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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3/12/22 09:49:35
Name 퀘이샤
Subject [일반] 아파트 건설현장에서의 설계변경과 이해관계의 조율
아래 열선 글을 보고 번득 생각이 나서 잠시 월도해봅니다.

내년 여름쯤 준공하는 재건축 아파트현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미분양이 없어서 조합의 사업수지는 거의 정해졌고, 이익이 남으면 법인세를 많이 내기 때문에
앗싸리 설계변경(특화)에 투자하는 것이 유리하는 의견을 내고 설계변경을 진행했습니다.

어디다 투자를 하면 좋을까 싶은데 조합에서 뭘 좋아할 지 몰라서 다른 사례 참고해서 이것저것 제안하고,
여유예산(남는 이익금) 범위에서 골라보시라고 했죠.

조경특화(수형이 이쁘고 큰 나무 더 심기), 골프연습장→스크린골프, 지하세대창고에 제습설비 추가, 출차인식추가(장기 악성주차 솎아내기에 용이), 인덕션 업그레이드 등이 채택되고,
고보조명(바닥에 조명이 쏴집니다), 주차장 디밍조명(차량이동에 따라 조명 밝기가 촤르륵), 중앙정수(수돗물 한번 더 정화), 안면익식출입통제(얼굴만 대면 열려~), 비데일체형 고급 양변기(써보면 좋습니다) 등은 채택되지 않았습니다.

추정되는 조합의 여유예산으로 상기 채택안이 조합되어 선택되는데 장사(영업)하는 입장에서 너무나 재밌더군요.
수백명 조합원을 대표하는 이사들의 입장이 제각각이고 그 이유도 너무나 참신합니다.
가끔 택도 없는 특화안을 조합 이사가 역제안하길래 [그건 자동차 뽑는데 에어컨 빼고 파노라마선루프 다는 선택]이다라고 말한 적도 있습니다.
시공사야 적정한(수백명 조합원들 중에 알만한 사람 다 있어서 바가지 못씌우고 그건 또 소탐대실이라,,,) 이윤이 확보되니 어떤 선택을 하던 상관없지만, 나중에 지어진 아파트의 가치에 상승하는 선택지에 대한 의견을 내는 것은 기술자로써의 의무니까요.

조합 이사들이 하도 자기 개인입장과 선호로만 이거하자 저건안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길래
일단 적은 비용으로 충분한 투자가치가 있는 품목들을 우선 설명합니다.
예를 들면, 출차인식과 스크린골프입니다.
출차인식은 나가는 차량의 번호를 인식하고 주차관제 시스템에 인식하게 하는데 미등록차량이 일정기간 이상 주차한 경우 관리사무소가 인지할 수 있고, 주차딱지 붙힌 특정차량이 나갈 경우도 인지할 수 있습니다. 그 정보로 반복되는 악성주차차량을 통제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스크린골프가 설득이 어려웠습니다. 총가구수대비 타석수와 최근 타단지의 사용률, 사용가구의 월회비와 유지보수를 여러 조합의 계산해서 적어도 연간 충분한 이익이 나서 오히려 관리비가 절감(몇년이면 본전뽑음)될 수 있음을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골프 안치니까 거기에 돈 쓰느니 비데를 업그레이드하자고 고집하는 이사가 있더군요. 어떤 분은 물놀이 가능한 놀이터가 지저분해지고, 자기집은 아이가 없으니 그거 없애고 다른 거 해달라고 하십니다.(당초 설계에 반영되었으면 지어야 한다고 해도 막무가내~)

채택되지 않은 품목 중에서는 안면인식출입통제와 주차장 디밍조명이 의견이 많이 갈렸습니다.
안면인식은 아무것도 소지하지 않고 접촉하지 않아도 얼굴로 문이 열리는데 비용대비 편익이 큰 것 같다고 판단은 하시더군요.
주차장 디밍조명은 전기료를 절감할 수 있고, (호불호가 있지만) 밝기의 변화로 차량이동을 인지하는 측면에서 접촉사고 예방에도 효과가 있습니다.
하지만, 조합 이사들은 일반분양자가 부담하지 않고(조합원이 부담하고) 이익만 보는 것을 기본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더군요.
그 인식 때문에 준공전에 전기자동차 충전시설을 증설하면 깔끔한데, 굳이 준공 후에 일반분양자들과 비용을 분담하여 증설키로 결론을 내더군요.(법적으로 2025년초까지 증설해야함, 대신 증설할 경우 기존 충전시스템과의 일관성과 마감 및 운용효율은 떨어짐)
지하주차장에 동별로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철제로된 세대창고가 있는데 조합원세대만 제습장치 달면 안되냐는 질문에 어안이 벙벙해지기도 했습니다. (지하철에서 내 자리만 에어컨 나와서 시원하게 해달라는,,,) 년중 일부 결로가 발생할 밖에 없는 경우가 생길 수 있고 그 때 보관한 물건에 곰팡이라도 생기면 손해이니 제습장치 추가는 이득이 훨씬 클 것이라고 겨우겨우 설득했습니다.

