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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3/10/22 03:36:16
Name addict.
Subject [잡담] 남자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남자답다. 사나이다. 와 같은 표현을 싫어합니다.
남성성.으로 대변되는 폭력성과 무식함(?)을 멀리 하고픈, 연약한 서생이니까요..
이상하게 어릴 때부터 남자라면..이래야 한다..머 이런 표현에 질색했습니다.
유일하게 제 입에서 '남자라면...'이란 대사가 나올 때는..당구장에서가 유일합니다.
(지고 있을 때 항상 상대편에게 그러거든요..'남자라면 이 상황에서 투가락 빵꾸지..--++')
아..생각해보니..고스톱 칠때도 쓰는 표현이군요..'남자라면...못 먹어도 고~지..--+'

그러나, 남성성이 전제하는 부정적인 면을 도외시한다면..
남자다움의 매력.은 생물학적 성을 넘어서서 참으로 사람의 맘을 끌어당깁니다.

최근 방송경기에 대한 애정이 많이 식었다는 것을 느낍니다.
경기 녹화하면서 하나하나 라벨을 붙여가며 쌓아두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시간 되면 보고, 안 되면 넘어가는..
물론, 요새는 모니터 새로 구입하면서 PIP기능이 있는 걸 고집하여..
항상 온게임넷과 겜비씨를 틀어놓고 있으니..
보진 않아도..마치 라디오처럼 듣게 됩니다만..
이 생활(?)이 좀 되다 보니..굳이 화면을 안 봐고..중계만 들어도 대강 감은 다 잡히더군요.

암튼, 이렇게 성의없게 리그를 넘어가는 요즘,  
그 중에서도 제 눈과 귀와 마음을 확 끌어당겼던 게임이 있습니다.
바로 온게임넷 프로리그 1차 결승의 마지막 게임.
박용욱 선수와 나도현 선수의 경기가 그랬습니다.

***

경기 초반 나도현 선수의 실수에 의해 기울어지기 시작하여,
결국엔 박용욱 선수의 낙승으로 끝난 그 경기가 왜 제 맘속에 그렇게 남았을까요.
특별히 드라마틱한 전개가 없었던 그 경기에서,
전 머랄까...사나이의 오기?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죠.

그냥 그렇게 끝나는 구나...싶었을 때..
갑자기 떠오르는 나도현 선수의 배럭이 입구를 틀어 막는 순간..
가장 먼저는 의문이...(지금이라도 나가야 되지 않을까? 입구 막고 무슨 희망이 있다는 거지?)
그 다음 준비되는 핵을 보면서는 전율이 느껴졌습니다.
영화의 몽타쥬 장면처럼 북한의 벼랑끝 전략이 떠오르는 게 제 이상한 상상력의 발로인지는 몰라도..
옥쇄를 준비하는 마지막 전사의 비분강개가 화면에서 느껴지더군요.

북한의 핵이야, 나름대로 협상의 카드로 위협의 수단으로 정말 벼랑끝에 몰린..
그들의 체제를 지켜주는 유용한 수단이었지만,
나도현 선수의 핵은 그저 단순한 시위용에 불과합니다.
기울어진 경기와 확정되가는 팀의 패배를 뒤집을 수 있는 결정적인 카드로선..
너무 미약했죠.

몰입이 되는, 그리고 마음을 끄는 게임은 2차원 평면에 도트에 불과한 그래픽에..
선수들의 마음이 투영될 때, 그것이 보는 사람에게 전달될 때 가능한 것 같습니다.
그 순간에 저에게 전해졌던 나도현 선수의 마음..
자신의 실수에 대한 자책, 팀의 마지막 버팀목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비애감.
그.러.나. 이대로 맥없이 쓰러지지 않겠다는 오.기.
홀연히 날아서 입구를 틀어막던 배럭은 저에게 그렇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전 중얼거렸죠...
나도현. 그래. 넌 남자다.

****

전위.의 선택에 대해선 당연히 논란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스타크래프트에 종족에 대한 애정과 몰입감, 자기 동일시가 없다면..
이토록 오래 장수할 순 없었겠죠.

