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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3/12/04 15:44:21
Name 오곡쿠키
Subject [일반] <괴물> : 그럼에도 불구하고 던지게 되는 질문(스포일러o) (수정됨)
0. 좋은 영화이지만, 그러나  

 주말을 맞아, 최근 <서울의 봄>과 더불어 극장가에서 좋은 입소문을 타고 있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을 감상했습니다. <괴물>은 <서울의 봄>과는 또 다른 느낌에서 흥미롭고 잘 만든 영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서울의 봄>이 다소간의 각색을 통해 선명한 대립구도와 빠른 전개로 극의 흥미와 몰입도를 높인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면(대신 그 후과로 인해 작품의 ‘깊이’는 다소 떨어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괴물>의 경우에는 극의 전개 자체는 상대적으로 느릴지라도 플롯의 배치를 통해 스릴러적인 쾌감을 만들면서도 더 많은 여운과 성찰의 공간(여백)을 남겨 놓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영화를 꼭 비교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최근 극장가에서 평가가 좋은 영화들이라 짤막하게 언급해보았습니다. 작품에 대한 선호야 사람마다 제각각인 것이므로 확신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 두 영화 정도라면 충분히 극장에서 관람해도 큰 후회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어쨌든, 본격적으로 영화 <괴물>에 대해 더 이야기를 해보자면, 이 영화가 굉장히 잘 만든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뭔가 아쉬운 부분이 있다’는 느낌이 계속해서 맴도는 것은 있었습니다. 굳이 표현해보자면 ‘수작’이긴 하지만 ‘걸작’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고 할까요. 아래에서 이어지는 논의는 <괴물>에서 느껴지는 아쉬움에 대한 나름의 생각과 근거를 정리한 것입니다. 이 영화는 장면들마다 이야기할 거리가 굉장히 많고, 해석의 여지도 큰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비추어 보면, 아래의 서술은 작품에 관한 포괄적이면서도 심층적인 이야기를 담아내지는 못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그런 아쉬움은 조금 접어 두고, 제가 이 영화를 감상한 주요 포인트와 아쉬웠던 지점에 집중해서 글을 작성해보고자 합니다. 쓰고 보니 다소 중언부언하는 글이 되기는 했네요. 

(스포일러 있음)

   --

1. 재구성의 미학

 영화 <괴물>은 동일한 '시간-사건'을 세 가지의 시선으로 각기 달리 보여주는 형식을 취합니다. 영화의 1부는 싱글맘 사오리의 시선, 2부는 담임선생님 호리의 시선, 3부는 초등학생 미나토의 시선을 담아내지요. 이 영화가 구태여 이런 형식을 취하는 것은 동어반복 같지만 무엇보다 ‘시선의 상대성’을 드러내기 위함일 것입니다. 우리는 같은 것을 달리 본다는 것. 그리고 그로 인하여 모종의 오해가 발생하고, 그것은 또 다시 그 정도가 어떻게 되었든 의도치 않은 결과를 발생시킨다는 것. 이 영화는 그래서 그 형식 자체만으로도 ‘입장과 시선의 상대성’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감독 고레에다는 이를 미나토의 입을 빌어, "누가 괴물인가"라는 대사를 통해 표현하고 있기도 하지요. 학교에서 미나토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갈등상황에 대한 책임을 져야하는 "괴물"은 대체 누구일까요? 언뜻 보면 싱글맘으로서 자식을 '과잉보호'하는 사오리도, 사건을 축소-은폐시키는 데 급급한 무사안일주의적인 교원들도, ‘호구’처럼 사건을 적극적으로 돌파해내지 못하는 호리 선생님도, 아들을 학대한 '요리(미나토의 친구)'의 아버지도, 호리 선생을 희생양으로 만든 미나토와 학생들도, 모두 "괴물"의 속성을 실천하는 존재라는 혐의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겠지요.

