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 기대부푼 가슴을 안고 롤드컵 결승을 직관하고 왔습니다.
친구 덕택으로 맨 앞자리에서 볼 수 있었는데요..
말그대로 앞자리라, 인생에 한 번 있을 호황을 누린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자리에 착석하고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을 정도였어요.
우측 부근에는 페이커, C9의 선수들 등 다양한 관계자가 앉아있고, 좌측 앞열에는 이매진 드래곤스의 멤버들과 라이엇 사장,부사장이 함께 앉아 있더라구요.
그정도의 앞열이었습니다.
여튼 그렇게 명당 자리에서 끝까지 모든 경기, 행사 다 보고 방금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시상식부터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 저는 실망감과 안타까움이 남아있는 상황입니다..
1. 전율의 오프닝 - Warriors
이번 결승전의 이슈 중 가장 크다고 생각되는 것은 '이매진 드래곤스'의 공연 소식이었습니다.
제가 그들의 노래를 처음 접한 건 'Radioactive'였는데요, 예, 아시다시피 2013-2014 롤챔스 윈터 결승 오프닝에 사용되었던 그 곡입니다.
페이커가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나는 그 장면이 나왔던 오프닝..
저는 그 결승전도 직관으로 갔었는데, 오프닝이 너무나도 멋져 한동안 그 노래만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이후 롤드컵을 위해 제작된 'Warriors'는 뛰어난 애니메이션과 더불어 LOL 유저를 불태우는 곡이었죠.
그걸 눈앞에서 '원본을 뛰어넘는 퀄리티'로 듣는 경험을 했으니.. 정말 황홀했습니다.
음향 문제가 좀 있었던 모양인데, 실제 체감 음향의 퀄리티는 음원 이상이었습니다. 대단했어요.
(다만 그것을 온게임넷 음향에서 제대로 못살린 모양이더라구요. 영상을 보았는데 정말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입니다.)
2. 너무 빠른 진행
이 부분은 호불호가 갈리는 부분이기에 많이 적진 않겠습니다.
경기 시작 전, 영상 등으로 좀 더 고조감이 고취되는 부분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선수 소개 및 1경기 밴/픽이 너무 빠르게 이뤄진 느낌이 강했습니다.
롤챔스에서 가장 기대감이 고조되는 부분 중 하나가, 영상으로 선수들끼리 도발하는 인터뷰 영상(물론 편집이지만요)이었는데, 그정도까진 아니더라도 경기전 집중시킬 만한 요소가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롤드컵 결승 전용 영상으로 말이지요..
그러나 이번은 "어 벌써?"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올만큼.. 2% 부족한 시작이었다고 느꼈습니다.
3. 우려하던 상황이 발생한 1,2경기
경기가 진행되고, 1,2경기가 광속으로 결판나버렸죠. 우려하던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사람들은 자리를 뜨기 시작하고, 관객석의 분위기도 다운되었습니다.
엄청난 격차에 의한 무력감? 이라고나 할까요.
1경기는 말할 것도 없고, 2경기는 아슬아슬한 장면이 여럿 나와서 그나마 나았습니다만..
인섹의 카직스가 탈론을 놓친 이후부터 엄청난 탄식이 이곳저곳에서 터져나오더니
대부분의 관객들이 환호도 없고, 집중도 안하는 그런 상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러다가 그 힘 많이 줬다는 야간 조명을 제대로 만끽하기도 전에 끝나는 거 아닌가 싶었습니다.
4. 관객 반응이 최고조였던 3경기
참 이상한 일이죠? 삼성의 홈그라운드인 한국에서, 로얄 응원이 그렇게 많았습니다.
불리한(약팀?) 팀이 강팀을 이기는 것을 보고싶어하는 심리였을까요?
인섹의 람머스 픽부터 심상치 않더니 1,2경기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삼성 화이트를 궁지에 몰던 로얄의 모습에 사람들이 환호성을 내지르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드래곤 한타에서 우지의 트리스타나가 날뛸 땐 우지! 우지! 이러는 소리도 많이 들었습니다. (적어도 다이아석에서는요.)
방송 영상은 어땠을 지 모르겠습니다만, 3경기 끝나고 로얄의 Victory 화면이 뜰 때 엄청난 박수가..
삼성 선수들이 보았다면 서글퍼질 정도의 반응이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삼성 선수들이 워낙 최종 보스같아서 그런 것일 겁니다.^^;)
5. 탄식이 나오던 다이브, 4경기
기대감이 최고조로 이르렀던 4경기, 인섹이 판테온을 픽하자 엄청난 환호성이 터지더군요.
그 기대감에 부응하듯 탑쪽에서 우지가 임프를 잡고, 봇에선 인섹이 날카로운 갱킹에 성공합니다.
분위기가 최고조에 이르던 시점, 봇에 쓴 판테온 궁 한 번과 댄디의 귀신같은 역갱..
탄식이 이곳저곳에서 튀어나오더니 그 이후로는 도미노 무너지듯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더군요..
그렇게 삼성 화이트가 우승을 거머쥐게 되었습니다.
6. 실망스러웠던 시상식과 마무리
시상식을 보는 내내, 저는 '이건 아닌데, 이건 정말 아닌데..' 하는 생각을 되뇌었습니다.
