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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0/13 01:00
황제와 치우 중국과 만주를 다스리며 최종전투에 황제가 이겻다는 내용이조
제가알기론 치우에 관한 내용은 200줄을 못넘긴다고 하내여 치우에 관한 애기라면 바람을다스리는 무기로 황제군을 곤경에 처하게 햇다는 내용 등등 잇는데 거의 신화에 가까운 이야기입니다.
03/10/13 02:14
얼마전 "퇴마록"으로 유명하신 이우혁작가님께서 "치우천왕기"이라는 소설을 내놓았습니다. 제목에서 알수있듯이 치우천왕을 주인공으로 세운 소설인데 작가의 말을 따르면 이소설을 준비하면서 오랬동안 치우천황에 관한 조사를 했지만 위의님의 말처럼 치우천왕에 관한글이 채 200줄도안되며 태반이 중복되며 너무 신화적으로 묘사한글이 라고합니다.
그래서 치우천왕은 그저 야사적인 애기인걸로 알려졌지만 작가의 말에 따르면 치우천왕은 실제 존재한 인물이며 중국문헌에서는 치우천황과 황제와의 싸움에서 황제가 이겼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치우천왕이 이겼을것이라고 추측하더군요. ("치우천황기" 책에 그근거에 대해 자세히나와있습니다.) 현제 전해오는 치우천왕에 관한자료가 너무도 적어 치우천왕에 관한 새로운유물이 발견이 이루어지지않는이상 치우천왕에대해 더알수없는걸로 알고있고 작가도 중국쪽에서 치우천황을 중국인으로 편입시킬려고 움진다고 들었습니다. (고구려를 중국사에 편입할려는것과 같은맥락으로 보입니다.) 보다 자세한 치우천왕에 관한 애기를 듣고싶으면 이우혁님의 "치우천왕기"를 읽어보시면 나와있습니다.
03/10/13 02:27
사실 지금 많은 젊은 네티즌들이 알고 있는, 치우천황을 포함한 우리나라 고대사 이야기는 역사연구서가 아니라 소설책에서 기인합니다. 이우혁 씨가 그의 소설 퇴마록에서 한단고기(또는 환단고기. 같은 책을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겁니다.)를 비롯해 이런저런 서적들을 바탕으로 가공해 낸 이야기를 절대적 진리인 양 믿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게 참... 소설이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어 기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서글프기도 합니다.
일단 한단고기는 남아 있는 역사서 중 유일하게 단군조선의 47대 단군 모두의 이름이 명기되어 있는 엄청난 물건입니다만...... [생구라]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책입니다. 그 근거를 들자면 정말 많습니다만 일단 생략하도록 하고, 보통 학계에서는 이 책이 1940년즈음에 '창작'되었을 것이라 봅니다. 계연수, 또는 이유립이라는 이에 의해 창작된 것으로 보고 있지요. 아마 당시 일제 치하에서 괴로워하는 우리 민족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기 위해 지은 책으로 짐작됩니다. 사실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역사적 마스터베이션의 결과물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일본의 [일본서기]와 비슷한 위치에 선 서적이라고 할까요. 아, [일본서기]가 바로 위 글에서 어리버리 님이 언급한 '소설같은 역사책'입니다.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는 책이지요. 이건 단지 제 의견이지만, 치우천황 이야기는 역사보다는 신화의 영역에 더 가까운 이야기리라 봅니다. 물론 신화는 역사상의 사건들을 함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화가 역사가 될 수는 없지요. 물론 일부 민족주의 계열 사학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우리나라의 금속기 시작이 매우 빨랐으며 중국 민족을 밀어내고 중국 대륙을 지배하였고 티벳 지역에까지 진출한 거대한 쥬신(조선) 제국을 건설했었는지도 모릅니다. 원래 고대사라는 게 사료는 적고 믿을 만한 사료는 더욱 적으며, 온갖 추측이 난무하는 영역이라서 말입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가능성]일 뿐입니다. 가능성을 진실로 치부해 버려서는 곤란합니다.