 물론 같은 사건을 여러 가지 시선으로 보여주는 연출기법과 플롯은 사실, 그 자체로는 그다지 특별한 것이라고 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엄밀히 말해 영화란 결국 '시선'과 '편집'의 예술임을 고려하면, 이런 종류의 연출 기법을 동원하지 않는 영화를 찾는 것이 오히려 어려울 것이겠죠. 단지 고레에다의 이 영화가 '재구성의 미학'을 좀 더 노골적으로 상기하게 하는 플롯과 이야기를 동원하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그런데 저는 바로 이 지점, 고레에다의 이 영화가 재구성의 미학을 노골적으로 상기시키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바로 이 지점에서 다음과 같은 물음이 제기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해봅니다. 이 영화가 세 가지의 시선을 구태여 따로 다루는 형식을 취한다면, 그렇다면 그 형식을 동원함으로써 이 영화가 제기하게 되는 질문은 어떠한 종류의 것인가, 이 영화가 3부적 구성을 통해 달성하게 되는 미학적 성취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질문 말이지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작품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이후 두 번째로 보는 저는 이 감독의 문제의식이나 스타일을 잘 알지 못합니다. 다만 적어도 이 작품으로 한정지어 말해보자면, <괴물>은 무엇보다 현실 사회와의 연결성을 강하게 의식하는 작품인 것으로 보입니다. 싱글맘, 학교의 관료제화, 퀴어, 왕따 등의 소재만 열거해 보아도 이 작품이 특히나 일본 사회라는 '현실'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지 않다고 말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더욱 구체화 해본다면, <괴물>은 특히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는(그것이 아버지의 부재 때문이든 퀴어성 때문이든 왕따 때문이든) 어린 아이의 삶과 성장을 주목하여 다루고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영화란 항상 ‘무언가를 어떤 방식으로 보여주는’ 매체이며, 동시에 ‘무언가를 어떤 방식으로는 보여주지 않는’ 매체임을 잊지 않는다면, <괴물>은 그 자신이 다루고 있는 소재에 관하여 특정한 '관점', '시선'을 취하고 있는 영화임을 부정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이 영화가 마니토와 요리라는 어린 아이의 삶에서 발생하는 특정한 사건과 갈등을 구태여 '3가지의 시선'을 통하여 다뤄내는 것의 의미를 길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세 가지의 시선을 모두 허락하는 것은 영화 속의 문제가 결국 누구의 잘못일 수도 있으면서, 반대로 말하면 누구의 잘못이라고 콕 집어 말하기 힘든 것이라는 사실을 곱씹게 만드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복잡계로서의 현실이 바로 그러하다는 것, 즉 현실의 문제들이란 그 책임을 어떤 한 주체나 집단 등의 단편적 대상으로 환원시킬 수 없다는 거리두기적 성찰의 효과 말이지요. 이 영화가 '3형식'을 취한 것은 이 같은 효과를 의도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우선적으로 해보게 됩니다.


2. 괴물은 정말 어디에도 없는 것일까?


 전술했듯이, 이 영화는 얼핏 학부모, 선생님, 학생의 시선을 모두 허락함으로써 현실의 중층성과 다각성을 풍부하게 드러내는 것으로 보일 수 있을 것입니다. "괴물이 누구냐"는 미나토의 대사는 관객이 그렇게 보게끔 만드는 장치처럼 들리기도 하지요. 하지만 저의 경우에는, 조금 유심히 살펴보았을 때 이 영화는 '괴물이 누구냐'에 대한 정답을 내리고 있는 영화에 가깝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영화가 말하는 괴물은 바로 관료주의-무사안일주의로 점철된 교원 사회 아니냐 하는 것이지요.

