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03/10/08 03:56:09
Name 정일훈
Subject 어느날...
어느날 후배 캐스터 박민아가 찾아왔습니다.
게임 캐스터를 꿈꾸는 그 후배의 후배를 위해 책을 쓰겠노라더군요.
그러니 책 편집을 위한 인터뷰에 응해 줄 것과 추천사를 써줄 것을 요구했더랬습니다.
속으로 "대단타"고 놀라면서 인터뷰에도 응하고, 추천사도 써주었습니다.
그 후배가 그러더군요
"좋은 게임 캐스터가 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머리속으로 만가지 생각이 지나갔습니다. 이건가? 아니, 저건가?...
나름대로 짧지만 고민을 많이 하고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건... 눈 앞에 보이는 컴퓨터 그래픽 속에서 체온을 찾아내는 일이야. 질럿이든 마린이든 저글링이든 그것이 누군가가 그려넣은 컴퓨터 그래픽 덩어리 라고, 그래서 그것이 몇마리나 죽고 어떻게 죽었는지 전하기만을 고민한다면 사람들에게 '감동하라'고 말할 권리가 없겠지. 그 안에서 그것들을 자신의 분신이라고 생각하며 스물 몇 살의 삶이 버거운 나이에도 이를 악물고 자신에게 주어진 승부에 솔직히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의 심장 박동을 얹어 전하는 일이기에 우리 일이 의미 있는 게 아닐까?"

말해놓고 내 스스로 놀랐습니다. 꽤 멋진 말 아닙니까? 그리고 그날 이후에 한 회분 방송을 하고 나면 그날 승리해 표정관리를 하는, 혹은 져서 풀이 죽어있는 선수들을 보면서 '나는 얼마나 저녀석들의 체온을 사람들에게 전했는가?'를 스스로에게 되묻곤 합니다.

돌아보면 애써 되묻지 않아도 늘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하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날들이 있었음을 기억합니다. 어느 순간엔가부터 버릇처럼 방송을 '해치워버리고 마는' 내자신을 볼 때 참 많이 부끄럽네요. 게임 캐스터로 살다가 게임 캐스터로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늘 똑같은 마음을 지키고 살고 싶습니다.
늘. 처음처럼 말이죠.

후배 민아가 아프답니다.
다행히 수술 경과가 좋다는데 얼른 일어나서 생글생글 웃으며 당돌한 짓을 해내는 모습을 다시 보고 싶습니다.

이유없이 많은 것들이 생각나는 어.느.날 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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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0/08 04:00
수정 아이콘
정일훈님...그리고 박민아캐스터님...PGR 식구 여러분들도 모두 힘냅시다! 모두들 FIGHTING!!! 입니다!!!
03/10/08 04:10
수정 아이콘
정말 감동적인 말이네요.
제가 이렇게 게임을 사랑하게 되서 참 다행입니다^^
멋진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들과 정일훈님 같은 분들이 계시니까요.
안전제일
03/10/08 04:11
수정 아이콘
그 심장..그 체온을 가깝고 뜨겁게 느끼고 있습니다.
언제나 그 역할을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선수와 팬사이의 단순한 중계자가 아니라 손을 이끌어 '여기를 만져보는거야..'하시는 듯한 느낌이 좋습니다.
필력이 짧고 생각은 그보다도 어리고 작아서 감사의 마음과 부탁의 말씀을 제대로 전할수 없다는게 아쉽습니다.
오래..그렇게 있어주셨으면 합니다.

박민아 캐스터께서 아프시다니 안타깝군요. 빠른 쾌유를 빕니다. 그리고 빨리 일어나셔서 좋은 진행 부탁드립니다.
03/10/08 04:18
수정 아이콘
무기체처럼 사람의 머리 속에 떠돌아다는 것들을 끌어다가 말로 내뱉었을 때, 이따금씩 그것이 생명을 가지고 약동하면서 내 주변을 휘익~ 하고 돕니다. 그러면 손목을 짚거나 가슴에 손을 가져다 댔을 때보다 선명하게 심장의 박동 소리가 들립니다. 내 입에서 나온 말들이 나의 외부에서 나를 재구성하면서 다시금 나에게 생명을 가져다 주는 거라고, 그렇게 느낍니다. 그것이 순간에서 영원으로 이어지지 않았기에, 저는 글을 쓰는 일에 이렇게까지 매료되는 건지도 모릅니다.

