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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3/08/09 14:54:25
Name 항즐이
Subject [소설] A Day In the Battlefield. #1
7월 28일 저녁 10시, 강남 모처.

"내 바쁘다."

정석은 여느 때와 다름 없이 무뚝뚝한 낱말을 귀엽게 내뱉어내고 있다. 서연은 그런 그가 점점 슬픈 빛으로 익어가는 때라고 생각하며

말을 덧붙인다.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지?"

"알므는, 바꿀수도 없다 아이가. 열심히 해보께 그래 밖에는 말 몬하겠다."

"정말..."

"늦었다. 내 가야 된다. 요환이 형은 무서븐 사람이데이."

"재균오빠는 아니고?"

"재규이 형이야 뭐.. 헷. 그른가. 형 화났을라나."




7월 28일 자정 무렵. 삼성동 모처

"설치는 다 되어 가나?"

벌써 달포 가까운 작업이 곧 현실이 된다. 위pd는 지끈거리는 머리때문에 윗주머니의 알약을 자꾸만 만지작 거린다. 스탶들은 또 그가

알약에 손이 가는 모습에 벌써 긴장한다. 그만큼, 그는 평소의 여유를 잊은지 오래다.

"네, 거의 다 됐습니다. 테스트를 해보려고 하는데, 일반인으로는 조금 부족한 것 같아서요. 우선 속도 부터 다르고.. 아시잖습니까."

"그래, 협회 쪽에 공문 보내놨으니까 곧 도착할거야."

무대 쪽에서도 목소리가 뛰쳐 나온다.

"어이~! 선수 명단은 확인해 놓으라구!"

"최인규 선수와 조병호 선수요!!"

사람과 물건들이 쏟아내는 부산하고 어지러운 소리 속에서 고함인지 말인지 모를 대화가 오간다.

"뭐? 인규? 병호? 젠장!! 첫 테스트를 그렇게 과하게 할건 또 뭐야! 이래서 촉박한 일정은 싫다고 했잖아!"

"제가 뭘 어쨌다구요? 크게 말씀해 보세요!!"


"자자!! 다들 조용하라구!! 시간이 없어! 시간이!!"

짤깍. 위pd는 결국 알약을 삼킨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을 뻗으며 외친다.

"물!"






7월 29일 오후 1시 관악구 신대방동 한빛스타즈 사무실.

"그렇게 됐다. 알겠나?"

이재균 감독은 연이은 회의와 새로운 대회의 워크샵에서 돌아온 모양이다. 덕분에 어제 정석의 늦은 귀가는 선수들 끼리의 비밀이 됐

다. 하지만, 정석은 불호령을 피했다는 기쁨 따위를 얼굴에 묻혀 놓고 있질 못하다.

"그라믄, 지면 어떻게 되는 거지?"

"빙시야 니가 와지노. 그런건 걱정하지 마라"

"도겨이형, 그건 아인데.."

"니는 하던데로만 하면 된다. 어차피 니 딴생각 할 겨를도 없잖아. 있나? 이 단세포 문디 자슥아!"

"해임은 또 헛소리다. 재규이 형, 도겨이 형 또 이상한 소리만 하는데요."

"고마해라. 이놈들은.. 걱정도 안되냐?"

"아니요. 저는 걱정하고 있는데요. 도겨이 형이.."


이재균 감독은 담배를 다시 물고 밖으로 나간다. 담배값이 오른다며 끊는다고 몇 번이나 생각하지만 결국 또 선수들의 놀림감이 될 모

양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7월 29일 자정 무렵 삼성동 모처.

부스 안에서는 두 명의 젊은이들이 각각 열중한 얼굴로 마우스를 움직이고 있다. 속업된 셔틀 3대가 캐리어 1기의 터렛 유인을 이용해

테란의 진영 한가운데로 진입하며 질럿들을 투하한다. 쿠쿵. 터져나가는 시즈들과 몰려드는 질럿 드라군. 템플러가 미네랄 멀티의

scv들을 전멸시키고 말았다.

"큭!!"

