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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09/23 23:01:34
Name 바보왕
Subject [기타] WOW를 통해 생각해보는 MMORPG의 스토리텔링 방법 이야기
0. 가입인사

먼저 인사드립니다. 피지알의 프레쉬 뉴 클-린한 뉴비 바보왕입니다. 가입 후 처음 쓰는 글로서 이름같은 이야기 하나 풀어놓고자 합니다. 평소부터 생각하던 것 중 하나인데 와우라는 좋은 핑계거리가 생겨서 풀어놓는 이야기이니 가볍게 봐주시고 틀린 건 바로바로 정질을 해주십사 합니다.

그리고 이 글은 적어도 와우를 한 번 이상은 몰입해서 플레이를 해본 분이 읽는다고 전제를 하고 적은 겁니다. 와우 아닌 다른 게임에 대해서도 플레이한 체험담이나 간단한 언급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 미리 양해를 구하고자 합니다.



1. 와우와 캐릭터 문제

하여간에 와우 군단이 나온 지도 보름이 돼갑니다. 저도 짬짬이 하던 스타워즈 온라인을 쉬고 와우로 넘어갈까 생각 중입니다. 차마 게임 두 개 즐길 여유는 없네요. 스타워즈 하듯이 대충 했다간 공격대는커녕 다음 확장팩 나오기 전에 만렙이나 찍을 수 있을지 의심스럽습니다만, 그래도 오크 전사와 노움 분노 전사와 자기 키만한 양손도끼 두 자루를 한 손에 각각 꼬나쥐고 적에게 다짜고짜 들이박는 브렐 여캐 분노 전사에는 말로 못할 피끓는 매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군단 말입니다만, 스토리로 또 시끄럽더군요. 와우 스토리가 시끄러운 거야 하루 이틀 일은 분명 아닙니다. 하지만 와우에서 스토리 문제로 사람들이 논쟁을 할 때면 항상 일관되게 거론되는 문제가 하나 있어요. 바로 캐릭터의 취급 문제입니다. 항상 듣는 말이 그거잖아요. 와우는 캐릭터를 소모시킨다. 무슨 이야기가 나와도, 무슨 확장팩이 나와도 사람들은 비슷한 문제를 놓고 싸웁니다. 아마 와우에서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을 바꾸지 않는다면 다음 확장팩이 나와도, 공허의 군주 때려잡고 세상 모든 와우저가 진정으로 효도하는 그 날이 와도 사람들은 와우 스토리를 놓고 논쟁을 하겠죠.

와우가 그래서 캐릭터를 도대체 어떻게 ‘소모’하길래 문제가 되느냐? 아니, 애초에 등장인물이 소모 안 되는 서사예술이 어디 있느냐? 이게 다음 문제가 되겠네요.

사실 와우 하는 꼴을 보면 문제가 뭔진 누구나 답이 나옵니다. 나왔다 하면 타락이요, 일만 벌이면 파국입니다. 이제는 얼라이언스의 가장 위대한 왕과, 호드의 가장 헌신적인 대족장까지 사이좋게 그 지옥 같은 칼림도어를 떠났잖습니까. 그 때문에 우리는 이제 가로쉬로도 모자라서 실바나스 같은 걸 대족장이라고 떠받치고 이 지옥 같은 시간을 버텨내야 됩니다. 아니, 하.......

아무튼, 아무튼. 와우에선 무슨 캐릭터든 나오고 활약상이 보일 것 같으면 대번에 사고를 당해서 무대 뒤편으로 밀려나거나, 심한 비극을 겪고 성격이 더러워지거나(보편적인 존경을 받기 어려운 인물로 위신이 추락하거나), 심하면 악역으로 돌변합니다. 최악의 경우는 죽거나 던전 끝판왕 즉 서사 속 생명을 완전히 잃고 아이템 자판기로 전락하죠. 와우에서 이런 모든 비극을 피하고 살아남은 등장인물이 있다면, 그 유일한 이유는 사고를 안 치고 플레이어 눈에 안 띄는 곳에 손권처럼 숨어있었기 때문입니다.

활약이 단순히 있느냐 없느냐와는 다릅니다. 그게 플레이어 눈에 띄었느냐가 훨씬 중요합니다. 켈타스 사후에도 블러드 엘프를 위해 일하면서, 실버문의 행정을 복원하고 판다리아 때엔 전향 여부를 놓고 바리안과 물밑협상을 벌이다가 동포의 죽음으로 격분해서 열성 호드로 돌아선 테론 섭정이 그 활약과 인물의 변화와는 상관없이 아직도 닌자범으로만 기억되는 걸 생각해보면 ‘활약을 보인다’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는 쉽게 짐작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당연히 대다수 와우저는 이런 식의 스토리를 썩 반기지 않습니다. 얼라이언스도 바리안 린이 계속해서 씩씩한 무력과, 해닳은 자비로 얼라이언스를 이끌어 주기를 바랐을 테고, 호드 역시 볼진 아저씨가 굴하지 않는 지혜와 명예로 안팎에 상처만을 남겼던 호드를 규합하기를 바랐습니다. 판다리아 때에는 첩보원 인턴 한번 해봤다던 안두인 린도 덜컥 왕에 올라 위기에 임하는 대신 새로운 현장 활동을 벌이면서 플레이어와 많은 접점을 만들어가길 많은 와우저가 역시 바랐을 겁니다. 그런데 개발자들이 그렇겐 안 했죠.

이 문제의 책임은 어디에 있을까요? 대체로 이제 회사 나갈 크리스 멧젠을 꼽습니다. 저도 대체로 동의합니다. 이 아저씨의 창의력 전성기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서사 상상력 전성기는 한참 전에 끝났어요. 판다리아의 전체 플롯은 참 좋아하지만, 드레노어에서 똑같은 주제의식을 똑같이 반복하는 걸 보곤 마지막 쉴드 쳐주기를 포기했습니다. 그러면, 이제 크리스 멧젠도 빠졌으니까 앞으로는 와우 스토리가 더 좋아질까요?

모르겠습니다.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죠.

아니 이 무슨 촌극이냐. 이 따위 쓸데없는 말을 하려고 앞에 저 긴긴 잡소리를 늘어놓았느냐. 그건 아닙니다. 사실 지금부터가 진짜 본론인데요, 저는 와우의 스토리가 자꾸 배배 꼬이고, 캐릭터가 자꾸 이야기에서 부당한 취급을 받는 이유를 크리스 멧젠이나, 혹은 누구든 스토리 작가의 역량 부족에서만 찾는 건 충분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2. MMO냐, RPG냐. 스토리텔링이 갖는 문제

서론이 길었으니 대신 결론을 앞당겨서 말해볼게요. 저는 와우의 캐릭터 취급 문제의 배경에, 와우라는 게임의 스토리 진행 방식도 어느 정도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사견을 더 섞어서 강하게 주장을 하자면, 와우의 스토리텔링 방식이 캐릭터를 거칠게 소모하는 데에 훨씬 큰 영향을 주는 원인입니다.

MMORPG라는 게 얼핏 참 매력적인 장르 같습니다만, 제대로, 부끄러움 없이, 철저하게 만들려고 하면 게임 제작자 입장에서는 이것만큼 힘든 장르도 드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프로그래밍 입장에서도 아마 여러 문제가 잇따를 것 같습니다만, 제가 이번에 주목하는 건 기획입니다. 정확히는 “MMORPG에서 스토리텔링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부분이겠죠.

RPG란 이름이 있는 이상 이 장르의 게임엔 사건(이벤트, 혹은 퀘스트라고 하는 것들)이라는 스토리의 구성요소가 반드시 뒤따릅니다. 스토리가 빈약하느니 어떠니 했던 1세대 게임들, 이를테면 울티마 온라인도, 다옥도, 리니지1도 생각해보면 퀘스트란 말만 없었지 게임이 제공하는 일정한 사건과 그에 따른 플레이의 변화 요소는 반드시 있었죠. 월드 이벤트도 이 때부터 있었고요.

더구나 에버퀘스트를 거쳐 와우로 대표된 2세대 MMORPG는 퀘스트라는 콘텐츠를 게임의 핵심으로 끌어오면서 기(퀘스트의 원인, 이유, 목적) - 승(퀘스트를 따까리, 아니 셔틀, 아니 플레이어에게 제공) - 전(플레이어가 시킨 대로 뭔가를 해옴) - 결(그래서 퀘스트를 완료하고, 이런저런 결말이 따름)이 갖춰진 작은 스토리를 게임 내에서 대거 재생산, 플레이어에게 배포하게 됩니다. 애초에 사전에 만들어둔 콘텐츠를 게임이 먼저 제공하고, 플레이어가 이를 단계적으로 소모하는 이것이 2세대 MMORPG를 정의하는 중요 요소 중 하나가 아니었나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MMO라는 장르, 정확히는 플레이 방식이(따지고 보면 “대규모 다중접속”이 플레이의 장르를 결정하진 않죠) 갖는 한 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물론 다들 알고 계시지만, 보통 이런 표현을 쓰는 게임들은 하나의 플레이 공간에 많은, 진짜 많은 플레이어를 밀어넣습니다. 당연히 플레이 공간만 같다는 것만 가지고 MMO라는 표현을 쓰진 않습니다. 대기실에서 모든 플레이어가 서로 채팅이 가능했다고 해서 디아블로2를 MMORPG라고 불러주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보통 MMO라고 주장할 수 있으려면, 해당 게임은 플레이 공간만 공유하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 벌어지는 플레이 체험도 서로 공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간단히 내가 필드에서 사냥하는 동안 같은 필드에서 같은 몬스터를 다른 플레이어도 사냥하는, 그런 그림이 그려져야 한단 겁니다. 그리고 이런 체험의 공유는 범위가 넓으면 넓을수록 좋습니다! 그래야 더 좋은 MMO 게임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습니다.

이제 읽는 분들도 대부분 감을 잡으셨을 겁니다. 예. MMO 게임은, 될 수 있으면 스토리라는 “플레이 체험” 역시 다른 플레이어와 공유할 수 있는 게 좋습니다. 특히 같은 퀘스트를 공유하는 플레이어라면, 응당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같은 사건을 보며 감상하는 즐거움과 연대하는 즐거움을 동시에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또 당연하고 쓸데없는 질문 하나만 해보죠.
MMORPG의 주인공은 누굽니까? 와우의 주인공이 누구죠?
플레이어입니다. 우리란 말이죠. 물론 정확히는 “우리가 조종하는 캐릭터”지만요.

이어서 다음 질문입니다.
MMORPG의 주인공이 우리라면, 게임의 스토리는 그럼 누구한테 초점을 맞춰줘야 할까요?



3. 이제 누구한테 영광을?

이게 와우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MMORPG라고 게임이 나오면, 적어도 남이 만든 게임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작자가 아닌 한 거의 모두가 바로 이 고민에 맞닥뜨리게 돼요. 게임의 주인공이 지구에 있는 사람 수만큼 있는데, 어떻게 이들을 이야기의 중심으로 이끌어야 할까요. 더구나 사람이 열 명만 있어도 그 개성이 하늘을 찌를 듯한 게 사람의 특징 중 하나인데다가, 또 RPG라고 무슨 직업 무슨 직업 하고 완전히 다른 능력과 다른 플레이 스타일까지 줘버렸잖아요?