앞으로도 계속 내 생명을, 살아있다고 하는 꿈틀거림을 스스로에게, 가능하다면 타인에게도 느끼게 해주고 싶습니다. 일훈님(이름을 부르려니 너무 쑥쓰럽네요)도, 다른 분들도 모두 힘내십시오.
항즐이
03/10/08 04:37
수정 아이콘
박민아님의 쾌유를 기원합니다. ( _ _ )
03/10/08 04:43
수정 아이콘
늦은 시간에 나직하게 써내려간 느낌이 너무 좋은 글입니다.
가슴 한구석이 싸해지는 기분.. 정일훈님. 정말 좋은 캐스터이십니다^^
앞으로도 선수들의 마음을 대신하는 중계를.. 큰 신뢰를 담아 부탁드려봅니다.
03/10/08 04:55
수정 아이콘
일훈님도... 민아님도...
참, 멋있는 분들입니다.
제가... 더 좋은 관객, 더 좋은 팬이 되고 싶게끔 만드시는군요 ^^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패러디;;;)

...민아님 빨리 나으셔서 좋은 책 써주세요^^!
스팀팩질럿
03/10/08 08:19
수정 아이콘
고대 FIGHTING! ^^; 경영 98이
03/10/08 10:09
수정 아이콘
좋은글에 감사드린다는 말외에는 무어라 표현을 못하겠네요...^^
가끔 정일훈님을 온겜넷 스타리그에서 보던 모습이 생각나네요...
그때는 참 정일훈님 김도형님 엄재경님 말씀 한마디한마디에
흥분하고 환호하고 그랬었는데...^^
민아님의 쾌유바라구요~^^
언제나 멋진모습이시길....^^
불대가리
03/10/08 11:20
수정 아이콘
ㅠ.ㅠ
프리징
03/10/08 12:26
수정 아이콘
파팅+_+
ataraxia
03/10/08 12:27
수정 아이콘
'정일훈의 디지털 36.5'이 끝나서 정말 아쉬웠더라는...ㅜㅜ
아르푸
03/10/08 12:41
수정 아이콘
정일훈님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표현력 하나는 예술이군요^^
언뜻 유재석
03/10/08 13:44
수정 아이콘
온게임넷의 보물.. 더나아가 우리 게임계의 보물들이십니다.
닳을까 깨질가 조심스럽기만 하네요.. 민아님 박차고 일어나세요 ^0^
03/10/08 14:04
수정 아이콘
요즘 온게임넷 워3 방송을 보면서 선수들, 중계진의 체온을 느끼고 있습니다. 단지 제 자신이 아직 워3를 완벽히 이해하지못해 그 '체온'을 완전히 느끼지는 못하고있네요.. T_T;
민아님 빨리 쾌차하시길 바라고, 일훈님의 멋진 모습 앞으로도 계속 보고싶습니다 ^^
(플레이투게더에서 승리를 장담하던 일훈님을 믿었건만.. 아쉬웠어요 -3-; 하지만 열정적인 응원-_-d)
물빛노을
03/10/08 14:55
수정 아이콘
크으~ 멋집니다 일훈님ㅠ_ㅠ
sad_tears
03/10/08 15:42
수정 아이콘
정일훈님 예전에 "당신들이 모르는 한국 프로게임계의...." 나머지 올려 주세요...
03/10/08 16:58
수정 아이콘
멋진 ㅠ_ㅠ방송 더욱더 기대합니다. 원래 워3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최근엔 많이볼려고 노력해요. 요즘 워3잘보고있습니다요..ㅠ_ㅠ
분수=하비365전
03/10/08 17:59
수정 아이콘
저도 "당신들이 모르는 한국 프로게임계의..." 나머지가 궁금합니다. 알려 주세요. 난 모르잖아요~~~~
Hewddink
03/10/08 18:39
수정 아이콘
감동, 또 감동입니다. 흑흑 ㅠ_ㅠ
배틀꼬마
03/10/08 18:54
수정 아이콘
쾌유를 빕니다(_ _)..
Return Of The N.ex.T
03/10/08 19:01
수정 아이콘
정일훈님 워3도 화이팅 입니다..^^
하늘아이
03/10/08 19:09
수정 아이콘
정일훈님 활동모습 항상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옛날 스타중계도 그랬고 지금 워3 중계 모습도 그렇구요. 일훈님께서 중계하시면 뭔가 모를 편안한 마음으로 보게 되더라구요. 앞으로도 좋은모습 부탁드립니다. 힘내세요. ^^ 그리고 민아님 쾌유를 빕니다.
03/10/08 23:50
수정 아이콘
멋진 글이네요.
박민아님 얼른 건강한 모습으로 방송에 나타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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