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제가 롤을 처음 시작한 때입니다.
그 전까지 도타만 근 7년동안 하다가 친하게 지내던 형이 도타랑 비슷한 게임이 있는데 저한테 잘 맞을거라고 말하며 소개시켜준 게임이 바로 롤이었습니다. 웹사이트 들어가서 그 형이 설명해주는 챔피언들을 보고 도타에 등장하는 영웅들과 비슷한 챔피언이 뭐가 있을까 해서 퍼지(Pudge)처럼 끌어오는 챔피언인 블리츠크랭크가 제가 롤 시작하고 가장 처음으로 잡아본 챔프였습니다. 그러다가 별로 흥미가 없어서 잡은 챔피언이 라이즈였고, 그 다음이 판테온이었습니다.
판테온은 아직도 생각나는게 궁극기의 능력을 이해하지 못해서 바로 옆에서 봇에게 맞고있는데 어버버 하다가 그 자리에서 궁극기를 시전했습니다. 똑같은 자리에다가요. 제가 응? 하고있는데 그거 보던 형이 집이 떠나가라 웃고난 뒤에 설명해줬습니다. AI 로 몇판하다가 역시 이런 게임은 사람이랑 붙어야 제맛이라고 생각하여 곧장 노말게임으로 들어갔습니다.
몇판하다가 제 적성에 맞는 캐릭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던 중에 '정글러' 라는 포지션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도타할 때는 암살자나 원딜류 영웅들을 즐겨했는데 도타에도 캠핑이라는 개념이 있었지만 한번도 해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이것저것 찾던 중에 제 첫 주캐였던 '워윅' 을 찾아냈구요. 늑대인간이라는 다소 진부하지만 포스있는 캐릭터. 하지만 당시 워윅은 정글링의 정석으로 불리던 챔피언이었습니다. 빠른 정글링, 6렙 이후 필킬을 약속하는 갱킹능력, 그리고 후반엔 탱킹/딜링/생존력 전부 탑에 들어갈만한 성능을 가진 챔피언이었구요.
저도 당시엔 게임에 쉽게 중독되는 때였던지라 롤에 적응하고 중독되는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금요일엔 약속은 일체 잡지 않고 토요일 아침까지 눈을 비벼가면서 플레이했죠. 4개월 가까이 워윅만 플레이하다가 슬슬 질릴 때쯤 다음팟 방송을 보고있는데 한 챔피언이 눈에 들어오더라구요. 장풍 날리고 날아가서 슬로우 걸고 몇대 툭툭치더니 화려한 발차기로 마무리하는 챔피언이었습니다. 한눈에 봐도 어려운 챔피언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당시 BJ 에게 그 챔피언의 이름을 물어봤고 그가 '리신' 이라는 챔피언임을 알았습니다.
물론 바로 지르지는 않았고, 유튜브를 통해서 여러가지 동영상을 보면서 어떤 챔피언인지 파악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 학생의 신분으로 하루하루 힘들게 살았던 때였지만 주저하지 않고 rp 로 질렀습니다.
리신은 저에게 있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rp 로 지른 챔피언이자, 삭제하기 바로 전판까지 플레이하던 챔피언이고, 횟수로만 따지면 500판 가까이 플레이한 챔피언이었습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리신을 터득하면서 연패에 연패를 거듭했고 최대 13연패까지 겪은 저는 심각하게 요놈을 포기하고 다른 챔피언으로 갈아탈까 생각했지만 결국 리신만 죽어라 파게 되었고 시즌2 때 리신으로 골드까지 찍는데 성공했습니다. 물론 밴 당할 때는 다른 챔피언도 섞어가면서 했지만요.
그렇게 대학생활을 롤로 불태우고 졸업 후에 부모님과 함께 살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약 1년간 사실 롤은 대회 하이라이트 동영상이나 유튜브로 가끔 챙겨보는게 전부였습니다. 막상 안하게 되니까 또 안 찾게 되더라구요. 어쩌다 가끔 플레이하게 되도 예전만큼의 재미도 없고 오히려 트롤링에 기분만 상해서 한두판하다가 끄는게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래도 보는 재미는 있어서 롤 인벤에서 대회 하이라이트 동영상도 챙겨보고 올스타전도 보면서 리신이 부각되는 현 메타에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저 스스로 리신이라는 챔피언에 대해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리신을 좋아하고 혹은 싫어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그때 13연패 했을 때 리신을 버렸으면 느낄 수 없었을 것이라며 안도했습니다.
마지막 게임을 리신으로 하면서 그래도 마무리는 멋있게 해야지 했지만 결국 패배했습니다. 사실 라이너들을 탓할 수 없을 정도로 저의 플레이가 워낙 말려서 채팅 내내 I'm sorry 만 치다가 끝난거 같아요. 허무하더군요. 그래도 2년 가까이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플레이한 챔피언인데 끝난 후 본 제 스코어는 2년이 아니라 마치 리신의 이해도가 거의 없는, 리신을 2번째로 플레이한 유저의 점수였습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만 나왔습니다. 용권 리신의 일러스트는 그렇게 강려크해 보이는데 말이죠.
그리고 방금 롤을 지웠습니다. 사실 예전부터 이제 게임은 더이상 하면 안되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게임을 즐기기만 하기는 제 성격이 그렇질 못하고, 그렇다고 마음껏 하자니 그것도 안되구요. 그래서 삭제하면 후련할 것 같았는데 그게 또 아니더라구요.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인사하려고 합니다.
내 승률 올려주느라 고생한 리신, 사놓고 플레이하지 못한 챔피언들, 몇번 플레이해보고 별로라고 느껴져서 눈길을 돌린 챔피언들. 모두 고맙고 미안합니다.
모데카이저, 잭스, 갱플랭크, 그레이브즈, 나서스, 녹턴, 누누, 라이즈, 렝가, 리신, 리븐, 마오카이, 문도박사, 브랜드, 블라디미르, 블리츠크랭크, 뽀삐, 쉔, 쉬바나, 신짜오, 신지드, 아리, 아무무, 아칼리, 애쉬, 오공, 올라프, 우디르, 워윅, 자르반, 카사딘, 케넨, 카타리나, 케일, 트런들, 피들스틱, 그리고 헤카림까지! 제 소환에 기쁘게 응해주고 승리의 단맛을 느끼게 해주고 패배의 쓴맛을 느끼게 해주며, 무엇보다 저를 즐겁게 해줘서 고마웠어요. 여러분의 리그에 승리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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