아파트공사하면서도 이렇고, 사회생활하면서 직접 겪어보거나, 겪어본 유사한 일이 외부에서 이슈가 되어 아웅다웅하는 뉴스를 접하거나, 과거에 이런 갈등이 결국 이런 결과를 냈었는데 라고 생각하면서 그걸 반복하는 뉴스를 보거나,,, 등등등
모두를 만족시키는 정답은 없더라도 그래도 그정도면 최선을 다한 고민의 결과이고 일부 아쉬움을 수용할 있다는 그런 조율이 중요하게 느껴지네요.
그런 조율에 모두 익숙해서, 그 과정에 의견을 내고 결정을 수용할 수 있는 문화가 자리잡아야 뉴스에서 접하는 갑갑한 이슈들을 잘 풀어내지 않을까 싶습니다. 헛소리하는 조합이사가 헛소리하는 정치인이라면 미리 걸러내고, 또 헛소리보다는 그래도 맞는 소리가 먹히는 사회가 되어야 할텐데,,, 투표를 통해서 그 대표를 선정하는 시스템에서는 헛소리가 잘 먹히는 것 같기도 하여 아쉬울 때가 많고, 좀 더 나아지는데 시간이 많이 걸릴 것만 같은 생각도 듭니다.

금요일이라 일이 많은데 월도하느라 의식의 흐름대로 후다닥 써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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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가루인형형
23/12/22 10:09
수정 아이콘
국회의원들이 괜히 모여서 헛소리들 하는게 아니죠..ㅠㅠ
이익집단 대표 중에서도 또 대표로 뽑은 사람들의 한마디 한마디들을 다 조율해야 하다보니 별별 창의적인 개소리들이 나오는겁니다 크크
퀘이샤
23/12/22 10:27
수정 아이콘
개소리 항마력이 높은 편인데,,, 물놀이에서는 빡치더군요.
최종병기캐리어
23/12/22 10:13
수정 아이콘
도시정비 쪽 일이 탐욕의 결정체죠.

조합장과 그 주변인들의 온갖 이권관계, 조합분과 일반분양분, 그리고 임대분간의 편가르기, 각각의 조합원들의 현재 상황에 따른 이해상충의 문제들까지..

최소한의 시간 내에 최적의 비용으로 최대의 이윤을 뽑아야 하는 사업.
퀘이샤
23/12/22 10:29
수정 아이콘
20년 넘게 건설회사 일하면서 도정사업이 처음인데,,,
재미있는 면은 있으나 기술자로써 두번하고 싶지는 않네요.
23/12/22 10:15
수정 아이콘
재개발 재건축 조합 관련된 사람들이랑
만나보면 가끔씩 기가 빨립니다..
너무 사짜스럽다 싶은 분들도 종종있고..
최종병기캐리어
23/12/22 10:21
수정 아이콘
솔직히 그 동네가 전국사기대회이긴 하죠.
23/12/22 10:32
수정 아이콘
크게 해먹고 2~3년 살고와서 평생 쓸거 벌었다고 소문난 사람이 다른 현장 기웃거린다더라.. 뭐 이런 풍문이 비일 비재하더라구요.
퀘이샤
23/12/22 10:33
수정 아이콘
그 유명한 강남에 직업이 조합장인 분도 계시잖아요...
연봉이 으마으마하신다는 분,,,

하긴 그 정도 정치력이면 배경이 받쳐줘서 진짜 정치해도 다선의원하실 듯 합니다.
퀘이샤
23/12/22 10:32
수정 아이콘
사실 그 정도 능력?이 있어야 조합장도 하고 그런 것 같습니다.
PF 수탁시행사업이야 법인 문닫는 각오라도 하더라도,,,
조합장은 짤리면 그만인지라,,, (내가 손해보는 것은 없다는,,,)

주변에 재건축사업 시작하려는 단계이 있는 지인들한테는
직접 나서서 할 것 아니면 감놔라배놔라는 하지 말되,,,
그래도 일머리 있고, 조합이익을 판단할 수 있는 조합장을 뽑아라(그런 분위기를 우선으로 해라)고만 조언해줍니다.
23/12/22 10:38
수정 아이콘
아파트 몇동 짓는데 설명만 듣고 있자면
여기가 지구의 중심, 투자의 중심, 제2수도인데
정작 pf는 잘 안되더라구요. 매번 시간 끌고
갈아타기 바쁨.. 그래도 월급은 받겠지
퀘이샤
23/12/22 10:41
수정 아이콘
내 자식이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안해요...
우리 단지가 입지는 좋은데 집값이 낮아요...