03/10/13 02:38
글곰님의 말씀에 깊이 동의합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환단고기같은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만약 우리나라가 과거에 그렇게 큰 제국을 건설했다고 하더라도, 오늘날 우리에게 남는것이 무얼일까요? 그렇게 큰 제국이었던 사실이 자랑스러운 것인지.. 그리고 그게 우리가 예전에 가지고 있던 영토니까 다시 빼앗자는 것인지, 전 하나도 자랑스럽지 않고 오히려 위험하게만 보입니다. 과거는 과거일 뿐입니다. 역사를 공부하는 목적은 우리가 어디에서 왔으며, 지금 왜 이렇게 살고 있는가를 알기 위함이며, 그를 바탕으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지는 고민하는 것이지, 과거의 찬란했던 역사를 상기하며 자부심을 느끼거나 과거로 돌아가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03/10/13 02:50
역사관. 즉, 사관이라는 말이 존재하는 이유는, 과거의 일이기 때문에 정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료들이 이야기 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기 어려우며(지명이 없어진 경우도 있고, 있더라도 다른곳을 지칭하기도하고, 같은 문자가 다른 뜻을 보이기도하고...), 그 자료들의 신빙성도 의심해야하죠.
과거에 대해 우리는 너무 낙관적인 해석만을 늘어놓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해방이후 '식민사관'에 대한 반발로 '민족사관'이 주류를 이뤘기 때문이죠. 과거가 불확실하기에, 어짜피 그럴거 좋게 해석하며, 그런것을 견제하는 사람들에겐 '매국노'라는 딱지를 붙이지요... 과거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하는 지는, 과거보다도 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태도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너무 비관적인 것도, 낙관적인 것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가장 가능성 높은 것을 예상하며 대처하는 것이 가장 좋지요. 과거에 대한 우리의 태도도 같을 것입니다.
03/10/13 03:33
우리는 일제의 침략과 오랑캐의 침략을 나쁘게 보는 사회를 배우면서 동시에 고조선과 고구려의 영토확장을 자랑스럽게 배웁니다. 어떻게 보면 참으로 아이러니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역사에 대한 이중잣대는 그다지 바르지 않다고 봅니다. 그리고 과거 청동기 시대 민족이라는 개념이 과연 존재했는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03/10/13 09:02
'민족'이라는 개념... 이것만큼 애매하기 짝이 없고 역사를 통해 악용되어 온 개념도 없지요. 특히 우리민족에 한해서는 더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인 '민족'의 형성에 관해서 말할때는 한층 조심스러워야 합니다.
물론 청동기 시대 이전에 '민족'이 형성되지 않았을수는 있지만 국가는 충분히 성립될 수 있습니다. 청동기 시대 이전에는 무조건 원시시대, 부족국가라고 치부한다면 아메리카의 마야문명은 꼴이 우스워 집니다. 그들은 석기만을 가지고도 최고의 문명을 자랑했으니깐요,,
03/10/13 09:06
우리가 청동기시대에 강성한 부족국가를 이루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죠.
강화도 및 경기도, 함경도 일대에 전 세계의 2/3 가량이 산재해 있는 고인돌과 중국과는 다른 세형동검을 사용했다는 두 가지 만으로도.. 충분히 증명 할 수 있을거 같습니다.
03/10/13 09:53
독일 통일때 당시 소련과 미국등에 약속한것중에서 2차대전이전의 독일 영토에 대한 영구적이 포기조항이 있는것으로 압니다.
프로이센이라는 나라를 들어보셨겠지요??... 독일 통일을 했던 나라인데.. 그 프로이센이라는곳은 지금 폴란드 영토랍니다.. 소련이 2차대전에서 승리한후에 폴란드의 동쪽영토를 가져가면서 그만큼 독일에서 떼어내어서 폴란드에 귀속시켜준거죠... 아마 우리가 통일을 할때.... 중국이 이런 비슷한 조건을 들이밀것같습니다.
