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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3/08/13 04:57:48 |
Name |
몽땅패하는랜 |
Subject |
(허접연작) 희생(The Sacrifice)-protoss |
Tassadar : 오버마인드는 약해지긴 했어도 심각하고도 지속적인 위험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나는 간트리쏘를 오버마인드와 충돌시킬 것이다. 만일 암흑의 템플러들이 가르쳐 준 힘을 간트리쏘의 외곽에 제대로 전할 수 있다면 저주받은 오버마인드를 처치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오늘 어떤 일을 했는가를 기억해 다오. 아둔이 너를 지켜볼 것이다.
스타크래프트 오리지널 프로토스 미션10-Eye of the Storm에서....
1. 그녀의 이야기
프로토스의 구도자. 그를 두고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몇 안 되는 그의 팬 카페 회원들이나 스타리그의 해설자 캐스터들이 그를 형용하는 단어인<프로토스의 구도자>에는 때로는 약간의 비아냥거림이 들어있기도 하다.
프로토스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면과 함께 프로토스라는 종족이 지닌 한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선수, 라는 권위 있는 해설위원의 지적은 때로는 극찬의 의미로 어느 때에는 다소 비판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한결같다.
고집스럽게 질럿과 템플러만으로 테란의 우주방어진을, 저그의 성큰밭을 뚫기 위해 악전고투할 때도, 기울어버린 판세를 뒤집지 못하고 GG를 선언할 때도 그의 얼굴에는 어떠한 표정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것은 그를 치열한 전장에 임하는 프로 게이머라기 보다는 화학실험에 열중하는 대학원생을 연상시키게 한다. 승리할 때에나 패배할 때나 별 다른 표정의 변화를 찾아볼 수 없는 그를. 스타 크래프트 세 종족 중 가장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프로토스를 고집하는 그를 사람들은 프로토스의 구도자라고 부른다
-200X년 8월 11일의 일기에서-
연습실이 있는 빌딩 정문으로 그의 훤칠한 모습이 나타난다.
방금 잠에서 깨어났음인가 죽죽 뻗은 때로는 낙지 같다고 내가 놀리는 긴 팔을 뻗어 한껏 기지개를 켠다. 멀리서 보기에도 약간의 수면부족과 상당한 피로감이 묻어난다.
하지만 몇달 전까지만 해도 피시 방에서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연습하던 퉁퉁 부은 눈두덩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인지.
영미는 카페 창을 통해 건널목을 건너오는 그의 모습을 보며 피식, 웃음을 흘린다.
그 역시 통유리 창가에 앉아있는 그녀를 확인하고는 딴에는 반갑다는 듯한-물론 다른이들이 볼 때에는 상당히 뻣뻣해 보이는-웃음을 보인다.
"방금 일어났어? 얼굴이 태평양이야"
"그럼 강호동은 은하계겠네..."
딴에는 상당한 조크다. 물론 억지로 웃어주기에는 상당한 품이 드는 썰렁함이지만. 또한 이것은 그의 기분이 어느 정도 평정을 찾았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영미의 눈이 자신을 탐색하고 있다는 것을 그는 눈치 챈 듯 싶다.
"뭘 그렇게 새삼스레 쳐다보냐? 근 오 년여를 보아온 얼굴을"
다소 퉁명스럽게 내뱉는 말투지만 표정에는 걱정하지 말라는 자신감이 묻어 있다. 정말 엊그제의 억울한 패배를 이제는 어느 정도 씻어낸 듯한 표정이다.
"안타깝네요"
"아...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불과 오분 전까지만 해도 전맵을 뒤덮는 줄 알았던 프로토스의 넥서스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나가고 있습니다. 아...역전입니까. 이런 믿어지지 않는 역전극이 일어나는 겁니까"
"와하하....그....그러니까 이렇게 역전이 되는군요, 와......어떻게 와......"
