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경험기, 프리뷰, 리뷰, 기록 분석, 패치 노트 등을 올리실 수 있습니다.
Date 2021/03/18 12:15:58
Name 쎌라비
Subject [LOL] 화(火) (수정됨)
이곳에 상주하고 계신 많은 분들이 그렇듯이 저 역시도 자기 계발서로 대표되는 수신(修身)에 관한 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자기 계발서로 돈을 버는 놈들은 그 책을 쓴 놈들뿐이다'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습니다만 제가 자기 계발서를 불편해하고 싫어하는 이유는 자기 계발서 상당수는 인간의 개별성보다 보편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저라는 사람 자체가 인간이나 사물을 대할 때 보편적인 것보다는 개별적인 것에 집착하는 성향이라서 인 것 같기도 합니다.

어쨌든 이런 장황한 소리는 뒤로 치워두고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신에 관한 한 책을 보고 있습니다. 그 책은 바로 틱낫한 스님의 '화'라는 책입니다. 2002년 즈음에 베스트셀러였던 책이고 방한까지 할 만큼 유명한 스님이 쓴 책이니만큼 여러분들 상당수도 읽어보셨거나 제목 정도는 들어보셨을 겁니다. 각설하고 제가 이 책을 보게 된 이유는 간단합니다. 책 제목만 봐도 눈치채셨겠지만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화를 효과적으로 다스릴 필요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모종의 사건이 있었고 그 사건으로 인해 저는 저 자신을 되돌아보고 화를 다스리는 법을 좀 더 배워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이지요.

그 사건은 이렇습니다. 별다른 생각 없이 롤 한게임 하려고 접속한 제게 이상한 화면이 뜨게 됩니다. '게임 10회 채팅이 제한됩니다.' 언어폭력 행위로 저의 채팅이 제한되었다는 글과 함께 제 채팅 기록이 고스란히 로그인 화면에 올라오더군요. 순간 올라프가 빙의되었는지 제가 써놓은 분노와 광란의 흔적을 보고 있노라니 저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지고 말았습니다. 유리방 밖에서 유리방 안의 저를 관찰하는 심정으로 채팅창을 바라보니 부끄러움이 밀려오며 이 정지를 당하게 된 계기가 된 채팅창 내역을 접속할 때마다 보여주는 방식은 정말 생각을 잘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채팅창의 저 사람은 도대체 저 사람은 왜 이렇게 화가 나 있는 것일까? 서로의 행동이 승리에 방해가 되었기 때문에 화가 난 사람들이 왜 승리에 가장 방해가 되는 행동을 하는 걸까? 이거야말로 아이러니다. '이 조치는 생각보다 효과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이후에도 매번 게임을 접속할 때마다 무척 부끄럽고 수치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본의 아닌 묵언 수행을 계속하며 주어진 10게임을 소화하고 있을 때쯤 저는 한 번 더 시험에 들게 됩니다. 그때 저는 정글 그레이브즈를 저와 알력을 일으킨 탑 플레이어는 아트록스를 플레이하고 있었습니다. 캠프를 돌고 있는 사이 상대 정글인 니달리가 보여 두 번 정도 빽핑을 가볍게 찍은 저는 빽핑에 대한 화끈한 화답을 듣게 됩니다.
"빽핑이나 찍지 말고 쳐 오던가. 벌레 백정 새끼들 하나같이 똑같네. 하여간 xxxxxx"
??? 이게 그렇게까지 기분 상할 일일까요? 순간 응전할까 싶었지만 아시다시피 채팅을 쓰고 싶어도 몇 마디 쓸 수 없고 또 화를 삭이는 방법을 배우고 있던 차라 참기로 하고 그래도 캠프를 다 돌고 있었습니다. 정글을 도는 와중에도 아트록스의 분노는 계속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트록스의 가스를 빼줄 겸 예의상 갱킹 정도를 한번 해주기로 했습니다. 내키지 않은 갱킹을 갈 때 늘 그렇듯이 상대 니달리가 대기하고 있었고 앞 점멸로 저의 갱에 화끈한 호응을 한 아트록스는 죽게 됩니다. 예상하셨겠지만 그 이후로 채팅창에는 더욱더 큰불이 났고 저도 점점 화가 나려는 찰나에 저는 제 머릿속의 스님과 대화해보기로 했습니다.