03/10/13 11:51
어리버리님 글 잘 읽었습니다. ^^ 밑에 글에 코멘트가 안 달아지더군요. 저도 글을 올리고 나서 놀랬습니다. (항즐이님께 삭제부탁을 드렸습니다만 ㅠ_ㅠ;) 그리고 '고구려는 중국사인가' 에 대한 저의 생각은 제가 올린 저 글속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심히 어휘력이 딸려서 그저 여러 글을 조금 모아왔을 뿐입니다.) 치우천황의 이야기가 조금 커진 듯 싶은데 저는 이 부분만을 확대해석해서 저 글의 내용을 이 한쪽으로 치부해 버릴려고 한 것이 아님을 말씀드리고 싶어 로그인을 하게 되었네요. ^^ 여하튼 여러 좋은 말씀들 잘 보고 갑니다. (전 다시 그럼 도서관으로-_-;) 그리고 치우천황에 관한 이야기는 '그냥 이런 부분의 이야기도 있다...' 라고 올렸던 것인데 말이죠. <- 너무 미워하지 말아주세요 ㅠ_ㅠ;
03/10/13 12:25
윗분들의 말씀에 모두 공감을 하지만...한가지 안타까운 것이 있습니다.
외국은 자신들의 역사를 끌어올리기 바쁩니다. 가까운 중국과 일본만 봐도 그렇습니다. 우리나라는 반면 많은 외침으로 역사적 유산들이 많이 소실되어 현대의 실증주의로는 성립할 수 없는 이론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단지 야사요 신화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은 자국 역사에 지나치게 냉정한 것이 아닌가요? ...가끔은 우리가 우리 역사를 지나치게 깎아내리기만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연개소문이 당의 수도 장안에 입성하여 당태종의 항복을 받았다는 등-_-; 터무니없는 이야기야 그렇다고 쳐도, 중국의 황제는 신화적인 인물이지만 분명 중국의 국사에서 가르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위인전도 많이 나와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솔직히 치우천황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단군의 존재조차도 부정당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적어도 단군이란 존재는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긴 역사적 고증이 덜 되었다고 단군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보다는 종교적 무지몽매에 빠져 우상숭배니 뭐니 하면서 단군동상 목 잘라가는 인간들이 훨씬 많아보이긴 합니다만.
03/10/13 13:15
우리가 고구려를 계승했음을 의심하지 않았고...남북국시대의 중요한 축을 이루었던...발해에 대해 중국은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서 중국영토임을...러시아는 러시아 나름대로 타당한 이류를 들어서 러시아 영토임을 주장한다더군요...사료에 대해 어떤 사관을 가지고 접근하느냐에 따라서 같은 역사에 대한 해석도 천지차이가 될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03/10/13 14:26
어제 일요 스페셜을 보았는데 (스타 하면서 띄엄띄엄 보았지요..)
거기서 고구려 전문가 분이 맨 마지막 코멘트 하신 것이 생각 납니다. "역사가 없는 민족은 미래도 없기 때문입니다..." 대단한 감동을 -0-;; 우리민족은 좀더 우리의 역사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 듯 합니다. 이제 내년 대학 입시 부터는 이과 학생들은 국사를 거의 포기해도 상관 없는데.. 이는 정말 심각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03/10/13 16:35
여러 분들이 많은 글을 올리셨네요. 고구려를 중국사로 볼 것 인가, 한국사로 볼 것인가. 이문제는 기준점을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서 다른 결론이 나오게 될겁니다.