공부 잘 하는 사람의 특징 중에서 [자기 객관화]가 있습니다.
사업을 하던, 재건축이 빠른 속도로 되던 [자기 객관화]가 필요한 법이죠.
말랑몰랑
23/12/22 10:33
수정 아이콘
저런것들이 대표로 있으니 개판나는거네요.

자기 이득만 챙길거면 대표 자리에는 왜 앉았는지? 아니 남들이 그럴까봐 지들이 앉은걸까요?

아파트 예비입주자 대표회에 참석해봤는데...저런건 확실한 리더가 끊어버리지 않으면 계속 논란만 일어나더라구요.

정말 리더십 있는 리더가 가장 필요한 부분이 공동의 자금을 합리적으로 쓰는 분야가 아닌가 싶습니다.
퀘이샤
23/12/22 10:35
수정 아이콘
[버는 것보다 분배가 어렵다]는 진리인 듯 한데,,,
그래도 누가보더라도 합리적이고 명분이 있는 집행이 바람직하다고 가이드하면
택도 없는 전횡은 힘든 것도 같습니다. (요즘 조합원들도 워낙 정보도 많고 단련이 되어서,,,)
우리는 하나의 빛
23/12/22 12:56
수정 아이콘
보통 그걸 위해 그 자리를 먹으려는 사람이 많더군요.
거기에 동네 교회 집사님?이기라도 하면...
지그제프
23/12/22 12:39
수정 아이콘
정말 재밌는 글이네요.

저는 요즘 들어 이제 민주주의는 묻어야할때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어요. 트럼프 아니면 바이든 둘 중 하나를 뽑아야하는게 민주주의라면 민주주의 안하는게 더 좋을지도..
이선화
23/12/22 14:00
수정 아이콘
흐흐 민주주의의 반대항은 푸틴이 죽을때까지 통치하는 거라서 묻기는 좀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VictoryFood
23/12/22 16:03
수정 아이콘
조합 이사들은 일반분양자가 부담하지 않고(조합원이 부담하고) 이익만 보는 것을 기본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더군요.

어디에서나 이 논리를 이길 걸 가져오는게 쉽지 않죠.
퀘이샤
23/12/22 16:15
수정 아이콘
그래서 일반분양자가 이익을 보더라도 비용대비 조합원 입장에서 효용이 큰 품목들만 채택이 되더군요.
전기차 충전은 대승적으로 아무리 설득해도 씨알이 안먹혔는데, 조합 이사들은 전기차 사용자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조합원 카페 내부에서 증설 요구도 일부 있었더군요.
즉,,, 내 눈 앞에 한치의 (정말인지 확인도 힘든) 이익과 손해에 천착하는 모습을 보이더군요.
조합원 중 전기차 사용자가 무시못할 정도로 많았다면 어찌어찌 통했을까도 싶던데,,,, 한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23/12/22 16:19
수정 아이콘
3자 입장에서 꿀잼인데 당사자인 퀘이샤님께서는 꽤나 고생을 하셨겠네요.
퀘이샤
23/12/22 16:44
수정 아이콘
며칠 지나면 만 22년을 이업계에서 채우는데, 도정(재건축/재개발)사업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처음에는 좀 애매했는데, 사업구도에서 조합 입장을 생각하고 접근하면 일은 진행이 되더군요.
아파트가 누구나 아는 건축물이지만 불특정 다수를 만족시켜야하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면도 있습니다.
박물관이나 호텔 공사할 때 (상대적으로 수준이 높은) 발주자와의 업무는 긴장감이 높았다면,
도정사업에서는 하나하나 설명드리면서 일처리하는게 피곤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재미가 있더군요.

가끔 조합회의에서 [제가 조합원이라면 이런 선택이 가장 나은 것 같고, 그 이유는 이렇다]라는 말로 시작해서
일견 아닌 듯 해도 결국 납득이 가는 방법으로 문제를 풀고 일처리를 해오니 나중에는 신뢰하시는 이사님들도 생기더군요.
아마 제가 했던 이야기 잘 기억했다가 어디가서 거꾸로 많이들 물어보셨나 보더라구요.

건설업이 결국은 서비스업이라고 생각하는데, 역시 고객의 신뢰를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기본이 확인되더군요.
물론,,, 중간에 피곤함(고생?)은 좀 깔고 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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