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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5/12/30 13:05:16
Name 윤여광
Subject [yoRR의 토막수필.#10]잔을 건네다.


  얼마나 많은 잔을 기울여왔는지 모르겠다. 이제 술 마셔도 되는 나이라고 좋다고 웃던게 어제 같은데 이제는 제법 그것을 지겹다고 마다할 만큼 속이 쓰리다. 항상 좋은 일로 잔을 받는 것 만은 아니었기에 우리가 만났던 기억 중에선 그리 좋지 않았던 날 역시 많았다. 다행스럽게도 그 일로 우리가 서로 싸우는 일은 없었지만 돌아가는 길에 축 처진 어깨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가끔은 자리에 나오지 않는 다른 이들이 밉기도 했다. 나름대로 상황이 그렇게 되어 나오지 못한 것이지만 우리에겐 그것이 핑계일 뿐이다. 공부 하루 덜 한다고 해서 시험 망치는 것 아니며 집을 비우고 나온다고 해서 도둑맞는 것 아니라며. 일단은 심하게 말하자면 이기적인 합리화로 나오지 못한 이들을 꾸중한다. 그래도 결국에는 웃으며 다음에 보자 하는 말로 훗날을 기약하는 것이 정석이다. 못 나온 이들의 빈 자리는 이미 내 옆에 앉아 있는 친구들과 채우면 그만이다. 언제까지 빈 자리만을 보며 한숨만 내쉴 수 없다는 것이 학교라는 울타리를 떠나 사회라는 큰 물에 나와 배우게 된 작은 보물이다.


  빈자리가 얼마나 큰 것인지. 그것은 하루 이틀이나마 외톨이로 지내본 사람이라면 뼈저리게 느낄 수 있는 아픔일 것이다. 짧게나마 고백하건대 내 중학교 시절 3년은 철저하게 외톨이였다. 그것이 나의 잘못이었든 다른 학우들의 잘못이었든 그런걸 판단하기 이전에 나에게 남은 상처가 너무 컸기에 우선은 곁에 지나가는 겨 뭍은 강아지라도 두고 싶어 안달이 났던 나였다. 학교를 한 단계 더 진학하면서 조금씩 느낀 것인데 지난 날의 내 아픔은 분명 스스로가 자초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변하기로. 그러나 마음만 변하자고 다짐했을 뿐이지 실상은 무엇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 줄 몰라 새로 진학한 학교에서 역시 다른 이들의 곁을 겉돌기 바빴다. 결과적으로 봤을 때 지금 이 순간에는 이렇게나 많은 이들이 내 곁에 있어 행복하지만 이제 와서 돌아보자면 아찔하기 그지 없다. 그래서 이 순간이 더 감사하다. 술이 달게 느껴지는 것 또한 이 때문일 것이다.
한 잔 두 잔 손이 오가고 나면 다들 얼굴에 웃음꽃이 가득하다. 무엇이 그리 좋은 것인지 그저 웃는다. 집안에 경사라도 생겼느냐 라고 물으면 아니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그럼 뭐가 그리 좋으냐고 재차 물으면 따로 이유가 있어서 웃겠느냐고 되묻는다. 맞는 말이긴 하다. 나 역시 웃는데 이유가 있어서 웃었을까. 그저 같이 잔 받아줄 이들이 있기에 웃는것이지.


  이제 해가 지고 뜨는 것이 몇 번의 반복 후엔 힘들게 달려온 1년이 끝이 난다. 그리고 곧바로 다시 시작되는 달리기. 쉴 여유는 없다. 이제는 좀 더 본격적으로 스스로의 삶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하며 그럴수록 곁에 있는 이들에게 마음이 돌아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앞이 아니라 옆을 봐줬으면 한다. 혼자서 힘든 길을 헤쳐나가려 하지 말고 옆에서 같이 달리는 이들을 바라보며 그들이 들려주는 도움말을 빌려 조금이라도 쉽게 달려나갔으면 한다. 사는 것은 혼자서도 얼마든지 해낼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일단은 다 서로 좋자고 살자는 것 아니겠는가. 높이 올라가는 것도 좋겠지만 자신이 밟고 서 있는 지층을 단단히 다지고 위로 올라갈 사다리를 잡아 줄 벗들이 삶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 올 한해 이것 하나 안고 다음으로 이어질 달리기를 준비하고 있다. 스스로 얻은 작은 진실 하나가 앞으로 이어질 내 뜀박질에 큰 활력소가 되리라 믿는다. 그리고 이 짧은 글의 펜을 놓는 대로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나와 같이 다음을 준비하고 있을 내 벗들에게 건넨다. 말로 전하지 못한 감사와 부끄러워 가슴 속에 담아두기만 한 사랑을 한 가득 담은 잔을. 한 해의 마무리는 이것 하나면 충분하다. 더불어 새로운 시작에 앞선 긴장 마저 해소시키는. 달디 단 이 한 잔의 정.


  이제 또 달려야 할 시간이다.


PS)이제 내일 모레네요. 2006년 1월 1일. 이번 주 내내 여기 저기 불려다니느라 키보드 앞에 앉을 시간이 없었네요. 부족한 글이나마 기다려주신 분들께 죄송합니다..ㅠㅠ
속이 많이 쓰리네요. 역시 술은 적당히 먹어야 제일 좋은 것 같아요. 후응. pgr21.com 식구분들 한 해 마무리 잘 하시구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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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미
05/12/30 13:34
수정 아이콘
미성년자이지만-_-;; 글이 너무 좋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kiss the tears
05/12/30 15:32
수정 아이콘
윤여광님 글에 늘 같은 댓글만 써서 부끄럽지만

오늘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

윤여광님 글 읽을 때마다 책을 읽고 싶은 생각이 물씬 물씬

들곤 합니다...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05/12/30 16:01
수정 아이콘
크헉.. 윤여광님 필력에는 그저 감탄뿐입니다.
언제나 좋은 글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올 한해 마무리 잘 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Juliett November
05/12/30 16:01
수정 아이콘
제가 여기 오는 몇 안되는 이유 중에 하나에요.. 후후...

좋은 글 감사합니다.
You.Sin.Young.
05/12/30 16:55
수정 아이콘
건배~!
05/12/30 17:49
수정 아이콘
헤에. 또 달립시다~!
05/12/30 18:37
수정 아이콘
오.. 새해부터 죽음의 스케줄이 기다리고 있는 저에게 '이제 또 달려야 할 시간이다.'는 너무 무서운 말이네요.;;
여광님의 좋은 글에도 건배 한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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