비교적 적은 사람이 모여서 즐기는 TRPG나, 심지어 한 사람이 쓰는 소설에서조차 주인공이 많아지면 스토리는 아주 쉽게 산으로 가버릴 수 있습니다. (당장 TRPG를 해보신 분은 D&D에서 6인파티를 짰을 때 생길 수 있는 온갖 문제들을 생각해보세요) 그런데 전통적으로 게임vs인간 일대일의 관계를 지켜온 컴퓨터 게임에서, 주인공이 많아졌을 때 생기는 이야기의 혼란은 쉽게 기획자의 머리를 돌아버리게 만듭니다.

사실 해결책은 다양하고, 각각의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한데요, 그 중 첫 번째는 이겁니다. 여러 명의 주인공을 있는 그대로 감싸안고, 모두의 행적을 게임에 그대로 반영시켜버리는 거죠. 이게 표현은 참 좋은데, 바꿔서 말하면 이겁니다. 게임에서 “사전에 만들어둔 콘텐츠”의 비중을 될 수 있는 대로 없애버리겠단 겁니다. 이는 플레이어의 플레이가 곧 스토리의 대부분이 된단 말이기도 합니다.

이쯤에서 눈치 채고 얼굴색이 꺼매지는 분도 계실 거고, 뭐, 그런 게임이 있다고? 하고 놀라는 분도 계실 겁니다. 예, 그런 게임 참 많아요. 정확히는 많았죠. 리니지가 그겁니다. 울티마 온라인이 그거고요. MMO는 아니지만, 마인크래프트가 바로 그겁니다. 그냥 게임이 일관되게 주는 스토리가 없으면 돼요. 성 몇 개, 혹은 직업별 레벨 몇 개, 심하면 그냥 상호작용이 가능한 세계 하나만 딸랑 주고 그냥 너희가 알아서 놀아라 하면 됩니다. 물론 이런 스토리 구조는 순기능만큼 역기능도 많이 있습니다만, 게임 입장에서는 이게 참 괜찮습니다.

게임이 목적과 제약을 아무 것도 지정하지 않았으니, 플레이어가 스스로 목적을 만들고 제약을 정해야 된다는 건데, 이 때 목적과 제약은 게임에서 플레이어에게 제공하는 능력 범위를 벗어나는 경우가 별로 없거든요. 오버워치에서 심즈처럼 집을 지을 수는 없으니까요. 반대로 말하자면 할 게 많은 게임일수록 오히려 플레이 생태가 균형을 잘 안 벗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차라리 개그를 한다면 모를까. 그런데 전투와 폭력이 주가 되는 게임에서 목적과 제약이 없다? 그 끝이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는 리니지 1, 2를 보면 그냥 답이 나오죠.

솔직히, 울티마 온라인도 해본 경험에 따르면 딱히 깨끗하고 좋다고 하기도 어려웠습니다. 뭐, 낚시터에서 강태공 놀이를 즐기면서 소시민 플레이를 하는 게 가능하다고요? 그 사람은 아마도 그렇게 왔다갔다만 하다가 수십 번을 다른 플레이어한테 맞아죽었단 사실이 머릿속에서 휘발했을 겁니다. 아니면 Superstar라는 x자식을 만나본 적이 없거나.

하지만 무슨 개수작이 나오건, 게임의 생태계가 순전히 플레이어의 손에 떨어졌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건 게임은 알 바 아닙니다. 그 모든 것이 또한 게임의 일부가 될 테고,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그 모든 것을 재미로 미화해서 추억할 테니까요.



4. 두 번째 해결책 : 주인공 배제하기

와우가 선택한 해결책은 두 번째였습니다. 불확실성을 최대한 수용하는 첫 번째 스토리 방식과는 정반대로, ‘두 번째 해결책’은 게임이 갖는 불확실성을 최대한 없애버리겠단 겁니다. 정해진 시작과, 정해진 과정을 만들고, 정해진 엔딩도 만듭니다. 플레이어는 따라만 가면 돼요.

고약하게 말하자면 와우의 스토리는 그 자체가 거대한 골팟과도 같습니다. 수백 명의 개발자들이 선수가 되어서 진행을 해주고, 각각의 플레이어는 손님이 되어 딱 자기 역할, 그것도 다른 게임에 비하면 굉장히 작은 역할 하나만 수행하면 됩니다. 그게 바로 전투입니다. 낚시, 응급처치, 전문기술, 저는 아직 한 해본 그놈의 주둔지..... 이 모든 건 와우에선 결국 전투를 더 잘 하기 위한 보조 콘텐츠일 뿐입니다.

“내가 호드인데 경비병이 더러운 트럴이라서 마음에 안 드니까 오그리마 경비병을 마구 죽여봐야지” 같은 일탈 행동은 거의 하지도 못 합니다. “내가 호드의 대족장이다!” 해봤자 다들 귓등으로도 안 들을 겁니다. “스톰윈드 왕을 암살해야지!”는 해볼 수도 있고, 물론 게임에서야 때때로 권장도 해봅니다만 그뿐입니다. 이건 스토리의 일부가 아니에요. 그래서 이렇게 죽은 캐릭터, 그러니까 이 경우는 안두인이겠죠. 안두인은 시간이 지나면 금방 되살아납니다. 이야기 속에서는 죽었다는 사실조차 없어요. 지침을 벗어난 플레이어의 행동 따위는 게임에 아예 반영조차 되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을 게임에서 실현하려면, 한 가지 중요한 선결조건이 있습니다.
주인공은, 이야기에서 빠져야 됩니다. 주인공이 이야기를 중심에서 이끌면 안 돼요.

주인공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태에서 스토리를 진행하려면 주인공의 플레이, 그리고 플레이의 결과를 스토리에 반영하면 안 되거든요. 그런데 스토리가 아무튼 있어야죠. 우와 하고 플레이어한테, 주인공한테 감동을 줘야죠. 그래서 주인공의 주연 자격을 빼앗는 겁니다. 사실은 NPC가 주연이고 NPC가 악역이며 NPC끼리 치고박고 스토리가 흘러가는 건데 주인공이 요 세상에, 조연으로 참가해서 주연이 될 NPC에게 힘을 더해주는 것뿐인,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이거 어디서 많이 본 그림이죠?
좀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어볼까요?

만화 원피스에서, 흔히 최고의 에피소드 중 하나로 알라바스타 편을 꼽습니다. 재밌으니 아마 사실에도 가깝겠죠. 하지만 동시에, 이 에피소드는 사실 ‘루피’라는 이름이 이야기의 중심에서 철저하게 밀려버린 편이기도 했습니다. 애초부터 이건 절대로 루피의 이야기가 될 수 없거든요. 루피를 화자로 내세우고, 최고 악역을 쓰러뜨린 “처형자”들이 밀짚모자 일당이었을 뿐 이 에피소드의 진짜 주인공은 철저하게 비비 공주였습니다. 그리고 코브라 국왕, 이가람, 챠카, 페루가 진정한 주연이었습니다. 나라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왕당파와 나라를 이용하고 전복하려는 해적파, 그리고 이들 사이에서 방황하는 반란군이 알라바스타 편의 진짜 중심이었죠.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모든 노력도, 가장 치명적인 순간에서의 선택도 실은 비비 공주가 다 했으며 (심지어 나미가 열로 쓰러졌을 때, 항해를 강행하느냐 돌아서 가느냐 하는 순간조차 루피는 비비에게 선택권을 양보했습니다) 밀짚모자 일당은, 적어도 해당 에피소드 내에서는 그냥 왕당파에 우정과 정의의 이름으로 고용된 용병 집단일 뿐이었습니다. 다른 에피소드라고 안 그런 구도가 별로 많지도 않았지만, 알라바스타 편에서 루피 패거리는 다시없을 만큼 철저하게 스토리 비중을 별로 등장도 안 한 ‘진 주인공들’에게 뺏겼습니다.

...그렇게 치열한 싸움을, 그렇게 처절한 노력을, 그렇게 고귀한 희생을 밀짚모자 일당이 알라바스타에 바치고 나서도 말이죠!

여기서 ‘비비 공주,’ ‘코브라 왕’ 같은 이름을 ‘안두인,’ ‘바리안’ 등으로 바꿔봅시다. ‘크로커다일’을 ‘살게라스’라고 바꿔도 되고, ‘바로크 워크스’를 ‘불타는 군단’으로 바꿔도 됩니다.

어떻습니까? 이거 와우와 똑같지 않습니까?

그동안 와우저가 했던 그 모든 모험들은 결국 루피가 알라바스타 구해준 것과 똑같은 수준의, 깃털보다 하찮은 만큼의 비중밖에 없는 겁니다. 물론 알라바스타 국민들이 진실을 알고 루피를 기억하듯, 아제로스의 전사들도 주인공의 존재를 아는 건 분명할 테지만, “그래서 누가 와우의 세계를 구했느냐”고 물으면, 이야기 속에서 그 첫 번째 대답이 주인공의, 그러니까 여러분 캐릭터의 이름일 가능성은 거의 없단 소립니다. 끽해야 뭉뚱그려서 “이름 없는 영웅” 혹은 “위대한 영웅”이 지나가듯이 언급되는 정도일까요. 영화 끝나면 나오는 크레딧 롤의 스페셜 쌩스처럼요. “...And YOU!”

저는 이런 스토리텔링을 파우스트식 스토리라고 말합니다.

왜 파우스트가 읽으면 딱 이렇잖아요? 분명히 파우스트 박사는 지금 기준으로 봐도 치열하고 열정적인 사람입니다. 그런데 글에서 저런 치열한 장면들이 실시간으로 영화같이 흘러가던가요? 아니죠. ‘현재’에서 파우스트 박사는 정력 넘치는 모험가도 아니고 위대한 마법사도 아닙니다. 그냥 육체를 쓰지를 않아요. 퍼지르고 앉아서 그때그때 바뀌는 말상대와 지겹게 말만 늘어놓는 겁니다. 따라서 현재 앉아서 주구장창 말만 싸지르는 파우스트 박사와, 박사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괴물 같은 파우스트’는 논리적으로 같은 인물이되, 서사 속에선 사실상 다른 인물이나 다름없습니다. 한 작품이지만, 실제로는 서로 다른 이야기가 다른 차원에서 이뤄진단 소립니다.



5. 와우의 컷신에는 주인공이 없다

와우의 스토리텔링 방식이 파우스트와, 혹은 원피스의 알라바스타 편과 같다는 증거는 와우 내부에도 있습니다. 바로 시네마틱과 컷신입니다.

기억을 거슬러 불성까지 가봅시다. 오리지널이면 더 좋습니다. 거기 시네마틱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누군지 일일이 알아맞힐 수 있습니까? 아마 그렇진 않을 겁니다. 최소한 저는 거기 나오는 랩터 탄 트롤이나, 지옥불정령을 부르고 멀록 무리를 태워버린 중풍 맞은 언데드 흑마가 누군지 모르겠습니다. 기둥으로 곰탱이를 때려잡던 타우렌 전사도 붉게 물든 전장에서 방맹이질을 하던 오크 전사도 누군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제가 생각하는 게 맞다면, 이들이 바로 여러분입니다. 저들 하나하나가 곧 여러분 하나하나를 대변하는 인물이었고, 바로 여러분이 시네마틱의 가장 비중 있는 등장인물이었습니다. 물론 불성 시네마틱은 마지막에 웬 빛의 용사 하나가 쓸데없이 폼을 잡지만 넘어갑시다.

그런데 그 오리지널에서조차, 그 불성에서조차 컷신이 나오면 플레이어들은 철저하게 병풍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안퀴라즈 사원 열릴 때 그 자리 계신 분 있습니까? 물론 저는 유튜브로만 봤지만요. 혹은 일리단 때려잡고, 마이에브와 일리단이 마지막으로 서로를 저주하던 때나, 태양샘에서 김제덕이 등장하던 순간을 기억하시는 분은 계십니까?