사나이라면...도전해 봐야 하지 않겠느냐..
프로라면...이기는게 우선이지 않겠느냐..

어느 말도 틀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전위는 후자를 선택했죠.
아마 종족에 대한 애착과 자존심이 그 누구보다 높았을 그의 선택은..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더 큰 용기를 발휘한 것으로도 보입니다.

계속해서 최고에 등극하지 못해온 한빛팀의 최근 모습.
리그에 혼자 남은 저그유저인 동시에 누구도 이루지 못했던 저그우승의 목표.
눈물을 흘리며 GG를 치고 나갔던 동료에 대한 의무감.
무엇보다, 스스로 너무나 넘어서고 싶어했을 4강, 그 위의 계단.
이 모든 것을 위해서, 누가 머라하기 전에 스스로 느끼고 있을 아쉬움을 뒤로 하는 모습 또한..
참 사.나.이. 답습니다.

***

공교롭게도 두 한빛 선수에게 최근 남자의 향기(--;;;;)를 느꼈네요. ^^
특별히 누구의 팬도 아니고, 특정 종족의 게이머도 아닌 저라서 이렇게 여유가 넘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만화의 한장면으로 글을 마치겠습니다.
아시는 분은 다 아실 만한 만화..아다치 미츠루의 'H2'의 한장면입니다..

절친한 친구이자 라이벌인 히로와 히데오..
전 일본의 매스컴이 주목하고..
어릴때 소꼽친구인 히카리의 사랑까지 걸린..
그들의 고교 마지막 갑자원의 시합..을 앞두고..서로의 대진을 뽑은 날..
역시 그 둘의 친구인 노다가 히데오와 대화를 합니다.

"어쨋든 3회전까지는 못 보겠구나.."
"서두를 것 없어..결승전까지 가는 길 어딘가에서 반드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네가 하는 말이니까 틀림없겠군.."
"그래..히로의 공은 누구도 칠 수 없어..........너 라도."
"......네가 하는 말이니까 틀림없겠군.."
"...히데오."
"....."
"....즐겨보자. 그냥 공놀이자나."


즐길 수 없는 상황에서 즐기는 것.
그게 진정한 프로고, 팬이겠죠.

