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te |
2003/09/24 15:10:47 |
Name |
신문종 |
Subject |
스타크래프트, 불감증. 그리고 사랑. |
---------------------------------------------------------------------
제목 : 불감증, 스타크래프트, 그리고 사랑.
언제부터인가.
전 도덕,그리고 그 외의 모든 것에 불감증에 걸려 있었습니다.
쓰래기를 아무데나 버리는 것은 하루 일과이고 노상방뇨쯤은 우습지요.
서울의 거리는 저에게 있어 하나의 커다란 재떨이일 뿐이었습니다.
전 몸도 마음도 점점 황폐해져 이젠 아주 사람도 사람으로 안보입니다.
제게 있어 친구는 오직 마린, 그리고 애인은 매딕입니다.
인간 여자는 저에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절 치료해주지 못합니다.
얼마전, 알고지내던 여자아이가 만나자고 하는데 게임방에 있다고 못간다고
했습니다.
몇번을 그랬습니다.
전 언제나 게임방 내지는 피곤하다는 핑계로 만나러 가지 않았습니다.
그 여자아이는
- 너같은애 정말 싫어.
라고 했습니다.
저 역시 속으로
'나도 너같은 애 싫어'
라고 생각하며 혼자 키득거렸습니다.
전..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 . . . . .
제눈엔 거리를 배회하는 사람들은 저그나 프로토스로 보입니다.
전 사람들이 많이 모인자리(..지하철..버스..등)에서는 레이져 포인트
(그러니까, 버튼을 누르면 빨간 불빛이 나오는..)
를 그들 가운데 비추며 혼자서
- nuclear lunch detected.
라고 하면서 혼자 키득 댑니다.
물론 위에는 옵저버 내지는 오버로드가 떠있는지 확인합니다.
그리고는 레이져 포인트를 끄곤 재빨리 몸을 피합니다.
전 용의주도 하고도 나쁜 놈입니다.
물론 남의 시선따위는 신경 안쓴지 오랩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부터 이랬던 것 같습니다.
대학..(지금휴학중)다닐땐 그 증세가 아주 심각하여 심리검사 했을때
'단체생활 부적합'이란 판정을 받기도 했었습니다.
여자친구는
- 뭐..별로 안이상한데..뭘..
하였습니다.
전 그냥 피식 웃고 말았습니다.
저의 몇 없는 인간 친구들은 저와 비슷한 부류들입니다.
좋게말하자면 '아웃사이더'이고 좀 평범하게 말하면 '비정상'이겠지요.
'우리는 언제나 아무생각없이 재떨이 위를 떠다니는 해파리 입니다.'
흐느적거리며 땅에 발 붙이지 못하고 둥둥 떠다니는 꼴을 보면 '해파리'
이상의 말이 떠오르질 않습니다.
저의 해파리 친구들은 담배를 피우기 위해 삽니다.
제 몸엔 피 대신 니코틴이 흐릅니다.
담배가 떨어졌을때 빼고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술마시면 피곤하다고 술도 잘 안마실라고 합니다.
남들 다가는 나이트도 시끄럽다고 안갈라고 합니다.
휴학을 하고보니 밖에 나갈일은 더욱 없어져, 담배사거나 바람쐬러나가는
일 아니면 거의 밖에도 나가지 않아 햇볕을 쪼일 일이 거의 없습니다.
우리엄마는 절 '흡혈귀 드라큐라'라고 합니다.
어쩌면 전 햇볕을 쪼이면 버터처럼 녹아버릴지도 모릅니다.
밖에는 지금 동이 터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 몸이 녹지도,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 . . .
뭐가 슬픈건지 뭐가 기쁜건지 잘 분간이 안갑니다.
얼마전...일년좀 넘게 사귄 여자친구가 헤어지자며 이런 말을 했습니다.
- 넌 인간도 아냐.
전 생각했습니다.
'넌 저그야'
그렇게 생각하며 혼자 키득 거렸더니 뒤도 안돌아보고 택시잡아타고 집에
가버렸습니다.