 사실 1부에서 싱글맘 사오리가 아들 미나토의 행동과 증언에 분노하여 선생들에게 항의를 하는 장면은 현실에 대한 묘사라기보다 매우 과장된 부조리극에 가깝습니다. 미나토가 학교에서 어떤 상황 속에 있는지, 호리 선생이 미나토를 어떻게 훈육한 것인지에 대한 정보는 아주 제한적으로만 제시되며, 선생들은 문제되는 사실이 무엇인지에 대한 아무런 관심 없이 그저 죄송하다는 태도로 일관하며 사건을 무마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지요. 이 과정에서 사오리는 미나토에 대한 문제가 건설적으로 해결되는 과정을 전혀 체감하지 못하고 서글픔과 분통을 터뜨립니다. 영화를 보는 관객은 1부의 전개에서 뭔가 '이상하다'는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앞서 '매우 과장된 부조리극'이라고 표현했듯이, 사오리는 마치 카프카의 소설 속에서 요제프k가 문지기를 대면하는 것처럼, 정말이지 아무런 말이 통하지 않는 '인간 같지 않은' 형상의 교원집단이라는 하나의 벽을 마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오리의 관점에서 펼쳐지는 부조리극적인 의문은 이어지는 2부에서 약간이나마 해소가 됩니다. 호리 선생님을 둘러싼 부정적인 소문들은 사실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호리 선생님의 입장에서는 미나토를 악의를 갖고 지도한 것 또한 아니었고요. 그 지도 방식이 어떤 측면에서 미숙했을지언정 말이지요. 그런데, 여전히 2부의 해명은 결코 충분치 않은 것 같습니다. 아니 오히려 2부는 호리 선생님의 입장에서 펼쳐지는 또 다른 부조리극을 관객에게 제시합니다. 2부는 호리 선생의 관점에서 아이들과 어떤 식으로 오해가 생기는지, 그리고 교원 사회의 폭력적 관료주의가 이를 호리를 희생양으로 만드는 방식으로 어떻게 악화시키는지를 보여주는데, 이 과정에서 1부에서 그랬던 것처럼 무수한 극적 '장치'들이 허용됩니다. 호리 캐릭터가 안 그래도 지나치게 '호구'스럽게 설정되었는데, 이 맛있는 먹잇감인 호리를 마치 요리하기라도 하듯이 교원들은 과도하게 평면적인 모습(무사안일주의 관료의 전형)으로 그려집니다. 호리를 호색한-파렴치한으로 몰아가는 아이들의 조직적 행태는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1부가 싱글맘 사오리의 입장에서 펼쳐지는 부조리를 보여주었다면, 2부는 호리의 시선에서 작중의 세계가 그야말로 부조리성의 극치임을 보여줍니다.

 1부에 이은 2부의 전개 과정에서 들었던 생각은, 캐릭터의 설정과 사건의 전개가 '어쩔 수 없이 오해가 발생하게끔' 지나치게 작위적으로 짜여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조금 삐딱하게 보았을 때, 이 영화에서 발생하는 오해는 단순히 각자의 입장과 시선의 차이가 있기에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종류의 것이라기보다, 작위적으로 오해를 만들어내기 위해 발생하는 것에 가까워 보인다는 것이지요. 매우 '부조리'하다는 것입니다. 오해를 빚어내기 위해, 호리의 캐릭터는 '호구'로 전락하고, 교장을 비롯한 교원들은 일차원적인 소시오패스(교장의 학부모 면담 전 사진 배치 장면) 혹은 보신주의적 교원의 모습으로 얄팍하게 규정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호리는 관료제라는 쇠우리에 갇혀 사회적 몽둥이질을 그저 감내할 수밖에 없는 부조리속의 인간인 것으로 그려지는 것이죠.