현재 중국사학계는 지역을 중심으로 국사의 범위를 정하면서, 현재 중국의 영토는 모두 중국의 역사이다. 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현재, 다민족 국가인 중국의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한 한 방편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여러모로, 지역 중심의 역사관을 펼치는 데에는 논리상 오류가 있지만, 그렇게 주장하고 있는 것을 실리의 측면에서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닙니다. 한편, 우리나라는 좀더 모호한 기준인 한국인의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해서 국사의 범위를 설정하고 있습니다. 한민족의 역사라는 말도 쓰기는 하지만, 민족이라는 말로 모든 것을 설명하기에는 종족상, 언어상, 문화상 고조선과 고구려의 역사를 국사로 보는데는 많은 문제점이 존재합니다. (특히, 고조선의 경우) 결국, 역사를 이해하는 데에는 관점과 기준이 매우 중요한 겁니다. 그리고, 다양한 역사관에 대해서 반드시 옳다, 그라다는 말하는 것은 쉽지 않고, 그다지 실익도 없다고 봅니다. 단지, 우리 나라의 역사를 공부하는 데에서 한번쯤 되집고 넘어갔으면 하는 것은, 국사에 애국이라는 감정을 너무 많이 집어넣지 말았으면 하는 겁니다. 가끔 일요 스페셜은 너무 감정적으로 문제를 다루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때가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역사를 배우고, 그리고 키워나가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그 자세가 배타적이고, 외골수적이어서는 안 될겁니다. 중국의 입장을 비난할 필요는 그다지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고구려와 고조선을 한국사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좀더 체계적으로 그 내용을 연구해나가는 자세가 필요하겠지요. 일제를 사이에 두고 나서부터 한국사학계는 약간 민족, 애국 에 집착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좀 더 실질적인 눈을 가지고 학문을 하는 것이 일단 학문으로서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P.S. 한국과 중국, 러시아, 일본은 각각 요동지역을 가지고 각각 다른 역구결과를 내놓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무래도 요동이 이전까지는 다른 역사적 실체였기 때문이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현재의 시각에서 볼 때는 요동은 독립된 역사적 실체가 아니지만, 몇백년 전 몇천년 전의 시각에서는 요동은 이들 국가와는 다른 또 하나의 역사적 실체의 하나로 볼 수 있는 여러가지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03/10/13 23:29
안녕하세요. pgr21에 처음으로 글을 올립니다. 전 고대사전공자가 아니어서 현재 고대사학계의 입장이 어떻게 정리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하지만. 이 문제와 관련하여 고대사 및 근현대사의 대가들이 고대사 연구에 새롭게 매진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다음의 글은 제가 작년 여름 중국 연변에 갔을 때 구입한 『회고와 전망』이라는 책에 실린 논문입니다. 90년대 후반에 나온 글이라 현재 중국 역사학계 상황과 많이 다를 수 있으나, 기존의 입장에 대해 여러분들이 살펴보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분량상 4장만 올립니다. 전문이 필요하신 분은 쪽지 보내주십시요. 맞춤법과 뛰어쓰기는 원문에 근거하였습니다. 강맹산, 「고구려사에 관한 몇가지 문제」, 『회고와 전망』, 료녕민족출판사, 1997.8, pp.36~55 4. 중국에서의 고구려사연구 중국에서 고구려사를 연구한 력사는 길다. 본문에서는 주요하게 해방후 중국학자들의 고구려사연구정황을 간단히 소개하려 한다. (중략) 고구려사의 귀속문제, 즉 고구려사는 조선력사에 속하느냐, 중국력사에 속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이에 대하여 중국의 사학계에서는 비교적 명확한 결론이 있다고 필자는 인정한다. 즉 고구려사는 조선력사에 속할뿐만아니라 중국동북지방사에도 속한다. 즉 고대 한개 나라의 력사를 현재 두개 나라 력사에서 공동으로 쓸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사를 펼쳐보면 고대 한개 국가의 력사를 두개 나라에서 공동히 쓰는 실례가 많다. 