이미 본진과 앞마당의 자원은 고갈된 지 오래였다. 땀으로 번들거리는 그의 표정에는 여전히 변화는 없었지만 영미는 그가 보기 드물게 패배 인정을 미루고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라디오를 통해 듣는 중계진은 희대의 역전극 운운하며 열광의 분위기를 유도하고 있었고 관중들의 환호는-주로 상대편 선수를 응원하는 쪽이었지만-그에 따라 가파른 상승곡선을 유도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이 마침내 눈에 보일만큼 일그러졌다.
fighter toss: gg
와! 하는 함성이 경기장 내를 가득 채웠다. 상대 선수는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에 환한 웃음을 보이고 있었다. 정말 믿어지지 않는, 캐스터의 말마따나 기록에 남을 역전극이었다. 그는 평소의-승패에 관계없이 경기가 끝나면 상대에게 악수를 청하는-마무리를 잊어버린 듯 자리에 망연히 앉아 있었다. 상기된 볼 위로는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니, 이렇게까지 잘해놓고도 역전패해버리면 도대체 프로토스가 어떻게 이길 수 있죠?"
"프로토스라는 종족이 지닌 한계를 보여준 시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미는 서서히 자신의 귀에 꽃은 리시버를 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관계자가 다음 시합 세팅을 위해 다가올 때까지도 멍하니 앉아 있다가 관계자의 재촉을 받고서야 허겁지겁 자신의 키보드와 마우스를 챙기고 있었다. 무엇인가를 계속 중얼거리면서.
"아니 사람을 불러놓고 면전에서 딴 생각을 하고 있으면 어떡하냐?"
그의 말에 영미는 현실로 돌아온다.
"아, 미, 미안......그나저나 점심 안 먹었지.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그래."
너무도 자연스러운 그의 모습에 영미는 괜한 불안증이 가슴에서 돋아난다. 이틀 만에 보는 그지만 반가움보다 무엇인지 설명할 수 없는 어색함이 갑작스레 느껴진 것이다.
경기 직후 그리고 어제 밤 열시 반이 넘어서까지 그의 핸드폰은 내내 불통이었고 소속팀의 다른 선수들도 오자마자 다시 나가더니 깜깜 무소식이라는 이야기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가까스로 그와 통화가 된 것은 어제 밤 열 한 시가 넘어서였다. 음성 사서함에 거의 울먹이면서 남긴 메시지를 듣고서야 그가 영미에게 전화를 한 것이었다.
"지금 숙소에 들어왔다. 너무 걱정 말고. 그럼 쉬어라"
미리 녹음해 놓은 듯한 세 마디가 전부였다. 이런 소리나 들으려고 내가 그리 생가슴을 앓았던가, 싶어 목소리를 듣자 쏟아져 나올 것만 같던 눈물이 쏙 들어갈 만큼 영미는 서운함을 느껴야 했다. 하지만 곁에서 보는 것도 이리 힘든데 당사자는 어떨까 싶어, 아주 연락을 못 받은 것보다는 낫다고 조금은 처량하게 스스로를 위로해야 했던 어제였다.
그런데 지금 영미의 눈앞에 나타난 그는 조용하고 밋밋했다. 여느 때와 다를 것이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영미의 내면에 묘한 거슬림으로 자꾸만 내려앉고 있었다.
"우리가 스물 다섯이던가?"
"갑자기 나이는 왜?"
점심을 마치고 나란히 거리를 걷고 있을 때 갑자기 생각난 듯 그가 말한다. 뜬금없이 나이는? 하고 영미가 바라본 그의 얼굴은 확실히 앞서보다는 음영이 짙어져 있다.
이 남자가 왜 이러지, 싶어 영미는 덜컥 가슴이 내려앉는다.
"아니, 그냥"
그는 이내 자신의 얼굴에 덮힌 어둠을 걷어내며 웃음을 보인다. 하지만 자연스럽지 못하고 무엇인가 인공적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잠시나마 내려앉은 듯 했던 불안함이 서서히 요동을 치기 시작한다.