이상 Addict.이었습니다.
항상 GL하세요..^^
(역시 인생은 한방.이라는 생각이 나이들수록..쿨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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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빛노을
03/10/22 03:39
수정 아이콘
크아~ 중독님 어쩜 이리 글을 잘쓰시는지! 게다가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만화인 H2까지ㅡㅜ 개인적으로 H2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4H가 아닌 노다 아쯔시라고 생각합니다^^
안전제일
03/10/22 05:50
수정 아이콘
치열한 그들을 치열하다는 이유로 좋아하는데 그들이 조금더 치열하게 싸우겠다는데에 열광하지 않을수 없지요.
그네들이 치열하게 싸우고 그 승부에 집착하고 그리고 다시 싸우는게 좋습니다.
그들의 1승 1패에 실망하고 열광하면서 스트레스도 받는것 같습니다만 아직은 즐거움이 더 큽니다.^_^
(단순한 인간인 탓인지 복잡한 드라마보다는 게임이 더 좋습니다.
오늘 아침에 어머님과 드라마를 안보는 이유에 관해서 이야기한 영향일까요? 으하하하)
Fullhope
03/10/22 08:13
수정 아이콘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남자라면 다대를 쳐야......^^)
신성불가침
03/10/22 08:20
수정 아이콘
흠.. 인생은 한방..^^ 그럼 인생은 한의원인가 -_-a 그런데 '로또'와 같은 한방도 있겠지만.. 그 한방을 터뜨리기 위해.. 그 순간을 위해 쌓아온 ㄴ력을 간과해서는 안되겠죠~
마리양의모티
03/10/22 09:26
수정 아이콘
요즘 제 삶의 모토가 인생 한방입니다...
한방만 날리면 모두 바꾸련다...
scent of tea
03/10/22 10:18
수정 아이콘
저도 남자다운..남자라면..등등의 말들을 싫어합니다만, addict님의 글을 읽고 보니 무조건 싫어할게 아니라 긍정적인 남성성 (그리고 여성성)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네요 ^^ 좋은 글입니다. 요즘엔 남성성과 여성성을 고루갖춘 완성형 인간이 필요한 시대라고하죠..그런 의미에서 긍정적인 남성성, 여성성에 대한 재발견이 의미있는게 아닐까하고..주저리 주저리 헛소리를...;;;;;
미남불패
03/10/22 11:35
수정 아이콘
여성성을 존중해 주기만 한다면야 남성성을 내세우는것도 괜찮을듯..^^
가위바위보 할때 '남자라면 주먹'이라 하고 보를 내면 편하기도 하고..
언뜻 유재석
03/10/22 11:54
수정 아이콘
남자라면 고추짬뽕 곱배기~ ㅠ.ㅠ
03/10/22 12:37
수정 아이콘
전 노다란 케릭터가 참 좋았는데요..
명 대사 "안경낀 포수는 조심해야 합니다"
이뿌니사과
03/10/22 12:57
수정 아이콘
님글도, H2도 넘 넘 넘 넘 좋습니다.
저도 남자니까~ 머라머라 하는거 정말 싫어합니다만,
(저는 남자 아닙니다만은 --;; )
종종 말씀대로 남자의향기.를 느낄때 +_+ 넘 좋습니다.
산넘어배추
03/10/22 15:02
수정 아이콘
남자라면 여자가 최고죠
미소가득
03/10/22 15:02
수정 아이콘
그냥 평범했던, 어떻게 보면 시시하기도 했던 경기가 어떤 사람에게는 이토록 깊은 인상과 감명을 남길 수도 있다는 사실... 그 사실 때문에 선수들은 마지막 힘까지 짜내어 최선을 다한 경기에 대해 승패에 상관없이 자부심을 느껴야 될 것 같습니다^^
선수 자신에겐 아쉽기만 한, 다시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경기내용이 누군가에겐 삶의 진실까지 깨닫게 만들 수 있군요^^
그런 경기를 만들어내는 선수들도, 그리고 평범함 속에서 비범함을 발견하시는 addict님도 멋진 분들입니다^^
좋은 글 자주 부탁드릴께요^^
본호라이즌
03/10/22 15:38
수정 아이콘
글 자체는 멋진 선수들 이야기이지만, '남자다움' 에 대한 것도 한번쯤 생각해 볼만한 것이네요. 예전에 Blackthought 님이 쓰신 글인 '소년을 위로해줘' 란 게시물을 보시길 추천합니다. 첨부파일로 음악도 올려져 있는데, 주위에서 남자다움을 강요하는게 싫다는 생각을 담은 힙합음악이에요. Kebee 님은 정말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가사에 멋진 라임을 담아내는 능력은 최고라고 생각하네요. 생각이 많은 분이신듯.
설탕속개미
03/10/22 16:10
수정 아이콘
함락당한 개마고원서 펼쳐지는 나도현선수의 오기는 공감 100%입니다.
Mechanic Terran
03/10/22 17:32
수정 아이콘
산넘어배추님... GG!
나루터
03/10/22 17:52
수정 아이콘
글 정말 멋집니다~ㅠ_ㅠ............
그나저나 전 아무도 절 여자로 봐주질 않으니.....(.......)
03/10/23 00:27
수정 아이콘
가슴뿌듯하게 만드는 글입니다 ^^ 여러가지글을 써주셨는데요.. 남자이기 때문에.. ~을 해야된다 라는건 저도 싫어하지만.. 넌 진정한 사나이다.. 넌 진정한 남자야.. 라는말은 그게 진짜 남자라서 하는말이 아닌 그 안에 포함된 속뜻이.. 말로 표현할수 없는 그런 말이 포함되어 있겠죠.. ^.^;; 무슨말인지 ㅋㄷ 만화 "원피스"에서도 그렇습니다.. 남자의 로망~~ 그리고 사나이 어쩌고 말들이 많이 나오죠.. 개인적으로 원피스 만화 참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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