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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28 21:06
서울의봄 파트는 문제가 없어보이고, 제가 볼때 ...이라는 단어가 문제의 소지가 될 확률이 있으므로 그것만 빼시면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23/11/28 17:51
인식론까지 갈 얘기는 아닙니다만, 결국 내가 없으면 이 세상도 없죠.
객관화는 좋은 것이긴 한데 어느정도는 '내가 옳음'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것도 마음 편하게 사는 방법 아닐까 싶어요.
23/11/28 17:52
극한의 NT로서, 올해 커뮤에서 본 글 중 가장 인상깊은 글이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사람을 사람으로서 대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생각을 다시 해봐야겠습니다.
23/11/28 18:00
전 개인적으론 약간 다른 답을 냈는데, 각종 이슈에 대해 '내가 맞을수도 니가 맞을수도 있겠지~' 정도로 생각하는 빈도가 높아졌습니다. 그러니까 대충 좀 더 쿨해 지더라고요. 키배도 덜 하게 되고요. 그 시간에 제가 좋아하는걸 좀 더 하게 됐네요
23/11/28 18:00
내로남불은 보통 분수에 맞지 않는... 어긋난 욕망을 표출할 때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인간이 꼭 뭐 과분한 욕심을 부려야 할까요? 어차피 다 바니바니인데... 오늘 하루 자유롭게 똥글도 쓸 수 있고 똥도 쌀 수 있으면. 그러면 된 것 아닐까요?
23/11/28 18:01
오호 사고의 흐름이 제가 예전에 내린 결론과 비슷하네요,
[그냥 인간은 답이 없어요] 때문에 타인을 평가하거나, 타인에 대한 잣대를 내리는 걸 하지 않습니다. 니가 맞는 지 틀리는 지 관심 없어, 그냥 나는 이게 맞다고 생각해. 반박 시 니가 옳다가 아니라 반박하든 말든 관심 없어.
23/11/28 18:03
개인적으론 모든 구성원들이 서로 남이 하는 불륜은 가급적 신경 끄되 내 로맨스를 망치는 불륜은 참지 말고 끄댕이 잡자 주의로 가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 과정에서 상호 존중과 타협과 합의가 완성되지 않을지
23/11/28 18:42
저도 글쓰신 분과 비슷한 성향인 사람인데,
저는 내로남불이라는 이 문제가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정보 비대칭이라 생각합니다 결국 모든 정보를 내가 다룰순 없고 감당할 수 없으니 분업이 있고 직업이 있는 것이고, 어떤 재화를 통해 우리가 잘 모르는 것에 대해 지불하는게 현대 사회의 분업의 개념이라 생각합니다. 결국 재화는 주로 돈인 경우가 많고, 그 편리한 상징물 덕에 우린 더이상 모르는 것을 완전히 이해할 필요도 없습니다. 돈이라는 상징물로 우리는 그 정보 비대칭성의 댓가를 지불하지만, 돈이라는 것이 가장 편리한 편견이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편리한 편견에 익숙한 현대 사회 사람이라면 내로남불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런 말을 하고싶언건데 너무 말이 길어져서 대충 적지만 어떤 느낌인지 아실꺼라 생각합니다. 결론: 내로남불을 성찰하는건 중요하나 내로남불 없이 살순 없음
23/11/28 18:47
추가 적으로 갑자기 생각나서 적는데 내로남불하면 보통 '팔은 안으로 굽는다"라는 말로 설명하잖아요
저는 팔이 안으로 안굽으면 그게 더 문제다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너무 극단적인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는 집단에서 이런 행동에 대해서 몸서리 치는 경우가 많죠 레디컬 페미니스트나 이런 근데 사실 모두에게 완전히 공평한 판단을 내린다는건 세상을 살기 싫다는것과 같습니다. 오지에 쌩판 모르는 남이 죽는 것과 나와 친한 사람이 죽은 것을 완전히 동일하게 취급할 수 없기 때문인것 처럼 절대적인 올바름은 세상에 존재할수 없다 라고 생각합니다
23/11/28 19:32
그래서 대깨만 안하면 되는데
다들 어느순간 판단이나 생각의 고민을 줄이기 위해서인지 신념이라 믿는게 생겨버린건지 어느 편에서든 대깨가 돼버리더라구요
23/11/28 19:50
세 줄 요약 없는 기나긴 장문인데 이렇게 재밌게 읽히다니 크크 인간은 역시 동질감을 좋아해요 나쁜 놈 싫어 아니 싫은 놈 싫어 인듯하네요 크크
23/11/28 20:51
타인의 입장을 이해할 필요는 없지만 ... ...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그 논리는 알아야, 쌉소리나 불필요한 분쟁을 안 하게 되는데... ... 그러려면 리액션이 빠를 수가 없습니다. 좀 더 빠르게, 좀 더 자극적이게를 추구하는 관종의 시대에, 참으로 쉽지 않은 삶의 방법이지만 노력해 볼 수 바4에요.
