:09
수정 아이콘
트롤짓한 사람만 살아남은... 신파급 엔딩이라 봐서.. 결말이 아쉽습니다.
무딜링호흡머신
24/01/07 11:24
수정 아이콘
솔직히 말하자면, 영화가 19금이었으면, 부상당한 남편을 데리고 가는 것을 목격한 노숙자는 인육을 먹고 있는 것이었으며, 잠시 쉬러 앉은 부부에게 노숙자들이 습격해서 그대로 파멸하는 엔딩으로 갈 수도 있었습니다..


제가 생각한것과 완전 같습니다
김민성 죽고 유리창에 비친 인물들은 노숙자 무리였고, 주명화의 끌려가는 비명과 함께 김민성이 선물한 머리핀이 떨어지고 클로즈업 되는건 어땠을지
푸들은푸들푸들해
24/01/07 12:30
수정 아이콘
콘유 후기는 피지알에 생각보다 많습니다.
댓글마다 수작이다 범작이다 후기가아쉽다 평이 많은데
이런 반응들만 봐도 저는 충분히 수작이라 봅니다.
의견내놓을게 많고 생각할거리를 주는 영화니까요
24/01/07 13:54
수정 아이콘
현실성을 따지고 보면 말이 안되는게 많아 그냥 블랙코미디로 보는게 좋울것 같지만 이렇게 분석하는것도 나름의 재미겠죠.
MurghMakhani
24/01/08 13:38
수정 아이콘
명화 포함해서 모든 인물들이 그냥 인간으로서 있을 수 있는 범위의 판단과 행동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제일 많이 비판받는 명화의 언행이 결국 의료지원 제외하면 공동체의 생존에 도움이 된 게 없다시피하지만 저런 상황이 벌어지면 명화같은 사람이 없을까? 생각해보면 한명쯤은 있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결국 많은 사람들에게 고구마를 준 명화만 살아남는 게 불합리하다고 느끼는 분들도 많지만 저 작품에서 명화는 혼자 살았다고 행복할 수는 없는 인간인 게 아이러니가 아닐까 싶습니다. 까이는 이유와 동일하게,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상에서 생존을 장땡으로 생각 못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아마도 평생 민성의 죽음을 짊어지고 괴로워하겠죠
서지훈'카리스
24/01/08 19:48
수정 아이콘
보다가 한번 접었는데 이병헌 연기력 없었으면 죽어도 끝까지 안봤을거 같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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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523 [일반] 뉴욕타임스 9. 3. 일자 기사 번역(자유무역이 미국 노동자와 정치에 미친 영향) [17] 오후2시4322 24/10/24 4322 5
102291 [일반] <베테랑2> - 기묘한 계승, 아쉬운 변화.(노스포) [16] aDayInTheLife5958 24/09/19 595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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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821 [일반] 안면 인식 장애? [26] 수리검8849 24/07/03 884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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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622 [일반] 뜬금 없게 한식뷔페에 꽂힌 이야기 [32] 데갠12498 24/06/02 12498 4
100968 [정치] 당장 내년에 필수의료는 누가 지망할까요? [196] lexial11038 24/02/21 11038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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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346 [일반] 나는 솔로, 주호민, 이기적 유전자, 서울의 봄, 그리고 내로남불의 효용에 관하여... [38] ipa12653 23/11/28 12653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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