'나이가 많지 않은 친구 같은데 성인인 당신이 화를 참아보는 게 어떨지요?'
'응애 나 아직 애긔'
'이번에도 화를 못 참으면 더 큰 페널티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스님 미안합니다. 저 새끼 죽이고 정지 갈라요. '
'못 참겠으면 손바닥에 참을 인(忍) 자를 새겨보시오'

참을 인(忍)을 두 번 정도 손바닥에 새기고 나서 세 번째 참을 인(忍) 자의 윗변인 칼도(刀) 자를 거의 완성시킬 때쯤 아트록스의 채팅이 이어졌습니다,

"진짜 저 xxxx 백정 새끼 칼로 찔러 죽이고 싶네"

오히려 그 말이 제 분노를 조금은 가라앉게 했습니다. 역갱을 맞았다고 칼로 찔러 죽인다고? 저 정도면 전두엽에 문제가 생긴 것 아닐까? 환자일 수도 있는데 참아야겠다. 그렇게 돌아서려는데 아트록스의 채팅이 제 발걸음을 돌려세우고 말았습니다.

"그브 xx ....."

위의 말은 입에 담기 힘든 패드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저도 참았고 그레이브즈도 참았지만 그레이브즈의 더블 배럴 샷건은 참을 수 없었습니다. 순간 저는 그레이브즈를 고른 저 자신에게 감사하게 됐습니다. 탑 라인으로 바로 올라가서 라인에 미끄러지듯 앞 빨리 뽑기 QW 평으로 미니언을 흡입하고 대포 미니언에 강타를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채팅 기회를 살려 실전 압축 욕설을 시전했습니다. 그러자 질 수 없다는 듯 아트록스는 제 정글을 따라붙으며 정글 몹을 먹기 시작하고 저도 탑 라인을 먹기 시작하고 게임은 개판으로 가는듯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게임은 이겼습니다. 일단 탑과 저는 서로 간에 트롤 짓을 계속할 만큼 끈기가 있는 놈들이 아니었던 주된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아트록스와 저는 마치 민트와 초코처럼 함께 있을 때는 최악이지만 따로 있을 때는 나름 파괴력을 가진 친구들이었고 우리 미드가 잘했던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 가장 큰 이유는 삐짐 대각선의 법칙 때문이었습니다. 상대가 탑을 판 만큼 저도 바텀에 투자를 했고 바텀인 상대 이즈리얼의 삐짐량이 우리 아트록스의 삐짐량을 상회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승기를 잡고 게임이 거의 기울어 갈 때쯤 저는 결과 창의 2차대전을 준비했습니다. 결과 창에서 KDA, 딜랑, 탱킹량 어느 한 부분이라도 내가 우월한 부분을 찾고 그걸로 욕을 한 바가지 하고 가려고 한 것이지요. 그러나 야속하게도 결과창이 나오는 순간 게임이 다운되어버려 저는 게임을 끄고 재접속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재접속을 하게되니 보이는 '게임 10회 채팅이 제한됩니다.' 라는 글과 제 채팅기록이 이번에도 참지못한 저를 힐난하듯이 쳐다보는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그 글귀를 향해 나지막이 외쳤습니다.

"그래 나 개빡쳤다. SO WHAT?"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21/03/18 12:26
수정 아이콘
LOL의 뒤를 잇게되는 게임이 무엇이 될진 모르겠지만 채팅기능은 꼭 없에길 기원합니다...
제 생각에 채금같은 처벌은 50게임씩 때려도 게임 이용률에 큰 지장을 안줄 것 같은데 좀 늘였으면 좋겠네요...
1등급 저지방 우유
21/03/18 12:27
수정 아이콘
틱닛한의 화..
저도 읽어본 기억은 나는데 이제 내용은 가물가물..

