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생각했던건데, 현재의 e스포츠 팀 운영과 훈련 시스템은 뭔가 크게 잘못되었습니다. 비효율, 비인간적이죠. 1년 내내 한 공간에 선수를 전부 쑤셔넣고 합숙시키며 잠자고 밥먹는 시간빼고 계속 하나를 위해서만 행동하고 생각하게 만들면 대다수의 사람에게 정신장애가 오는게 당연한 일입니다. 정신적 문제뿐만 아니라 육체적 부상도 역시 뒤따르구요. 손목때문에 은퇴하는 선수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지같은 리빙 레전드도 팔 부상으로 내년이 선수생활 마지막임이 거의 확실시되구요. 1년에 최소 300일 이상 하루 12~14시간 넘게 연습을 하는데 손목, 팔, 어깨가 멀쩡하면 그건 운이 정말 좋은 겁니다.


무조건 성적을 내기 위해, 하나의 목표를 위해 자신의 건강과 인생을 갈아넣는건 다른 누구도 아닌 프런트와 코칭스태프의 무능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선수 외 다른 관계자들이 먼저 나서서 이런 쓰레기같은 시스템을 막고, 제대로 된 효율적인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다른 정통스포츠에선 e스포츠처럼 훈련하고 싶어도 체력때문에 못하는게 맞지만, 사실 그렇게 못 시킬건 없습니다. 야구의 세이콘 감독처럼 팔은 쓰면 쓸수록 강해진다는 지론을 가진게 몇십년전 스포츠 관계자들의 사고방식이었죠. 하지만 왜 지금은 안 하느냐. 그게 선수에게 도움이 안되고 비효율적이란걸 경험을 통해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몇년 잠깐 미친듯이 굴려서 성적낸 뒤엔 선수는 다 망가져서 실력 떨어지고 아픈 몸으로 은퇴할 수 밖에 없어요. 그게 현재 e스포츠의 모습입니다.


제가 보는 e스포츠 선수의 짧은 수명은 피지컬이 떨어져서 그런게 아니라 팀의 시스템이 그렇게밖에 못하도록 만들어놔서 그렇다고 봅니다. 개인 위주로 돌아가는 격투게임 선수들을 보세요. 굳이 무릎같은 선수를 대지 않더라도 대부분 10년 이상 굴러먹은 고인물 천지입니다. 왜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스타, 롤같이 닭장 시스템이 아닌 각자 연습하고 싶을때 연습하고 쉬고 싶을때 충분히 자기가 알아서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강박증, 공황장애, 우울증 이런게 올 확률이 현저히 낮지요. 손목, 팔, 어깨가 아프다 싶으면 쉴 수도 있구요. 합숙하고 있으면 코치, 감독, 다른 선수들 눈치보여서 일부러 참고 계속 스크림하는 선수들 많을 겁니다. e스포츠 선수들은 대체로 내성적이고 조용한 겜붕이들이라 특히 그렇죠. 선수 문화 또한 그런 연습환경에 대해 일탈하는 것을 선수로써 자세가 안되었다 이런 식으로 취급됩니다.


저는 이 판에서 뛰는 선수들을 오래오래 보고 싶습니다. 그게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고 보구요. 지금처럼 24시간 합숙하면서 굴려야만 롤드컵 우승이 가능하단 주장에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냥 시스템이 후진적이라서, 팀에 필요한 자원이 없어서, 무엇이 중요하고 소중한 가치인지 잘못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실력이 녹슬지 않았음에도 은퇴해야 되는 선수들이 계속 발생하고 있습니다. 아직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선수들은 몸과 정신이 쌩쌩하니 못 느낄 수 있습니다. 이 판의 관계자들이 먼저 바뀌어야 합니다. 성적과 선수생명을 동시에 생각하는 팀 운영철학과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e스포츠 선수는 4~5년하면 땡이다 이런걸 당연하게 여겨선 안됩니다. 그게 비정상적이란걸 지금이라도 깨달아야 합니다. 롤이 당장 1년 뒤에라도 망할 수 있습니다. e스포츠가 언제 끝날지 모를 불안이 항상 잠재되어 있는 것도 맞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한 선수가 오래오래 팬들의 사랑을 받고 활약하는 모습을 꿈꾸며 이 판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게 진정한 스포츠로써 나아가야 할 길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