 이제 영화의 성패는 아이들의 시선이 담긴 3부에 달리게 됩니다. 사실 영화 연출에 있어 다소 작위적인 설정이 들어간다고 해서 그것이 꼭 문제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작품 전체적으로 필요하다면, 다소 개연성을 결여한 전개나 작위적인 설정 등은 충분히 허용될 수 있을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이 영화는 3부를 통해 호리에게서 발생하는 오해들과 부조리가 과연 정말 그럴만한 것이었는가, 혹은 한 발 양보해서 그 작위적 오해들과 부조리를 납득시킬 만한 뭔가 다른 방식의 결말이 존재하는가를 관객에게 설득할 수 있었을까요? 3부는 결국 미나토와 요리가 가정과 학교에서 어떤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가, 그 둘이 둘만의 방식으로 서로에게 어떻게 힘이 되어 주는가, 그들이 왜 그들의 입장에서 호리를 희생양으로 삼게 되었는가(거짓말)를 두텁게 묘사하는 방식을 택합니다. 사실 3부 자체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지만, 저는 이것이 1부와 2부에서 이어진 작위성과 단편성을 충분히 설득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라고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미나토와 요리가 왜 거짓말을 하게 되고 호리 선생을 희생양으로 몰아가게 되었는지까지는 설명이 되지만, 그것이 특히 2부에서 두르러지는 단편성과 작위성을, 달리 말하면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는 영화가 왜 과장된 부조리극적인 연출을 시도해야만 했는지를 설명해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교장 선생님’의 개인사가 조금 다뤄지는 것만으로는 호리가 교원 사회의 힘없는 신입으로서 사회적 나락에 빠지게 되는 부조리함을 충분히 설명해주지 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영화는 결국 형식적으로 '모두가 괴물'임을 혹은 '누구도 괴물이 아님'을 말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관료주의적이고 무능하고 무책임한 교원 사회가 괴물이라는 답을 내리고 있는 것에 가깝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왕따에 가담하는 아이들이야 일단은 그렇다고 치고 말이지요. 미나토와 요리는 거짓말로 호리를 나락에 빠뜨리긴 하지만, 어쨌거나 이들은 가정사(싱글맘 혹은 가정폭력)와 사회적 편견(남성성의 강요)과 왕따의 희생양입니다. 싱글맘 사오리는 훌륭한 양육태도를 지닌 한 명의 학부모로서, 사건의 실체적 해결에는 관심이 없는 교원 사회에 대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호리는 호구이지만 누구보다 절박하게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했던 자질 있는 교사였을 뿐입니다. 이 모든 문제의 궁극적 책임은 결국 교장을 비롯한 무사안일주의적 교원사회에 있습니다. 혹은, 적어도 이 영화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저는 전술했던 ‘3형식’을 통해 시선과 입장의 상대성을 강조하는 이 영화가 결국 교원사회에게 “괴물”의 혐의를 강력히 뒤집어씌우는 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점이, 이 영화가 가지는 치명적인 결함인 것으로 느꼈습니다. 특히나 이 영화가 교원사회에 책임을 물리는 방식은 '현실'을 두텁게 다루고자 하는 영화 치고는 다소 얄팍하며, 어떤 관점에서는 상당히 비겁해 보이기도 합니다. 교원들이 실제 현장(교실)에서 발생하는 일에 정말이지 전혀 관심이 없는 태도, 예민한 학부모가 제기하는 자그마한 컴플레인 하나를 무마하기 위해서는 신입 교사 한명쯤이야 쉽게 사회적으로 매장시켜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태도를 갖고 있다는 식인 것이죠. 다른 모든 인물들에게는 그들이 “괴물”이면 서도 “괴물이 아닐 수도 있다”는 빈틈이 허용되지만,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교원사회는 그것이 아닌 것이라고 느껴졌습니다.

3. 총평 : 조금만 더 잘 했더라면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3부의 구성으로 재구성의 미학을 통해 시선과 관점의 차이가 어떤 오해들과 의도치 않았던 결과를 만드는지를 보여주는 듯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교원사회를 상당한 극적 과장을 섞어 단순화하는 방식으로 그들에게 단죄를 내리고 있다는 해석을 해보게 됩니다. 사오리, 호리선생, 마니토와 요리 사이에서는 분명 관점 차이로 인한 오해가 발생했다, 하지만 이 오해에 대한 궁극적 책임은 무능하고 회피적이기만 한 교원 사회에 있다는 식으로 말이지요.
 
 물론 이와 달리 보는 견해가 충분히 많이 있을 것입니다. 저 또한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된다면 다른 생각을 해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오리는 미나토의 퀴어성을 비롯한 아들의 내면을 더 적극적으로 이해하려 시도해야 했는지도 모르고, 호리가 사건에 접근하는 태도나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가치관은 더 성찰적이어야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로 이런 종류의 거리두기와 성찰의 효과를 영상미학적으로 달성하는 것이 고레에다 감독의 의도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요? 무튼 이러한 방식의 다른 해석이 가능함에도, 저는 이 영화가 유독 1,2부를 부조리극적인 과장으로 구성하면서 교원사회에 "괴물"의 혐의를 전적으로 뒤집어 씌우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고 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달리 말하면, 이 영화가 선택한 형식적 강점은 사건을 둘러싼 인물들의 입장을 모두 충실히 대변하면서 궁극적으로 그 복잡다기한 맥락성 속에 위치한 상처 입은 아이들(물론 마냥 '착하다'고만은 할 수 없는)이 어떤 방식으로 나아가는가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발현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만약 위에서 서술한 주장에 설득력이 있다면, 이 영화의 형식은 다만 사건에 관한 정보를 관객에게 제한적으로, 그리고 순차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스릴러적 긴장을 유지하는 형태로 활용되고 있을 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장르적으로 스릴러적 쾌감을 위해, 그것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 영화인 것일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일본사회라는 현실을 강력하게 의식하는 일종의 '사회비판적' 영화에 가까워 보입니다. 전술했던 소재들을 이런 방식으로 다루어놓고 여기에 대해 '아니'라고 대답하는 것은 비겁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컨대 스릴러적 쾌감은 이 영화가 달성하고자 하는 바의 후순위인 것이지요. 이렇게 본다면 저는 이 영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조금은 박한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퀴어적인 것을 다룬다고 해서, 그리고 플롯을 꼬아냄으로써 아이들의 행위와 입장에 더 몰입하게 만든다고 해서, 영화의 허점을 모두 가릴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이지요.

