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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12/25 21:36:27
Name SKY92
Subject [스타1] 03년 1월, 싱거웠을수도 있었지만 임팩트 강하게 남았던 테저전.avi
2002 파나소닉 온게임넷 스타리그.

사실 이때는 스타를 잘 보지 않았던 시기여서 그때 경기전 둘러싼 분위기를 잘 느끼지 못해서 아쉽지만.... (이 대회 초반은 봤던것 같은데 그 이후에는 잘 안봤던걸로 기억이 나네요.)

나중에 VOD를 봤을때 정말로 어처구니 없고 감탄했던 경기가 있었는데 바로 이 경기였습니다.

2003년 1월 10일, 대회 경력만으로는 대단히 큰 차이였고 무대는 8강이었을뿐이었지만, 상대종족전 전적이라던가 경기를 둘러싼 분위기는 거의 결승전을 방불케 하는것 같았던...

경기의 주인공 두 선수의 파나소닉 온게임넷 스타리그 대회 행보는 이랬습니다. 임요환선수는 IS를 나가고 무소속이었던 상황에서 대회를 맞이하게 되고, 16강 조의 첫경기에서 이 경기를 끝으로 은퇴를 준비하고 있던 김동수선수와 역사에 남을 테프전을 승리로 장식하면서 대회를 시작, 이후 동양과 스폰 계약을 맺은뒤 첫 경기에서 자신의 온게임넷 첫 결승 상대였던 장진남을 제압하고 2승, 살아있는 마린 이운재에게 일격을 당하지만 2승 1패 조 2위로 8강에 합류합니다.

그에 맞서는 박경락선수. 사실 출중한 실력이 있다는것은 이미 프로게이머들 사이에서도 유명했던것 같습니다만 정작 온게임넷 무대에서는 여러번 예선을 탈락하며 인연을 맺지 못하다가 드디어 파나소닉 온게임넷 스타리그에 진출. 자신의 진가를 알릴 기회를 잡습니다. 아마 공공의 적이 조지명식에서도 선수들이 경기에서 만나길 꺼려하여 지명순서를 최대한 미루려고 해서 붙은 별명으로 기억하는데.... 어쨌든 그런 별명이 어울릴정도의 경기력을 대회에서 보여주었습니다. 16강 D조에 속한 박경락은 첫경기, 당시 같은팀이었던 불꽃 테란 변길섭을 상대로 저그가 유리한 아방가르드 2에서 패배하면서 1패로 시작하지만,(당시에 한빛 스타즈 선수들인가... 감독님인가조차도 그 경기는 박경락이 이길것으로 예상했다고 하네요.) 2번째 경기인 개마고원 서지훈에게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는 테란전으로 승리, 그리고 성학승과의 저그전에서 승리하여 2승 1패 3자 재경기를 만듭니다. 서지훈,변길섭과의 3자 재경기에서 그 둘을 누르고 조 1위로 진출. 두 선수가 8강에 합류한 과정은 이랬습니다.

당시에 조별리그 제도였던 8강. 16강 선수들의 조별 순위에 따라 8강 조편성이 되었는데, 임요환선수와 박경락선수는 베르트랑선수와 홍진호선수와 함께 한 조에 편성됩니다. 임요환선수는 조의 첫 경기였던 베르트랑전에서 그 유명한 비프로스트 뒷길 입구 막기로 베르트랑의 멘탈을 파괴시키며 1승, 박경락은 지긋지긋한 악연을 쌓게되는 당대 최고의 저그 홍진호에게 패배하며 1패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두번째 경기에서 두 선수의 행보는 반대가 되는데, 임요환선수는 자신의 영원한 라이벌 홍진호에게 반섬맵 네오 포비든존에서 완패, 박경락은 베르트랑을 상대로 같은 맵에서 압승을 거둡니다.

그렇게 조의 상황은 홍진호가 1위로 4강 진출, 베르트랑이 4위로 탈락이 확정된 가운데 이제 남은 것은 조 2위로 4강에 진출할 선수를 가리는것 뿐이었습니다. 임요환,박경락 두 선수다 1승 1패라 지면 탈락이었기에 더 물러설곳도 없는 상황. 1월 10일, 순서상 8강의 마지막 경기로 배정까지 되어서 분위기가 달아오를 준비는 모두 갖춰졌습니다. 뭐 저 경기 이전의 임요환이 쌓아온 것들은 말하면 입만 아플정도로 화려했지만, 상성종족이라던 테란을 상대로 특유의 경락 마사지라고 불리는 혼을 빼놓는 러커 드랍과 완벽한 하이브 마무리로 멋진 테란전을 보여줬던 박경락의 기세도 절대 무시할수가 없었죠. 나중에 올림푸스때 다시 스타를 봤을때도 테란이 박경락에게 2가스만 허용해도 정말 힘들다는 이야기가 많았을정도였던걸로 기억합니다.



