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인간이 본 16강 2경기 임요환 vs 도진광.
실로 엄청난 경기였다.
점점 그의 군입대와 물량에 관한 결점이 두드러지는 시점에서 그가 지목한 박정석에게 1패를 당한 것은, 팬들에겐 진정 참기 힘든 일이였다.
더우기 2경기의 상대인 도진광 선수도 그의 대 플토전에 대한 약점을 알고 있다는 듯이 랜덤이 아닌 프로토스로 경기에 임했다.
그 이름에 걸맞게 결과를 예측할수 없는 맵인 패러독스에서 펼쳐진 16강 2경기..
어느덧 그의 프로필 안에는 대 플토전 50%라는 황제란 칭호에 어울리지 않는 승률이 이번 승부가 결코 쉽지 않음을 암시하고 있었다.
경기가 시작되고 2인용 섬맵 패러독스의 각 선수들의 본진이 환하게 비춰졌다.
8시 임요환과 1시의 도진광의 본진이 차례로 번갈아가며 보여지고, 해설자들은 이번 경기의 여러 전략에 대해 논하고 있다.
2인용 맵 패러독스는 기존의 맵형태에서 벗어나 본진에 가스가 2군데, 미네랄도 다른 맵들보다 풍부하지만, 본진 땅이 넓어 상대의 드랍에 대처하기가 힘들고, 물량만 믿고 전략을 준비하지 않고선 승리를 얻어내기 힘들다는 점이 전략을 강요하는 점이였다.
어느정도 중반을 향해가는 즈음, 도진광 선수는 셔틀, 옵저버 생산을 위한 로보틱스 계열의 건물 소환을 서둘렀고, 임선수는 골리앗, 드랍쉽 체제로 진행했다.
셔틀을 먼저 생산한 도진광 선수는 드라군 1기와 프로브를 태우고, 3시쪽 멀티 지역을 사수한다.
임요환은 3팩토리, 드랍쉽 생산과 동시에 자신의 본진에 자리잡고 있던 옵저버를 잡아낸다.
2대의 드랍쉽에 골리앗을 가득채우고, 3시쪽 도진광 선수의 멀티 드랍을 노렸지만, 상대의 수비와 옵저버의 정찰로 회군을 하게 된다.
동시에 임요환 선수 역시 9시쪽 멀티를 시도, 수비를 위한 병력을 이동시키고, 지속적으로 드랍쉽을 생산하고 있었다.
도진광 선수는 바로 스타게이트를 소환하여 캐리어 체제를 준비하고, 곳곳에 드라군을 배치, 임선수의 드랍에 대비한다.
어느덧 드랍쉽이 5기가 된 임요환은 계속해서 드랍을 시도하지만, 번번히 회군을 하고 계속된 드랍 실패로 상대에게 많은 시간을 주지만, 도진광선수는 그에 대비하기 위해 꽤 많은 자원을 수비를 하기 위한 건물을 소환하는데에 소비하게 된다.
10시쪽 3번째 멀티까지 시도하는 임요환 선수는 상대의 빈 틈을 노려 근 8기에 가까운 골리앗 병력의 드랍에 성공하고 도진광 선수의 본진에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절묘한 타이밍에 작렬한 도진광 선수의 싸이오닉스톰과 캐리어의 도움으로 방어를 해내고, 4기의 캐리어는 바로 임선수를 공격하기 위해 출격한다.
중앙지역을 뺏긴 임요환은 10시쪽 멀티를 사수하기 위해 고전하고, 지형적 이점으로 캐리어의 공격이 용이했지만, 이 역시 다수의 골리앗으로 방어해낸다.
이 때 도진광 선수의 본진에선 아비터가 생산되어지고, 리콜을 위한 준비를 끝마친 상태가 되었다.
아비터의 클럭킹 효과를 동시에 누리며 10시쪽 임선수의 멀티지역의 파괴를 하려 애썼지만, 쉽지 않았던 건 바로 골리앗의 업그레이드 상태가 공격, 방어가 2업이였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결국 10시쪽 멀티를 파괴하지 못한 도진광 선수는 임요환 선수의 본진에 드랍을 시도하지만, 이마저 scv의 우연찮은 이동으로 들키게 되자, 리콜을 통한 전면전으로 임선수의 본진을 타격한다.
본진에 엄청난 병력이 리콜되어 임선수의 건물을 차례차례 부수고, 팩토리의 수는 점점 줄어드는 동안, 경기를 바라보는 모든 이들은 이미 경기가 많이 기울었음을 맘속에 인정하고 있었다.
누가봐도 진 경기에서 시간을 질질 끈다는 혹자의 비난에도 항상 끝까지 고삐를 늦추지 않던 그의 진정한 프로 정신은 그제서야 불붙기 시작했다.
탱크와 골리앗의 조합으로 기어이 상대의 대규모 병력을 막아내고, 서둘러 파괴된 팩토리의 수를 늘리기 시작한다.