 물론 이 영화는 여타의 단점들을 의식하면서 보아도 충분히 보는 맛이 있는 영화,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3부에서 아이들의 시선을 보여주는 연출은 꽤 빼어났다고 느꼈습니다. 1,2부의 연출에서는 스릴러적인 강점도 드러났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걸작의 반열에 오르기에 이 영화가 갖고 있는 결함은 치명적인 것이 아닐까, 특히 2부의 연출에서 극적 과장과 엉성함을 다소 덜어내고 인물과 이야기의 깊이를 더 담아냈다면 이 영화는 걸작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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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4 16:32
수정 아이콘
오 후기 잘 읽었습니다. 전 뭔가 감독이 굳이 범인/빌런 찾기를 하지 말라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정 계층 또는 상황을 타겟한다고 하기엔 아이들의 순수악적인 측면을 좀 적나라하게 표현하지 않나 싶어서..
23/12/04 16:59
수정 아이콘
(수정됨) 엊그제 2회차 관람하고 왔는데 장문의 글 반갑습니다 크크
추천!!

1부와 2부, 성인인 '사오리'와 '호리' 선생을 따라다니는 카메라는 이상합니다. 마치 어안렌즈처럼 왜곡된 시선이에요.
미나토의 엄마 사오리의 눈에는 자기 아이는 뒷전이고 무언가 숨기기 급급한 교사들이 괴물 같습니다. 행동도 이상하고 말투도 어눌합니다.
그리고 사오리 본인도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교장 선생의 상처를 후벼 파는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호리 선생은 학생들, 동료 교사들, 언론, 심지어는 여자친구까지...온 세상이 본인을 '억까'하는 것 같습니다.
1부가 '베케트'적이라면 2부는 '브레히트'적이에요.

어른들의 주관으로 바라본 세상은, 즉 녹음기처럼 알맹이 없는 말만 되풀이 하는 교사들, 본인 하나만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무사안일의 동료들, 학부모 상담을 앞두고 액자의 각도 따위나 신경쓰는 교장의 모습 등은 일정 부분은 사실로 보일 수 있지만 그게 '진실'은 아닐 것 같습니다.
특히 늦게나마 본인의 오해를 깨닫고 후회하는 호리 선생이나 미나토와 교장 선생의 대화 등을 통해, 교원 사회나 학교라는 울타리가 단독범인으로 '괴물'이다 라는 혐의는 벗어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시간순으로 그냥 나열했으면 다소 밋밋했을 법한 이야기를 적절하게 자르고 적당하게 겹치게 배열 함으로써 장르적인 재미까지 잘 잡았습니다.
전에 다른 글의 댓글로도 적은 것처럼 일견 스티븐 킹의 단편 소설처럼 느껴지기도 했으니까요.
다분히 주관적이었던 1,2부와 달리, 아이들의 시선이긴 하지만 다소 떨어져서 바라보는 3부의 거리감이 좋았습니다. 이 영화를 '라쇼몽'과 다른 영화로 만들어주는 부분이기도 했고 영화의 애잔한 정서에도 크게 기여했습니다.
'숨기기/드러내기'를 적절히 활용하여 트릭을 부여한 것은 좋은데, 1부 마지막에서 미나토가 투신한 것처럼 속인 것은 감독이 너무 밉습니다.
2부 막바지에 얼마나 안도 했었는데, 결말에 그 아이들을 다시 또...ㅠㅠ