그 자리에서, 여러분의 역할은 무엇이었습니까? 여러분이 주인공으로서 그 순간을 정의하고, 선택이나 어떤 행동을 할 수 있던가요? 아니었겠죠. 안퀴라즈 때 여러분은 아마 바로크 할아버지의 일장연설을 주구장창 들어줘야 되는 많고 많은 그런트 중 하나였을 겁니다. 마이에브와 일리단 때에는 두 사람의 비뚤어진 연애행각을 참고 봐야 되는, 이건 뭐 귓방맹이 날리면서 훈수도 못 두는 불편한 구경꾼이었습니다. 김제덕이 연설요? 그거 다 들어준 사람 계시기는 합니까? 저는 리치왕 때 갔는데도 약빨고 버프 체크하고 공략 듣기 바빴습니다.

이제 시간을 돌려서 리치 왕 때를 봅시다. 죽음의 기사 초반 퀘스트는 어땠습니까? 여러분이 리치왕에게 배신당할 때, 리치 왕이 정말로 배신한 건 누구였죠? 다리온 모그레인, 그리고 그가 아끼던 수하들. 하여간에 여러분 개인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 장면에서 인물 사이 관계는 철저히 다리온 vs 리치 왕, 폴드링 vs 리치 왕이었지, 여러분과 관련 있는 대목은 없었습니다. 또한 그 리치 왕이 쓰러졌을 때, 막타 날린 사람이 누굽니까? 여러분입니까? 엔딩에서 테레나스 왕의 유령이 ‘리치 왕은 있어야 한다네’ 하는 말을 했을 때, 유령은 누구한테 그 말을 하고 있었죠? 여러분입니까?

저번 확장팩인 드레노어의 전쟁군주까지 오면 이 사실은 더욱 명확해집니다. 붉은 차원문을 처음으로 넘어간 건? 그린 지저스와 카드가입니다. 가로쉬를 죽인 건? 멍청하게 쓰랄한테 결투를 걸어버린 자기 자신입니다. 초갈? 이야기에 나오긴 했습니까? 하드모드 인던에 나와서 그대로 초살당했다고 들었는데요. 마라아드는 죽으면서 누구를 지켰습니까? 듀로탄이 일족의 미래와 명예를 부탁할 때 그의 앞엔 누가 있었습니까? 기억을 떠올려봅시다.

하나는 분명하죠. 그 자리엔 여러분이 없었습니다.



6. 날개 없는 이가 하늘로 솟아오른 대가는

생각해보면 좀 이상한 일이죠.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입니다. 위에 제가 말한 그 모든 일들을, 사실은 여러분이 전부 해낸 겁니다!

차원문을 넘어가서 강철 호드를 뚜드려팬 것도 여러분이고, 미친 대족장의 광기로부터 세계를 구한 것도 여러분이고, 머리에 장애가 좀 있는 전 대지의 위상의 등짝을 본 것도, 패륜왕에게 참교육을 시켜준 것도, 번지수를 잘못 찾은 망가덕후에게 칼림도어가 어떤 곳인지를 가르쳐준 것도, 고대신을 계속 바다에 영원히 재워버린 것도, 그게 다 누가 한 겁니까?

이건 단순히 싸움이 있었고 싸움에서 한쪽이 이겼다는 뜻이 아닙니다. 세계의 존속 그 자체를 위협할 만큼의 위기가 있었고 (강철 호드의 경우에는 아제로스에 그만큼의 위협이 실제로 됐는지가 좀 의문이긴 하지만...... 1차 대전쟁의 기억을 나눠 가진 얼라이언스와 일부 호드 입장에선 분명 실제보다 강철 호드가 훨씬 위협적으로 느껴졌을 겁니다) 여러분은 직접 그 위기를 막아낸 최대, 최고, 최후의 공로자라는 뜻이죠.

그런데 바로 그런 최대 최고 최후의 공로자를 냅두고 다른 놈들을 모아서 컷신을 만든다?

뭐 사실, 이런 식의 이야기 방법이 나쁘다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주인공이 해당 이야기의 중심 역할을 하지 않아도, 이야기는 얼마든지 재미있고 훌륭해질 수 있습니다. 당장 원피스는 재미있고 파우스트도 재미있잖아요? 페루가 폭탄 들고 배트맨의 뒤를 따를 때(작품 발표 순서가 어째 거꾸로인 것 같지만 양해해주세요), 얼마나 많은 독자들이 눈물을 흘렸습니까? 그 외에도 많죠. 히어로메이커 2부도 그렇고, 토지 2부도 그렇고, 제가 본 적은 없는데 오만 팬들이 달라붙어 떠받든다는 덴마도, 듣기로는 주인공이 주인공 구실을 안 한다면서요?

하지만 수용자의 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한 게임이란 매체에서 이런 식으로 주인공과 이야기 속 주연을 떨어뜨려 놓으면, 스토리텔링에는 분명 나쁜 영향이 갑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희곡이나 만화야 읽고 감상하는 것 자체가 감상의 중심축이 되지만, 게임은 내가 들어가서 깽판치는 바로 그게 감상의 중심축이고, 기억의 대부분이거든요. 그런데 그 감상, 그 기억이 배제된 채 NPC만 무진장 나오는 컷신이, 그런 스토리가 떡하니 나와봤자 플레이어한테 무슨 의미가 있고 무슨 감동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이쯤에서 해묵은 질문이 되돌아옵니다. “아니, 나는 그렇게 인던에서 뺑뺑이 치고, 레이드를 그렇게 돌았는데, 그 동안에 쟤들은 한 게 뭔데?”

글쎄요, 굳이 말하면 ‘쟤들’도 한 건 많습니다. 다들 머리론 알고 계실 겁니다. 각 종족의 족장들은 확장팩이 나올 때마다 종족의 내실을 키우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고, 중립이거나 양쪽 진영의 평화를 원하는 인물들은 서로 소통하면서 플레이어들을 지원하고자 했습니다. 애초에 대족장씩이나 되는 인물들이 게임에서 몇 번이고 플레이어, 즉 공식적인 직책이 없거나 취약한 주인공과도 개인적으로 면담을 했다는 것 자체가 이 사람들이 평소 업무량이 얼마나 폭넓고 방대한지를 간접적으로 증명하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걸 플레이어가 알 게 뭐겠습니까. 당장 우리는 인던 돌고 레이드 돌고 파밍하기 바쁜데. 요즘은 뭐 파밍 끝나면 주둔지 하느라 바쁘다면서요? 우리가 한 활약이 스토리에서 빠지는 것과 똑같이, 쟤들이 한 활약도 플레이어 눈에는 안 보이는 겁니다.

체험에 기반한 게임이라는 매체에서, 주인공과 스토리를 떨어뜨리면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NPC들이 와우 스토리에서 주연으로서 존재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이들이 플레이어와 최소한 동등한, 혹은 훨씬 위대한 이로서 존재하려면 그 때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뭐 사실 별 거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활약을 보여주면 됩니다. 그럼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그게 정말 최고의 해결책일까요?

당장 리치 왕 레이드를 떠올려봅시다. 분명히 그 때 리치 왕이 죽으면 와우는 엔딩을 보여줘야 했고, 앞서 말했듯이 블리자드는 해당 엔딩에서 주역이 누가 되어야 하는지를 명확히 정했죠. 바로 티리온 폴드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레이드의 마지막에, 주인공인 플레이어들은 언제나 리치 왕의 압도적인 힘 앞에 잠깐 무릎을 꿇어야 했고, 그럴 때마다 ‘영웅’ 티리온 폴드링은 ‘영웅스럽게’ 속박을 깨뜨리고 패륜왕에게 최후의 참교육을 날려주셨습니다.

그 때 여러분 기분이 어땠습니까? 오오, 영웅이시여 하고 감동받으셨습니까?

전 그 때 기분 굉장히 더러웠는데요.
기껏 미친 듯이 잡아놨더니 저 xx 막타 뺏어가네...... 아오 저 새우 같은......

결국 NPC가 활약을 두드러지게 해주면 플레이어는 비로소 영웅을 우러러보게 되지만, 그 활약도 활약 나름이란 겁니다. 플레이어의 것이 되어야 할 승리를 얘들이 가져가면 안 돼요. 닌자 됩니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아, 플레이어의 승리를 NPC가 축하해주면 되겠네요. 총사령관이 야전 사령관을 치하하는 그림을 그려주는 겁니다. 그래서 와우가 그렇게 했습니다. 데스윙이 죽고, 다음 확장팩이 시작되기 전에 온 위상이 모여서 공로자를 불러 치하했죠. 그거면 괜찮을까요?

아니죠. 그 때 여러분은 그 날 주인공 자리를 다 뺏어먹은 명점돼지 그린 지저스가 새로운 위상이 되는 걸 보셨죠.

혹은 이렇게 했습니다. 리치 왕 시절에 여러분이 알갈론을 잡아가면 달라란의 최고 마법사 로닌 경은 여러분을 콕 집어 영웅이라 불러줬고, 온 달라란에 이 명예로운 승리를 소리쳐 알렸습니다. 그거면 괜찮을까요?

아니죠. 그 때마다 채팅창에 /차단 로닌이 얼마나 폭주했는데요.

이게 바로 와우 스토리의 중요한 고민거리입니다. 컷신에서 주역을 맡아줘야 할, 그래서 스토리의 ‘질서를 잡아줘야’ 할 이 NPC들한테 한 장면을 이끄는 인물로서 떳떳할 만큼의 자격을 주기가 너무 힘든 겁니다.

와우에 새로운 인물이 없다고 하는데, 사실 이것도 와우의 속사정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소립니다. 그나마 이전 워크래프트 시리즈나, 외전 등으로 나름의 인지도를 쌓은 NPC조차도 주역으로서 기용하는 게 힘이 부치는데, 하물며 새로운 인물에게는 어떻게 쉽게 주역으로서의 역할을 줄 수 있겠습니까?

주역으로서의 자격이 충분하다고 해도, 리몰 때 티리온이 그랬듯이 그 뛰어난 자격이 오히려 서사의 발목을 잡아버리는 경우가 생기기 쉽습니다. 잘못하면 플레이어가 응당 가져야 할 승리의 순간까지 이들의 몫으로 돌아가기 쉬우니까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닐 거면, 결국 병풍으로 남는 수밖에 없습니다. 평생 아무 것도 안 하다가 꼭 인던 다 돌아야 뒤늦게 나타나서 ‘어이쿠 내가 지각을 했구만’을 반복하는 모 영웅 NPC처럼요. 아니면 저기 실버문 엑소다르 한구석에 손권처럼 숨어있는 모모 족장처럼요.

NPC가 나와야 되는데 병풍은 싫다, 주역도 맡아야겠다, 그러나 승리와 영웅담은 플레이어의 몫으로. 현재 와우에서 진행되는 대부분의 스토리는 바로 이 딜레마를 충족시켜야 할 무거운 짐을 패시브로 떠안고 있습니다.

이걸 잘 풀어낼 수 있었을 때도 있기는 분명히 있었죠. 그 때는 와우 스토리가 유저들의 찬양을 받으면서 반짝 떠오르곤 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세상 일이 매번 잘만 풀립니까. 잘 되는 만큼 안 풀리는 날도 있게 마련이죠. 그리고 와우 스토리의 경우에는 잘 안 풀리면........ 그 땐 작가들도 더 억지스러운 방법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NPC가 주역으로 나오는데, 보는 사람에겐 충격과 존재감을 심어줘야 되고, 좋은 역할은 플레이어에게 몰아주는, 그게 가능해지는 더 쉽고, 더 억지스러운 방법 말입니다.