영상만으로 봤을때 테란이 밸런스상 유리한 맵이었던 개마고원이었고 임요환의 저그전 전적이 좋았지만, 박경락은 그 맵에서 김정민과 서지훈이라는 절대 만만하지 않은 테란들을 완벽하게 꺾었던지라 그야말로 해봐야 안다는 분위기 속에서....

어마어마한 환호성과 함께 마침내 대회 마지막 4강 진출자를 가리는 운명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습니다.

영상의 10분 47초, 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위치가 보여지자마자 중계진의 탄성이 나옵니다. 1시 테란, 7시 저그 대각선. 가까운 위치가 걸리면 테란이 압박하기 용이한 개마고원인데 제일 먼 대각선이 걸렸으니 박경락에게 좋은 기운이 흘렀죠. 그리고 양 선수의 체제는 당시로서는 무난했던 2배럭과 12 앞마당.  

13분 10초경, 박경락의 정찰 드론이 들어와 훤히 지켜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임요환은 경기시작한지 얼마안되어서 승부수를 던지게 됩니다. 바로 수많은 저그들을 울렸고 앞으로도 울릴 마린+SCV 치즈러쉬 벙커링. 위치도 대각선인데 2가스를 무난히 먹은 박경락의 운영 능력이 의식되어서 그랬던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나름 시사하는 바가 컸던 러쉬라고 생각합니다. 거의 결승전에 임하는것과 버금갈정도의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과 함께 비장의 한수를 던진 임요환, 13분 50초경, 박경락도 절대 밀리지 않겠다는듯 앞마당 해처리를 취소하지 않고 바로 같이 드론을 동원합니다. 치즈러쉬를 조기에 파악하기도 했고 대각선이라 저글링이 나올 시간이 좀더 있었기때문도 있겠지만... 

그리고 13분 55초경부터 시작되는 둘의 짧지만 숨막히는 컨트롤싸움.... 손에 땀을 쥐는 짧은 접전속에서 박경락이 기다렸을 저글링이 등장하며 정말로 거의 아무런 피해 없이 임요환의 기세등등했던 마린+SCV 병력들을 퇴각시킵니다. 잡은 드론은 고작 한기, 비록 상대 드론도 상당수 일은 못했지만 저그의 앞마당 기지쪽 싸움이라 드론은 금방 앞마당 기지에서 자원을 캐면되는것이었고 임요환의 그 많은 SCV들은 그 멀고먼 7시에서 1시쪽으로 퇴각할때까지 정상적인 자원수급을 할수가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아무런 피해 없는 수비. 이글이글 타오르던 눈빛과 함께 야심차게 들어갔던 임요환의 공세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를 정도의 표정과 함께 박경락은 막아내었습니다

보통 테란이었으면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임요환의 팬들에게 믿을것은 테란이 임요환이라는것 뿐. 하지만 저그는 박경락이었습니다.

유유히 빠르게 레어 테크를 가져가며 본격적으로 자신의 시간을 보내려는 박경락을 상대로 어쩔수 없이 짜낸 마린+메딕을 보내 개마고원의 우회로를 이용한 압박으로 성큰을 5개까지 짓게 강요한 임요환이긴 했지만(17분경), 이미 양쪽의 자원수급과 테크트리 차이는 말도못하게 벌어져가고 있던 상태. 그나마 멀티를 포기하고 본진에서 최대한 테크트리를 올려 일단 병력을 갖출 생각인 임요환이었지만, 경기시작 10분이 조금 넘어가는 영상의 20분 40초경, 마침내 박경락의 쇼타임이 시작되었습니다.

2기의 러커를 테란 본진 구석에 드랍시켜 수비병력을 유인하고, 그 사이 앞마당부터 그 먼길을 달려온 저글링+러커 부대로 테란의 입구쪽을 무혈입성으로 통과해 테란의 핵심중의 핵심 생산건물, 아니 전부라고 봐도 되었던 배럭 3개를 들어버립니다. 처음 드랍왔던 2기의 러커라도 잘 정리했어도 시원찮을판에 그 러커 2기에 소중한 테란의 병력마저 깎여나가고... 사실 치즈러쉬가 막혔을때부터 암담했지만 이쯤되면 그 어떤 테란이 와도 이기기가 불가능한 상황까지 치달았습니다. 