23/11/28 21:10
수많은 다툼, 논쟁, 키배를 보기도 하고 참여하기도 하면서 제가 가지게 된 생각과 굉장히 비슷하네요. 글 읽으면서 간접 사고 경험을 한 느낌입니다. 결론 맺기 쉽지 않은 주제인데, 나름의 결론도 있고요. 글 잘 읽었습니다.
23/11/28 21:18
즐거운 내로남불...
야외에서 노상방분으로 급똥을 해결하게 되는 경우가 생길때 즐거운 내로남불의 마음으로 노상방분 하겠습니다 다들 아니라고 하시겠지만 저.는.도.덕.적.이.고.윤.리.적.인.사.람.입.니.다.
23/11/28 21:56
진정한 반성과 성찰이 없다라...
이건 마치 모든 인간에겐 발전이 없다라는 주장처럼 들리네요.. 그럴리가 없겠지요? 진정한 반성과 성찰이 왜 없겠습니까... 다만 그것이 간단하고 편리한 1회성 이벤트가 아닌 것뿐이죠.. 반성하고 하지만 또 실수를 반복하고 또 반성하고 또 반복하고 또 반성하고... 반성을 하고 하고 또 하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갑니다 개개의 회차만 단락적으로 보면 반성 따위 아무 의미도 없는 헛짓거리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요. 좀 전에 했던 반성과 성찰이 무색할 정도로 금새 실수가 반복되니까... 하지만 전체적으로도 그렇습니까? 많은 수의 사람들이 길게 보면 결국 변화하고 성공합니다.
23/11/28 22:50
후회와 학습, 이를 통한 언동의 교정은 분명 실존하는 것이지만, 반성과 성찰은 마치 영혼, 온전한 자유의지 등과 같이 생물학적 인간에게 어울리지 않는 형이상학적 개념으로 느껴집니다. 언제든 바뀔 수 있는 주관적인 단견입니다만, 본문의 취지는 그렇습니다. 저도 말씀하신 것 같는 반성과 발전을 경험하고 또 깨닫게 될 날이 오기를 기대하겠습니다.
23/11/28 22:55
내가 그자리에 있었더라도‘란 말을 들을 때마다,
예전에 들었던 말이 생각납니다. 그러기에 넌 그자리에 있으면 안되는 거다. 그 자리에 있으면서 그에 맞게 대처하지 못했다면, 나머지 얘긴 멍멍한 소리일 뿐
23/11/28 23:10
음 결론이 전 좀 다른데 잘 읽었습니다. 인지편향, 왜곡 같은 게 괜히 생겨나 강화된 건 아니겠죠. 적어도 수만 년 동안 굳어진 기제를 내 턴에서 영차영차 [극복]하는 건 어림도 없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하물며 복작대며 사는 세상에서는 더더욱이요. 마치 한 사람 앞에 계단이 수만 개 있는데 모두가 각자의 계단을 수만 개 올라가야 해피엔딩이 보이는 게임이랄까요. 그래도 어제보다 한 계단 때로는 두세 계단씩 올라가는 게 저는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모든 게 유전과 진화에 대한 인간의 앎 덕택이라는 생각도 하고요.
23/11/29 10:05
지당한 말씀입니다.