이건 롤챔스가 아니라, 롤드컵이고,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시상식의 소감자리는 언제나 봐왔던, 전용준씨의 토크쇼같은 느낌의 그런 소감 발표자리더라구요.
말그대로 한국인만 알아들을 수 있는 시상식. 롤챔스 결승 끝나면 항상 봐왔던 똑같은 장면들.
차라리 로얄이 우승했다면 전문 통역사가 있어야 했기에 좀 더 격식있는 소감 발표 자리가 되었을까요.
너무 가볍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특히나 이번엔 눈물도 없고 감동도 없고 재미도 없었구요. 롤드컵 끝난 거 맞나? 하는 생각이 날 정도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롤드컵의 마무리만큼은 라이엇에 맡겨야 하는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시상식과 소감 발표, 그리고 마무리 멘트까지 모두 전용준씨가 소화하니깐, 이게 롤드컵이 아니라 롤챔스 마무리 보는 듯한 기분이 들더라구요.
적어도 라이엇 부사장 브랜든 백 대표가 마무리 멘트를 했다면 어땠을 까 합니다.. 뭔가 그럴싸한 영어를 구사해서 말이죠.
아니면 그냥 몇마디라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7. 어리둥절한 삼성 선수들
시상식이 끝난 뒤 이매진 드래곤스의 추가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삼성 선수들은 아직 무대에서 내려오지도 않고 정식 인사도 하지 않은 상태인데 등장하는 이매진 드래곤스.
삼성 선수들은 어쩔 줄 몰라하다가 급하게 인사하고 내려가더군요..
생각이 많이 들게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이 무대의 주인공은 누구인가요? 선수들 아닌가요?
적어도 선수들에게 인사를 할 차례정도는 줘야 되지 않았나 싶어요. 온게임넷은 뭐가 그리 급헀던 걸까요.
어째 이매진 드래곤스의 콘서트에 이벤트 LOL 경기가 사이에 낀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8. 그리고 왠지 불쌍했던 이매진 드래곤스
온게임넷의 진행이 이토록 구리다보니 이매진 드래곤스의 추가 공연도 흥이 좀 덜 났습니다.
좋아하는 곡이었던 'Radioactive'를 불러서 기뻤습니다만, 왠지 그들이 롤드컵의 무대가 아니라 '온게임넷의 무대'에서 공연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느끼셨을 지 모르겠지만, 온게임넷의 카메라가 지나칠 정도로 이매진 드래곤스 멤버들을 비추었습니다. 심지어는 과도할 정도의 클로즈업도 한 컷 나왔었죠.
한국 특유의 '유명인 써먹기'는 지긋지긋할 정도로 봐왔지만, 오늘은 좀 도가 지나친 것이 아닌가해요. (실제로 제 좌측에 카메라가 1,2경기 내내 왔다갔다 했습니다.)
2경기 끝나고 이매진 드래곤스 멤버들은 자리를 떴는데요, 추가 공연 준비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일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9. 롤챔스같았던 롤드컵
다 보고 난 느낌은 딱 이거더라구요.
연출, 진행, 마무리 모든 것이 롤챔스스러웠습니다.
이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롤드컵 결승 무대는 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었어야 하지 않았을지.
해외 관중들도 정말 많이 오셨는데 그런 분들과 경기 시작전 응원 인터뷰같은거라도 좀 하던가.
매번하는 전병헌씨의 인터뷰가 왜 롤드컵의 자리에서까지 진행되어야 하는지 모르겠구요. (실은 거의 진저리납니다.)
전세계인들의 축제라는 느낌보단, 그냥 한국 롤챔스 결승같은 느낌이 너무 났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무리가 너무 아쉬웠습니다. 그냥 이매진 드래곤스가 알아서 마무리 해줄거야! 하는 느낌으로 끝낸 것 같아요.
이제 시즌 5를 대비하는 프리시즌이 돌아오는데, 차라리 프리시즌 업데이트 예고 영상이라도 멋있게 제작해서 보여주었다면 훨씬 좋았을 거 같습니다.
이매진 드래곤스의 마무리 공연은 좋았습니다만, 어쨌거나 LOL 최대의 축제와는 거리가 멀었던 건 사실이거든요..
(참고로 마무리 공연에서는 Warriors는 불리지 않았습니다.)
10. 마치며
최근 논란이 되었던 인천 아시안 게임의 실망스러운 운영이 떠오르면서..
이번 롤드컵 결승 무대는 앞으로 다시 한국에 개최될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생길 정도의 무대였습니다.
좌석 등급에 따른 입장열을 과도하게 구분한 운영부터, 무대 음향, 급한 진행/마무리 등 아쉬운 점이 많이 남았습니다.
전석 매진이라는 업적을 기록한 만큼, 만약 다음 롤드컵 개최를 또다시 한국에서 하게 된다면 그땐 꼭 오늘보다 나은, 보다 세계인들을 향한 무대를 볼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p.s 인섹의 람머스보다 기억에 남는건, 1경기 끝나고 이매진 드래곤스를 보러 사람들보다 더 많은 인파를 모았던 페이커.. (당연히 롤무대니까 그렇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