테란을 플레이하던 게이머, 인규는 결국 소리를 지르며 쓰러진다.

"오퍼레이션 스톱!! 전원 차단하고 빨리 닥터 불러!"

"인규야 괜찮니?"

달려가는 위pd와 참관을 위해 방문한 KPGA 장현영 팀장은 사색이 되어버렸다. 인규는 부스 안에서 마우스를 떨어뜨린채 고개가 앞으로

푹 숙여졌다.

"인규야, 인규야!"

퍽! 좀처럼 표현이 드문 조규남 감독이 결국 위pd에게 한방을 먹인다. 당황하는 스탶들은 일련의 사고에 더욱 부산해지고, 장팀장은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아 선다.

"이봐요 조감독님, 지금 우선 인규부터 살펴보시고.."

"됐어요!! 이런 말도 안되는 일에 부를 때부터 맘에 안들었는데, 인규에게 무슨 일 있으면 정말 가만있지 않을겁니다!"

"인규야, 괜찮니?"

위pd는 절망적인 심정으로 인규의 안색을 살핀다. 감도를 높여 놓았던 것이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온 것일까. 하지만 겨우 이틀이 남아

있을 뿐이다. 세부조정은 그 안에 마쳐야만 한다. 또 다른 게이머가, 어쩌면 협회가 내 놓은 인증이라는 사탕을 쫓는 아마추어들이 찾

아 오겠지. 그런 생각들이 지나가면서도 계속 위pd는 인규를 흔들어 본다.

"으... 이거 정말.."

"인규야!"

십수명의 사람들이 빼곡히 인규 주위로 몰려든다. 대기중이던 의료진은 이미 지척에 접근해 있다.

"괜.. 찮은것 같은데.. 조금 쎈거 아닌가? 모르겠네. 흠, 나름대로 재미있어요. 좀 아프겠지만."

"...?"

너무 천연덕스러운 반응에 사람들은 아연실색하고 만다. 닥터는 계속 그의 눈과 목을 살핀다. 그리고 몇 가지 질문을 하고는 일어선다

.

"심각한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충격의 여파가 뇌에 남을 수 있습니다. 하루 정도는 게임을 쉬는 것이 좋겠네요."

"예? 안돼요~. 주말에 예선도 있는데. 후, 연습 별로 못했는데 큰일이구만. 이 정도는 보드 탈때 자주 겪는다구요. 예? 어떻게 안될까

요? "

"얼른 가자."

조규남 감독은 여전히 싸늘한 얼굴로 스탶들을 쏘아보고는 닥터의 명함 한장을 낚아채듯 받아들고 인규를 안아 일으킨다. 사람들이 말

리는 가운데, 인규는 주섬주섬 마우스와 키보드를 챙겨들고, 총총히 사라지는 둘의 모습에 스탶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이다.

"... 저기 위pd.."

"자! 계속합시다! 감도 낮추고, 대신 레이턴시를 더 낮춰봐. 그리고 음향은 약간 줄여도 될 것 같애. 장팀장님, 그 아마추어 게이머는

언제 도착합니까?"

"위pd!"

"죄송합니다. 이젠 어쩔 수 없어요."




7월 30일 저녁 9시 한빛스타즈 사무실.

숙소는 조용하다. 정석 뿐 아니라 그와 연습을 하고 있는 도현 마저 뭔가가 계속 맘에 걸리는 듯 얼굴이 여간 찌푸러진 게 아니다. 도

경은 그들을 조용히 지켜보지만, 가끔 그들의 얼굴을 살피는 것이 평소와는 다르다.

정석의 얼굴에도, 도현의 얼굴에도 땀이 비오듯 흐른다. 도현은 얇은 입술을 잘게 깨물어가며 마우스를 재촉한다. 그의 조용하던 컨트

롤은 어느 새, 격정에 휘말리고 만다. gg. 정석의 승리다.

"이거, 이기기만 해갖고는 알수 없는 긴데. 그라고, 진짜는 이 정도가 아닐 거 아이가."

"그래도 재규이 형 말로는 위험하다 캤다. 거 연습생 가 있자나 가도 좀 많이 아팠다 카고, 인규는 괜찮지만 병원에 가봐야 한다 카던

데."