롤에서 트롤보다 더 심한게 욕이라고 운영진은 규정해 놓은거죠 뭐..
욕설이 만인에게 정당화 될수는 없겠지만
트롤이나 패작러 만나서 빡치고 한소리 거하게 채팅치는거
요즘은 이해가 되더라구요.

뭐...저는 아재라 이제 그거마저도 넘기거나
징조가 보이면 뮤트올 때리지만요>.<

그래서 롤모임 들어간 곳에서 리그전 비슷하게 하는게
요즘엔 더 낫지 않나 싶습니다
네이버 카페나 카카오 오픈톡 등도 많더라구요
제가 속한 커뮤니티도 올해 기점으로 피쟐 통해서 들어온 분이 몇몇 계시더라구요
(전 그분들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소개글에 피쟐통해서 들어왔다고..)
정복독
21/03/18 13:20
수정 아이콘
(수정됨) 피지알 통해서 들어간 리그전 너무 즐겁게 참여하고 있는 사람여기 있습니다 크크크
뽀로뽀로미
21/03/18 12:45
수정 아이콘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크크
21/03/18 12:47
수정 아이콘
롤이 사람의 바닥을 보여주는 게임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이젠 나이도 있고 어느 정도 성숙했다고 생각할 때도 있지만 롤에서 밑도끝도없는 말을 들으면 화가 나는 걸 참기가 쉽지 않을때도 있더라구요. 게임을 처음 할 때도 그랬는데 아직도 그런 걸 보면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도 있는 건가봐요. 위트 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열혈둥이
21/03/18 12:56
수정 아이콘
욕을 보면 못참기때문에 입을 터는 순간 차단.
그것마저 못견딜것 같으면 시작과 동시에 올차단.
상대방 채팅은 그냥 기능상으로 차단.

멘탈이 약한데 심성이 나쁜 저같은 사람은 그게 답입니다.

가끔 일부러 열어두고 "당신 인성덕분에 내 맨탈이 상할것 같으니 차단할께요" 라고 일부러 말하고 차단합니다.
21/03/18 13:05
수정 아이콘
쎌라비님 글 항상 기다리고 있는데 이번 글은 마냥 유쾌한 글은 아니라 약간 섭섭하네요. 롤이란 게임이 그래서 그런건가 싶기도 하고... 그래도 잘 봤습니다!
21/03/18 13:12
수정 아이콘
지금껏 몰랐는데 아군 채팅 끄기 기능이 있더라고요.
진짜 편함 크크.