그게 뭐겠습니까?

와우를 깊이 즐겨본 게이머들은 와우를 비판할 때 반드시 한 가지를 지적하고 넘어갑니다.
캐릭터를 너무 소모한다고요.

나왔다 하면 타락이요 일만 벌이면 파국이라고요.
제대로 살아있는, 존경할 만한 영웅이 없다고요.

하지만 그게 정말 스토리 작가만의 문제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그런 영웅이 존재했을 때, 그래서 그들이 ‘깽판을 치고’ 다닐 때, 그 때도 와우의 스토리에 우리들의 자리가 허락될지 모르겠으니까요. ‘주역이 될 수 없고, 역사에 이름이 남지 못하며, 컷신에조차 낄 수 없는 그런 주인공들’에게 무슨 역할이 허락될지를 모르겠으니까요,



7. 같은 시간, 같은 공간, 같은 현실

저는 와우 자체를 비판이나 비난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반대로 와우의 스토리가 이 정도면 선방했다고 실드를 쳐줄 생각도 없습니다. 단지 와우는 MMO와 RPG를 동시에 충족하기 위해 한 가지 해결책을 선택했고, 그 해결책에는 지금까지 말한 바와 같은 단점이 뒤따른다는 이야기를 해온 겁니다.

그러면 왜 이런 번거롭고, 때때로 위험한 방법을 와우는 골랐던 걸까요? 스토리의 괴리, 캐릭터 소모라는 단점을 안고라도 반드시 성취하고 싶은 뭔가가 와우에 있었던 걸까요?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감수해서라도 얻을 가치가 있는 중요한 장점이 있어요.

앞서 제가 구구절절이 적어놓은 MMORPG의 두 스토리텔링 방식은, 사실 한 가지 중요한 요소를 어기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하고 나서 고르는 방식입니다. 그게 바로 시공간의 동일성입니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같은 플레이를 했던 모든 플레이어들은, 스토리 역시 똑같이 공유하게 됩니다.

그나마 현실적인 구조상의 문제 때문에 던전은 인스턴스로 운영하고, 필드도 요즘은 위상 변화를 통해 스토리의 변화를 반영시켰습니다만, 근본은 다들 같습니다. 와우 인스턴스에는 1인용 공간이 별로 없고, 와우의 던전 역시 참가한 모든 구성원이 같은 사건을 같은 시간에 겪게 됩니다. 위상 변화는 “같은 시공간=같은 플레이”의 다른 반영일 뿐이죠. “다른 플레이=다른 시공간”이니까요.

이이게 무슨 소리야, 고자라니 당연한 소리 아니냐 싶은 분들은 조금만 참아주세요. 안 그런 게임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게 또 무슨 대단한 거냐 싶은 분들은....... 기억을 잠깐 살려보세요.

인던이나 레이드야 두말할 것도 없고, 필드에서 파티 퀘스트를 할 때도 있지 않습니까? 혹은 이야기가 있는 연속 퀘스트를 필드에서 만난 사람과 임시로 같이 할 때도 있었죠. 그럴 때, 어땠습니까? 무작던전 무작공대를 말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직접 초대하고 수락한 ‘파티’ 플레이를 말하는 겁니다.

같은 퀘스트를 같이 깨면서, 조금 진행 늦는 사람은 기다려 주기도 하면서, 그렇게 플레이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혼자 못 깰 정예몹이 나오면 엉성하게나마 공략을 주고받기도 했죠. 그렇게 같이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나면, 그 감동은 여러분 혼자만 느끼던 것이었습니까? 그리고 그 감동의 크기가, 혼자서 플레이할 때와 같던가요?

감동의 공유란 건 생각보다 즐겁고 피드백이 큽니다. 나하고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게임이 재미있고, 집중도 되죠. 그리고 혼자라면 잘 안 볼 컷신을 집중해서 보는 경우도 흔히 있습니다. 뭐 물론 대화창은 반대로 보자마자 닫을 궁리부터 다들 하시겠지만요. 그래도 열에 아홉은 뻔한 이야기라 대충 돌아가는 건 짐작이 가잖아요.

대신 그렇게 남겨둔 시간은 파티원하고 잡담하는 데 쓰게 됩니다. 그 때 화제가 신변잡기가 되면 친구 리스트에 한 줄이 늘어날 거고, 지금 하고 있는 플레이에 대한 거라면...... 그런 대화를 통해서도 여러분은 와우의 스토리, 세계관을 어느 정도 체험할 겁니다. 그랬잖아요?

바로 이 감동의 공유를 위해서 와우는 현실과 같은 시공간의 동일성을 게임에서도 구현을 하고자 했고, 그 때문에 와우의 스토리는 같은 시공간에 있으면서, 같은 플레이 수준에 맞는 모든 플레이어에게 같은 형태로 제공해야 했던 겁니다. 매번 우리가 그렇게 못 참아서 안달하는 캐릭터 소모의 문제도, 사실은 바로 이 위대한(농담 아닙니다. 진짭니다) 가치를 위해서 감수해온 단점의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저는 와우를 실드치고 있는 건 아닙니다. 그냥 그렇다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했던 말을 살짝 비틀겠습니다. 같은 감동을 공유하는 즐거움을 위해, 스토리에 괴리를 일으켜야만 했고, 영웅 캐릭터의 활약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때로는 캐릭터가 무참히 갈려나가는 것도 감수를 해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스토리를 중시하는 게임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스토리에 내적으로 괴리가 일어나면 안 되고, 영웅 캐릭터가 그에 맞는 활약을 해야 하며, 캐릭터가 서사에서 생명을 유지해야 한다면? 그리고 이 모든 것과 함께, 주인공이 주인공다워야 한다면?

그런 게임이 있다면, 그 작품도 최대한 많은 플레이어가 공유하는 하나의 똑같은 시공간을 구현하고 싶을까요?



8. 블레이드 앤 소울 : 겜상겜하 유아독존

블레이드 앤 소울은 무협이라는 이야기 소재의 신선함으로도 주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게임에서 스토리텔링 방식의 신선함(?)에도 주목하곤 합니다.

별로 애착 있는 게임도 아니니 간단히만 말할게요. 이 게임의 주인공은 역시 여러분입니다. 그리고 게임의 이야기 속에서 존재하고 있는 영웅 또한...... 여러분입니다. 정확히는 각자의 여러분 ‘한 명뿐’입니다.

블소의 모든 주인공은 ‘홍문파 2대 사범’이거든요. 직업이고 뭣이고 아무 상관없고, 여러분이 배운 유일한 무공은 검술도 아니고 기공도 아닌 ‘홍문신공’입니다. 오직 여러분 한 명만이 ‘홍문의 막내’였고, 오직 여러분 한 명만이 ‘혼자서 천명제를 막아냈으며,’ ‘혼자서 무림의 누명을 견디고 혼자서 불쌍한 서연이를 강경한 무림의 고수들로부터 지키고 있습니다.’ 뭐 스토리가 더 진행됐을 수도 있는데 제가 아는 건 여기까집니다.

덕분에, 블소는 와우와 같은 부류의 이야기 파괴는 거의 피해갈 수 있었어요. 주인공도 게임에서 단 하나! 밖에 없는데다, 어떤 인물이고 어떤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하는지도 모든 설정이 다 끝나 있기 때문이지요.

더구나 블소의 그 주인공은 바로 다름아닌 여러분입니다. 그리고 막내가, 홍문파 사범이 이야기에서 맞닥뜨리는 모든 장면이, 혹은 전해 듣는 모든 외전이 곧 컷신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그 장면을 만들어낸 것 또한 여러분입니다.

이야기가 플레이와 동떨어지지 않았고, 주인공도 주인공다우니, 다른 조연 캐릭터도 굳이 충격이나 영웅담에 목매달 필요가 없습니다.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만 활약해도 충분하거든요. 그러니 인물이 자연스러워지는 거고, 작위적인 타락이나 죽음이 없으니까 생명줄도 길어지는 겁니다. 블소에선 플레이가 곧 스토리의 과정이요, 스토리가 곧 플레이의 원천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즐긴 감동을, 플레이어는 이번엔 남과 공유하긴 힘들죠. 물론 같은 장면을 보고 감동을 받은 사람이야 한두 명이겠습니까만, 왜 그런 말 있잖아요? 영화를 볼 때, 영화의 내용보다는 옆에 있던 사람이나 그 사람과 나눈 대화가 더 기억에 남는 법이라던가. (여기서 이 덕후 놈이! 하는 생각 드신 분 계시면 훌륭하신 분으로 인정합니다)

화중 사형이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를 보고 아무리 울어도, 천명제 버전 진서연이 아무리 예뻐서 쩐다, 하는 감탄사가 입에서 흘러도 소용없습니다. 제가 그걸 입에 올리면, 옆 파티원은 십중팔구 이렇게 말하죠. ‘아 그래? 좀 있다 나도 볼게.’ 혹은 ‘아 그거? 나도 봤음.’ 파티원인데도 불구하고 실제론 동시에 겪은 게 아니니까 당연하죠!

필드에 몇 명이 있든지 상관없습니다. 이야기가 시작되면, 여러분 각자 외에 다른 모든 사람들은 시공에서 사라집니다. 애초에 들어가는 곳부터가 1인 구역입니다. 게임 내 시간은 물론 인스턴스 공간조차 다른 곳입니다. 여긴 파티원도 못 들어와요. 절대로.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이야기에서 다른 플레이어를 퇴장시킨 온라인 게임은 아마 달리 찾아도 흔친 않을 겁니다.

그래도 MMO라고 다른 플레이어와 같은 주요 필드를 공유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공유되는 건 몬스터, 혹은 중심 이야기와 상관없는 사소한 이벤트 몇 개뿐입니다. 던전도 마찬가집니다. 던전 안에서 이야기가 직접 진행되는 경우는 블소에서 흔친 않습니다. 흔치 않다는 건 비교적 순하게 표현한 말이고, 그냥 제가 겪은 범위에서만 말하면 그냥 없었습니다. 그놈의 천명제 던전도 깨고 나면 퀘스트 완료는 다른 구역에서 하더만요.

앞서는 블소의 플레이가 스토리와 연계를 잘 했다고 했지만, 결국 다른 관점으로 보면 블소 또한 싱글 플레이와 파티 플레이가 서로 개연성을 못 만들어줍니다. 물론 파티 플레이가 스토리 체험이 아니라 아이템 파밍의 수단일 뿐인 파워 지향 게이머라면 이 따위 괴리쯤이야 별로 체감도 안 되겠지만, 그런 사람은 아마 와우를 해도 스토리엔 별로 불만이 없을 겁니다. (좀 더 생각해보면, 애초에 그런 파워 지향 인던 플레이를 생각하고 블소의 플레이 구조를 기획한 것 같기도 하네요)

아무튼 블레이드 앤 소울의 스토리는 내적인 완성도는 충실하지만, 와우 같은 감동의 공유는 불가능합니다. 블소의 스토리텔링 방식은 MMO라는 관점에서 보면 현존 게임 중에서도 명백히 최악입니다. 따져보면 이야기 파괴가 없단 거지, 블소의 이야기도 그렇게 재미있고 좋은 편은 아니거든요? 사견을 보태면, 이 스토리 요소 하나 때문에라도 블소의 기획력에는 상당히 점수를 엄하게 줄 필요가 있습니다.