이에 늦을세라, 도진광 선수는 새로 생산된 병력으로 10시쪽 멀티를 재차 공격하고 결국엔 임선수는 커멘드 센터를 띄우게 되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임선수 역시 도진광 선수의 3시쪽 멀티를 공격하고, 꽤 많은 프로브 피해를 입은 후에야 임선수의 병력을 막아낸다.
중앙쪽 지형에서 남아있던 지상유닛들끼리의 교전에서 임요환은 모든 유닛들을 잃고, 이 시점에서 이미 경기는 그가 '절대' 이길수 없는 상황으로 진행되어 버렸다.
10시쪽 멀티를 사수하기 위한 노력도 질럿 리콜로 무산되고, 어쩔수 없이 임요환 선수는 10시 멀티를 포기한다.
대신 남은 자원으로 벌쳐를 생산, 3시쪽에 멀티를 감행하고, 마인과 벌쳐 컨트롤로 지상유닛들을 파괴해가기 시작한다.
이미 승패가 많이 기울어진 상태에서 값싼 벌쳐로 경기 결과를 바꿀 수 없다고 믿었던 수많은 사람들은, 그때부터 시작된 믿을 수 없는 장면들에 입을 벌리며 전율을 느끼고 있어야만 했다.
어느새 시즈모드로 변신해, 도진광의 3시 멀티를 파괴하고 있던 탱크의 존재는 이 경기의 내용이 어떠한 결과로 치닫고 있는지, 조금마한 힌트를 주는 상징적 유닛이 되버렸다.
3기의 캐리어의 황급한 공격으로도 넥서스를 지키지 못한 채, 3시쪽 멀티가 파괴되는 순간, 이 승부는 또한번의 신화를 낳을 준비가 끝난 듯이 보였다.
흥분한 임요환의 팬들과 이미 승부가 났다고 안도하고 있던 도진광 선수의 팬들, 그리고 시간끌기로 밖에는 해석하지 않았던 해설자들과 스타고수들조차 임요환의 몇 안되는 골리앗에 2기의 캐리어가 파괴되는 장면에 엄청난 충격에 휩싸이고 만다.
남은 1기의 캐리어..
그 캐리어를 파괴하기 위해 임요환 선수는 가지고 있던 자원들을 골리앗 생산에 모두 쏟아붓고, 2기의 드랍쉽에 타고 온 골리앗들은 승부에 있어선 정해진 결과는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며, 캐리어를 파과한다.
팬들의 함성과 팬이 아닌 사람들의 함성이 뒤섞이며 현장과 각각의 시청자들의 안방에선 그야말로 탄성이 터져나왔다.
믿을수 없는 경기 결과...
잠시 정적이 흐르고, 도진광 선수는 싸울 법한 지상유닛들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지나치게 캐리어에 의지한 나머지, 셔틀을 생산할 만한 자원을 갖지 못한 것에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gg를 친다.
경기를 바라보던 사람들의 눈물과 그 어느때보다 세상을 울릴만큼의 커다란 함성들..
왠만한 영화에도 울지 않던 우리들은 울기 시작했다.
마지막에 임요환선수가 오른손을 치켜올리며 보여줬던 빅토리 세레모니를 바라보며, 목이 메이는 것을 내 스스로 어찌할수가 없었다.
그가 이렇게 한 경기만으로 결승전의 우승보다 더 감동적인 경기를 보여줄 수 있다는 것에 진정 찬사를 보낸다.
그리고 내가 그의 팬이 될수 있었다는 것에도, 그와 한 시대에 숨쉬며 그의 경기를 실시간으로 감상할수 있게 해준 것에도 감사를 드린다.
우리들의 감동을 몸으로 보여주듯 어느새 전용준 캐스터의 목소리는 쉬어버렸고, 그의 쉰 목소리조차 눈물의 여지로 남긴채, 내 떨리는 손으로 쳐내려간 후기를 마칠까 한다.
마지막으로 임요환 팬카페에 올라온 그의 승리에 대한 폄하글들을 보며, 추신격으로 한마디 하고자 한다.
그의 승리가 실력이 아니라고 비웃는 자, 골리앗이 사기유닛이기 때문이라는 자, 떳떳하지 못한 승리를 했으면서 그가 손을 치켜올린 것까지 비난한 자...
지금 난 그들에게 되묻고자 한다.
얼만큼이나 그가 이겨야만 그의 실력을 인정하겠는가...
얼만큼이나 그가 져야만 그대들은 그에 대한 무책임한 비난을 그만두겠는가..
맵핵과 버그를 사용하지 않는 이상, 떳떳하지 못한 경기는 없다.
단지 운이나 상대의 방심만으로는 프로게이머 세계에선 승리를 따낼수 없다.
충실하게 진행해 온 골리앗의 업그레이드와 자원관리로 그는 충분히 자신의 오른손을 치켜올릴만한 경기를 보여줬다.
그것마저 부정한다면 그대들은 맵핵과 지금은 사라진 드론날리게에 익숙한 스타 초보생들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한번의 승리는 그렇게 쉽게 얻을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요환의 팬 보라인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