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청주 집엘 다녀왔습니다.
설 와서 공부(?)하느라 바쁜 탓에 꽤 오랜만에 온 집이라 그런지, 원래 맛있는 밥도 더 맛있는 거 같고, 원래 귀엽던 동생들도 더 귀엽게 보이고^^ 여하튼 이것저것 다 즐겁더군요.
게다가 늘 조그만 VOD 화면으로 봐야 했던 게임방송을 크고 생생한 TV화면으로 볼 수 있어서 더 좋았답니다 ^^
설거지 돕고 청소 돕고 왠만큼 할일 다 끝내고 나면, 방학숙제도 안 하고 판판이 놀고 있는 남동생 녀석과 같이 티비 앞에 앉아 게임방송을 보았습니다. 뭐, 대개는 재방송이니까, 저야 누구랑 누구가 어디에서 어떻게 붙은 게임인지 다 알면서(pgr21 덕에^^) 본 게 대부분이었는데요. 그래서 남동생과 "누나는 저거 누가 이겼는지 어떻게 다 알아? -_- " 그러면 "누나는 원래 초 천재인데다가 신통력이 있어서 다 알아 -_-+ " 라고 대답하곤 했습니다. ^^V
아이구 잡설이 길었네요^^. 짐작하셨겠지만 우리 집에서 스타크래프트를 실제로 할 줄 아는 사람은 저와 남동생 이렇게 둘입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제가 하도 집에서 임요환 임요환 노래를 부르니까 이름 정도는 알고, 게임방송이 나오면 저게 다른 게임이 아니라 스타크래프트구나 라고 알아보는 정도죠. 그나마 은근히 게임&무협광이신 아버지께서는 스타리그 전태규vs 김현진 경기에서 캐리어를 보시고는 "저게 뭐냐" 하시길래, 뭐라고 대답할까 하다가 "항공모함-_-; 인데요, 저기 파리-_-;; 같은 게 나가서 레이저를 쏴서 공격하는 거예요" 라고 했더니, 한참 있다가 화장실 다녀오셔서 "아까 항공모함 쓰던 사람이 이긴 거냐?" 라고 물으시더군요. ^^;;;
그런데 하루는 제가 늘 그랬듯이 남동생을 옆에 앉혀놓고 프로리그 플레이오프 ktf 대 동양 1차전 임테란 대 홍저그 경기 VOD를 보던 중이었는데, 게임에 전혀 관심없던 여동생이 오더니 옆에 앉더군요. 때는 이때다, 거짓말 약간 보태 전용준님만큼 오바하면서 이것저것 설명을 해 줬드랬죠.^^a 사람처럼 생긴 게 테란이고, 벌레처럼 생긴 게 저그인데... 저기 조그만 거 총쏘는 사람은 마린이고, 하얀 건-_-; 메딕이고.... 등등.
한참을 그러고 있었는데, 갑자기 게임에 완전히-_- 몰입해 있는 임테란이 클로즈업되더군요. 그러자 제가 침이 마르도록 백 마디를 설명해도 응, 응 하며 심드렁하게 듣던 여동생이 임테란 표정 한 번 보더니 돌연 진지해져서는 한 마디 하더군요.
" 저 사람이 임요환이야? 우와 진짜 무섭다. 진짜 게임 무섭게 한다."
그 다음부터는 워낙에 보면서도 믿을 수 없는 장면들의 연속인 데다가 해설자 두 분의 경악멘트가 계속 이어지다 보니까 동생도 저도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경기에 집중했습니다. 다 끝나고 나니까 동생이 임테란 진짜 무섭다고, 대단하다고, 근데 얼굴은 상대편 선수가 더 잘생긴 것 같다고 하고는(-_-;;;;;) 다른거 또 없냐고 하더군요^^ 신이 나서 스타리그 강민vs홍진호 경기를 보여줬습니다. 어떻게 하다보니 홍진호 선수가 진 경기만 보여준 셈이 돼버렸는데, 그래서인지 그 경기 보고 나서는 홍진호 선수 너무 불쌍하다고 하더군요. ㅠㅠ
다음날 제가 또 TV로 게임방송을 보고 있는데, 그때는 임테란 경기가 아니었습니다. 동생이 와서 보더니, '임요환 경기는 재밌었는데...' 하고는 가더군요. -_- 두고 봐라. 이 쪽에 제대로 빠지면 약도 없단다! 보는 재미를 알려면 멀었지.... ^^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는 임테란 팬인지라 속으로는 대략 흐뭇했답니다. 그리고 좀 무섭기도 했습니다. 스타의 스 자도 제대로 모르는 제 동생에게도, '임테란 경기=재미있는 경기'라는 인상을, 물론 믿을 수 없는 컨트롤이 빛난 특별한 경기이긴 했지만, 그 단 한 경기로 심어줄 수 있었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어느 분의 글에서 "임요환은 방송을 안단 말이야!" 라는 표현을 읽은 기억이 나는군요.
임테란의 '숨겨진 2%' 는 바로 그 '방송을 안다'는 점이 아닐지, 문득 생각해 봤습니다.
비가 많이 오는군요. 비 조심하시고, 즐 PGR 하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