이 영화의 괴물은 감독입니다. 예전부터 그랬어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 작품에 아이들이 등장하면, 아 이번에는 또 어떤 창의적인 방법으로 이 아이들을 괴롭히려나, 걱정이 앞서요. 괴물같은 사람.
오곡쿠키
23/12/04 17:51
수정 아이콘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댓글을 읽고 보니 1,2부의 연출적 과장을 긍정적인 쪽으로 다시 볼 여지가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특히 늦게나마 본인의 오해를 깨닫고 후회하는 호리 선생이나 미나토와 교장 선생의 대화 등을 통해, 교원 사회나 학교라는 울타리가 단독범인으로 '괴물'이다 라는 혐의는 벗어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에 관해서 약간의 견해(혹은 감상의 차이)가 발생하지 않나 싶습니다. 댓글을 읽으면서도 이걸 좀 더 잘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은 여전히 들어요. 다만 3부를 아이들의 시선으로 더 두텁게 구성하려면 '교원사회(특히 교장)'에 목소리를 더 많이 허용하기는 어려웠겠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4부작으로 구성시 너무 늘어질테니 말이죠. 고레에다 감독은 굳이 4부로 구성을 안 해도, 관객이 "괴물을 찾는 데 혈안이 되어있는 괴물"에서 충분히 탈피할 수 있으리라 봤을지도 모르겠네요.
23/12/04 17:57
수정 아이콘
'단독 범인은 아니다' 정도이지 무혐의라는 말은 아니니까요 흐흐

그리고 교장 선생님 파트는 좀 이질적이라서, 이동진씨는 4부 구성으로 봐도 되지 않나 하시더군요.
오곡쿠키
23/12/04 19:26
수정 아이콘
확실히 교장 선생님 이야기는 분량이 적은 걸 떠나서 이질적으로 느껴지긴 했습니다. 교장의 이야기이지만 교장의 '시선'이라고 까지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고요. 이동진 평론가의 해석도 참고해보겠습니다.
불대가리
23/12/04 17:05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다르덴 형제와 함께 가장 좋아하는 감독임을 미리 밝혀둡니다.

분석하신 것 처럼
"누가 괴물인가?" 가 중요한 영화였죠.
오곡쿠키님도 치밀한 분석을 통해 (연출적 결함이긴하지만) 교원사회가 괴물인것 처럼 느껴진다고 하셨던 것처럼
다른 관객들도 영화내내 저마다의 괴물을 찾았겠죠

일견 동의 하지만
이러한 해석은 영화의 풍부한 텍스트를 너무 납작하게 만드는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레에다가 정말 말하고 싶었던건
자신들만의 색안경으로 어떻게든 가해자(괴물)를 만들어내고 싶어하는 관객들이 바로 괴물이라는 걸 말하고 싶어하는 영화로 보였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본질은 보지 못하고 말이죠.

서로의 본질을 보려고 했던건 미나토와 요리 둘뿐이었습니다.
카드게임에서 서로에 대해 묻고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서로 정답을 말하죠. 본질을 본거죠
소문을 듣고 판단하고 단정짓는 어른들과는 다르게요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nouvellevague&no=1456873&exception_mode=recommend&s_type=search_subject&s_keyword=.EA.B4.B4.EB.AC.BC&page=1
원래 엔딩이었다던 스틸컷을 보면 제 생각에 좀 더 힘이 실리는것 같아요


사족으로
고레에다 답지않은 장르적인 구성이라 좀 놀랐긴했어요 (이렇게 훌륭한 영화가 상업성도 가지고 있다는 칭찬입니다.)
이 양반 영화는 이제 좀 뻔하다 싶을때 또 이렇게 뒷통수를 날리네요
23/12/04 17:29
수정 아이콘
비극이지만 비극처럼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마지막 15분의 편집에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는 인터뷰를 볼 때, 저 스틸은 초반에 고민했던 여러 엔딩 중 하나이거나 아니면 말그대로 그저 '스틸컷'이었을지 모르겠습니다.
단죄하듯 똑바로 바라보는 시선을 마주하기 어렵기도 하지만, 차분히 쌓아올렸던 영화의 주된 정서와도 맞지 않아 보여요.