그것은 인류사회발전에서 복잡한 력사과정이 있었고 국경선도 력사의 발전과정에서 점차 지금의 국경선으로 확장되였기 때문이다. 중국 사학계에서는 고구려사를 우선 조선력사에 귀속시켜 조선력사의 주요한 부분으로 취급하고 있다. 여기에서 주요한 저작 몇권을 례로 들어 설명하려 한다. 고등학교 문과교과서의 《세계중고사》에서는 고구려사를 조선중세시기사의 주요한 부분으로 폭넓게 서술하였으며 1983년에 인민출판사에서 출판한 《세계사》에서도 고구려사를 조선력사의 주요한 부분으로 서술하였고 《간명세계사》(고대부분)에서 고구려사를 조선 3국중의 주요한 국가로 서술하였다. 그리고 1992년에 출판된 《중조관계학사》에서도 고구려사를 조선력사의 주요한 부분으로 서술하고 중국력대 왕조와 고구려와의 관계를 국제관례로 서술했다. 중국력사에서도 고구려사를 조선력사로 취급하고 대외관계로 취급하였다. 중국의 이름난 력사학자인 범문란선생이 지은 《중국통사략편》에서는 수조, 당조와 고구려관계를 국제관계로 서술하였으며 남개대학 력사계에서 편찬한 《중국고대사》(상)에서도 고구려사를 조선력사로 취급하였을뿐아니라 중국력사에서 고구려와의 관계를 대외관계로 처리하였다. 《세계력사사전》에서도 고구려사는 조선 3국중의 하날고 명확히 밝혔다. 이런 저작들을 새삼스레 많이 들 필요가 없다. 지금 우리나라 중학교력사교과서에서도 조선사부분에서는 고구려사로부터 시작된다. 모두어말하면 중국사학계에서 고구려사는 조선력사의 일부분임을 충분히 긍정한다. 이와 동시에 고구려사는 또 중국동북지구에서 기원되였고 705년간 중국동북지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중국의 동북지방사를 쓰려면 고구려사를 쓰지 않을수 없다. 만약 고구려사를 쓰지 않는다면 동북지방의 705년 력사는 무엇으로 쓸것인가. 그러므로 고구려사는 동북지방사의 주요한 부분의 하나이다. 이것은 누구도 부인할수 없다. 사학계에서 이같이 명확한 결론이 있음에도 불문하고 어떤 사람들은 고구려사귀속문제는 감히 말할수 없는 금지구역으로 인정하면서 고구려사만 말하여도 긴장해한다. 사실 그렇게 긴장해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언제나 실사구시적으로 력사를 분석해보아야 하며 력사적유물론의 관점을 견지하여야 한다. 어떤 외국인들은 우리 나라에 와서 고구려사와 지금의 국경선을 련결시켜 말하면서 친선적이 못되는 언론을 산포하고 있다. 이는 삼갈바이다. 고대국가의 력사와 지금의 국경선을 직접 련결시키는 것은 과학적이 못되며 친선적이 못되는 것이다. 그것은 지금의 국경선은 복잡한 력사발전과정에서 점차 형성된 것이며 두 나라사이에 평등한 원칙에서 조약을 체결하여 결정된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력사와 현실을 갈라놓고 봐야 한다. 만약 고대국가의 령토개념으로 지금의 국경선을 해석한다면 오늘에 와서 세계 각국의 국경선은 전부 달라질것이며 란장판으로 될 것이다. 중국에서의 고구려사연구는 점차 심입될것이며 더욱 큰 과학연구성과를 달성하게 될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한국학계의 입장에 대한 소개를 하지 않은 채 중국학계에 대한 소개를 한 것이 걸리네요. 또 논문 한편을 가지고 중국학계의 입장을 섯불리 일반화한 것 같아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답글로 달면서 분량이 너무 긴 건 아닌가하는 걱정도 드네요. 이런 저런 걱정을 뒤로 하고 인용한 글에 대해 다시 언급하자면, 개인적으론 중화사상이 확실히 대동아공영권보다 공격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드네요. 또 한가지, 현재 언론에 의해 보도되는 내용들도 너무 과열되어 있다고 보입니다. 본문에 나와있는 문장 중에 " 어떤 외국인들은 우리 나라에 와서 고구려사와 지금의 국경선을 련결시켜 말하면서 친선적이 못되는 언론을 산포하고 있다."라는 말이 왜 이리 신경쓰이는지. 주저리 주저리 말이 너무 많았습니다. 조금이나마 여러분들께 유익한 정보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03/10/14 15:29
잠깐..폴란드와 프로이센은 다른나라입니다..프로이센이 한참잘나갈때 프리드리히 대왕이있던시기 폴란드가 러시아,오스트리아,프로이센3국에 의해서 분할되었고 당연히 폴란드영토의 일부가 프로이센땅이 된건맞지만 원래 프로이센땅이 훨씬많답니다.지금 베를린이나 독일땅 주요부도 다 프로이센땅이었습니다 지금의 폴란드는 과거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러시아가 흡수하기 전이랑 크게 다르지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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