9. 잡종이 가졌던 매력 : 스타워즈 구 공화국

블레이드 앤 소울은 게임이 스토리를 중시할 때 보일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해결책을 보여줍니다. MMO이 가진 특징이나 인터페이스를 철저하게 포기하고, 정해진 스토리텔링에만 집중한 겁니다. 하지만 이 경우, 두 가지 불만 사항이 따라 나오게 됩니다.

하나는 다 같이 하는 게임이라면서 왜 다른 플레이어를 이야기에서 뺐느냐는 겁니다. 다 같이 하는 게임이니 다 같이 봐야 되는 거 아니냐 하는 거죠. 참 단순한 불만이니 저도 그냥 단순히 끝내겠습니다. 물론 단순하단 게 중요하지 않단 뜻은 아닙니다.

두 번째 불만은 좀 더 방향이 극단적입니다. 어차피 혼자서 플레이할 수밖에 없다면, 왜 혼자만의 체험을 더 살려주지 않느냐는 겁니다. 주인공을 더 주인공스럽게, 경우에 따라서는 이야기에 분기점도 생기게. 간단히 말해서 아주 그냥 드래곤 에이지나 엘더스크롤 하고 싶다는 겁니다. MMO로요.

그게 말이 되냐? ......적어도 시도는 해본 게임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스타워즈 구 공화국 온라인입니다. 이 게임도 근본은 블레이드 앤 소울 못지않게 스토리에 집착하는 게임입니다. 그런데 그것만이 아니라, 스타워즈 온라인은 “각자 다른 스토리를 다시 다른 플레이어와 공유하는” 것까지 구현을 하려고 했어요. 두 마리 토끼를 전부 잡으려고 한 거니까 꽤 신박하죠. 최선의 결과가 나오진 못했지만, 한때는 괜찮은 결실도 맺었습니다. 잡종이 강한 법입니다.

일단 스타워즈 온라인도 플레이어를 주인공으로 두고 정해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스토리에 대한 집중이 블소 이상이에요. 오리지널 기준으로, 이야기의 가짓수부터가 일단 8편입니다. 하나가 아니에요. 공화국, 시스 제국을 합쳐서 기본 직업이 총 8개가 있는데, 각 기본 직업마다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는 겁니다. 당연히 주인공도 8가지입니다. 이들은 실제로 게임에서 불리는 호칭도 전부 다릅니다. 무엇보다 이 게임은 주인공이 이야기 속 대사가 있습니다. 직접 말을 한다, 이겁니다. 물론 태반이 간단한 대답이나 질문 우려먹기입니다만, 중요한 순간에는 확실하게 길고 자세한 전용 대사를 말해요.

그리고 스타워즈 온라인에서 눈에 띄는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은, 싱글플레이 RPG에서 자주 나올 법한 ‘선택지’가 있다는 겁니다. 깊이 있고 다양한 정도는 아니고, 똑같은 상황에서 다른 대사를 말하거나, 중요한 상황에서 두세 가지 다른 행동을 할 수 있는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 정도의 자유도도 MMORPG 중에서는 꽤 희귀한 사례가 아닐까 싶네요.

더구나 퀘스트 중에 다른 행동을 하면, 당연히 다른 엔딩이 나옵니다. 자유도를 들먹이는 여느 싱글플레이 게임처럼요. 시킨 일을 제대로 하느냐 마느냐부터, 심하게는 NPC가 죽느냐 사느냐까지 영향을 줍니다. 그리고 해당 퀘스트의 결말은 경우에 따라서 (생각보다 자주) 다음 퀘스트에까지 영향을 끼칩니다. NPC를 함부로 죽인 것 때문에 다음 퀘스트에서 도움을 받지 못한다든가, 적에게 어설픈 자비를 베푼 것 때문에 다음 퀘스트가 꼬인다든가.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살려주면 동료가 돼줄 NPC를 실수나 선택 때문에 죽여버릴 수도 있어요. 심지어 프롤로그에서 별 생각없이 살려준 NPC가 엔딩 직전에 나타나선 중요한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매스 이펙트 해본 분 계십니까? 그겁니다. 스타워즈 온라인이 딱 그겁니다. 뭐 실은 제작사가 똑같으니 당연한 거기도 하지만요. 대화 중의 UI도 마침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헤헷. 아니, 고의로 숨긴 건 아니고요, 그냥 말하다 보니 타이밍을 놓쳤네요.

아무튼 이렇게까지 말하면 아직 안 해보신 분들은 당연히 의문이 들겠죠. 이거 들어보니 블소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로 덜한 물건이 아닌데, 이 바보 놈은 뭘 믿고 아까 블소를 MMORPG가 스토리텔링에 집중한 가장 극단적인 사례로 꼽았을까?

해답은 바로 ‘끼어들기’ 시스템입니다. 말 그대로입니다. 플레이어는 다른 파티원의 스토리 컷신에 끼어들 수가 있어요. 직접 등장한다고요. 말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선택지도 고를 수 있습니다. 같은 대목에서 선택지가 겹칠 때에는 아이템 주사위 굴리듯이 주사위를 굴려서, 이긴 사람이 발언권을 얻습니다. 물론 몇 가지 예외가 있어서 일부 직업 전용 스토리에는 끼어들기를 못 하는 경우도 있지만, 생각보다 그런 경우는 드물더군요.

따라서 완전한 동일성을 가진 시공간은 아니지만, 적어도 파티원끼리는 대체로 같은 스토리를 공유하면서 플레이를 하는 게 가능합니다. 더구나 한쪽이 병풍이 되기보다, 모두가 자기 목소리를 내고, 그때그때 발언권을 가진 사람이 자기 할 말을 하면서 이야기를 이리저리(!) 멋대로 끌고 다니는 플레이는 와우의 스토리 감상과는 또 다른 즐거움을 주더군요. 특히 레이드 퀘스트를 하는데(레이드 퀘스트에도 컷신과 선택지가 있습니다. 당연히 여기서도 등장인물은 여러분입니다), 8명이 전부 자기 할 말을 하겠다고 왁왁거리고 나섰는데, 하필 주사위에서 이긴 사람이 개그 대사와 트롤링으로 악명 높은 밀수업자 클래스다...... 정말 이 순간은 MMORPG를 즐기는 게이머라면 한 번씩은 다들 겪어봤으면 싶기도 하네요.

전투가 아니라, 채팅도 아니라, 스토리 그 자체가 MMORPG의 파티 콘텐츠가 되는 순간을 구현했다는 점에서는 스타워즈 온라인에 좋은 점수를 줘도 될 것 같았습니다.

대신 하나의 플레이를 공유하는 범위가 좁은데다,(끽해야 파티 하나, 혹은 서너 개 정도가 끝이니 당연하죠) 한 공간에 많은 플레이어가 오래 모이는 경우도 별로 없어서 와우 같은 불특정 유저간의 결속은 그다지 기대를 안 하는 게 좋습니다. 아, 월드 이벤트도 별로예요.

블소가 MMO라고 우기는 싱글 게임의 냄새가 난다면, 와우는 MMO를 정말로 추구하는 느낌입니다. 스타워즈 온라인은 말은 MMO라고 하는데, 실제 느낌은 싱글은 아니고, 다크소울이나 그 비슷한 멀티플레이를 하는 느낌입니다. 나하고 파티원이 같이 게임을 하는데 인간 NPC들이 필드에 널려있는 모양새죠.

그리고 요즘은 이런 스타워즈 온라인의 고유한 특징도 많이 죽었네요. 현재 스타워즈 온라인은 현재 진행하는 확장팩 스토리를 끝내고 다음 확장팩을 준비하는 중인데, 둘 다 파티원이 공유할 수 있는 퀘스트의 비중은 눈에 띄게 줄고, 블소처럼 1인 전용 퀘스트가 늘어났거나 늘어날 예정입니다.

아무래도 확장팩이 진행되면서 주인공의 서사 속 개성이 사라진 것과 (확장팩이 스토리가 하나뿐이다 보니, 거기에 맞춰서 주인공의 정체성도 8가지 직업보다는 “반란 동맹군 사령관”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트루퍼가 포스를 날리고 제다이가 다크사이드를 지배하며 공화국과 제국이 제3세력과 싸우려고 동맹을 맺었습니다. 이렇게 요약하면 지금 게임 분위기가 설명이 될까요?)

스토리 요소가 더욱 심화되면서 퀘스트 내의 각 선택이 더욱 치명적인 결과들로 이어지게 되었다는 점(다음 퀘스트의 성공 여부가 이전 퀘스트에서 미리 정해지는 경우도 있고, 주인공의 선택에 따라 동료가 파티에서 영구 이탈하는 경우도 있으며, 이미 들어온 동료조차 주인공이 죽게 만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공략 안 보고 진행했더니 매 선택이 살벌해요;;)들 때문에

이전처럼 가볍게 남과 스토리를 공유하기는 힘들어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남의 선택 때문에 내 동료가 배신하고 이탈했다고 생각해봅시다. 그것도 선택이 이뤄지고 난 다다음 퀘스트에서요.)

또 스타워즈 온라인도 게임이 오래 묵으면서 빠질 사람은 다 빠지고, 볼장 다 보고 혼자 노는 플레이어들만 많다 보니, 1인 전용 스토리의 비중을 높여도 딱히 티가 안 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아무튼 오리지널 때의 다양하고 잡스러운 스토리 요소를 좋아했던 사람으로서는 아쉬운 일입니다.



10. 다시 와우 이야기, 그리고 결론

앞서 두 게임을 제가 간략하게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결국 이게 다 뭐냐 하면 와우의 스토리텔링 방식에는 그 나름의 장점과 한계가 있다는 소립니다. 와우 스토리가 너무너무 좋아서 다른 스토리텔링을 선택한 MMORPG 따위는 생각도 할 수 없다든가, 반대로 와우의 스토리텔링이 하도 엉망이라 다른 걸로 갈아치우면 지금보다 훨씬 플레이가 재미있어질 거라든가 하는, 그런 쉬운 문제는 아니라는 이야깁니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 하던 대로가 또 최선이란 말도 아닙니다. 와우에서 지금도 우리가 제일 걱정하는 것 중 하나는, 다음에는 누가 죽고 누가 거꾸러질 거냐는 거니까요. 이건 뭐 이래도 x신이고 저래도 x신 되는 그런 처지입니다.

사실 와우로 대표된 지금까지의 모든 동세대 MMORPG는 이제 근본적인 수준에서 어떤 한계에 부딪힌 것 같습니다. 그래도 10년 전에는 통했던 ‘게임이니까 허용할 수 있던 무언가’가 이제는 더 이상 안 통하게 된 겁니다.

당장 시대의 대표작인 와우부터가 오리지널 때는 상상도 못할 수준까지 게임 디자인을 여러 모로 갈아엎었죠. 그렇게 시스템도 바꾸고, 그래픽도 바꾸고, 이제는 그 불만의 끝이 ‘아직 바뀐 게 없는’ 스토리에 집중되고 있는 것뿐입니다. 물론 와우에서 타락 때문에 유저들이 빡친 게 하루이틀만의 일은 아니지만요.

아무튼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정말로 바뀌어야 하는 건, 그동안 수많은 아제로스의 영웅들을 타락에 갈아마신 크리스 멧젠만이 아닙니다. 그의 뒤를 이을 스토리 작가들만도 아닙니다.