스크린에서 완전히 내려가기 전에 한번은 더 볼 것 같습니다 크크
오곡쿠키
23/12/04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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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관점에서 현실을 영화적으로 섬세하고 깊이있게 다루는 감독으로 저도 다르덴 형제를, 그리고 작품으로 <내일을 위한 시간>을 예시로 떠올렸었는데요. 댓글에서 확인하니 반가운 마음이 듭니다.

저 또한 본문의 해석이 "영화의 풍부한 텍스트를 너무 납작하게 만드는 해석" 이라는 데 동의합니다. 근데 제 주장은 '충분히 풍부한 텍스트를 납작하게 해석하도록 만들었다'에 더 가까운 것이긴 합니다. 해서, 다시 보게 된다면 이 영화가 더 좋게 느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저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 고레에다가 굉장히 잔잔한 영화를 찍는다고 생각했고, 이번에도 충분한 각오를 했음에도 영화가 상당한 몰입력을 보여줘서 만족했습니다. 입소문이 좋은 이유가 있더라구요.
23/12/04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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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에서 말씀하신 이야기의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 스릴러적 요소를 사용하는 게 각본을 쓴 작가의 스타일입니다. 일본 드라마 보셨던 분들은 아실 마더나 그래도 살아간다, 우리들의 교과서, 콰르텟 등 모두 비슷한 구성을 가지고 있죠. 극 초반에는 시청자를 붙잡아 두기위해 미스터리 형식을 띄며 궁금증을 유발하지만 뒤로 갈수록 장르적 성격은 옅어지고 작가가 원래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남죠.

이 작가(사카모토 유지)가 주로 드라마 각본을 많이 쓰거든요. 높은 시청률을 추구하는 대중성 있는 각본보단 웰메이드 각본을 쓰는 사람이지만 드라마는 전통적으로 시청자의 이탈 장벽이 낮기 때문에 그들을 붙들어둘 장치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미스터리나 스릴러 소재를 적극 활용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장르물을 잘 쓰는 작가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쓰지도 않고요. 오히려 드라마 장르, 의외로 로맨스를 잘 쓰는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성향이 말씀하신대로 이번 영화의 강점과 약점으로 드러났다고 보고요. 뭐 영화는 시간의 제약이 있기 때문에 버리고 편집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요.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이지만 저는 보면서 각본가의 색깔이 꽤 두드러진다고 느꼈습니다. 주인공이 초등학생인 이야기를 구상한 건 역시 감독이 고레에다이기 때문이었을 거고요. 작가의 어린시절 경험이 투영된 각본이라고 하더군요. 서로가 서로에게 빌런인 구조이고 타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성향을 드러내고자 한 면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곡쿠키
23/12/04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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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설명 감사합니다. 첫 문단에서 해주신 말이 제가 <괴물>을 보면서 느낀 바와 거의 일치하네요. 영화를 고를 때 감독을 많이 의식해도 각본가에 대해선 별 생각이 없었는데, 앞으로는 관심을 가져 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aDayInTheLife
23/12/04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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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잘 읽었습니다. 저는 '괴물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영화가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있다고 느낀게, 만약 영화에서 악인에 가장 가까운 인물이 있다면 아마도 요리의 아버지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는데, 정작 영화 상의 비중은 크게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이 영화에서 말하고 싶은 바를 기묘하게 숨겨놨다고 생각해요. 특히나 그게 누가 악인인가에 대해서는 더더욱이요. 그렇다보니, 영화의 정서가 어떤 분노나 반감이라기보단 처연하고 슬픔으로 모이는 효과도 있다고 생각해요.
3부의 구성을 따라가다보면 결국 누가 악인인가, 누가 누구에게 잘못을 저질렀나보단 결국 각자의 피해와 각자의 슬픔, 각자의 아픔과 한계에 대해서 깨닫게 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중심에는 스릴러적 서사구조가 있다고 생각하구요.
이렇게 해석의 여지가 (호불호의 여지가 아닌) 많은 영화인 만큼 영화가 참 좋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오곡쿠키
23/12/04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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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의견에 공감하는 부분이 있는 것이, 엔딩 크레딧이 나올 때 '괴물이 누구냐'하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대신 전체적인 전개를 되짚어 봤을 때 사오리, 호리, 미나토와 요리에게 허용된 맥락성이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선생님들(호리 제외)에게는 불충분했던 것이 아니냐 하는 나름의 문제제기(?)였던 것인데요.

