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경험기, 프리뷰, 리뷰, 기록 분석, 패치 노트 등을 올리실 수 있습니다.
Date 2004/11/15 22:51:36
Name 베르커드
Subject [소설] Girl - 2화
이 글은 2000년~2001년 사이에 저의 선배가 작업한 단편영화를 소설화한 것입니다
본인의 허가를 받지 않고 쓴 글이라서 조금 걱정되긴 하지만(웃음) 그래도 열심히 써보고자 합니다
이 글은 제 블로그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게이머랑 전혀 연관이 없는 소설이라 얼마나 많은 분들이 읽으실지;;;)
그럼 시작합니다

1편 보기



3.
대문을 살짝 열어 바라본다. 대문 문지방 밑엔 오렌지 껍데기가 수북히 쌓여있다. 어제 먹고 치우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오렌지를 하나 껍질을 벗겨 먹으며, 바깥 상황을 예의 주시했다. 그녀와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걸걸하고 남자다운 목소리가 내게는 조금 부러웠다. 하지만 부러워할 수 없는 상황이 찾아왔다.

"이게 뭘 잘했다고...!"

「찰싹」

그녀가 넘어지고, 싸늘한 정적이 복도를 휩싼다. 그리고 정적을 찢는 흐느낌. 나는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나의 동공은 제멋대로 확대되고, 심장은 터질 듯이 뛰었다. 온 몸의 세포가 그 남자를 향한 맹렬한 증오를 분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충격에, 나는 껍질을 벗기기 위해 쓰던 과도에 손을 베였다. 피가 살짝 배어 나온다.

"야, 조용히 안 해?"

그녀의 흐느낌에 당황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남자. 나는 문을 소리가 나지 않게, 하지만 잽싼 속도로 닫았다. 그리고 닫는 순간 그 남자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틀림없이 그녀의 남자친구다.

그는 나와 정확히는 딱 한번 만났다. 집 앞 슈퍼를 다녀오는 길에 그녀와 다정히 팔짱을 낀 그와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때 그녀와 나는 '이웃사이' 였고, 그 이웃을 소개하는 차원에서 그녀는 날 그에게 소개시켰다.

"잘 부탁합니다."

악수를 청하려 내민 손은 제법 컸다. 듬직한 체격과는 맞지 않게 날카롭게 각진 얼굴. 거기에 작은 사각렌즈의 안경이 그의 날카로운 얼굴을 더 돋보이게 했다. 시쳇말로 '야비하게' 생긴 사내였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의외로 그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다정했으며, 난 그 호의를 받아들여 기꺼이 악수를 했다.

그가 나를 얼마나 기억할 진 모르지만, 난 그를 몇 번이고 본 적이 있다. 그 때 그를 만나기 이전에도 그녀의 모습을 관찰하면서, 그녀가 그와 함께 가는 것을 몇 번 정도 봤기 때문이었다.

여하튼 그는, 그녀에게 조심하라는 경고―먼저 때려놓고 경고를 내린다는 게 우습기 짝이 없지만―를 내리고 계단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나는 그의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지길 기다렸다가 재빠르게 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스스로가 이때까지 분노를 삭힌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여하튼 나는 침착한, 하지만 한껏 분노가 담긴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저기요, 괜찮아요? 이봐요! 괜찮아요?!"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찰싹」

내 어깨를 잡아야 했던 다정하고 고운 손길은 나의 뺨을 강하게 후려쳤다. 그리고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방으로 돌아갔다. 어째서? 그녀는 왜 날 때린 것일까? 난 어안이 벙벙하여 내 방으로 돌아갔다.

침대 위에 몸을 걸치고, 이리저리 TV를 돌린다. 뉴스는 어느덧 끝나고 드라마를 하고 있었다. 세속적이고 때묻은 사랑이나 그리는 드라마 따위는, 나의 이 사랑보다 위대하다 말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 나는, 그녀의 따귀마저도 부드러운 손길로 느끼고 있다. 이것이 사랑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이보다 더 아름다운 사랑이 있는가?