"그래도, 이래 갖고는 안될낀데."

"도현아 니는 어떻노?"

"... 모르겠어. 좀 더 긴장돼서 아무래도 플레이가 급해질 거 같아. 정석이는 신경이 없는건지.."

"뭐? 그럼 내는 둔하다 말이가?"

"니 둔하잖아 자슥아."

"와~ 도경이 형은 또 와그라는데~"


"야~ 잘들있었냐~"

"어? 동수야!"

"어라? 동수해임이 무슨 일이지?"

"연습 잘하나 보러 왔지. 정석아, 그거 받아서 해보고 있는거야?"

"어? 어.. 조금 다르다 카긴 하는데, 얼마나 어째 다를지 알수가 있어야지. 암튼 해보고는 이쓰이까.."

"... 그래. 자! 피자가 곧 나의 뒤를 따를 것이다!"


와아, 하고 탄성을 지르는 찰나, 갑자기 조용하던 저쪽에서 한 명이 튀어 나온다.

"야~ 동수형 역시 멋져!!"

"와~ 점마 봐라~ 갱락이 니는 어디서 조용히 처박히 있다나 이래 나오고 그라노~"

"나 게임하고 있었어 임마~!"

"우끼지 마라. 니 또 자고 있었제?"


"...이놈들은 맨날 이모양이냐?"

"그라믄, 뭐 달라질거 같나? 우리도 매나 저랬다 자슥아."

꿈을 쫓는 청춘들. 모처럼 시원한 웃음이 한여름의 불안한 더운 공기를 갈라놓는 밤이었다.




7월 31일 오후 2시. 한빛스타즈 사무실

"어? 해임 오셨네, 후아암~."

"애들 아직도 자냐? 안깨워!!"

"어, 형 안녕하세요~"

"뭐야, 동수도 왔냐? 정석이는?"

"아, 요앞에 서연이 와가꼬 밥묵으러 갔는데요."

"그래? 오면 이야기하자."

"왜요? 무슨 일 있어요?"

"뭐긴 뭐겠냐. '그거'지. 새로 자료를 좀 줬어. 장비도 새로 주더라."

"그래요? 일단 저라도 해볼까요? 도경아 어때?"

"내는 초보랑 안한다. 닌 가서 도형이 형이나 이기고 와라"

"이자식이~!"



7월 31일 오후 2시. 신대방동 롯대 백화점 지하.


"천천히 먹어. 그리고, 그거만 먹어도 되겠어? '그거', 힘들다면서.."

"개안타, 내는 연습할때도 별로 안졌는데모, 아무렇지도 않다."

"그래도.."

"니 자꾸 그라몬 내 니 오지 말라 칸다이."

"금요일에.. 난 집에 있을께."

"그래라. 어차피 와도 못본다. 요환이 형 팬 윽수로 많을낀데 뭐."

서연은 자꾸 정석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정석은 우걱우걱 비빔밥을 입에 밀어넣으면서도 태연한 표정으로 그 눈빛을 가끔 마주 대할

뿐이다.

정석은, 쟁반을 반납하고는 자리에 다시 앉지 않고 인사를 한다. 서연은, 오늘따라 서둘러 연습을 원하는 그의 모습이 걱정스러워 견

딜 수 가 없다.

"조심해, 알았지?"

"니, 내 나중에 군대갈때도 그렇게 걱정해 줘야 됀데이. 그럼 간다. 참 그리고, 그럴 거면 금요일날 집에서도 보지 마라. 니 운다."