댓글들을 읽다보니 1,2부의 연출로 우리가 쉽게 믿어버리는 진실의 허약함을 충분히 드러낸 것으로 본다면(애초에 사오리와 호리의 주관이 강하게 반영된 시선, 즉 어른의 시선을 보여준 것), 구태여 교장선생님의 시선을 두텁게 보여주지 않더라도 작품이 3부의 끝맺음을 통해 그럴듯한 완결성을 갖는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의견 감사합니다.
돼지뚱땡좌
23/12/05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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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목 자체가 너무 스포성인뎁쇼... 제목 보고나서 특히 영화 1부 보면 호리 센세에 대해 어차피 결론 알고 보는거나 마찬가지라 확 힘빠질듯요.
오곡쿠키
23/12/05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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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은 못 해봤네요. 그럴 수 있겠다 싶어 수정했습니다.
23/12/06 07:58
수정 아이콘
https://youtu.be/teL4Iwu7TgM?si=2KApzFjWseri1nbX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과 이동진 평론가님의 온라인 대담이 올라왔습니다. 평론가님이 언택트톡에서 품었던 의문들을 직접 질문해서 확인하기도 하시네요. 내용도 재미있고 영화를 좀 더 깊게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될 듯합니다.
오곡쿠키
23/12/06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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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링크 감사합니다. 역시 곱씹을 거리가 많은 영화라는 생각이 드네요.

다른 부분은 차치하고, 이동진 평론가 역시 다소 짓궂게도(?) 결말에 관해 질문을 했군요. 감독은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한다 답했고요. 이동진씨의 지적처럼 불로 시작하여 물로 끝나는(사카모토 류이치의 '아쿠아'까지) 이야기로 본다면, 아이들에게 닥친 내적 재난이 물의 이미지로 해소되는 해피엔딩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테지요.

그런데 저는 말이 좀 이상하지만 이 영화가 '아이들이 죽는 해피엔딩' 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석하고 싶어요. 고레에다 감독의 경우에도 "현실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는데 해피엔딩으로 끝나도 되는 걸까" 하는 불편함을 노렸다는 식의 언급을 하는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이 죽었다는 엔딩이 궁극적으론 해피엔딩인 것이 아니냐 하는 생각이네요. 감독은 해피엔딩이라 돌려 말하고 있지 "살았다"고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기도 하고요. 현실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고, 아이들은 지금의 현실에선 퀴어적인 정체성을 오롯이 긍정할 수 없으므로, 그들이 자기 자신을 그대로 긍정하기 위해서 빅크런치 이후 재창조되는 세계로 나아간 것이 아닐까 합니다. 미나토와 요리가 "아무것도 달리지지 않았어, 그대로 살아가면 돼" 라고 말하는 것이 그들의 정체성에 대해 말하는 것 같달까요. 미나토가 빅크런치를 외치며 기차로 달려가기 전, 교장선생님과의 대화에서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평범하게 영위할 수 있는 것이라는 말에 뭔가를 느끼는 것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이곳 현실세계에서 나는 행복할 수 없는 존재구나'하는 것을 확신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죠.
오곡쿠키
23/12/06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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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다시 보니 감독은 '살았다'는 해석을 명확히 말하긴 하는군요 흐흐.
23/12/06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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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씨와의 다른 대담에서는 '비극적인 결말이지만 비극적으로 보이지 않도록 연출하려고 고심했다'고도 하셨죠. 이쪽이건 저쪽이건 암튼 한쪽으로 완전히 결론 내려지는걸 피하고 싶어하시는건 분명해 보입니다 크크
오곡쿠키
23/12/06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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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선 또 그렇게 말하셨나 보군요 크크크 흥미롭네요. 고레에다 감독이 직설화법은 거의 피하는 감독이라고 하던데, 이번 기회에 다른 작품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정보 감사드립니다.
차라리꽉눌러붙을
23/12/17 03:09
수정 아이콘
괴물은 실존이 만들어내는 어떤 총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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