아주 조금, 그 남자에 대한 증오가 누그러졌다. 나에게 이런 기회를 줬기 때문에.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구경만1년
04/11/16 01:51
수정 아이콘
하핫 역시 스타관련 커뮤니티에서 이곳과 관련되지 않은 글인지 모르겠으나 사람들이 별로 안읽었군요 ~_~;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다음편이 기대되네요. 그나저나 저는 언제쯤이나 되어야 따귀마저도 부드러운 손길로 느낄수 있을만한 사랑을 해보려나요.. 이제 한달만 있음 서른인데..
아 오히려 너무 늦어서 더이상은 열렬한 사랑은 못해보려나요 -.,ㅠ
잠잘까
04/11/16 13:12
수정 아이콘
아 전 이런소설을 왜이리 즐길까요? ㅠ.ㅠ 마음에 넘 와닿나?
하여튼 베르커드님 화이팅!
04/11/16 13:50
수정 아이콘
베르커드라... 혹시 애니메이션 자막제작자님이신가요??? 애니피아에도 베르커드님이 있는걸로 아는데요... 같은분인가...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9096 오늘 박정석 선수가 이기려면... [18] 임정현4138 04/11/19 4138 0
9095 파포에서 새벽에 뜬 결승전 기사를 보고 웃어버렸습니다^^(임선수와 최선수.. 너무 재밌어요;;) [22] 사탕발림꾼5992 04/11/19 5992 0
9093 노스텔지아의 앞마당이 개스멀티라면? [13] 김재용4133 04/11/19 4133 0
9091 심야의 영화퀴즈...몇개... [19] 네로울프3265 04/11/19 3265 0
9090 [조금펌]게으른 천재는... [23] 신멘다케조4665 04/11/18 4665 0
9089 초짜... 저그의 끝을 보여줄 사람은 바로 당신입니다. [11] swflying4077 04/11/18 4077 0
9088 OSL Ever배 3/4위전 나만의 예상 [25] for。u”4459 04/11/18 4459 0
9086 Ever배 스타리그 결승전,, [11] 박진수4456 04/11/18 4456 0
9085 돌아온 로드펄~ 게이머를 위해 살기로 다짐하다. [30] 로드펄~3471 04/11/18 3471 0
9083 [펌]기록만으론 선수를 평가 하는것은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이다. [23] 불꽃매딕4497 04/11/18 4497 0
9082 [후기] 이윤열의 시점에서 바라본 EVER OSL 4강전 [14] nodelay5816 04/11/18 5816 0
9081 차기 스타리그 가상 오프닝 [7] Ace of Base4321 04/11/18 4321 0
9080 plus팀 화이팅 [6] Ketchup3568 04/11/18 3568 0
9079 [잡담]도대체 어디서 배운 버르장머리야! [8] 모노티비3573 04/11/18 3573 0
9078 최근의 해설 경향에 대한 유감 [2] 종합백과3725 04/11/18 3725 0
9075 이제는 나인가....수능.. [8] 김민수3498 04/11/18 3498 0
9074 선수에게만 바라지 말고 스스로 성숙해집시다~ [8] 임팬입니다3471 04/11/18 3471 0
9073 당신이라면 어느팀을 스폰서 하시겠습니까? [38] 사랑은아이를4929 04/11/18 4929 0
9072 점 ( . ) - 안녕하세요 . - [6] 비롱투란3461 04/11/18 3461 0
9070 시험중에 일어났던 해프닝 [28] 자갈치4287 04/11/18 4287 0
9069 위기의 한빛 스타즈...(약간의 스포일러) [17] 내 머리 속의 4708 04/11/17 4708 0
9068 한시즌의 맵 이렇게 구성되었으면.... & 잡설 [10] YuNYa3649 04/11/17 3649 0
9067 [잡담]시티레이서 해보셨습니까? [8] 아트오브니자3512 04/11/17 3512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