아, 물론 과거의 와우가 그랬듯이 쩌는 스토리 작가가 쩌는 스토리를 적어주면 지금의 스토리텔링 방식으로도 얼마든지 와우의 스토리가 쩔게 나올 수 있겠죠. 그런데 기왕에 쩔어주는 인간이 전제되는 기적을 바랄 거면, 저는 눈에 보이는 현상보다는 그 뒤의 시스템이 바뀌는 게 더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정말로 바뀌어야 하는 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자체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앞선 글에서 말한 대로, RPG라는 건 결국 주인공이 있고 사건이 있는, 그래야 하는 게임입니다. 그 주인공은 두말할 것도 없이 플레이어고요. MMO라는 건 한 게임에 그런 주인공이 많이, 정말 겁나게 많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게 하나의 장르로 묶인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니 [무엇을 의미해야 하는지]를 게임 기획자가 다시 한 번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온 것 같습니다.

그게 말이 되는 거냐, 현실성이 있는 소리냐, 뭐 여러 가지 볼멘소리가 뿜어져나올 거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차원에서부터 다시 고민을 했을 때 에버퀘스트와 같은 시대의 기준점이 또 한 번 나타날 가능성이 더 높지 않을까요?

별 상관도 없는 시스템 몇 개 넣고 뺀 걸 가지고 혼자서만 3세대를 자칭하는 그런 게임이 아니라, 정말로 자기를 이전의 모든 게임과 구분 지을 수 있는 선을 가진 게임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와우가 된다면, 그것도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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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1 : 이 글에선 제가 와우를 기준으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게 와우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앞서 거듭 말했지만, 한 서사에서 주인공이 여럿이 되면 이야기의 초점을 맞추기가 꽤 힘들어지고, 그걸 막기 위해 실제 주인공과 이야기 속의 주역을 다르게 설정하면 또 그에 따른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아까 제가 TRPG 이야기를 했던가요? TRPG에서도 실은 비슷한 문제로 한번 TRPG 플레이어들이 논의를 거친 적이 있었습니다. 거기서는 적은 인원이 모두가 참여한다는 게임의 특성에 따라 “정해진 콘텐츠를 지양하고, 참가자들이 소통하고 합의하여 게임을 진행하자”는 주장이 큰 공감을 얻는 중입니다.

TRPG 규칙 중 하나인 던전 앤 드래곤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증판이 계속되면서 새로운 영웅이 너무 많아지니까, 스토리의 중심이 점점 ‘영웅들이 다 해주는’ 쪽으로 이동했거든요. 플레이어들이 이야기를 만들어나가야 되는데, 그러기보다는 스토리를 이미 존재하는 영웅에게 의존하곤 만 겁니다. (당장 PC명작 중 하나인 발더스 게이트조차 스토리의 상당한 비중을 기존의 신과 영웅인 바알, 고라이온, 엘민스터에 의존했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제작사에서는 결국 다음 버전에서 ‘마법 역병’이라는 대재난을 일으켜선 영웅과 신을 대부분 죽이거나 은퇴를 시켜버렸습니다. 이쯤 되면 캐릭터 소모....도 아니라 이건 그냥 덤핑해버린 거죠.

결국 다른 무슨 작품이라도 마찬가지예요. 서사예술이라고 뭔가가 나오는 한은 비슷한 조건에서 비슷한 제약을 받을 겁니다. 따라서 이 깃털같이 가벼운 글을 통해 단순히 “와우의 스토리가 역시 이렇다”고만 결론짓고 넘어가기보다,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 모두가 스토리텔링의 방법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보는 기회로 삼아주셨으면 합니다.


덧붙임 2 : 여기서는 와우의 스토리텔링 방식이라는 요소에 제가 일부러 초점을 맞추어서 글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기도 했습니다. 그 때문에 일부러 언급을 피하고 넘어간 게 있는데, 여기서 뒤늦게 언급하고자 합니다. 바로 대격변에서부터 판다리아, 그리고 드레노어의 전쟁군주까지 이어지는 여러 영웅 캐릭터의 몰락입니다. 이는 와우의 스토리텔링과는 또 별개로 블리자드의 무리한 기획 방향 설정 때문에 생긴 이야기 파괴였습니다.

가로쉬는 얼라이언스와 호드의 전쟁을 억지로 격화시키려다 만들어진 작위적인 악역이었고, 이 가로쉬의 오만 막장 행각 때문에 여러 영웅 캐릭터가 상처를 입었으며, 제이나는 인격이 변하고 쓰랄은 도덕적 위신이 박살났습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와우의 억지 전쟁 설정에 대한 가장 흔한 비판인 ‘경쟁 구도로만 판을 깔아도 충분히 RvR 시스템과 스토리의 완성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역시 조금 신중하게 보고자 합니다. 왜냐 하면, 본문에 밝힌 것과 같이 와우의 스토리는 근본적으로 플레이어의 플레이와 유리되어 있기 때문이죠.

현실이라면 무력을 동반한 경쟁은 시작이 아무리 온건했어도 결국엔 쟁탈을 부르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쟁탈에 감정이나 정치 문제가 섞이면 그게 바로 전쟁이죠. 하지만 와우는 현실이 아닙니다. 블리자드가 기획하고 설계한 게임입니다.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의 돌발 행동이 스토리에 반영된 적이 어지간해서는 없었는데, 어떻게 ‘자연스럽게’ 쟁탈이 시작되기를 낙관할 수 있겠습니까? 결국 경쟁 구도에서 치열한 RvR까지 넘어가려면, 현재의 와우 구조에서는 블리자드가 어떤 사건을 만들어주기를 바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어떤 사건’이 터져서 RvR, 그게 쟁탈이 됐든 전쟁이 됐든 상황이 만들어지면, 더 이상 그건 경쟁 구도라곤 안 부르죠.

혹은 옛 시절의 언덕마루 구릉지 같은 분위기를 떠올리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건 게임에서 직접 제공하는 스토리가 아닙니다. 플레이어가 플레이를 통해서 스스로 만들어낸 이야기입니다. 이런 ‘사고’를 일으키기 위해서라면 ‘게임사가 일부러 판을 깔아줄’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용감하고 성질 더러운 (컨트롤도 좋으면 금상첨화죠) 쪼렙 몇 명과, 밀밭을 한가득히 메워줄 다른 유저들만 있으면 충분하잖아요. 그리고 엄마 몇 명. 더구나 와우 속의 이야기를 보면, 그 때도 언덕마루 구릉지에선 인간과 언데드가 눈 뒤집고 싸우고 있었습니다. 경쟁은 없었습니다. 화면만 봐선 별로 안 그런 것 같았겠지만요.

그리고 현재의 와우 구조에 따라 → 전쟁을 촉발시킬 (혹은 PvP를 정당화할) 사건이 일어나야 한다면, 결국 원점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쩌는 스토리 작가가 블리자드에 있기를 바랄 수밖에 없어요.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와우 오리지널 때처럼 짜임새 있는 스토리가 다시 만들어질 겁니다. 그렇지 못하면, 드군의 재림이 되는 거고요.


덧붙임 3 : ‘그렇게 잘났으면 니가 만들어라’ 하는 말이 나올까봐 제일 무섭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진짜 제가 다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임 4 : 이 글은 사실 며칠 전에 써둔 겁니다. 현재 상황하곤 또 안 맞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도 와우로 다시 넘어갔습니다. 골마초 옭전사를 키우고 있어요.

그런데 그 옭전사 키우는 거도 힘에 부칠 만큼 시간에 여유가 없는지라 댓글 피드백이 소홀할 수 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마음은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아마요.



덧붙임 5 : 별 영양가도 없는 글인데 문자가 역병지대 스컬지 내지는 홍수 그친 날의 멀록떼처럼 불어나는 바람에
이렇게 여러 편으로 나눠 올립니다.