처음 사귈때 같았으면 '왜그러냐. 미안하다' 라고 하며 달래보았을 테지만
그것도 아무의미 없는것 같아 전 조용히 게임방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 후 며칠만에 전화가 왔습니다
전 오락을 하고 있었기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묻는말에 대답도 제대로 하지 않았지요.
그녀가 물었습니다.
- 나 귀찮아?
전,
- 약간..
이라고, 사실 조금 귀찮았던것 - 그 때 오락을 하고 있어서인지도 모르지만 -
같은 기분이 들었기에 나름대로 솔직한 대답을 했습니다.
그 후론 연락이 없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 진 몰랐지만 그때까진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이럴땐 슬퍼야 한다'라는 공식에 의해 슬픈 노래도 들어보고 했지만 아무
래도 감정이입이 안되어 그것도 관 두었습니다.
얼마전 전화해 보았더니 핸드폰이 끊겨 있었습니다.
집에 전화하면 없다합니다.
그때서야
'약간' 슬펐습니다.
. . . . .
요즘 무서운 꿈을 자주 꿉니다.
며칠전 꿈에서 전 무슨 이유에선지 감옥에 있다가 탈옥했습니다.
밖에 나가니 경찰이 절 찾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절 보면 피했습니다.
무서웠습니다.
핸드폰으로 여기저기 전화하는데 아무도 받지 않았습니다.
너무 외롭고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생각난
헤어진 여자친구에게 전화했는데 어떤 남자가 받더니 그런사람 없다고
하고, 옆에선 그 아이의 말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습니다.
그 소릴 듣고 한참을 멍청히 서있던 전, 다시 감옥으로 끌려 갔습니다.
...
자다 깨어보니 배게에 눈물이 젖어 있었습니다.
...어쩌면 침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헤어진 여자친구 생각이 났습니다.
'나도 꽤나 신경쓰고 있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갑자기 전화벨이 울려 왠지모를 기대감으로 전화를 받았지만
...저의 '해파리 친구' 였습니다
다시 잠을 청해 보아도 잠이 잘 오지 않았습니다.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다 창 밖을 보다 하며 그렇게 몇시간을 보냈습니다.
비가 왔습니다.
.전,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빗소리가 듣기 싫었습니다.
. . . . . .
어제,
친구들과 강남역에 놀러 갔습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타워앞에 앉아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기를 몇시간,
- 할 것도 없는데 집에가자.
하고 일어나 걸음을 옮기던 전 깜짝 놀랐습니다.
.그녀.
..그 여자아이가 다른남자와 걷고 있었습니다.
다른 친구들도 보지 못했고, 그녀도 절 보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무척
즐거운 듯 보였습니다.
햇빛 때문인지 절 만날때보다 예뻐보였습니다.
아니, 확실히 예뻐져 있었습니다.
그날의 강남역은..
그냥..
그냥 어떤 뮤직비디오 같이 시간이 멈춘것 같았습니다.
전 굳어버린 손을 힘겹게 움직여 주머니에서 레이저 포인트를 꺼내 그들 가운데를
비추었습니다.
입으론
- nuclear lunch detected
라고 중얼거리며.
눈에선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아무생각없이 걸어다니고 있었고 그녀는 행복해보였으며
친구들은 왜그러냐고 했습니다.
전 그들 한 가운데로 핵을 쏘았습니다.
.핵에맞은 그녀와 남자는 물론 저까지도 죽었습니다.
.주변에 있던 모두가 죽었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느낀 감정,슬픔.
그리고 배신감.
'차라리 아무것도느끼지 않는것이 편하다.'
전 다시 아무것도 느끼지 않도록 저를 다스릴 것이고
그녀는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렇게 그녀는 사람들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많이, 무척 많이 슬펐습니다.
전 그녀를 '약간'사랑했던 것 같습니다.
----------------------------------------------------------------------
.바로 어제, 강남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물론, 신문엔 나오지 않겠지만 어제 강남역에서 한 스타광이
새로시작되는 연인에게 핵을 떨어뜨렸습니다.
|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