이렇게 양방향 러커로 임요환의 본진을 마비상태로 만들어버린 박경락 선수에게 남긴 김태형 해설의 찬사...

지금까지 보아온 저그중에 완벽히 테란을 잡아내는 저그라 볼수 있습니다!- 김태형 해설

그나마 SCV를 이용한 탱크의 스플래쉬 데미지로 러커를 걷어내는등 눈물겹게 박경락의 공세를 몰아낸 임요환이었지만 공세를 몰아내는 사이에 박경락선수는 이미 자신의 본진 미네랄 기지 해처리를 활성화 시키고 있었고 11시에 3번째 가스 멀티 해처리도 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2챔버로 충실하게 업그레이드도 진행하고 있었고요.  경기 시간이 13분이 넘은 영상의 23분 30초경, 그제서야 테란 임요환의 2번째 커맨드센터가 절반정도 지어지고 있습니다. 

테란을 상대로는 (당시 최고의 저그들이었던) 홍진호선수나 조용호선수보다 더 무서운 선수인것 같습니다.- 김태형 해설

저도 동의하는 바고, 야... 진짜 박경락처럼 테란에게 센 저그는 살다살다 처음보는 느낌입니다~- 엄재경 해설

사실 이쯤에서 백기를 들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4강 진출이 걸린 경기였고 포기를 몰랐던 임요환답게 끝까지 해보려 했습니다. 1기의 드랍쉽으로 저그의 추가 가스멀티에 견제를 보냈고 베슬까지 갖춘 병력과 함께 앞마당에 커맨드 센터를 내리려고 했지만 이미 그 앞마당에는 아까와는 비교도 안되는 수많은 히드라와 러커가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24분 40초경) 그래도 어떻게든 저그 병력을 약간이라도 밀어내며 드랍쉽 병력으로 저그의 막 완성된 5시 가스멀티 해처리를 깬 임요환이었지만.... 이내 26분 38초경 저그의 히드라에 자신의 희망이 되어야했을 앞마당 커맨드센터가 내리지도 못하고 무기력하게 파괴되고맙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앞마당에 있는 병력들은 완전히 밀어내고 봐야했기에 일단은 자신의 거의 전병력이었던 탱크+마린+메딕+베슬을 동원하여 앞마당에 완전히 자리잡으려 했지만, 이 경기에서 임요환을 응원했던 저에게 가장 절망을 안겨준 장면인 27분 48초경, 비어버린 테란의 본진 입구에 유유히 들어오는 박경락의 히드라+러커 드랍이 작렬하게 됩니다.  지어지고 있던 멀티 커맨드센터는 또 파괴되고, 프로게이머들에게는 기본이겠지만 히드라들은 전부 배럭을 사정없이 공격하고 남은 2기의 러커는 올라오던 테란의 병력들을 저지하기 위해 상대 본진 언덕입구쪽에 버로우되는..... 그야말로 저그에게는 판타스틱한, 테란에게는 호러인 장면이었죠.  

그렇더라도 절대 포기할수가 없었기에 임요환은 그 드랍마저 막고 앞마당에 기어이 자리를 잡아 그곳에 커맨드센터를 짓고... 저그의 3가스 기지였던 11시에 드랍쉽 병력을 보내지만, 박경락은 그것을 수월하게 막아내고, 하이브와 디파일러 마운드가 완성된 단계였지만(29분 38초경부터) 이제는 더 망설일 필요가 없다는듯 하이브 병력없이 어마어마한 양의 히드라+저글링+러커만으로 경기를 끝내러 갔습니다.  29분 52초부터 미니맵에 보이는 개마고원 대각선을 가르는 저그의 파란색 병력들의 행렬은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결국 30분경, 끝끝내 테란의 앞마당 커맨드 센터는 완성되지 못한채 경기는 박경락의 완승으로 끝나고 맙니다. 

제아무리 초반 치즈러쉬가 쉽게 막혔지만 그 천하의 임요환이, 약 20분이 걸리는 경기에서 저그에게 끝날때까지 잠깐의 릴레이 채취를 제외하고 앞마당 자원 맛도 못보고 패배하는 장면을 보는 것은 익숙치 않았던 일이었습니다. 경기끝나고 임요환의 뭔가 분노보다는 약간 씁쓸한듯한 웃음을 짓는 그 표정이 이 경기를 더욱 기억남게 만든것 같습니다.