"영미야. 오랜만에 우리 팀플이나 할까?"
"팀플?"
그가 아직 소속팀을 얻지 못하고 피시방에서 연습에 몰두하고 있을 때 이따금 심심풀이 식으로 그녀와 함께 2대 2 팀플을 하곤 했다. 말이 2대2지. 실은 1대 2핸디캡 매치나 다름없었다. 오죽하면 농담이라면 잘 모르는 그가"영미야 제발 같은 편에게는 총질하지 마라. 제발"이라는 하소연을 했을까.
그때는 팀플하는 시간이 바로 데이트 시간이나 다름없었다. 그가 이름이 알려지면서 서로"팀플이나 할까?"라는 말은 자제하는 분위기였지만. 그에게는 늘 필요하고 아쉬운 것이 시간이었고 그것은 영미도 동감하는 처지였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입에서 팀플이나 할까? 라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바쁘지 않아?"
"엊그제 마지막 대회도 탈락했잖아 적어도 일이주 동안은 별다른 대회가 없어. 왜 나랑 팀플 하는거 싫어?"
아니. 가볍게 도리질을 하면서도 영미는 점점 짙어지는 불안감을 감출 수 없다. 자꾸만 오늘 무슨 일인가가, 자신이 원하지 않는 방향 쪽에서 일어날 것 같다는 예감이 드는 것이다.
"가자. 팀플하러."
이제 그는 영미의 손을 잡으면서까지 재촉하고 있다. 그답지 않게 서두른다는, 아니 무언가를 서툴게 연기한다는 생각이 영미에겐 들었다. 적어도 영미가 아는 그는 이렇게 느닷없는 제안이나 서툰 농담을 떠벌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늘 그가 보여주는 그 자신은 영미에겐 참으로 낯선 존재인 셈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또 꼬치꼬치 따져 물을 수는 없다. 그랬다가는 지난 이틀 동안의 가슴앓이를 또 한번, 그것도 이제는 상당한 기간을 겪어야 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 프로토스가 아니네."
그의 종족창에<Terran>이라는 글자가 떠올라 있다. 영미와 "마사지 게임"(그가 유일하게 영미를 웃겼던 용어)을 할때도 언제나 프로토스를 선택했던 그였는데. 오늘 그는 테란을 선택하고 있다.
"영미 네가 나 좀 살려줘"
정말 이상하다. 오늘 그는 자신에게는 상당히 어울리지 않는 농담을 계속 쏟아내고 있다. 무언가 말하려다 영미는 가만 말을 참는다. 이따가, 그래 나중에 이야기해도 충분하니까.
상대들은 그와 같은 팀 연습실에서 연습중인 준 프로게이머들이다. 벌써 채팅창에는 그들의 이모티콘과 콩글리쉬로 범벅이 된 채팅러쉬가 한참이다.
Fighter Toss: go go go~~
Storm : GGGGGGGGG^^;;;
girls: love love go go go T.T
Beautiful: Sal Sal plz ^^;;;
뚜....뚜....뚜....뚜....뚜....
경기가 시작되었다.
(2부가 계속됩니다)
읽으시는 분들에게- 그냥 제가 개인적으로 생각한 종족별로 테마를 잡아 허접하게나마 소설형식으로 쓰는 연작입니다. 첫번째 종족인 프로토스의 이야기 첫번째 부분인 셈입니다. 현재로선 3부정도로 프로토스 이야기를 완결지을까 생각중입니다(변동사항은 충분히 있습니다--;;;;;).
피지알 여러분들의 많은 돌팔매질(쿨럭)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이런 허접한 글 올리려면 당장 그만두어라!!라는 지적까지 환영합니다.ㅠ.ㅠ
-오타, 맞춤법, 비문 지적은 당연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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