단점은 갑자기 아군이 버그걸린 것처럼 던져대는 데 이유를 모른다는 거.
끝나면 서로 싸우고 있음.
그리스인 조르바
21/03/18 13:14
수정 아이콘
그냥 노말 5인팟이 젤 재밋습니다. 솔로는 더이상 naver...
올해는다르다
21/03/18 13:24
수정 아이콘
기본설정에서 올차단 해놓으면 매판 항상 채팅차단한 상태로 겜하실 수 있습니다
채팅이 도움이 되는 경우는 프로들 스크림 정도는 되야 의미가 있지 않나..
21/03/18 13:26
수정 아이콘
채팅 없는 애긔들 AOS인 브롤스타즈를 생각해 보면 인성질과 트롤을 할 놈들은 어떻게든 하더라구요..
황금경 엘드리치
21/03/18 13:31
수정 아이콘
정글러는 게임을 압도적으로 터트리는 거 아니면 어떻게든 십중팔구는 욕먹는 비운의 직종..
다리기
21/03/18 14:06
수정 아이콘
게임을 폭파 시키면, 상대 정글이 욕먹을 확률 백프로..
정글욕 총량의 법칙은 늘 지켜집니다.
나선꽃
21/03/18 13:56
수정 아이콘
1200 sup ad f 1315 top tell 1500 mid f
이정도 빼고 건설적인 대화가 오가는 적이 없죠
패스파인더
21/03/18 16:43
수정 아이콘
요즘 채팅제한을 너무 많이 겪고있습니다... 저는 누가 못해도 상관은 안해요
그런데 아군이 첫데스 하자마자 물음표핑과 함께 조롱을 날리던 유미를 보고는 참을수가 없었습니다
도대체 왜 서로 물고뜯고 못해서 안달일까요
채팅 끄자니 사람들이랑 하는 느낌이 안들고
요즘 그래서 고민입니다
21/03/18 17:00
수정 아이콘
간만에 글 쓰셨네요. 잘 읽었습니다
StayAway
21/03/21 19:06
수정 아이콘
하스스톤의 최대 장점은 채팅이 없다는것..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71103 [LOL] Lpl 플옵권팀 감상평? 우승예측? [17] 역시퓰신13883 21/03/22 13883 2
71102 [LOL] 탑라이너 모5로 알아보는 양대리그 팀 색깔 [11] gardhi15151 21/03/22 15151 10
71100 [LOL] LCK 각 팀의 현재까지 평균 시청자 수 [18] Leeka13345 21/03/22 13345 3
71099 [LOL] 드디어 올챔프가 되었습니다 [35] Dunn15771 21/03/22 15771 15
71098 [LOL] 대기록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아프리카 [105] 비오는풍경21352 21/03/21 21352 0
71097 [LOL] 마지막 한 주가 남은 시점 LCK 플레이오프 레이스 [19] LaaFaan13259 21/03/21 13259 0
71096 [LOL] 2021 Spring T1 선수 기용 현황판 v9 [71] 우스타14215 21/03/21 14215 1
71095 [LOL] E스포츠식 훈련법에 개선점은 없을까요?? [87] 갓럭시19499 21/03/21 19499 1
71092 [LOL] LCS 올 프로팀 발표 & 미드시즌 쇼다운 예고 [43] 비역슨16233 21/03/20 16233 1
71091 [LOL] '쇼메이커 ' 허수 선수의 상태가 좋지 않다고 합니다 [97] Lord Be Goja23207 21/03/20 23207 0
71090 [LOL] ??"페이커 폼 좋다고 느끼지 못했다." [16] roqur21541 21/03/20 21541 6
71088 [LOL] LCK 팀들의 스프링 시즌 15분 골드 지표 [68] Leeka16941 21/03/20 16941 1
71087 [LOL] LPL 미리보는 플레이오프 대진표.JPG (?) [19] Ensis12650 21/03/19 12650 1
71085 [LOL] 음식집&라면(?)으로 비유해보는 이번 LCK [22] TAEYEON15733 21/03/19 15733 7
71084 [LOL] LEC 정규시즌 시청률 [5] Leeka13260 21/03/19 13260 0
71083 [LOL] 젠지에서 어제 푼 피드백 영상 [81] Lord Be Goja21212 21/03/19 21212 13
71082 [LOL] 각 팀당 단 3경기! 만 남은 플옵 막차 레이스 살펴보기 [28] Leeka14722 21/03/18 14722 2
71081 [LOL] 이렇게까지 해도 6위라고? - 각 팀들의 1R/2R 성적 비교해보기 [8] Leeka13927 21/03/18 13927 0
71080 [LOL] 지금 KT의 문제점을 얘기해봅시다. [82] TAEYEON18408 21/03/18 18408 5
71079 [LOL] 상위권 매치의 이변. Gen.G VS DK [68] 원장15516 21/03/18 15516 6
71078 [LOL] FPX 보 승부조작 사건 상황 정리 (스압) [32] 삭제됨18352 21/03/18 18352 10
71077 [LOL] [LPL] 돌고돌아 테징징, 아니 테스징동? [34] 김연아13767 21/03/18 13767 3
71076 [LOL] 화(火) [17] 쎌라비13459 21/03/18 13459 16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