이 졸문이 공연히 와우라는 게임을 심각하게만 바라보기보다 좀 더 다각에서 즐길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끝으로 원래 목적인 가입인사를 다시 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리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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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개장수
16/09/23 23:06
수정 아이콘
글 하나의 텍스트 양이 별로 많지 않아 하나로 통합해서 올리셔도 될 것 같습니다.
바보왕
16/09/23 23:07
수정 아이콘
처음엔 그렇게 했는데 잘렸어요 하하하....
어디서 얼마나 자를 수 있는지는 올리는 게 처음이라 잘 몰랐습니다.
인간흑인대머리남캐
16/09/23 23:24
수정 아이콘
그래서 이번 군단에서 기존 영웅들을 노골적으로 뭉개고 플레이어를 대대적으로 띄워주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스토리도 직업별로 대장정 스토리가 갈리면서 플레이어가 스토리에서 큰 역할을 맡죠.(그래서 대장정 스토리 다 볼려면 각 직업을 다해야하니..다만 시간표가 애매해서 각 직업별 대장정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은 받기 힘들고요) 드군에서도 플레이어가 사령관으로써 위상이 올라가긴 했지만 이렐, 듀로탄의 사이드킥 같은 느낌이었다면 군단은 거기서도 벗어나 지금 시점에서 고군분투하며 포커스 받는 기존 영웅은 카드가 정도 밖에 없죠. 나머진 죽거나(바리안 볼진 티리온), 연애질하거나(말퓨란데), 멘붕(스랄,벨렌) 같은 걸로 스토리 중심에서 벗어나고.. 이후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나중에 가면 플레이어가 시네마틱의 주인공으로 나올 수도 있을까요.
바보왕
16/09/24 00:28
수정 아이콘
그에 못잖게 와우의 주인공, 즉 우리가 아제로스의 유일무이한 존재냐, 아니면 다른 여러 영웅과 어깨를 나란히 한 다수 속의 구성원이냐 하는 질문에도 와우가 대답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겁니다. 그런데 말씀하신 걸 보니 군단에서 플레이어 위상이 생각보단 더 바뀐 것 아닌가도 싶네요. 저도 얼른 만렙 찍고 최신 이야기를 즐겨보고 싶은데 그 날이 언제가 될지...... 그래도 마음만은 용비늘 방패를 등에 지고 다니고 있습니다. 역시 이렇다 저렇다 해도 막상 하면 재밌는 게 와우인 것 같아요.
16/09/24 00:18
수정 아이콘
메인화면만보고 글쓰기버튼이 렉으로 여러번 눌러져서 도배된건가 했네요
바보왕
16/09/24 00:22
수정 아이콘
초심자의 무례를 양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허허허
다음 기회가 있다면 한 번에 바르게 올릴 수 있도록 힘쓸게요
마스터충달
16/09/24 00:32
수정 아이콘
글쓴분이 원하신다면 운영진이 한 글로 묶어주시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정크 html 때문에 걸리시는 것 같은데...
바보왕
16/09/24 00:36
수정 아이콘
저도 마다할 이유는 없습니다만, 부탁드려도 괜찮을진 모르겠습니다.
kimbilly
16/09/24 00:46
수정 아이콘
- 본 글에는 HTML 태그가 하나도 없는 상황입니다. 정크 HTML 태그와는 무관합니다.
- 글 합쳐봤는데 이상없어서 이전글 삭제 및 수정 처리합니다.
바보왕
16/09/24 00:51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잘 나오니까 저도 놀랍고 좋네요.
마스터충달
16/09/24 01:50
수정 아이콘
헐... 근데 왜 안 써졌을까요;;
16/09/24 01:05
수정 아이콘
티리온의 리치왕 킬딸(...)은 진짜 공감가네요. 그때 주변에 와우하던 사람들이 다 그소리였다는 크크
바보왕
16/09/25 00:44
수정 아이콘
저는 티리온도 티리온이지만 달라란의 /차단 로닌이 특히 괴로웠습니다.
꼭 쉬면서 채팅 좀 할라치면 온 대화창이 시뻘겋더라고요.
대격변 때 룬탁도 별로였는데 이번에 다른 오크로 바뀐 걸 보니까 기분이 묘했습니다.
16/09/24 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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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나 기타 mmorpg를 많이 해본 류의 사람은 아닌데 스토리텔링과 경험이라는 측면은 되게 인상적이네요. 모든 게임이 그렇겠습니다만 특히 RPG는 세계관이나 서사라는 측면에서 그걸 '체험'하게 하는게 가장 중요한게 아닌가 싶어요. 특히 MMO라는 건 그런 '체험'에서 여러명의 플레이어가 함께 참여해야하는 성질의 것이니까요.
개인적으로 MMO에서 npc의 존재감이 떨어지는 이유가 결국 말씀하신 주인공과 플레이어의 일치성의 문제같아요. rts의 경우에는 플레이어가 제3자의 입장으로 빠지게 되니까 캐릭터가 오히려 더 잘보이는데 rpg에선 결국 플레이어가 캐릭터의 입장으로 들어가다보니 npc를 비롯한 인물들의 행동폭이 극히 좁아지게 되는거 같습니다. 영화를 관람하는 것과 영화의 엑스트라가 된 느낌의 차이라고 해야할까요. 다만 이렇게 하더라도 지금까지 충분히 성공적인 스토리텔링이었고 결국 존재감 있던 캐릭터들을 타락으로 써먹은게 조금씩 약빨이 떨어지는게 문제인가... 란 생각이 듭니다. 잘읽었습니다.
여담으로 우리나라에서 구공온을 접할 수 있는 루트가 있나요? 한번 해보고 싶긴 한데...
바보왕
16/09/24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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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공온을 하신다면 루트랄 것도 없고 그냥 영어로 하시면 됩니다 허허허....
결제를 할 경우에는 해외결제를 해야 하는데, 자동결제를 하면 편합니다.
덤으로 게임이 부분유료이긴 하지만 무료로 플레이할 때는 레벨을 최대까진 키울 수 없고, 소지품에도 한계가 있으며, 무엇보다 구공온의 가장 중요한 콘텐츠인(!) 칭호놀이와 룩덕질과 스토리 감상에 제약을 받기 때문에 한 달만 하시더라도 정액결제는 하는 편을 추천합니다.
16/09/25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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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감사합니다. 흐흐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나중에 한번쯤은 해봐야겠네요.
16/09/24 0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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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긴건 스타1->스타2의 스토리 변화랑 와우의 스토리변화가 정반대로 가고 있다는 점이죠
스타1에서 영웅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또는 위에서 지휘하며 항상 승리만 했던 스토리상의 핵심 인물에서 갑자기 스타2가 되니 방관자가 되어서 스타1때 이뤘던 업적은 이상한놈들이 다 가져가고 플레이어란 존재가 아예 없어졌죠.
반대로 와우에서는 초반에는 풋맨1, 그런트1의 없어도 그만인 npc급 위치에서 점점 스토리상의 비중이 커지고 군단에 와서는 각 직업의 최고 위치까지 올라갔죠
전 플레이어 캐릭터가 세계관 속에서 하나의 롤을 맡아서 진행하는걸 선호하는데 와우의 변화가 좋은만큼 스타2의 캐릭터 시점에 대해서는 아쉬움만 커져갑니다. 싱글 미션 자체는 재밌게 했지만 스토리는 진짜 고통 그 자체였어요
바보왕
16/09/25 00:10
수정 아이콘
장르가 처음부터 달라서 그렇습니다. 시뮬레이션에서 플레이어는 세계관 밖에서 관리자에 가까운 행동을 하게 됩니다. 이걸 하나의 등장인물로 설정하고 사령관이나 신, 축구감독, 프로듀서 같은 이름을 붙일 수도 있겠지만, 원래는 플레이어의 인격을 대입할 화신이 꼭 있어야 할 필요가 없어요. 스타1이나 워크2가 스토리텔링의 방법이란 관점에서는 오히려 별종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RPG는 이름부터가 역할극이거든요. 참가자(플레이어)가 화신 즉 아바타를 가지고 이야기에 직접 참여를 해야 하는 게임입니다. 말씀하신 대로면 애초에 DSlayer님의 재미 욕구 자체가 RPG나 액션 게임에 딱 맞는 것 같으니 스타나 롤을 멀리하시고 다른 RPG를 가까이 하는 편이 낫지 않나 싶습니다. 저도 몬헌을 해본 뒤로 취향이 싹 바뀌어서 스타2는 물론이고 문명도 아직 손도 안 댔습니다.
16/09/25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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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C시리즈도 플레이어를 하나의 캐릭터 취급하고 엑스컴 또한 마찬가지죠.
스타2 캠페인에서도 스타1처럼 한명의 현장지휘관 역할을 시킬 수 있었습니다. 대사가 조금 달라지기만 하면 되는 거였죠. 왜 궂이 게임 내/외부를 단절시키려고 하는지 이해가 안간다는겁니다.
아이군
16/09/24 0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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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는 RvR이라는 개념이 와우 문제의 시작이라고 봅니다. 현재 이득은 그냥 없다고 봐도 될 정도고(제 생각에 필드 쟁이라는 개념은 이제 돌이킬 수 없다고 봅니다.) 손해는 무지막지 하게 많습니다.(저렙 학살, 인구 불균형 같은 굵직굵직한 문제 부터 시작해서 스토리를 두 배로 만들어야 된다는 세세한 점까지) 극단적으로 말해서 지금 얼라 호드를 통합시켜도 기껏해야 전장 몇 군데 설정만 바꾸면 끝날 예깁니다.
한 때는 유행했고 멋져 보였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장대한 삽질이었습니다. 누가 지고 있는 진영을 하고 싶어할까요? 필드쟁이라는 멋진 개념에 다들 낚였다고 봅니다. 뭐 지금 와서 돌이킬 수는 없지만요.

2. 저도 큰 그림은 동의합니다만, 와우의 스토리의 문제는 그 이상이라고 봅니다. 너무 이상한 부분이 많습니다. 저는 뭔가 게임 외적인 문제가 좀 있었다고 봅니다. 사실 그러한 예도 많기도 하구요(예: 이세라와 세나리우스의 관계 등) 저 또한 와우의 캐릭터의 교통정리가 좀 필요하다고 생각 했습니다만 이건 좀....

3. 덤으로 와우는 캐릭터를 너무 쉽게 지릅-_-니다. 그러니까 너무 쉽게 만들어요. 가장 대표적인 것이 불의 땅에서 반신들을 대거 부활시킨 일을 들 수 있을 겁니다. 퀘 하면서 얘네들 살려 놓으면 뒤감당 어떻게 하려나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4. 1 2 3 을 합치니깐 순간순간은 그럴싸 한데 나중에 정리하니깐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된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스랄은 보다 중립적인 영웅으로 쓰기 위해서 대족장에서 물러났지만 데스윙을 제외하고는 그 후로 중립적인 행보를 보인적이 없습니다... 그럼 그냥 다시 대족장 시켜...) 좀 큰 그림을 못 그려요.

5.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이번 확장팩 군단와 와우의 미래(?)에 대해서 우려>기대 인 상황인데, 예를 들면 직업별로 퀘를 따로 만드는 건 노력은 10배로 들지만(10직업퀘를 다 따로 만들어야 되니까) 즐거움은 1/10이라고 보거든요(어차피 플레이어는 한 직업 퀘 밖에 못하니까) 이건 위의 RvR의 단점을 다시 반복하는 거라고 봅니다. 또 캐릭터를 대거 정리해고-_- 한 건 좋은 데, 그 후로 얼마 남지 않은 캐릭터를 중요하게 쓰냐면 그건 또 아닌거 같거든요.(특히나 신혼의 단꿈에서 깨기도 전에 또 악몽으로 다이빙한 말퓨리온 옹 안습.. 아니 그 전에 옹 소리 듣는데 이제야 신혼이라는 것도...)
그리고또한
16/09/24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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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VR은 그냥..일반섭을 무슨 어린이집처럼 유치하게 생각하는 이나라 게이머들의 의식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지적되는 부분은 대부분이 일반섭으로 가서 게임하면 해결되는 부분이니까요.
바보왕
16/09/25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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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vR 혹은 그 기원인 PvP가 게임 플레이에서 다양한 문제를 일으킨다는 지적은 맞습니다. 그런데 만약 PvP가 게임이 갖는 많은 문제의 근원이라면, PvP를 되도록 지양하고 협력을 주체로 삼는 (혹은 그런 스토리를 전면에 내세우는) 게임들까지 같은 고통을 받지는 말아야 할 텐데, 초기 테라나 마비노기(메인스트림 한정)도 각각 막장노잼 스토리나 캐릭터 소모 문제로 골치를 앓은 적이 있다는 사례를 보면 PvP가 곧 게임의 다른 요소에까지 영향을 줄 만큼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PvP의 단점은 게임의 요소(여기서는 스토리입니다)를 적극적으로 해친다기보다는 경쟁과 도태를 내세워서 게임플레이를 과열시키고, 콘텐츠 소모를 가속하며, 게임에서 탈락하는 사람을 양산한다는 쪽에 더 가깝다고 봅니다만, 이걸 지적하면 다음 문제가 따라오게 됩니다. 그리고또한 님이 지적했지만, 게이머들이 그걸 바라고 있거든요. 가열찬 플레이, 빠른 콘텐츠 소비, 그리고 "게임을 하면 (남에게) 이겨야지" 심리까지도요. 이건 한국만의 문제도 아니고, 지고 있는 진영에 일부러 들어가서 "수많은 타인을 죽이고 굴복시키는" 쪽을 선호하는 좀 괴상한 플레이어도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장단점이 동전의 양면 같은 기획인데다 수요가 꾸준히 존재하니 PvP 및 그 연장선인 RvR이 게임에서 계속 채택되는 것은 별 도리가 없습니다.
아이군
16/09/25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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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pvp와 RvR은 다르다고 봅니다. 음... 더 간단하게 말하면 PvP의 장점은 줄이고 단점을 더 늘리면 RvR이 된다고 봅니다. 다르게 말하면 PvP의 하위 장르 라고나 할까요? 하여간 RvR로 할 수 있는 대부분의 것들은 PvP로도 할 수 있습니다.(와우로 예를 들면 투기장은 아예 바뀔 필요가 없고 전장은 설정만 좀 바꾸면 됩니다.) 하지만 RvR은 PvP가 가지지 못하는 단점, 그것도 몇 가지는 심각한 단점을 추가로 가집니다.(인구 비율, 저렙 학살 등)

당연히, PvP 게임은 앞으로도 영원할 겁니다만... RvR은? 좀 나쁘게 말하면 10년전... 아니 20년전 유행이라고 봅니다. 최근의 성공작인 LOL이하 오버워치도 RvR적인 요소는 거의 들어있지 않습니다.