그저 저그가 초반에 치즈러쉬 가볍게 막고 이미 끝난 게임인데 이게 뭐가 놀랍냐고 할수도 있겠지만, 개인리그 4강 진출이 걸린 중요성이 어마어마했던 경기에서, 그것도 임요환을 상대로 저그가 저렇게 초반 러쉬를 가볍게 막고 끝까지 손발을 묶는 모습을 보여줬기에..... 생방으로 보지못하고 나중에 VOD로 봤음에도 참 어처구니 없었던;;

그리고 그렇게 파죽지세로 첫 대회에 첫 4강까지 갔던 박경락은, 조진락의 또다른 한축 조용호에게 접전끝에 3:2로 패배하며 아쉽게 결승진출에 실패합니다. 그것이 박경락의 커리어의 절정이자, 비극이었던 3연속 4강의 잔혹사의 시작이 될줄은 몰랐습니다. 또한 그 4강이 박경락이 결승진출에 가장 근접했던 4강이 될것이라는것도....


저번에도 댓글에 언급했던것 같지만 사실 박경락선수의 전성기는 3연속 스타리그 4강, 1년이라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지만 그 기간동안에 보여준 그의 임팩트있던 경기들은 엄청 대단했습니다. 이렇게 12년이나 지난 지금에도 계속 추억하게 될 정도로요.... 지나고 보니 그 3번의 4강 기회중 한번이라도 결승에서 플레이하는걸 볼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ㅠㅠ 아무튼 글에 올린 경기는 역시 잊을수 없는 경기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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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의탄생
15/12/26 02:26
수정 아이콘
박경락선수 제가 그당시 좋아하던 유일한 한빛선수였죠
15/12/26 02:44
수정 아이콘
박경락선수 데뷔전부터 junwi_[sam] 유명했었죠.
저그계의 전태규라고 해야할까요. 동족전을 조금만 잘했어도 한시대 정점을 찍을수도 있었을텐데..
개인적으로 이떄가 전성기라고 생각합니다. (올림푸스때는 결승갔어도 졌을것같지만, 파나소닉배때는 올라갔으면 하는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카르타고
15/12/26 04:30
수정 아이콘
사실 전태규선수보다는 훨씬 낫죠 저그전은
물론 테란전 토스전을 워낙에 잘해서 상대적으로 떨어지긴했지만 재수없게도 홍진호 조용호에게 번번히 막혔죠. 홍진호는 저저전 엄청잘했고 조용호도 저그명가 소울출신답게 잘했었죠.
파나소닉배때 박경락이 결승못간건 정말 두고두고 아쉬웟습니다. 바로 그다음시즌에 이윤열을 박살내는것을보고...
15/12/26 06:20
수정 아이콘
뭐 포스는 파나소닉이 경기를 돌려보면 제일 센것 같긴 하지만 대회 종족분포상으로는 마이큐브가 적기인것 같았던... 비록 그 4강을 같이 구성하고 있던 선수들이(그때는 있던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3대토스인 강민,박용욱,박정석이라고는 하나 패러독스가 1,5경기도 아니었는데 박용욱에게 역대급 일방적인 4강전을 연출하며 패배할줄은 몰랐던;;

저야 박용욱을 응원했지만 그때 박경락이 결승 올라갔다면 강민과 어떤 게임을 펼쳤을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그 대회 3,4위전에서 박정석에게 힘겨운 경기이긴 했지만 엄청난 토스전 능력을 보여주며 3위도 차지했었고.
전설의황제
15/12/26 21:21
수정 아이콘
박경락선수가 2009~2010년 김정우나 김명운급 정도는 됬던 선수였는데 한순간에 훅간게 너무 아쉽네요
언제나그랬듯이
15/12/27 17:46
수정 아이콘
대체 무슨 계기로 그리도 빨리 저물었는지 정말 궁금한 선수에요.
하루아빠
15/12/28 14:45
수정 아이콘
멘탈에 문제가 있던 선수였다고 한빛쪽 누군가의 인터뷰에서 봤던거 같네요. 정말 저때 저그가 너무 기를 못 펼 때라, 많이 응원했었는데, 한끗을 못 넘더라구요. 많이 아쉬워했던 기억이 나네요. 당시엔 저그가 임요환을 저렇게 압도적으로 발라버리는 모습은 본 적이 없던 때라(반대의 경우는 징하게 봤엇죠) 임팩트가 엄청났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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