제가 시간이 없어서 마지막 부분을 급하게 마무리짓다보니 못 다한 얘기들이 있는데, 말씀하신 것과 비슷합니다. 어차피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지'를 완벽하게 가정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실제 인물과 내가 다르니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땠을지와 실제 인물의 행동을 동일선상에 두고 비교하는 것 역시 완벽한 고찰은 아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면서 연속적으로 무수히 수행하게 되는 인간의 사고와 회의는 최대한 성실한 것이 바람직합니다. 개체에게도 인류 공동체에게도 말이죠. 마치 보고서를 쓰는 것과 비슷합니다. 모든 자료를 완벽하게 분석하고 오차없이 예측하는 보고서 따위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게 가능하면 그 사람이 보고서 따위나 쓰고 있을 이유가 없기도 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 주어진 임무와 역량 내에서 성의를 가지고 보고서 작성에 임하는 것은 작성자 개인에게도 조직에게도 매우 유의미합니다. 개체의 차원에서는 뿌듯함, 자존감, 향후 유용한 생존 지식의 습득 이라는 생물학적 차원에서의 보상이 주어집니다. 조직에게도 실질적인 결과물 뿐 아니라 그런 태도와 그런 태도가 장려되는 분위기 자체가 조직의 존속에 유리한 특질이 됩니다. 다만 작성자 본인이 완벽한 보고서 작성에 집착하거나 완벽한 보고서를 써내지 못하는 것에 지나치게 절망하고 회의할 필요는 없다는 거지요. 또, 작성자의 불완전을 보완하기 위해 다른 동료, 상사들의 피드백이 필요한 것이고, 설사 결재권자가 작성자보다 명백히 우월하지 못하다한들, '내가 작성했어도 똑같았을텐데'에 과몰입하여 피드백을 억제하는 것이 각 구성원들에게나 조직에게나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서울의 봄의 예에서 보면, 공동체의 가치를 훼손한 타인에 대해 '욕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럴 수 있다. 나라도 그러지 않았을 자신이 없다'며 지나치게 결벽적으로 회의하는 것이 공동체적으로는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나와 너의 로맨스에 대한 평가를 완벽하게 일치시킬 수 있어야만 비난할 자격이 생긴다고 한다면 그런 사회야말로 발전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도 절대 그러지 않았을 것'임을 신뢰할만큼 도덕지능이 높은 개체들은 오히려 소수일테니까요. 다만 성실히 회의하는 태도는 자신을 위해서도 인류를 위해서도 추구해야 하는 것이고, 그런 태도는 인간의 본성에 반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러한 태도에 대해 일정한 보상을 주는 방식으로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것이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인류 중에 초인은 없습니다. 스스로를 완결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개체는 없으니 나름의 성실한 회의를 통해 서로를 적당히 피드백하며 사회와 인류의 방향을 정해나가는 것이죠. 내로남불이라는 매우 부조리하고 모순적으로 보이는 인간의 본성도 그러한 인류 존속의 구조 내에서 나름의 효용이 을 가진다. 는 것이 본문의 주제입니다. 아울러 그러한 모든 것들이 유전과 진화에 대한 인간의 앎 덕택이다, 라는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23/11/29 05:55
30일과 서울의 봄 중 뭘 볼까 고민하다가 30일을 혼자 봤습니다. 너무나 뻔한 이야기, 예상되는 반전들. 하지만 다시 생각해도 정말 잘 한 결정입니다.
사람이 변하기 어려운 이유는, 지금까지의 나는 평생껏 일구어 온 뇌신경망이라서이고, 방금 경험한 반성과 성찰은 이제 막 새롭게 형성해나가는 신경망이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기존에 공고하게 구축되어 있는 회로들을 부수고 새롭게 깨달은 회로를 재구축하는게 쉬울리가 있겠습니까? 습관적으로 해온 실수들 vs 간간히 떠오르는 통렬한(하다고 자뻑하는) 반성과 성찰의 횟수. 뭐가 더 많을까요? 쉽죠? 인간이 기계라고 해서 반성과 성찰이 불가능한 존재인게 아니고, 영혼이 없는게 아닙니다. 인간 의식의 한계는 스스로가 정하는 겁니다. 단지 나이먹고 쉽게 바꿀 수 없는 것 뿐입니다. 왜? 생물학적으로 다 컸으니 잘 배웠으면 이제 니가 낳은 새끼들을 위해서 사냥을 해와라. 배운 것 그대로 자식들에게 행해라. 가 동물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인간 의식은 동물을 벗어났다고 자뻑에 취해 있지만 조금의 나비효과를 유발하는 사소한 차이를 제외한 나머지는 여전히 동물입니다. 우리 신체를 다룰 때는 세포 레벨에 맞춰서 생각해야 합니다.
23/11/29 08:52
굳이 12. 12.사태를 생각하지 않아도, 일제강점기를 통해 되풀이 되던 주제가 아닐까요.
과연 나였다면, 적극적으로 매국했을까, 적당한 합리화로 순응했을까, 대쪽같이 저항했을까.. '내로남불'은 이기심이라는 본능이 자기합리화라는 이성과 버무려져 나오는 행태라고 봅니다. 이런 본성을 보편타당성 있는 가치나 공익, 명분 등이 필터링하는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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