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집에 다녀왔습니다. 역시 집이 좋더군요. 똑같은 밥, 똑같은 물, 똑같은 잠자리인데 왜 밥도 잠도 그리 꿀처럼 단지요. ^^ 원래는 어제 올라와야 했던 건데, 너무 가기가 싫어서 - 다행히 수업은 휴강이었습니다만 - 과외하는 친구들에게 전화로 양해를 구하고 하루 더 눌러 앉았다가 왔습니다. 이러다가 짤리는 거나 아닌지 모르겠네요 ^^a)
오랜만에 저녁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강대상에 계신 아빠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는 걸 보니, 제가 정말 오랜만에 오긴 했나 봅니다. 떠날 때나 지금이나 낯익은 분들이, 초겨울 주일 밤 예배이지만 썰렁하지 않을 만큼 드문드문 자리를 지켜 주고 계셨습니다. 증축한 지 얼마 안 되어, 아직 약한 나무 향기가 남아 있는 예배당의 따뜻한 공기.
그날 저녁 예배는 좀 특별했습니다. 제가 'xx 언니'라 부르는 그녀가, 6개월 간의 단기 선교 활동을 마치고 네팔에서 돌아왔거든요. ^^ 좀은 까매진 듯한 얼굴, 하지만 늘 보는 사람까지 행복하게 만들 만큼, 활짝 웃고 있는 그 얼굴 그대로입니다. 성가대에서는 시원시원한 하이 소프라노로, 청년부에서는 모두를 포복절도하게 만드는 재치와 밝은 성격으로, 그리고 훤칠한 키와 귀염성 가득한 얼굴까지... 늘 저를, 몹시도 부럽게 만들었던 그녀.
평소대로라면 설교가 시작될 시간이었지만, 그날은 그녀가 6개월 동안 네팔에서 지내면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해 주기로 되었습니다. 교회 사람들 모두가 좋아라 하는 그녀입니다. 강대상에서 물러 앉으신 아빠도 싱글벙글 웃고만 계시더군요. ^^ 깨알 같은 글씨로 이것저것 빼곡이 적어놓은 종이 한 장을 들고, 뻘쭘했는지 귀밑에 걸리도록 웃음을 머금은 채로 그녀가 등장했습니다. 화통하고 씩씩한 걸로 둘째 가라면 서러울 그녀도, 엄연히 공예배 설교 시간에 대중 앞에 서려니 나름대로 많이 떨렸나 봅니다. <왜 이렇게 긴장이 되는지...> 하면서 연신 빨개진 얼굴을 손부채로 부치던 모습이 어찌나 귀여워 보이던지요. 히히히 ^ㅠ^
그녀가 갔던 곳은,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도 버스를 타고 이틀을 가야 하는 '도티'라는 작은 마을입니다. 강에 다리를 건설하러 왔던 한국 사람들이, 공사중의 편의를 위해 한국에서 보건사를 초빙해다가 처음 만든 의무실이 이제는 도티에서 제일 큰 병원이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외과의사 일을 하시던 장로님 내외분이 그곳에서 봉사를 하고 계십니다. <25세 때까지는 나를 위해서 살았고, 그 후 25년 동안은 가족을 위해서 살았으니, 이제 그 후의 세월은 하나님을 위해서 살자> 라고 약속하신 두 분은, 장로님이 딱 50세 되던 해 한국에서의 생활을 다 정리하고 도티로 오셨다고 합니다. 철마다 아이들에게 무료로 백신을 놓아 주고, 난산에 시달리는 산모들에게서 아이를 받아주고, 머리 안 감기로 유명한 그 동네 사람들 머리도 감겨주고... 이도 잡아주면서^^ 그렇게 살고 계시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약사 일을 하는 틈틈이, 토요일마다 선교 교육을 받으러 다녔던 그녀는 그곳 병원에서 약국 일을 맡아 하면서, 한시간쯤 걸어가야 하는 이웃 마을까지 가서 아이들과 함께 예배도 드리고, 율동도 하고, 한국 어느 교회의 지원으로 만들어진 작은 학교 일을 돕기도 하면서 알찬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어느덧 작정했던 6개월이 다 되어 한국으로 돌아올 때, 그 의사 장로님이 그러셨다는군요. < xx야, 아무래도 네가 한번 더 와야 되겠다> 라고요. 그 말 듣고, 겉으로는 싫은 척 힘든 척 엄살을 부렸다면서 밝게 웃던 그녀는 - 이제 다음 주일 다시 그곳으로 떠납니다. 이번에는 1년 기한으로요.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시장에서 작은 야채 가게를 하시면서 그녀와 그녀의 오빠 두 남매를 대학원까지 가르치셨죠. 그녀의 오빠가 젊은 나이에 박사학위까지 따고 교수로 임용되었을 때, 교회가 온통 잔치 분위기였던 그 날이 생각나네요. ^^ 그녀 역시,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 졸업하고, 그녀를 아끼는 교수님들의 도움으로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원 진학해서 모두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더니,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약국마다 그 서글서글한 성격에 반해 <저...그 xx 언니 오늘 안 왔어요? >하고 부러 찾는 손님들이 많아서, 같은 또래 약사들보다 훨씬 더 받는다는 ^ㅇ^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답니다.
저만 만나면 이렇게 저렇게 놀려 먹는 걸 몹시 즐거워했던 - 이 오빠 최근에 결혼했습니다 오해 없으시길 ^^ - 그 오빠가, 또 세상 없이 쾌활하고 밝아만 보이던 그녀가, 그렇게 자랐다는 걸 안 건 최근의 일이었습니다. 많이 놀랐죠. 많이 부끄럽기도 했구요. 대학교 시절, <아... 만원만, 딱 만원만 있으면 그 책을 사서 볼 수 있을 텐데...> 했다는 그녀. 한달에 백만원만 벌 수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는 그녀. 내가 늘 보았던 그 밝고 명랑하기만 한 모습 뒤로, 아무도 없는 어두운 교회에서 혼자 무릎 꿇고 앉아 울면서 기도했다는 그녀.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라는 오래된 말처럼, 이제 환한 웃음으로 내 앞에 서서, 스스로 일군 행복만큼 나누어주고 싶다며 <저 다음주에 출국해요, 기도해 주세요> 라고 말하던 그녀. 그녀 이야기.
그녀는 정말... 멋있었습니다. ^ㅡ^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