아주 극단적으로 말해서, 지금 와우에서 얼라와 호드를 통합한다면? 물론 스토리는 개판되겠지만, 게임 플레이는? 손해 보는 것은 필드 쟁 뿐이고 얻는 건 많습니다(저렙 학살,-인구 비율 문제 해결, 대도시가 많아져서 이동이 쉬워짐, 스토리 볼륨이 최소 20퍼센트 늘어남 등등)
바보왕
16/09/25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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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vP가 갖는 불특정요소 즉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개념을 '진영 대 진영' 개념으로 바꾼 게 RvR이잖습니까. RvR이 PvP의 하위 개념이라는 말 자체가 두 개념이 갖는 밀접한 관계를 드러냅니다. RvR의 단점을 강하게 말하고 계시지만, 그건 그런 게임이 오랫동안 대세가 되다 보니 RvR의 단점이 부각되고 PvP를 정면에 내세운 게임이 오랫동안 안 보이니 그 폐해들이 사람들 머릿속에서 잊혀진 것뿐입니다. 당장 울티마 온라인이나 리니지 1편이 RvR이 있었기 때문에 슬레이어나 카오가 성행하고, 저렙들이 학살당하고, 특정 지역에만 사람들이 몰리고, 인구 이동이 어려웠던 건 아니었지 않습니까?

아니면 혹시 아이군님이 생각하시는 PvP 개념이 투기장과 전장 요소만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이를테면 막피나 공성전 등을 비롯한 다양한 PvP 요소를 빼고 말씀하신 거라면, 그 말은 앞으로 나오는 게임에서 PvP라는 시스템이 갖는 비중을 현재보다 훨씬 줄여야 된다는 말과 같아집니다. 싸우고 싶어서 환장한 사람끼리만 싸우고, 그렇지 않은 사람끼리는 싸울 수 없도록 하자는 거겠죠? 그렇게 하면 당연히 PvP든 RvR이든 부르게 될 게임의 각종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애초에 그런 시스템이 없으니까요. 다만 아까도 말했듯이 그러는 걸 바라지 않는 사람들이 아직 많이 있다는 걸 고려하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두 번째로 게이머가 게임을 할 때, 딱 만들어진 만큼 플레이하는 것과 한 번의 플레이(혹은 한 명의 캐릭터)로 게임의 모든 것을 답파하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두고 말씀을 하고 계시는데요, 이건 관점과 가치의 차이입니다. 그리고 제 개인 생각은 한 명의 캐릭터, 한 번의 플레이로 반드시 스토리를 완전히 파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똑같은 플레이를 해도 사람마다 감상이 다르듯이, 똑같은 게임을 할 때도 사람마다 다른 스토리를 즐길 수 있다면, 그리고 그렇게 다른 "사연"을 가진 주인공들이(다시 한 번, MMORPG의 주인공은 누구입니다?) 어느 날 한 자리에 서로 만나 새로 하나의 거대한 스토리를 만들 수 있다면 그것도 충분히 좋은 게임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노력에 비해서 결실이 작다곤 하지만, 폭넓은 스토리가 주는 게임의 결실은 그만큼의 제작하는 노력을 낭비해도 아깝지 않을 만큼 가치 있는 거예요. 그리고 와우엔 분명 그런 결실이 있던 시절이 있습니다. 다른 제작 방식과 비교해서 와우의 이원적인 스토리가 "더 못하다"라고 평가할 이유는 없습니다. MMORPG만이 아니라 싱글 게임, 아니 모든 서사예술에 전부 적용되는 이야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와우의 스토리 볼륨이 그렇게 문제가 된다면...... 군단의 스토리가 지금 굉장히 짧은가요? 이거는 제가 아직 저렙이라 확실히는 모르겠습니다. 대격변까지를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성의없는 볼륨으로 확팩을 내놓았을 것 같지는 않은데, 역시 직접 해봐야 알겠네요 허허허
아이군
16/09/25 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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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가 생각하는 PvP 는 말그래도 플레이어 vs 플레이어입니다. 한 플레이어가 다른 플레이어와 대결할 수 있는 모든 것이요. 그것이 무제한 PvP건 RvR이건 투기장이건 전장이건요.

2. 필드 PvP는 매력적으로 들리지만, 글쎄요.... 바보왕 님께서 예를 드신 대로 RPG만 보더라도 초기(무제한)->중기(RvR)-> 최근(없거나 레벨 제한등의 강력한 제한)으로 갈수록 줄어드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최근의 더 디비전만 하더라도 고렙 구역을 강제로 PvP존으로 만들어야만 했습니다. 아니면 아무도 안 갈 것이 뻔하거든요. 이유는 간단한 데, 1. 게임 플레이가 악행을 권장하고, 2. 남에게 죽어서 얻는 손실>남을 죽여서 얻는 이득이라서 그렇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RvR로 성공한 게임은 단 하나, 와우고... 적어도 제가 생각하기에는 와우가 RvR이라서 얻는 이득은 그다지 없습니다.

3. RvR이나 직업제한 등의 '다른' 스토리는 물론 즐기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장점이 적지 않게 있겠지만... 만드는 입장에서는 어떨까요? 문제가 와우 확장팩의 템포가 너무 늦다는 겁니다. 이건 심지어 제작사(블리자드)도 알고 있는 이야기고... 앞으로 확장팩을 더 빨리 만들겠다고 공언해놓고선 또 템포를 늦추는 짓을 한 겁니다. 이건 과거의 경험에서 얻는게 없다는 이야기에요.

4. 과거의 경험에서 얻는 게 없다... 다르게 말하면 과거와의 단절인데, 최근의 블리자드에서 이걸 느낀 적이 많습니다. 제가 지적하는 스토리 문제가 대표적입니다. 과거 오크와 맞서 싸운 카드가가 오크에 우호적이고 과거 오크와 함께 싸운 제이나가 오크에 호전적인 건 개그 축에도 못 낍니다. 아니면 아예 다른 예를 들어 볼까요? 와우는 초기 디아블로의 경험을 많이 참고로 했습니다. 예를 들면 아이템의 랜덤성 같은 거죠. 하지만 고생해서 얻은 아이템에 랜덤성을 부여하면 시간 대비 결과가 너무 않 좋죠. 그래서 와우는 아이템의 랜덤성을 줄여나가는 방식으로 발전했습니다. 그런데 디아블로 3는 ? 다시 완전 무작위 아이템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다시 확장팩에서 아이템의 랜덤성을 줄였습니다. 마치 와우의 경험을 잊은 것 같이요. 적어도 저는 현재의 와우 제작자 진들이 워크래프트 3 와 단절되어 있다는 것은 확신하고 있습니다. 워크래프트 3의 캐릭터에 대한 존중이 전혀 없거든요. 물론 앞으로 잘 할 수도 있스니다만... 우려 > 기대 인 것은 사실입니다.
바보왕
16/09/25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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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드쟁이 실제로 매력적인가, 실제로 게임에서 중요한가 하는 문제가 필드쟁의 채택여부를 완전히 결정하진 않습니다. [개발자가 원하고 게이머가 원하는가]도 관여를 한단 뜻이에요. 일단 아이군님은 개인적으로 와우의 필드쟁을 별로 안 좋아하신다는 걸 확실히 알았습니다. 만약 같은 의견이 앞으로 많아지고 만약 블리자드에 들을 귀가 있다면, 그 때는 와우에 변화가 일어날지도 모르겠네요. 스타워즈 온라인 같은 경우 실제로 제3세력이 적으로 등장하면서, 기존의 공화국과 시스 제국이 반란동맹이라는 새로운 그룹으로 재결성된 사례가 있습니다. 희망적인 일이라고 생각해도 될 것 같습니다.

아까 쓰려다 말았지만, 저 자신도 PvP를 좋아하진 않습니다. 당장 지금도 똑같은 얼라도적한테 두 번 죽어서 시무룩하네요. 허허허. 그래서 와우에 PvP의 비중이 줄어들고 RvR이 사라지고 얼라와 호드가 대동단결을 해주면 저도 고맙겠죠. 그런데 그게 와우라는 게임이 현재 갖고 있는 모든 문제, 특히 스토리가 갖는 문제를 근원에서부터 해결하는 방법이라고는 볼 수 없다는 소립니다.

와우에 다양한 문제가 있는 만큼, 그 문제의 근원도 다양하게 있습니다. 서로 다른 걸 엮어서 한 방에 게임 속 문제들을 치워버릴 수 있는 묘수는 없어요. PvP에는 PvP 자체에 따르는 장단점이 따로 있고요. 저는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만드는 입장에서 폭넓은 스토리가 개발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무조건 비용이 덜 들고 경제적이어야 좋은 게임이 되는 게 아니라는 보편적인 이야기로 대답을 대신하겠습니다. 위에도 비슷하게 말한 것 같지만 그래도 한 번 더 하겠습니다. 또한 PvP 요소가 줄어든다고 해서 확팩 만드는 비용이 덜 들어가는 것도 아니라는 이야기도 해야겠습니다. 게임이 할 게 적어지면 적어질수록 있는 거에 훨씬 엄격한 평가를 받게 마련이거든요.

와우 확장팩이 늦게 나오는 이유는 RvR 게임이어서가 아니라, 그냥 늦게 만들어섭니다. 그냥 디아3 영거자가 늦게 나와서 사람 복장 뒤집은 거하고 같은 이치예요. 호언장담한 대로라면 이미 나왔어야 할 솜브라가 오버워치에 아직도 안 나오고 한국맵도 만든다 만든다 말만 나도는 것과도 같은 이치고요 하하하. 거긴 그냥 뭐든지 늦게 만드네요. 그것도 문제라면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감정적인 불만 외에 저는 딱히 다른 의견이 없으니 그냥 넘어가고자 합니다. 아마 다음 기회에 토론할 자리가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도로시-Mk2
16/09/24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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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추천~
바보왕
16/09/25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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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다들 재밌게 읽어만 주셔도 저는 기분이 좋습니다. 으헤헤헤
흑마법사
16/09/24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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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 마지막 부분이 가장 큰 문제(?)라고 봅니다. 주인공이 플레이어라는 점이요. 워3 까지만 해도 주인공은 플레이어가 아니라 현재 와우의 NPC들이었죠. 스랄, 아서스, 말퓨란데, 일리단 등 현재 와우를 대표하는 여러 캐릭터들이요. 그런데 와우로 넘어오면서 위상이 바뀌었습니다. 초반에는 플레이어<NPC의 성향이 강했지만 드군을 기점으로 역전되었다고 봅니다. 군단에서는 대놓고 스랄, 티리온 등 직업별 수장격인 NPC들을 퇴장시킴으로서 플레이어가 그 자리를 차지했구요. 우리는 NPC들이 우리와 비슷하거나 같은 위치에서 여러가지 일들을 하길 바라지만 이미 플레이어의 위상은 NPC들도 해내지 못한 일들을 함으로서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너무 커버렸습니다. 그럼 자연히 이전 캐릭터들은 병풍화 될 수 밖에 없고 늘어나는 캐릭터만큼 줄여야한다면 방법은 타락시켜서 레이드 넴드화시키거나 사망처리죠. 개인적으로는 그냥 블리자드의 이런 스토리텔링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드군에서 이렐 같은 신선하고도 좋게 평가받는 캐릭터가 또 나올 수도 있죠.
바보왕
16/09/25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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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쩌는 스토리는 제약을 받고 나와도 재밌고 쩌는 법입니다. 낭중지추라잖아요 하하하
세인트
16/09/25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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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때문에 뒤늦게 봤는데, 가입 첫 글이 이렇게 정성 가득하고 재미있는 글이라니!! 난 그동안 뭘 했나...

아무튼 잘 읽었습니다.
일견 수긍가는 부분도 있고, '읭? 아닌데?' 하는 부분도 있긴 하지만
중요한 건 이 글이 대단히 흥미롭고 정성들여 잘 쓰여진 좋은 글이란 것입니다.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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