"응.. 조심해.."












to be continued...


p.s. 예전부터 박정석 선수가 주인공인 글을 써 보고 싶었지만, 늘 망설여 지더군요. 글이 부족해도 너그럽게 봐 주세요. ^^

2편은 "조만간" 올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닥 재미있는 내용은 아니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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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8/09 14:58
수정 아이콘
7월 28일.. 반갑군요. 제 생일입니다.
(이걸 덧글이라고 달아놓다니!! 퍽!! ;;;;)
실비아스
03/08/09 15:10
수정 아이콘
짧은데요. 2편 빨리~(읽는 주제에 말은 많다!!!)
완결되면 'ㅊ'모 게시판으로 순간이동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드는군요^^
마이질럿
03/08/09 15:27
수정 아이콘
정말 재미있군요....!!! 어서 또 올려주세요.
리오스
03/08/09 16:02
수정 아이콘
잼있습니다~ 얼렁 올려주세요 ㅇㅇ/
03/08/09 16:21
수정 아이콘
궁금해지네요... '그것'의 정체가 무엇일까...^^;
앞으로도 계속 부탁드립니다. (__)
03/08/09 16:35
수정 아이콘
그것이 모죠..ㅡㅡ
진짜 궁금하네요~
물빛노을
03/08/09 16:47
수정 아이콘
이야~ 멋져요 항즐님^^ 2편 빨리요-_-+
달려라태꼰부
03/08/09 16:49
수정 아이콘
놀라운 성격묘사로군요. 조규남 감독님성격까지 꼼꼼하게 그려내다니..
으하하~ 저의 이중성격은 못그려낼것입니다. t.t (퍼퍼퍽!!)
DeaDBirD
03/08/09 17:05
수정 아이콘
그것은 아마. 게임과 게임하는 게이머 사이에 감정과 고통을 일치시키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감도를 조절한다는 말씀을 보니..).. 영화 아발론이 생각나는 명작이 될 것 같습니다..
기영상
03/08/09 17:12
수정 아이콘
재밌네요!! 박정석선수가 주인공이라 더 원츄~!!(박정석 광팬 -_-+)
다음편이 기다려집니다~! 근데 서연이란 여자는 누구죠?? 실제 박정석 선수의 여자친군가요? 여자친구 있다고는 들은거 같던데
마린걸
03/08/09 17:48
수정 아이콘
아발론? 아바론? 암튼 그 영화가 명작이었나요?
한 30여분 보다가 테이프를 빼버린 기억이 있는데.....
서쪽으로 gogo~
03/08/09 18:26
수정 아이콘
서연은 누구입니까? -_-; 가공의 인물? 아니면 가수이름하고 똑같은게 항즐이님 서연팬인가요?
03/08/09 18:31
수정 아이콘
소설 안의 인물은 소설 안의 인물이고, 현실과 꼭 맞추어 볼 필요는 없겠죠? 항즐이 님, 잘 읽었습니다. ( _ _ )
03/08/09 20:05
수정 아이콘
오홋 +.+
후기 기대합니다!!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몽땅패하는랜
03/08/09 20:44
수정 아이콘
인사이드 스터프에서는 조금은 장난스럽고 귀여운 이미지로 나오셨던 위영광 PD님의 비장한 모습(원츄입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예상으로는 위 PD님의 비중이 커질 것 같다는(실은 개인적인 바램입니다ㅠ.ㅠ)
항즐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다음편도 자라 목 늘이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급조된 위사모(위영광 프로듀서를 사랑하는 모임) 행동대원이--;;;;
03/08/09 21:01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한가지 괜히 걸고 넘어지자면..
"와~ 점마 봐라~ 갱락이 니는 어디서 조용히 처박히 있다나 이래 나오고 그라노~"
"나 게임하고 있었어 임마~!"
이거 박정석선수와 박경락선수의 대화인 듯 한데요.. 박경락선수가 동생이니 '임마'는 좀^^;; (저의 오해라면 정말 죄송합니다ㅠ_ㅠ...)
아무튼, 박정석선수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설을 볼 수 있어서 매우 좋습니다^^ 다음편 기대하고 있을게요~
후니...
03/08/09 21:48
수정 아이콘
담편이 기대됩니다.. ^^
03/08/09 22:25
수정 아이콘
우와- 눈 비비며 후속작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_+/
서창희
03/08/10 01:57
수정 아이콘
추게로~ 추게로~ 추게로갑시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후속편 빨리 연재해주세요~
03/08/10 02:06
수정 아이콘
잘 봤습니다. 다음편이 기대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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